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친구>라는 영화는 우정의 변질을 통해 인간관계의 덧없음을 잘 보여주었으나, 오히려 우정의 참뜻을 제대로 모르는 철딱서니들은 깡패들의 싸구려 우정과 의리에 환호를 보냈다. 어떤 종류가 되었건 인간관계라는 것이 복잡하고 미묘한 것임을 잘 보여준다.

   

사마천은 인상여와 염파의 문경지교를 아름답게 그리고 난 다음 또 한 쌍의 문경지교를 소개하는데, 이번에는 인상여와 염파의 우정과는 사뭇 다른 경우이다. 사마천의 문경지교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변질되고 끝에 가서는 서로 원수가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까지 느끼게 한다. 얄미우리만치 진솔한 <사기>의 매력이 바로 이런 대목에서 번득이는데, <사기>는 인간과 세상이 그러하듯 종종 두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선택과 사색을 다그치곤 한다.

   

대량(大梁 :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출신의 장이(張耳. 기원전?~기원전202)와 진여(陳餘. 기원전?~204)는 모두 전국시대라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이었다. 나이가 약간 위인 장이는 위나라 현령으로 있으면서 진여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고, 진여도 그런 장이를 친형 이상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그야말로 두 사람은 문경지교를 나누는 사이였다. 두 사람의 우정은 점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위나라의 숨은 인재들이란 명성을 얻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기원전 225년 위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진나라는 차례차례 초제나라 등을 멸망시켜 마침내 천하 통일에 성공했다. 그 때가 기원전 221년이었다. 진나라는 위나라의 인재로 명성이 높았던 장이와 진여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함께 진(: 하남성 회양현)으로 도망쳐 신분과 명성을 숨긴 채 성문을 지키는 일을 하며 지냈다.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위기를 피하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이렇게 10여 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사이 진시황이 갑자기 쓰러졌고, 천하는 다시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기원전 209년 평범한 고용 농민 출신인 진승이 진의 타도를 외치며 농민들을 모아 들불처럼 천하를 휩쓸었다. 이때 장이와 진여는 진승 밑에 들어가 교위(장군의 보좌관) 벼슬을 받고 조나라 땅을 공격했다. 그런데 얼마 뒤 장이가 진나라 군대의 협격을 받아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친구진여는 이 위급한 상황을 알고서도 제때에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았고, 이 일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는 틈이 생기고 말았다.

   

이윽고 초패왕 항우가 진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관중지방을 압박함으로써 장이는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항우는 진나라에 대항해 일어난 군소 세력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였는데, 장이가 상산왕에 임명된 데 비해 진여는 세 개의 현을 관할하는 작은 자리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진여는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분함과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진여는 제나라왕 전영을 부추겨 장이를 공격하게 하였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장이는 도망쳤다. 이렇게 해서 조나라 전체가 진여의 수중으로 들어갔으며, 진여에게 패해 각지를 전전하던 장이는 한왕 유방에게 투신했다. 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기원전 205, 항우에게 선전포고를 결행한 유방은 초나라로 진격하기에 앞서 사신을 보내 조나라의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진여는 교환조건으로 장이의 목을 요구했다. 장이를 죽일 수 없었던 유방은 장이와 닮은 사람을 찾아 그 목을 베어 진여에게 보냈고, 진여는 약속대로 군사를 파견하여 유방을 도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머리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여는 군대를 바로 철수시켰고, 그 결과 유방과 등을 지게 되었다.

   

이듬해인 기원전 204, 유방은 한신과 장이를 보내 조나라를 공격했다. 이 전투에서 조나라는 크게 패했고, 진여 또한 전사했다. 그리고 장이는 조왕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을 맺었다. 서로를 위해 목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았던 우정이 서로의 목을 원하는 원수관계로 변질되고서야 막을 내렸던 것이다. 이합집산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난세의 인간관계는 죽음으로 맺어진 문경지교조차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고, 같은 하늘 밑에서는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인간관계를 이렇게 비정하게 변질시키는 요인은 무엇일까? 사마천이 <장이진여열전>의 마지막 대목에 남긴 논평이 아쉬운 대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장이와 진여는 세상에서 괜찮은 사람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식객은 물론 마부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준걸이 아닌 사람이 없었으며. 그들이 머물던 나라에서 경이나 재상이 되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그러나 장이와 진여는 당초 가난하고 보잘것없었을 때 목숨을 걸고 서로 믿기로 맹세하였으니, 서로 돌아보고 의심하는 일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라에 몸을 맡겨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없애려 했다. 처음에는 서로 사모하고 믿는 마음이 그리도 진실하더니 뒤에는 어찌 그리도 심하게 서로 배반하게 되었는가? 그들이 권세와 이익으로 사귀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들의 명성이 높고 빈객이 많았다고는 하나, 그들이 걸어온 길은(나라를 서로 사양하면서 개인적 이익을 초월했던) 오나라의 태백이나 연릉(延陵)의 계자(季子)와는 엄연히 달랐다.

   

사마천은 이 열전에서 진나라 말기에는 진에 대항했고 그 뒤 초한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던 조나라의 상황과 이곳에서 일어나 활약한 장이와 진여의 시대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당시 숱한 영웅들의 반열에 올라 천하를 울렸던 장이와 진여의 진한 우정과 그 뒤 생사존망의 다급한 상황에서 오해로 인해 우정을 끊고 대립하다 결국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과정을 안타까운 어조로 묘사했다. 이렇게 사마천은 두 사람의 결별을 대세에 따른 이해관계로 파악하고 있으나,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이보다는 인간관계의 비정함에 울적함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도 비정한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때로는 거기에 동조하곤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인간의 마음이란 주변 환경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질된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을 뛰어넘고, 빈부를 뛰어넘고, 신분을 뛰어넘어 진정한 우정을 쌓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있으면 우정의 진심을 알게 되고, 한 사람은 가난하고 한 사람은 부유하면 우정의 태도를 알게 되고, 한 사람은 출세하고 한 사람은 천하면 우정의 진정성이 나타난다.”[<급정열전> 중 적공(翟公)의 말]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변질된 우정만큼 악취 나는 인간관계도 없다. 변질은 늘 애당초의 진의마저 의심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까지 일게 한다. 인간관계가 참으로 어려운 까닭도 변질되어버린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늘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P.20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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