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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단편선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5
알퐁스 도데 지음, 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황순원의 ‘소나기’와 함께 청소년기에 읽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알퐁스 도데의 ‘별’입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별은 184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순박한 목동의 청순한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갈등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여 순진무구한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동화 같은 스토리가 좋았습니다..
예전에 이 작품을 읽어 보신 분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꼈겠지만 주인집 아가씨와 하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떠나 목동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 정말 좋았습니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은 조금도 없는 인간의 본연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목동의 짝사랑을 보면서 안타까움에 가슴 졸일 때가 많았습니다. 당시 목동이 산골에서 또래 여자라고는 주인집 아가씨 밖에 몰랐을 수도 있고, 몇몇 동네 아가씨 중에 스테파네트가 제일 예뻐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목동의 아가씨를 향한 연정은 순도 100%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주인집 아가씨가 목동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봤더라면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요. 그러나 아가씨는 아무 것도 모르고 목동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아가씨를 연모하는 그 순진한 마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동화에 나오는 왕자와 공주처럼 서로 사랑의 결실이 이뤄져서 행복한 결말을 맺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비록 신분의 높은 벽 때문에 목동의 짝사랑이 현실로 이뤄지기가 어렵겠지만 그의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이 너무 고결해 보여서 가엾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때 ‘별’을 읽고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동경하게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별’은 내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훌륭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춘기 때 산골 생활이 '별' 작품과 비슷한 환경이라 그런지,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나도 별처럼 영롱하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세상에 휩쓸려 나의 사랑관념도 많이 바뀌어 버렸지만 그래도 가끔 순수한 사랑을 느껴보고 싶을 때, 난 '별'을 읽고 마음의 위안을 얻곤 합니다. 예전의 풋풋한 마음으로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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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브롱 산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을 무렵, 나는 초원 속에서 혼자 사냥개 라브리와 양들을 데리고 몇 주일 내내 사람의 그림자 하나 구경 못한 채 지냈습니다. 가끔 몽드뤼르의 수도자들이 약초를 찾아 이곳을 지나가기도 하고, 피에몽 주변 숯장사의 새카만 얼굴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이들은 사람들과 접촉이 없는 소박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별로 말이 없었고, 이야기하는 흥미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저 아래 마을이나 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름마다 보름치 식량을 가지고 산길을 올라오는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들릴 때, 어린 머슴아이의 쾌활한 얼굴이나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의 붉은 두건이 차츰 언덕 위로 나타날 때면 정말 한없이 기뻤습니다.
저 아래 마을 소식, 영세 받은 일, 시집가고 장가간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기쁘게 한 것은 우리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이었습니다. 인근에서 아가씨보다 더 예쁜 아가씨는 없었습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체하면서 아가씨가 잔칫집에 자주 초대받으며 야회에도 많이 나가는지, 여전히 새로운 남자 친구들이 아가씨를 찾아오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불쌍한 산의 목동인 나에게 그런 일들이 무슨 소용이 되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나이 스무 살이었고, 스테파네트는 내가 태어나서 본 여성 중 가장 아름다웠노라고.(중략)
그런데 어느 일요일, 기다리던 보름치 식량이 아주 늦게 서야 도착했습니다. 아침나절에는 대미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점심때에는 소낙비가 지나갔으니 길이 나빠 노새가 떠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시쯤이 되자 마침내 하늘이 씻은 듯이 개고, 산은 물기와 햇빛으로 빛나는데,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물이 불어 넘치는 시냇물 소리에 섞여 노새의 방울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부활절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만큼이나 맑고 경쾌했습니다. 그러나 노새를 이끌고 온 것은 머슴아이도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우리 아가씨였습니다. 아가씨 자신이었습니다. 버들 바구니 사이에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앉은 아가씨는 소낙비 뒤의 시원한 바람으로 뺨이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었습니다.(중략)
스테파네트는 바구니에서 식량을 다 끄집어내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씨는 금방 때가 묻을 것만 같은 나들이옷의 고운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는 양 우리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가 자는 곳이며, 양피를 깐 짚방석이며, 벽에 걸린 커다란 외투며 지팡이며 돌총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아가씨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사는군요? 가엾어라! 항상 혼자 있으니 얼마나 따분할까! 무얼 하며 지내세요? 무얼 생각하죠.....?” 나는 “아가씨, 당신을”하고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말했어도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단 한마디의 말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가씨는 분명히 그것을 눈치 챘을 겁니다. 그러기에 심술궂은 아가씨는 짓궂게도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고 좋아했던 것입니다.
“애인이 가끔 당신을 만나러 오지요?”.....그건 틀림없이 황금빛 양이 아니면, 산꼭대기만을 뛰어다니는 선녀 에스테렐일 거야....,“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아가씨야말로 머리를 뒤로 젖히고 예쁘게 웃는 것이나 유령처럼 왔다가 급히 가버리는 것이 마치 선녀 에스테렐 같았습니다.
“잘 있어요.”
“아가씨, 안녕.”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가지고 떠났습니다.
아가씨가 비탈길을 따라 사라져갔을 때, 노새 발굽에 채어 구르는 조약돌 하나하나가 나의 가슴 위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를 언제까지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해질 무렵까지 잠에 취한 듯 꿈에서 깰까봐 몸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골짜기가 푸른빛을 띠기 시작하고, 양들이 소리 내어 울면서 서로 밀치며 우리로 돌아올 무렵이었습니다. 비탈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리 아가씨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얼마 전의 명랑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옷은 물에 젖은 채 추위와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아가씨가 산 아래 이르렀을 때, 소낙비로 불어난 소르그 냇물을 무리하게 건너려고 하다 잘못하여 물에 빠진 모양입니다.(중략)
그러는 동안에 완전히 밤이 되었습니다. 뿌연 햇살과 희미한 석양빛이 산꼭대기에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가씨가 우리 안에 들어가 쉬도록 했습니다. 깨끗한 짚 위에 고운 새 모피를 깔아놓고 아가씨에게 잘 자라고 이른 다음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습니다. 사랑의 불길에 혈관이 타오르는 듯했는데도 티끌만큼의 나쁜 생각도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하느님은 믿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한구석에서 잠든 아가씨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양들 곁에서ㅡ 다른 어느 양보다 더 소중하고 순결한 양인 듯ㅡ주인집 따님이 나의 보호에 마음 놓고 잠들었다는 자랑스러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갑자기 양 우리의 빗장문이 열리더니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야외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다면, 우리가 잠드는 시각에 또 하나의 신비스러운 세계가 고독과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중략)
“목동들은 마법사라면서요? 참말인가요?”
“그럴 리가 있나요. 여기에서 살면 별들과 더 가까우니 들에 있는 사람들보다 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아는 거죠.” 아가씨는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턱을 괴고 염소 가죽을 두른 아가씨의 모습은 마치 하늘나라의 귀여운 목동과도 같았습니다.
“참 많기도 해라!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이렇게 많은 별들은 처음 봐요! 저 별들의 이름을 알아요?”
“알고말고요....., 자, 보세요!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이 ‘성 야곱의 길(은하수)’이죠. 저것은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곧장 뻗었어요. 용감한 샤를마뉴 대왕이 사라센과 싸울 때 갈리스의 성 야곱이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려 놓았다는 거예요. 더 멀리 있는 저것이 ‘영혼의 수레(큰곰자리)’예요. 네 개의 바퀴가 반짝이죠. 그 앞에 있는 세 개의 별이 ‘세 마리의 야수’, 그 세 번째 맞은편에 있는 아주 작은 별이 ‘마차꾼’이라는 거예요. 그 주위에 비오듯 흩어진 별들이 보이죠? 저것이 하느님이 집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영혼들이랍니다...., 그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것이 ‘쇠스랑‘ 또는 ’세 명의 왕(오리온)‘이랍니다. 저 별들은 우리네 목동들에게 시계의 역할을 한답니다. 보기만 해도 지금 자정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보다 조금 아래 언제나 남쪽에서 빛나는 것이 ’장 드밀랑‘, ’별들의 횃불(천랑성)‘이죠. 저 별에 대해서 목동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죠. 어느 날 밤 ’장 드밀랑‘이 ’세 명의 왕‘과 ’닭장(북두칠성)‘과 함께 친구별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더랍니다. ’닭장‘은 성질이 아주 급해 제일 먼저 길을 떠나 윗길로 갔다는군요. 저것 보세요. 저 위에 아주 하늘 한복판에 있지요. ’세 명의 왕‘은 아랫길로 질러가서 닭장을 따라 갔답니다. 그러나 느림보인 ’장 드밀랑‘은 늦게까지 자다가 아주 뒤에 처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화가 난 그는 두 친구를 멈춰 서게 하려고 지팡이를 던졌답니다. 그래서 ’세 명의 왕‘을 ’장 드밀랑‘의 지팡이라고도 부르지요....,그러나 모든 별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별인 ’목동의 별‘이랍니다. 새벽에 우리가 양 떼를 몰고 나갈 때, 또 저녁이 되어 양 떼를 몰고 들어올 때, 저 별은 우리 앞에서 빛나지요. 우리는 이것을 ’마글론‘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예쁜 ’마글론‘은 ’프로방스의 베드로(토성)‘의 뒤를 쫓아가서 7년에 한 번씩 그와 결혼을 한답니다.”
“뭐라구요! 별들도 결혼을 하나요?”
“그럼요.”
그리고 별들의 결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다가, 나는 무엇인가 신선하고 보드라운 것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가씨가 졸음에 겨워 무거운 머리를,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 대며, 가만히 기대온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는 날이 밝아 하늘의 별들이 희미하게 사라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청명한 밤의 신성한 보호를 받으며 나는 잠든 아가씨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별들이 계속해서 많은 양 떼처럼 말없이 조용히 움직여 갔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별들 가운데서 가장 곱고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 위에서 잠들었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