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5
알퐁스 도데 지음, 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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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청소년기에 읽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알퐁스 도데의 입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별은 184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순박한 목동의 청순한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여 순진무구한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동화 같은 스토리가 좋았습니다..

 

예전에 이 작품을 읽어 보신 분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겠지만 주인집 아가씨와 하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떠나 목동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 정말 좋았습니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은 조금도 없는 인간의 본연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목동의 짝사랑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가슴 졸일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 목동이 산골에서 또래 여자라고는 주인집 아가씨 밖에 몰랐을 수도 있고, 몇몇 동네 아가씨 중에 스테파네트가 제일 예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목동의 아가씨를 향한 연정은 순도 100%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주인집 아가씨가 목동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봤더라면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요. 그러나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목동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아가씨를 연모하는 그 순진한 마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처럼 서로 사랑의 결실이 이뤄져서 행복한 결말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비록 신분의 높은 벽 때문에 목동의 짝사랑이 현실로 이뤄지기가 어렵겠지만 그의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이 너무 고결해 보여서 가엾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때 을 읽고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게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은 내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춘기 때 산골 생활이 '별' 작품과 비슷한 환경이라 그런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나도 별처럼 영롱하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세상에 휩쓸려 나의 사랑관념도 많이 바뀌어 버렸지만 그래도 가끔 순수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을 때, 난 '별'을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합니다 예전의 풋풋한 마음으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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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브롱 산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을 무렵, 나는 초원 속에서 혼자 사냥개 라브리와 양들을 데리고 몇 주일 내내 사람의 그림자 하나 구경 못한 채 지냈습니다. 가끔 몽드뤼르의 수도자들이 약초를 찾아 이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피에몽 주변 숯장사의 새카만 얼굴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이들은 사람들과 접촉이 없는 소박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별로 말이 없었고, 이야기하는 흥미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저 아래 마을이나 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름마다 보름치 식량을 가지고 산길을 올라오는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들릴 때, 어린 머슴아이의 쾌활한 얼굴이나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의 붉은 두건이 차츰 언덕 위로 나타날 때면 정말 한없이 기뻤습니다.

 

저 아래 마을 소식, 영세 받은 일, 시집가고 장가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우리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이었습니다. 인근에서 아가씨보다 더 예쁜 아가씨는 없었습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체하면서 아가씨가 잔칫집에 자주 초대받으며 야회에도 많이 나가는지, 여전히 새로운 남자 친구들이 아가씨를 찾아오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불쌍한 산의 목동인 나에게 그런 일들이 무슨 소용이 되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나이 스무 살이었고, 스테파네트는 내가 태어나서 본 여성 중 가장 아름다웠노라고.(중략)

 

그런데 어느 일요일, 기다리던 보름치 식량이 아주 늦게 서야 도착했습니다. 아침나절에는 대미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점심때에는 소낙비가 지나갔으니 길이 나빠 노새가 떠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시쯤이 되자 마침내 하늘이 씻은 듯이 개고, 산은 물기와 햇빛으로 빛나는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물이 불어 넘치는 시냇물 소리에 섞여 노새의 방울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부활절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만큼이나 맑고 경쾌했습니다. 그러나 노새를 이끌고 온 것은 머슴아이도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우리 아가씨였습니다. 아가씨 자신이었습니다. 버들 바구니 사이에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은 아가씨는 소낙비 뒤의 시원한 바람으로 뺨이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었습니다.(중략)

 

스테파네트는 바구니에서 식량을 다 끄집어내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씨는 금방 때가 묻을 것만 같은 나들이옷의 고운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는 양 우리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가 자는 곳이며, 양피를 깐 짚방석이며, 벽에 걸린 커다란 외투며 지팡이며 돌총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아가씨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사는군요? 가엾어라! 항상 혼자 있으니 얼마나 따분할까! 무얼 하며 지내세요? 무얼 생각하죠.....?” 나는 아가씨, 당신을하고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말했어도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단 한마디의 말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가씨는 분명히 그것을 눈치 챘을 겁니다. 그러기에 심술궂은 아가씨는 짓궂게도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좋아했던 것입니다.

 

애인이 가끔 당신을 만나러 오지요?”.....그건 틀림없이 황금빛 양이 아니면, 산꼭대기만을 뛰어다니는 선녀 에스테렐일 거야....,“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아가씨야말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예쁘게 웃는 것이나 유령처럼 왔다가 급히 가버리는 것이 마치 선녀 에스테렐 같았습니다.

잘 있어요.”

아가씨, 안녕.”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아가씨가 비탈길을 따라 사라져갔을 때, 노새 발굽에 채어 구르는 조약돌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 위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를 언제까지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해질 무렵까지 잠에 취한 듯 꿈에서 깰까봐 몸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골짜기가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고, 양들이 소리 내어 울면서 서로 밀치며 우리로 돌아올 무렵이었습니다. 비탈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아가씨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의 명랑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옷은 물에 젖은 채 추위와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아가씨가 산 아래 이르렀을 때, 소낙비로 불어난 소르그 냇물을 무리하게 건너려고 하다 잘못하여 물에 빠진 모양입니다.(중략)

 

그러는 동안에 완전히 밤이 되었습니다. 뿌연 햇살과 희미한 석양빛이 산꼭대기에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가씨가 우리 안에 들어가 쉬도록 했습니다. 깨끗한 짚 위에 고운 새 모피를 깔아놓고 아가씨에게 잘 자라고 이른 다음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습니다. 사랑의 불길에 혈관이 타오르는 듯했는데도 티끌만큼의 나쁜 생각도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느님은 믿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한구석에서 잠든 아가씨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양들 곁에서다른 어느 양보다 더 소중하고 순결한 양인 듯주인집 따님이 나의 보호에 마음 놓고 잠들었다는 자랑스러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양 우리의 빗장문이 열리더니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드는 시각에 또 하나의 신비스러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중략)

 

목동들은 마법사라면서요? 참말인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여기에서 살면 별들과 더 가까우니 들에 있는 사람들보다 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아는 거죠.” 아가씨는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턱을 괴고 염소 가죽을 두른 아가씨의 모습은 마치 하늘나라의 귀여운 목동과도 같았습니다.

참 많기도 해라!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이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봐요! 저 별들의 이름을 알아요?”

알고말고요....., , 보세요!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성 야곱의 길(은하수)’이죠. 저것은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곧장 뻗었어요. 용감한 샤를마뉴 대왕이 사라센과 싸울 때 갈리스의 성 야곱이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려 놓았다는 거예요. 더 멀리 있는 저것이 영혼의 수레(큰곰자리)’예요. 네 개의 바퀴가 반짝이죠. 그 앞에 있는 세 개의 별이 세 마리의 야수’, 그 세 번째 맞은편에 있는 아주 작은 별이 마차꾼이라는 거예요. 그 주위에 비오듯 흩어진 별들이 보이죠? 저것이 하느님이 집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영혼들이랍니다...., 그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것이 쇠스랑또는 세 명의 왕(오리온)‘이랍니다. 저 별들은 우리네 목동들에게 시계의 역할을 한답니다. 보기만 해도 지금 자정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보다 조금 아래 언제나 남쪽에서 빛나는 것이 장 드밀랑‘, ’별들의 횃불(천랑성)‘이죠. 저 별에 대해서 목동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죠. 어느 날 밤 장 드밀랑세 명의 왕닭장(북두칠성)‘과 함께 친구별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더랍니다. ’닭장은 성질이 아주 급해 제일 먼저 길을 떠나 윗길로 갔다는군요. 저것 보세요. 저 위에 아주 하늘 한복판에 있지요. ’세 명의 왕은 아랫길로 질러가서 닭장을 따라 갔답니다. 그러나 느림보인 장 드밀랑은 늦게까지 자다가 아주 뒤에 처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화가 난 그는 두 친구를 멈춰 서게 하려고 지팡이를 던졌답니다. 그래서 세 명의 왕장 드밀랑의 지팡이라고도 부르지요....,그러나 모든 별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별인 목동의 별이랍니다. 새벽에 우리가 양 떼를 몰고 나갈 때, 또 저녁이 되어 양 떼를 몰고 들어올 때, 저 별은 우리 앞에서 빛나지요. 우리는 이것을 마글론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예쁜 마글론프로방스의 베드로(토성)‘의 뒤를 쫓아가서 7년에 한 번씩 그와 결혼을 한답니다.”

뭐라구요! 별들도 결혼을 하나요?”

그럼요.”

그리고 별들의 결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다가, 나는 무엇인가 신선하고 보드라운 것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가씨가 졸음에 겨워 무거운 머리를,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 대며, 가만히 기대온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는 날이 밝아 하늘의 별들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나는 잠든 아가씨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별들이 계속해서 많은 양 떼처럼 말없이 조용히 움직여 갔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별들 가운데서 가장 곱고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 위에서 잠들었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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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 인물 vs 인물 - 이원복과 신병주의 시시콜콜 역사 토크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이원복 외 지음, KBS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제작팀 엮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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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한반도에 국한된 역사적 인식한계를, 시공을 넘어 세계사와 비교하는 참신한 아이템이 좋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이나 일반인의 시야를 세계의 무대로 확대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관심을 넓혀갈 수 있고, 한국사와 세계사 위인들의 비교를 통해, 동서양 역사의 연결고리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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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진달래꽃 - 김소월 시집, 1925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김소월 지음 / 소와다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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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 전 처음 소월의 작품을 대했을 때 여류시인인 줄 알았다. 시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시어 섬세함이 천생 여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후 소월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혼동의 충격에 빠졌다.

 

어쩜 남성이 저리도 여리고 순수한 감성을 지닐 수 있을까? 요즘은 이정섭 선생님 같은 분을 TV로 뵈어서 그런지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지마는 당시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생각이 사회통념에 너무 얽매여 있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학창생활과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김소월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0~20대 한창 감성이 풍부했던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소월의 시를 연애편지에 옮겨 보기도 하고, 자랑삼아 소월의 시 몇 편은 외우고 다녔을 것이다.

 

절제된 언어의 조탁과 영롱한 시어의 구사로 단숨에 젊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천재 시인! 그기에다 동서고금에  법칙처럼 통하는 요절의 인생사까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아리게 했던 소월의 인생사는 한 편의 시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진달래꽃, 먼후일, 님에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초혼,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산유화 등등 주옥같은 작품을 써내려간 소월의 작품들을 발간 당시 모습 그대로 다시 볼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다. 특히, 오랫동안 가로읽기에 길들여진 나에게 세로읽기는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한 편 한 편 천천히 음미하면서 처음 읽었을 때의 떨림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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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 - 가사집 겨레고전문학선집 39
정극인 외 지음, 현종호 엮음 / 보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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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 옛 사람 풍류를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나만 한 이 많건마는 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르는가. 수간모옥을 벽계수 앞에 두고 소나무 숲 울창한 속에 풍월주인 되었어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화 행화는 석양 속에 피어 있고, 녹양방초는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마름질했나 붓으로 그려 냈나 조물주의 솜씨가 물물마다 대단하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거니 흥이야 다를 쏘냐. 사립문에 걸어 보고 정자에 앉아 보니 소요음영하여 산속 하루가 적적한데 한중진미를 알 이 없어 혼자로다.

 

여보소 이웃들아 산수 구경 가자꾸나. 답청일랑 오늘 하고 욕기란 내일 하세. 아침에 나물 캐고 저녁에 낚시 하세.

 

갓 괴어 익은 술을 칡베로 밭아 놓고 꽃나무 가지 꺾어 수놓고 먹으리라. 봄바람이 건듯 불어 녹수를 건너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 술병이 비었거든 나에게 알리어라. 작은 아이에게 주막에 술을 물어 어른은 막대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 미음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맑은 모래 깨끗한 물에 잔 씻어 부어 들고 청류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들이 그곳인가.

 

소나무 숲 가는 길에 두견화를 붙들고 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 수많은 마을이 곳곳에 벌여 있네. 연하일휘는 비단을 펼쳤는 듯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 사.

 

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단표누항에 허튼 생각 아니 하네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 한들 어떠하리'

 

<풀 이>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나의 이 생활이 어떠한가.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 미칠까?세상의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몇 간 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엊그제 겨울이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저녁 햇빛 속에 피어 있고,푸른 버들과 아름다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칼로 재단해 내었는가? 붓으로 그려 내었는가?조물주의 신비스러운 솜씨가 사물마다 굉장하구나(야단스럽구나)!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여소리마다 아양을 떠는 모습이로다.자연과 내가 한 몸이거니 흥겨움이야 다르겠는가?사립문 주변을 걷기도 하고 정자에 앉아 보기도 하니,천천히 거닐며 나직이 시를 읊조려 산 속의 하루가 적적한데,한가로운 가운데 참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없이 나 혼자로구나.

 

여보게 이웃 사람들이여, 산수 구경을 가자꾸나.산책은 오늘 하고 냇물에서 목욕하는 것은 내일 하세.아침에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 낚시질을 하세.

 

이제 막 익은 술을 갈건으로 걸러 놓고,꽃나무 가지를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으리라.화창한 바람이 문득 불어서 푸른 시냇물을 건너오니,맑은 향기는 술잔에 가득하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술동이 안이 비었으면 나에게 아뢰어라.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서 술집에서 술을 사 가지고,어른은 지팡이를 짚고 아이는 술을 메고,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걸어 시냇가에 혼자 앉아,고운 모래가 비치는 맑은 물에 잔을 씻어 술을 부어 들고,맑은 시냇물을 굽어보니 떠내려 오는 것이 복숭아꽃이로다.무릉도원이 가까이 있구나. 저 들이 바로 그곳인가?

 

소나무 사이 좁은 길로 진달래꽃을 손에 붙잡아 들고,산봉우리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 보니,수많은 마을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네.안개와 놀과 빛나는 햇살은 아름다운 비단을 펼쳐 놓은 듯.엊그제까지도 거뭇거뭇했던 들판이 이제는 봄빛이 넘치는구나.

 

공명과 부귀가 모두 나를 꺼리니,아름다운 자연 외에 어떤 벗이 있겠는가.비록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잡스러운 생각은 아니 하네.아무튼 한평생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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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추위를 겪고 난 뒤라 그런지 봄이 그립다. 아직 봄이 오려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어제 오늘 촉촉이 내린 비가 봄비 마냥 느껴진다. 비교적 겨울이 긴 우리나라 날씨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긴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나 엄동설한의 겨울은 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간사한 내 마음이다.

 

가끔 시골의 향수가 그리울 때,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가롭게 쉬고 싶을 때 생각나는 옛글이 있다. 상춘곡(賞春曲)도 내가 좋아하는 가사문학의 하난데, 이런 내 기호에 안성맞춤인 글이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이 문장을 외우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이제는 서두와 말미를 조금 빼고는 거의 다 잊어 버렸다. 가사문학이 그렇듯이 적절한 운율이 있어서 노래를 부르듯 읽으면 운율이 느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단에 흥이 절로 나서 심심풀이로 중얼중얼 읊고 다니기도 했다.

 

가사의 내용을 보면 또 얼마나 목가적이고 낭만적인가? 요즘 가끔 자연인을 예찬하는 TV방송을 보는데, 부러울 때가 있다. 세속적인 잣대로 보면 인생의 실패자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산수를 벗 삼아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우울하진 않을 것 같다. 하기야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올 봄에는 봄나들이 나가서 실컷 자연풍광을 구경하면서 옛 선비들의 고상한 정취를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다. 필자가 상춘곡을 부르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실어서 막걸리 몇 병 받아놓고 친구와 오붓하게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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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 시리즈 세트 - 전6권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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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 삼국지를 백 번 읽는 것 보다 사기 한 번 읽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전 국민의 애독서인 삼국지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사기(史記)’가 삼국지보다 훨씬 교훈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인생을 성찰할 수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와 다르게 역사적 사실을 살짝 비틀어 삼국지(연의)’를 흥미 위주로 썼다면,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면서 몸소 여러 고을을 방문하여 수많은 일화와 입으로 전해오는 얘기를 채록하여 썼기에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고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된다. 하지만 유학자가 쓴 정통 사서라 읽을 때 문장이 딱딱하고 다양한 고사의 인용으로  이해가 어려워 사기를 완독하기란 쉽지 않다.  짧은 시간에 사기를 완독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읽으면 인간미 넘치는 사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양각색의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과 협객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하는 데 거울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이제껏 김원중 교수의 사기와 김영수 교수의 사기가 번역되어 시중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이번에 또 신동준 박사의 사기가 한자 원문까지 실려 완역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또 한 번 사기를 읽으며 예전에 느꼈던 진한 감동을 재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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