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과 체찰 - 조선의 지성 퇴계 이황의 마음공부법
신창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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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 선생의 면모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주로 편지글 형태가 많이 실렸는데, 성리학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내용이다. 자신의 안부와 함께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곡진하고 친절하다.

 

거목 퇴계가 왜 이토록 유명하게 되었고, 그의 학문이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쓴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회적 명망이나 지위로 봤을 때  보통의 유명인사라면 큰소리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 할텐데, 퇴계의 글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이 나도 같은 학문의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깍듯한 예우와 함께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가 묻어난다. 

 

당대의 학자 기대승과 나눈 '사단칠정론' 논쟁만 보아도 그렇다. 서른 살이나 아래인 젊은 학자 기대승의 지적을 받고 흔쾌히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것은 인정했고,  동등한 학자의 지위로 상대를 높여 주면서 조목조목 따질 것을 따졌다. 노학자의 고매한 인품이 문장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퇴계는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진사출신인 아버지를 생후 7개월에 여의고 3세에 양자로 백부의 집에 기탁하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온갖 고난을 전전하면서도 배움에 있어서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학문에 너무 매진하다가 일찍 병을 얻어 평생 질병의 고통에서 괴로움을 당하는데, 그도 글에서 밝혔듯이, 단기간에 무엇을 이루겠다고 공부에 너무 욕심내는 것을 경계했다.

 

인생이 몇십 년이 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단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너무 몸을 혹사한 나머지 병을 얻은 것을 크게 후회하면서 후학들에게 큰 학문을 성취하려면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공부할 것을 권했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하루아침에 학문을 완성하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고, 성실하게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때에 크게 이룰 것이라고 했다.

 

몸이 노쇠해지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학문적 물음에 일일이 답변을 못해주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에서 문득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대방은 양해를 구하는 퇴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아픈 와중에도 배움을 향한 학구열은 여전히 불타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데, 배우고는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슬프다는 퇴계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조선사에 있어 퇴계만큼 공직의 부름을 많이 받은 학자도 드물 것이다. 퇴계의 공직생활은 주로 중종이나 명종조에 있었지만 어느 왕이 집권하든 퇴계는 항상 공직 임명 1순위였다. 우아한 인품과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왕조차 그의 인품과  학식을 흠모하여 곁에 두기를 간절히 원했다.

 

퇴계는 노년이 될수록 악화되는 건강과 후학양성이라는 자신의 포부를 실천하기 위해 안동으로 내려가 칩거한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학문을 병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몸소 체험한 퇴계는 하는 일 없이 녹봉만 축낸다는 미안함에 매번 공직에서 물러났다 다시 부름을 받고 공직생활을 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16세기 중후반이 되면서 붕당이 생기고 당파세력들이 서로를 헐뜯고 싸울 때 그것을 조정해 줄 명망있는 대신이 왕은 필요했을 것이다. 국운이 기울고 탐관오리들이 설쳐되는 조선 중기의 정세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그나마 이런 상황을 지탱해 줄 버팀목으로 퇴계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수대에 걸쳐 공직생활을 하면서 왕은 퇴계만큼 미더운 신하가 없었다. 퇴계는 병마를 핑계로 낙향을 간청하고 왕은 마지못해 허락하는 것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왕의 요청을 거부하는 거만함이 극치에 이르렀다는 모함과 세상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퇴계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인 조선 중기를 율곡과 더불어 슬기롭게 이끌고 간 현신임에 틀림없다. 사심없이 청렴하게 살았고, 왕에게 간언을 아끼지 않았다. 성학십도를 지어 현명한 왕이 나아갈 길을 밝혔고,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퇴계학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비록 유교의 폐단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조선의 성리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그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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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6-10-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명 조식과 관련해 유명한 일화는 `을묘사직소`인데 명종이 단성현감에 남명 조식을 제수하나, 남명 조식은 관직을 받을 수 없음을 상소로 고한 것이다. 유독 이 상소가 유명한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쓰러져가는 고목에 비유했음은 물론이고 명종을 선왕의 단지 어린 고아로, 문정왕후를 구중궁궐 내의 과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화를 입었을 뻔 하였으나 당시가 선비들의 기강이 흐트러졌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는 선비가 바로 서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여 많은 선비들과 학자들이 남명을 두둔했다. 이에 명종은 이 일은 불문에 처한다고 사건을 마무리한다.(이황과 조식 선생을 제가 혼동해서 처음에 잘못 올렸습니다.)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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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그의 수제자 황상의 평생 변함없는 사제의 정을 기록한 책이 정민 교수님이 쓴 '삶을 바꾼 만남'이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바위도 세월이 지나면 풍화되어 자갈이 되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모래가 되듯이, 이 우주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다산의 삶을 보면 변화무쌍한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증명되는 듯하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정조의 총애를 받아 정계에 입문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보호막이 돼 주던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자 하루아침에 날개잃은 새처럼 끝없이 추락한다. 벽파(공서파)의 집권으로 시파의 탄압이 시작되고 특히 다산은 본보기가 되어 신유박해(1801)때 천주교 신봉의 죄를 물어 유배의 길에 오른다. 한때 벽파의 시기로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목숨만은 부지한다.

강진으로 유배가서도 중죄인이 되어 주민들이 그를 만나기를 꺼려하고 피하기만 하였다. 본래 죄인이 마을에 오면 그 마을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부양을 해야 하는데, 다산은 처음엔 강진의 주민들에게도 환대받지 못했다. 기거할 집을 구하지 못해 주막에다 거쳐를 마련하고 잠시 머문다는 것이 1년 넘게 기숙하게되는데, 강진(전라도)에서 그 정도로 다산을 꺼려하고 아무도 자기 집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다산은 중앙에서 요직을 맡았고 글을 읽은 선비라 마을의 학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아무 일도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는 것이 다산에게도 참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 만난 학동이 15살 더벅머리 아이 '황상'이었다. 다산은 당시 41살이었다. 1802년경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배타적이던 마을의 민심도 다산을 좀 이해하는 듯했다. 대개 그렇듯이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부모된 도리로 고마움과 함께 미운 감정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다산의 제자들은 벽촌의 구석에서 글과는 담을 싼 무지렁이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선생이 똑똑하면 그 제자도 닮아가듯이 다산의 매서운 학구열에 제자들도 서서히 몽매에서 벗어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학구열이 대부분 과거시험을 위한 과정으로 전도되면서 많은 제자들이 과거시험에 목을 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산이 10여년간 중앙에 머물렀던 연줄을 매개로 시험청탁이나 관직청탁을 하는 편지가 다산에게 자주 오게 되는데, 다산의 성품이 청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렴하고 강직한 탓에 모든 청탁을 거절하게 된다. 이를 섭섭하게 여긴 제자들은 다산을 음해하고 사제의 연을 끊으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다산을 괴롭혔다.

오직 황상만은 과거의 뜻을 접고 산촌 벽지로 들어가 논밭을 일구며 다산의 유지를 받들어 농부로 살아간다. 다산이 강진에서 풀려난 후 서울로 상경하면서 황상과 헤어지게 되는데 이후 둘의 만남은 오랫동안 없었다. 다산이 몸이 안좋으니 꼭 한번 보고 싶다는 편지를 몇번 보내고 한참 지난 1836년 황상은 다산이 사는 경기도 광주를 찾게되는데, 당시에 다산은 몸이 극도로 좋지않은 상태였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다산과 황상,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서글퍼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생과사의 문턱에서 희미해져가는 스승을 보는 것 또한 큰 슬픔이었다.

다산은 사흘 머문뒤에 떠나는 제자에게 붓과 벼루 등의 선물과 노자까지 챙겨준다. 그러나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다산의 부고를 들은 황상은 다시 울며불며 스승의 집을 찾아 장례를 치른다. 다산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도 황상과 연배가 비슷해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며 황상과도 글을 주고 받기도 하고 시문을 돌려가며 잘잘못을 짚어주기도 했다. 잘했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여 보충토록 했다. 아버지의 제자인 동시에 막역한 지우이기도 했으니, 다산이 돌아가고도 황상과는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대대로 두 집안이 변치말고 잘 지내자며 계를 조직하기도 했으니 대단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다산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황상만큼 다산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는 없었고, 또 황상만큼 다산을 변함없이 스승으로 받들고 끝까지 사제의 정을 지킨 이도 없었다. 요즘같이 참된 스승도, 참된 제자도 없는 불행한 시대에 다산과 황상의 만남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훌륭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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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 발걸음 무거운 당신에게 쉼표 하나가 필요할 때
쑤쑤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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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산산이 깨져버릴 것이다.

나는 당신 한사람만 사랑해. 꿈도 당신 꿈만 꾼다니까!”

사랑하는 연인의 이 달콤한 속삭임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 완벽하고 순수하다고 믿을 만큼 바보가 아니다. 마음속에 티끌 하나, 그림자 한 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크든 작든 상처도 있고 아픈 기억도 있으며 엉망진창인 사랑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남에게든 스스로에게든 너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얼마나 잘 생겼는지, 만약 내가 그의 애인이라면 엄청나게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남자 친구가 있다. 그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만나온 애인이 있었다.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애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새로운 여성들과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졌다. 여자 동료와 같이 일할 때도 많았고, 함께 출장을 가는 때도 있었다. 그는 조금씩 자신의 애인이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시간도 길어졌고, 심지어 꿈에 다른 여자가 나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 역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서 헌혈을 했는데, 그가 헌혈을 마치고 나오자 여직원 두 명이 달려오더니 우유며 꿀물 따위를 건네고는 서로 그를 돌봐주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친구야, 나 너무 괴롭다. 솔직히 이제는 내 애인이 제일 예쁘지도 않고, 제일 착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 다른 여자랑 만나보고도 싶어. 하지만,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걔한테 정말 미안해. 죄를 짓는 기분이야.”

   

친구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를 한바탕 칭찬해줬다. 그가 요즘 남자들 같지 않게 자신의 어두운 일면을 솔직히 인정하고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간 것은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나는 그에게 진짜 바람을 피웠다면 몰라도, 그런 것 때문이라면 괜히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해 주었다.

   

이후로도 그는 한동안 혼자 갈등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애인과 헤어지거나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위기를 잘 넘겼고, 애인과 무사히 결혼했다. 지금은 좋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로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중이다.

   

세상에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옛사랑이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래서 때로는 저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가끔은 어둡거나 괴팍한 생각, 냉정하거나 이상한 생각을 불쑥불쑥 한다. 못된 사람을 보면 망하게 하고 싶고, 영화를 볼 때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내게 상처를 준 남자를 증오하며, 내 남자를 빼앗아간 여자를 저주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고, 나를 욕하는 사람의 머리를 뽑아버릴 듯 쥐고 흔들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아무리 어둡고 비열해도, 생각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이상하고 비열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물어뜯을 때, 나는 얼른 그 생각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뜨거운 햇빛에 노출시킨다. 스스로의 마음을 뒤집어보고, 검사하고, 반성하고, 한바탕 자아비판을 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의 어둡고 더러운 생각들을 솔직히 꺼내놓고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신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잠시 일손을 놓고 휴가를 떠나셔도 좋다고, 신께서 애쓰지 않으셔도 다들 자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볕이 가득한 낮에 보면 보통의 유리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밤, 안쪽에서 불을 켜면 비로소 그것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사람은 바로 이 스테인드글라스와 같다. 이를 달리 말하면 성형수술이 당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도, 페라리가 당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것만이 행복한 인생, 사랑받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비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겉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는 데 치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내면을 잊고 산다.

    

며칠 전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요즘 심란하고 힘들어서 마음 보양도 할 겸 전통악기를 배워볼까 하는데, 가야금이 나을지 아쟁이 나을지 묻는 문자였다.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문자를 지우지 못했다.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침 길바닥에 두툼히 깔린 은행잎을 양탄자 삼고 앉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던 참이었다.

    

마음의 보양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세속적 욕망에 물든 요즘 세상에 자기 마음을 돌보고 내면의 성숙을 추구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술집, 노래방, 클럽 등 각종 유흥업소가 즐비한 거리를 보면 과연 이런 시대에도 차 한 잔의 멋과 여유를 아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늦은 오후,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며 책을 읽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색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친구의 마음 보양이라는 말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높은 직책의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나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여행도 함께 가곤 한다. 이미 자기 마음을 돌보고 보양할 줄 아는 친구다. 이런 친구가 있기에 나는 답답한 도시에서도 한줄기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따끔한 깨달음과 든든한 힘을 얻는다.

   

속물근성이 팽배한 사람도 처음부터 속물이었던 건 아닐 것이다. 원래 높은 뜻과 고상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속에 치이다가 평범하고 천박하고 경솔하게 변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굳은 의지와 숭고한 꿈이 있었지만 현실의 수많은 장벽에 부딪혀 좌절한 것일 수도 있고,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다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인간은 고난과 좌절 앞에 이토록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현실의 고통을 전혀 이길 수 없는 것일까그렇지 않다!

시간을 천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소식(蘇軾, 1037~1101)은 평생 좌천과 유배를 수없이 겪었으며 죽을 위기도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러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혜주(惠州)로 좌천되면서 출세는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알았으며 그 사실에 감사했다. 그의 눈에 비친 달빛은 여전히 청명했고,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며, 풀과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돈이나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그는 시와 서화를 벗 삼아 인생을 누렸다. 그가 혜주에 있을 때 쓴 시만 보아도 이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봄날의 잠을 충분히 즐기게 하기 위함인가. 하인이 치는 새벽 종소리가 은은하도다.

    

비록 이 시구 때문에 후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그의 순수하고 담백한 인문정신만큼은 당대 권력자의 핍박에도 절대 꺾이지 않았다. 나는 소식이야말로 순수한 인문정신을 대표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재능도 없으면서 마치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인양 자처하며, 세상에 대한 조소와 반항심만 가득하고, 그러면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표리부동한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중국의 대문호로 사랑받는 소식이지만, 정작 생전에는 그의 시와 서화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소식은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자기 인생을 살았다. 벼슬길에 올랐으나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고, 여러 번 좌천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았으며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찾았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보양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비결을 시로 노래하기도 했다.

 

마음에 호연지기를 품으니 온 세상의 바람이 상쾌하다. 인생은 고된 여행길, 나는 그저 행인일 뿐이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소식처럼 예술적 소양이 풍부하면서도 온갖 시련에 꺾이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산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원과 은거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 바보가 되기란 어렵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시를 쓴 정판교(鄭板橋, 1693~1765) 등이 그러했다. 비록 그들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어두운 밤일수록 더욱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했다.

   

매서운 추위는 온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은 우리 마음의 등불을 더욱 밝게 한다. 마음이 흐려질 때는 소식이나 도연명 같은 지혜로운 선인들을 본받아 마음의 먼지를 닦고 내면의 빛을 타오르게 하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스스로가 스테인드글라스임을 깨닫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을 수련하고 보양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한 친구는 슬픔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

    

여행을 하다 만난 친구 한 명은 사업을 한다. 평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천천히 걸으며 눈에 띄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다. 보면 저절로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면서 지쳤던 심신이 회복된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학과 예술로서 마음을 보양하고 있었다. 비록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을 잘 돌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마음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문학과 예술뿐만이 아니다. 각종 스포츠나 장기, 바둑처럼 건전하고 유익한 취미활동도 똑같은 작용을 한다. 또한 생기와 영감으로 가득한 대자연 속에서 마음의 원기를 충전하는 것 역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p.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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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아니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 -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스샤오옌 지음, 양성희 옮김 / 다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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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용서는 도량을 나타내는 지표이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처세철학 중 하나이다. 용서는 나약하고 소심한 자세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다. 용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도량이 넓은 사람만이 용서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울창한 산림 속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 두 병사가 부대로부터 떨어져 길을 잃었다. 두 병사는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산을 빠져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10여 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산을 빠져나가지 못했고 부대와도 연락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운 좋게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그들은 사슴 고기를 나누어 먹고 힘을 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전쟁 때문에 산 속의 동물들이 모두 흩어져 도망갔거나 몰살당했는지 그날 이후로는 동물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사슴 고기는 한 덩어리밖에 남지 않았다. 두 사람 중 나이 어린 병사가 고기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산중에서 적과 맞닥뜨렸다. 한 차례 총격전이 벌어졌고, 두 사람은 간신히 도망쳤다. 두 사람이 이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한 발의 총성이 허공을 갈랐다. 앞서 걷고 있던 나이 어린 병사가 어깨에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뒤에 있던 병사는 황급히 달려가 정신없이 전우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울면서 얼른 자기 셔츠를 찢어 전우의 상처를 싸맸다.

    

그날 밤, 상처를 입지 않은 병사는 밤새도록 눈을 부릅뜬 채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계속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 고비를 넘길 자신이 없었다. 정말 힘겹게 배고픔을 참았고, 어느 누구도 마지막 남은 사슴 고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얼마나 힘겹게 그날 밤을 지새웠는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다음날, 두 사람은 기적적으로 부대원들에게 구출되었다.

    

30년이 지난 뒤, 그때 부상을 입었던 병사 앤더슨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날 누가 나에게 총을 쏘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생사를 함께하고 있던 전우였습니다. 그가 달려와 나를 안았을 때 나는 그의 총이 뜨겁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그가 왜 나를 쏘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날 밤 나는 그를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내가 짊어지고 있던 사슴고기를 독차지하기 위해 나를 쏘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 끊임없이 어머니를 부르는 그를 보며 그가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삼십 년 동안, 나는 이 사실을 덮어두었습니다. 드디어 참혹한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날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에게 용서를 빌었고, 나는 더 이상 그와 그날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날 밤 이미 그를 용서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용서는 원한을 없애버릴 수 있다. 용서는 인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타인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은 훌륭한 명성을 얻을 수 있고 세상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는 실업문제 대책을 논의하던 중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어느 날 한 상원의원이 대놓고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매킨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모든 인내력을 총동원하여 간신히 참아 넘겼다. 상원의원이 말을 마치자 매킨리는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의원님, 노기를 가라앉히시지요.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의원님이 이렇게 나를 질책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원님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의원님이 내 뜻을 이해하도록 자세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매킨리의 태도는 상대방을 매우 부끄럽게 만들었고, 모든 감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대통령의 자리는 현대사회 최고의 위치이지만 옛날의 왕과는 사뭇 다르다. 반드시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복시켜야만 아랫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매킨리가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않고 자신의 직위와 권위를 바탕으로 기세등등하게 상대를 공격했다면, 상대는 절대 진심으로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쌍방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이치에 따라 논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양보와 인내를 발휘하여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다.

   

옛사람들은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망친다.’라고 했다. , 보통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아 내는 사람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내는 뒤로 움츠러드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인내는 지혜롭고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이다. 인내하는 중에 상황이 반전되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일본의 백은선사는 평생 깨끗한 수도자의 길을 걸어 사람들에게 성인으로 존경받았다. 그 마을에 사는 한 부부에게 예쁜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부부는 딸의 배가 불러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부부는 크게 노하여 딸을 추궁했고, 그녀는 아이 아버지로 백은선사를 지목했다.

   

두 부부는 당장 백은선사를 찾아가 따졌다. 그러나 백은선사는 잠자코 있다가 마치 모르는 일이라는 듯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부부는 딸이 아이를 낳자 바로 백은선사에게 보냈다. 백은선사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거두었다. 그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동냥젖을 먹이고,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도 동냥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에게 온갖 무시와 멸시를 당했지만, 백은선사는 언제나 담담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 엄마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더 이상 사람들을 속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어시장 청년이라고 고백했다. 백은선사는 언제나처럼 담담한 태도로 아이를 돌려주며 일이 그렇게 되었군요.”라고 조용히 말할 뿐이었다.

   

인내는 심신을 수양하고, 강한 의지를 키우고, 신념을 굳건히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화를 내는 사람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비겁한 겁쟁이일 뿐이다. 거칠고 급한 성격은 일을 그르치고 실패를 야기하지만, 인내는 절대 함락시킬 수 없는 철옹성과 같다.

   

옛날 티베트에 아이디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디바는 화가 나거나 다툼이 생기면 곧바로 집으로 뛰어가 집 주변과 정원을 세 바퀴쯤 돌고 나서 밭두둑에 앉아 숨을 고른다.

   

아이디바는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그는 점점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큰 부자가 되어 대저택과 넓은 땅을 소유한 후에도 남들과 다툼이 생기거나 화가 날 때면 집과 땅을 세 바퀴씩 돌았다.

아이디바, 왜 화날 때마다 그렇게 뛰는 거야?”

주변사람들은 이 점이 너무 궁금했지만 아이디바는 아무리 물어도 명쾌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어느덧 아이디바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집과 땅은 더 넓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디바는 화나는 일이 생기자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집과 땅 주위를 돌았다. 간신히 세 바퀴를 다 돌고 나니,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아이디바가 늘 그랬던 것처럼 밭두둑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손자가 다가와 그에게 간절히 말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너무 연로하세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땅은 너무 넓어서 예전처럼 이곳을 세 바퀴씩 도는 것은 무리라고요. 할아버지, 왜 화가 날 때마다 땅 주위를 세 바퀴씩 도는지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아이디바는 몇 십 년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자신만의 비밀을 손자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집과 땅 주변을 세 바퀴씩 돌았다. 처음에 나는 집 주위를 돌면서 이렇게 생각했단다. ‘집이 이렇게 작고 땅도 좁은데 남들과 싸우고 화낼 시간이 어디 있나?’ 이런 생각을 하면, 곧바로 화가 가라앉았단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했고 이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었고, 또 이미 큰 부자가 되셨잖아요. 그런데 왜 아직도 집 주위를 도는 거예요?”

아이디바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화가 나는 법이란다. 나는 화가 나면 집과 땅 주위를 세 바퀴씩 돌면서 이렇게 생각한단다. ”내가 가진 집과 땅이 이렇게 넓은데, 사람들과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싸울 필요가 뭐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 곧바로 화가 가라앉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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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대부분 충분히 참고 양보할 수 있다. 용서는 희생이고 봉사이면서 일종의 처세철학이다. 용서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주는 보증수표이다. 용서는 심신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우정을 얻게 해주고,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게 해준다. 또한 용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기본조건이다. p.6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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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깊이 만나는 즐거움 - 최복현 시인이 <어린왕자>를 사랑한 30년의 완결판
최복현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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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살든 500년을 살든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도 인간이 유한한 존재인 한, 삶에는 늘 아쉬움은 남겠지요. 근본적으로 인간은 무엇에든 끝없는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그 무엇이든 끝없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요. 그러니까 교통의 발달, 과학의 발달로 보다 많은 시간을 절약한들 한가해질 수 없어요.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무엇이든 간편하게 만들고, 빠르게 만들고, 작게 만들어요. 그러면 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고, 간단하게 쓸 수 있고, 빨리 움직일 수 있고, 빨리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모아놓은 시간은 어디로 갔기에 오히려 점점 바쁘게 사는 걸까요.

    

시간은 절약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단지 간편하게 하고, 빠르게 하는 것으로는 그 어떤 분야의 시간만 절약할 뿐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그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 또 일어나요. 그러니까 시간은 늘 모자라고 하고 싶은 일은 자꾸 쌓이기만 해요. 이런 행렬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계속 이어질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다만 몇 날이라도 더 달라고, 그러면 여한이 없을 거라고 신에게 간곡히 빌지도 몰라요. 하지만 다시 그 마지막 날이 오면 그때 마음도 지금과 다를 바 없어요.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래 살든 하고 싶은 일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을 거예요. 시간 여유가 생기면 할 거라고요? 여유가 있을 땐 다른 것부터 하느라 그 일을 못하고 바쁠 땐 바빠서 못하고, 정작 하고 싶은 일은 그저 미루다 말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을지 그걸 생각해야 해요. 시간은 늘 우리에겐 부족한 거니까 그 주어진 시간을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써야 해요.

    

어린왕자가 만난 장사꾼은 목마름을 달래 주는 알약 장수였어요.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다시 마실 욕구를 느끼지 않는대요.

아저씨는 왜 이런 것을 팔아요?”

어린왕자가 물었어요.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으니까. 전문가가 계산을 했어. 일주일에 53분이나 절약된대.”

장사꾼이 대답했어요.

그러면 그 53분으로 뭘 하는데요?”

그 시간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어린왕자는 내게 53분이 있다면 아주 천천히 샘으로 걸어가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욕구를 잠재워 더 이상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면 좋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에요. 뭔가 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세상을 왜 살아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라도 있고, 마시고 싶은 술이라도 있고, 피우고 싶은 담배라도 있고, 하고 싶은 운동이나 취미라도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으니까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욕망이 있다는 건 나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욕구가 없는 사람이 가련하고 불쌍하지요. 욕구가 우리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니까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해요. 그냥 어떻게 시간을 절약할까, 그런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즐거운 일을 하러 돌아다니는 게 나아요. 그렇게 시간을 아껴 두었다가 정말 쓸 일이 있는지 그걸 생각해 보라고요. 그렇지 않다면, 죽어라 돈만 벌 줄 알지 쓸 줄은 모르는 사람과 뭐가 다르냐고요.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은 모르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이지요. 마찬가지로 죽어라 일만 할 줄 알고 시간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한 거예요.

  

그래요. 무슨 일이든 그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해요. 시간을 절약하려면 그 절약하는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여기서 아끼는 시간을 저기서 쓰는 게 유용하고 가치가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해요. 절약하면서 바쁘게 산다는 건 불행한 일이에요. 얼마를 살든 시간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요. 시간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란 말이에요.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넘어지거나 아프지 말고요.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p.2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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