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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놓아주는 법 내려놓는 법 - 발걸음 무거운 당신에게 쉼표 하나가 필요할 때
쑤쑤 지음, 최인애 옮김 / 다연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산산이 깨져버릴 것이다.
“나는 당신 한사람만 사랑해. 꿈도 당신 꿈만 꾼다니까!”
사랑하는 연인의 이 달콤한 속삭임을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랑이 완벽하고 순수하다고 믿을 만큼 바보가 아니다. 마음속에 티끌 하나, 그림자 한 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크든 작든 상처도 있고 아픈 기억도 있으며 엉망진창인 사랑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남에게든 스스로에게든 너무 가혹한 기준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얼마나 잘 생겼는지, 만약 내가 그의 애인이라면 엄청나게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남자 친구가 있다. 그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만나온 애인이 있었다.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애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여자에게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직장에서 새로운 여성들과 만날 기회가 점점 많아졌다. 여자 동료와 같이 일할 때도 많았고, 함께 출장을 가는 때도 있었다. 그는 조금씩 자신의 애인이 예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여자를 쳐다보는 시간도 길어졌고, 심지어 꿈에 다른 여자가 나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 역시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번은 회사에서 헌혈을 했는데, 그가 헌혈을 마치고 나오자 여직원 두 명이 달려오더니 우유며 꿀물 따위를 건네고는 서로 그를 돌봐주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친구야, 나 너무 괴롭다. 솔직히 이제는 내 애인이 제일 예쁘지도 않고, 제일 착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 다른 여자랑 만나보고도 싶어. 하지만, 여전히 걔를 사랑해.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걔한테 정말 미안해. 죄를 짓는 기분이야.”
친구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를 한바탕 칭찬해줬다. 그가 요즘 남자들 같지 않게 자신의 어두운 일면을 솔직히 인정하고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간 것은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나는 그에게 진짜 바람을 피웠다면 몰라도, 그런 것 때문이라면 괜히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해 주었다.
이후로도 그는 한동안 혼자 갈등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애인과 헤어지거나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위기를 잘 넘겼고, 애인과 무사히 결혼했다. 지금은 좋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로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중이다.
세상에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옛사랑이 될 수 있으며, 새로운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래서 때로는 저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가끔은 어둡거나 괴팍한 생각, 냉정하거나 이상한 생각을 불쑥불쑥 한다. 못된 사람을 보면 망하게 하고 싶고, 영화를 볼 때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내게 상처를 준 남자를 증오하며, 내 남자를 빼앗아간 여자를 저주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고, 나를 욕하는 사람의 머리를 뽑아버릴 듯 쥐고 흔들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다. 아무리 어둡고 비열해도, 생각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이상하고 비열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물어뜯을 때, 나는 얼른 그 생각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뜨거운 햇빛에 노출시킨다. 스스로의 마음을 뒤집어보고, 검사하고, 반성하고, 한바탕 자아비판을 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결해지는 느낌이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의 어둡고 더러운 생각들을 솔직히 꺼내놓고 깨끗이 씻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신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잠시 일손을 놓고 휴가를 떠나셔도 좋다고, 신께서 애쓰지 않으셔도 다들 자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볕이 가득한 낮에 보면 보통의 유리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밤, 안쪽에서 불을 켜면 비로소 그것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사람은 바로 이 스테인드글라스와 같다. 이를 달리 말하면 성형수술이 당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도, 페라리가 당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것만이 행복한 인생, 사랑받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비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겉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미는 데 치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내면을 잊고 산다.
며칠 전 친구에게 문자를 받았다. 요즘 심란하고 힘들어서 마음 보양도 할 겸 전통악기를 배워볼까 하는데, 가야금이 나을지 아쟁이 나을지 묻는 문자였다.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문자를 지우지 못했다.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마침 길바닥에 두툼히 깔린 은행잎을 양탄자 삼고 앉아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던 참이었다.
마음의 보양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세속적 욕망에 물든 요즘 세상에 자기 마음을 돌보고 내면의 성숙을 추구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어느 순간부터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술집, 노래방, 클럽 등 각종 유흥업소가 즐비한 거리를 보면 과연 이런 시대에도 차 한 잔의 멋과 여유를 아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늦은 오후, 향기로운 차를 음미하며 책을 읽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색을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친구의 마음 보양이라는 말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는 그가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진 높은 직책의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나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여행도 함께 가곤 한다. 이미 자기 마음을 돌보고 보양할 줄 아는 친구다. 이런 친구가 있기에 나는 답답한 도시에서도 한줄기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잠시 길을 잃고 헤매다가도 따끔한 깨달음과 든든한 힘을 얻는다.
속물근성이 팽배한 사람도 처음부터 속물이었던 건 아닐 것이다. 원래 높은 뜻과 고상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속에 치이다가 평범하고 천박하고 경솔하게 변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굳은 의지와 숭고한 꿈이 있었지만 현실의 수많은 장벽에 부딪혀 좌절한 것일 수도 있고,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다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인간은 고난과 좌절 앞에 이토록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현실의 고통을 전혀 이길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간을 천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소식(蘇軾, 1037~1101)은 평생 좌천과 유배를 수없이 겪었으며 죽을 위기도 몇 번이나 넘겼다. 그러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혜주(惠州)로 좌천되면서 출세는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알았으며 그 사실에 감사했다. 그의 눈에 비친 달빛은 여전히 청명했고,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며, 풀과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돈이나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그는 시와 서화를 벗 삼아 인생을 누렸다. 그가 혜주에 있을 때 쓴 시만 보아도 이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이 봄날의 잠을 충분히 즐기게 하기 위함인가. 하인이 치는 새벽 종소리가 은은하도다.
비록 이 시구 때문에 후에 더 큰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그의 순수하고 담백한 인문정신만큼은 당대 권력자의 핍박에도 절대 꺾이지 않았다. 나는 소식이야말로 순수한 인문정신을 대표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재능도 없으면서 마치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인양 자처하며, 세상에 대한 조소와 반항심만 가득하고, 그러면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표리부동한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중국의 대문호로 사랑받는 소식이지만, 정작 생전에는 그의 시와 서화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소식은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자기 인생을 살았다. 벼슬길에 올랐으나 한 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고, 여러 번 좌천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신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았으며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찾았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보양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비결을 시로 노래하기도 했다.
마음에 호연지기를 품으니 온 세상의 바람이 상쾌하다. 인생은 고된 여행길, 나는 그저 행인일 뿐이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소식처럼 예술적 소양이 풍부하면서도 온갖 시련에 꺾이지 않고 유유자적한 삶을 산 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원과 은거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 바보가 되기란 어렵다는 뜻의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시를 쓴 정판교(鄭板橋, 1693~1765) 등이 그러했다. 비록 그들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어두운 밤일수록 더욱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했다.
매서운 추위는 온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은 우리 마음의 등불을 더욱 밝게 한다. 마음이 흐려질 때는 소식이나 도연명 같은 지혜로운 선인들을 본받아 마음의 먼지를 닦고 내면의 빛을 타오르게 하자.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스스로가 스테인드글라스임을 깨닫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을 수련하고 보양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한 친구는 슬픔과 괴로움이 끊이지 않던 시기에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다.
여행을 하다 만난 친구 한 명은 사업을 한다. 평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천천히 걸으며 눈에 띄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다. 보면 저절로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면서 지쳤던 심신이 회복된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문학과 예술로서 마음을 보양하고 있었다. 비록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들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을 잘 돌보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실, 마음을 빛나게 하는 것은 문학과 예술뿐만이 아니다. 각종 스포츠나 장기, 바둑처럼 건전하고 유익한 취미활동도 똑같은 작용을 한다. 또한 생기와 영감으로 가득한 대자연 속에서 마음의 원기를 충전하는 것 역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p.8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