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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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그의 수제자 황상의 평생 변함없는 사제의 정을 기록한 책이 정민 교수님이 쓴 '삶을 바꾼 만남'이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바위도 세월이 지나면 풍화되어 자갈이 되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모래가 되듯이, 이 우주에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다산의 삶을 보면 변화무쌍한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증명되는 듯하다. 스물여덟의 나이로 정조의 총애를 받아 정계에 입문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보호막이 돼 주던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자 하루아침에 날개잃은 새처럼 끝없이 추락한다. 벽파(공서파)의 집권으로 시파의 탄압이 시작되고 특히 다산은 본보기가 되어 신유박해(1801)때 천주교 신봉의 죄를 물어 유배의 길에 오른다. 한때 벽파의 시기로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목숨만은 부지한다.

강진으로 유배가서도 중죄인이 되어 주민들이 그를 만나기를 꺼려하고 피하기만 하였다. 본래 죄인이 마을에 오면 그 마을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부양을 해야 하는데, 다산은 처음엔 강진의 주민들에게도 환대받지 못했다. 기거할 집을 구하지 못해 주막에다 거쳐를 마련하고 잠시 머문다는 것이 1년 넘게 기숙하게되는데, 강진(전라도)에서 그 정도로 다산을 꺼려하고 아무도 자기 집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다산은 중앙에서 요직을 맡았고 글을 읽은 선비라 마을의 학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아무 일도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낸다는 것이 다산에게도 참 괴로웠을 것이다. 그때 만난 학동이 15살 더벅머리 아이 '황상'이었다. 다산은 당시 41살이었다. 1802년경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배타적이던 마을의 민심도 다산을 좀 이해하는 듯했다. 대개 그렇듯이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에게 부모된 도리로 고마움과 함께 미운 감정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다산의 제자들은 벽촌의 구석에서 글과는 담을 싼 무지렁이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선생이 똑똑하면 그 제자도 닮아가듯이 다산의 매서운 학구열에 제자들도 서서히 몽매에서 벗어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학구열이 대부분 과거시험을 위한 과정으로 전도되면서 많은 제자들이 과거시험에 목을 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다산이 10여년간 중앙에 머물렀던 연줄을 매개로 시험청탁이나 관직청탁을 하는 편지가 다산에게 자주 오게 되는데, 다산의 성품이 청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청렴하고 강직한 탓에 모든 청탁을 거절하게 된다. 이를 섭섭하게 여긴 제자들은 다산을 음해하고 사제의 연을 끊으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다산을 괴롭혔다.

오직 황상만은 과거의 뜻을 접고 산촌 벽지로 들어가 논밭을 일구며 다산의 유지를 받들어 농부로 살아간다. 다산이 강진에서 풀려난 후 서울로 상경하면서 황상과 헤어지게 되는데 이후 둘의 만남은 오랫동안 없었다. 다산이 몸이 안좋으니 꼭 한번 보고 싶다는 편지를 몇번 보내고 한참 지난 1836년 황상은 다산이 사는 경기도 광주를 찾게되는데, 당시에 다산은 몸이 극도로 좋지않은 상태였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다산과 황상, 스승과 제자의 만남은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서글퍼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생과사의 문턱에서 희미해져가는 스승을 보는 것 또한 큰 슬픔이었다.

다산은 사흘 머문뒤에 떠나는 제자에게 붓과 벼루 등의 선물과 노자까지 챙겨준다. 그러나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다산의 부고를 들은 황상은 다시 울며불며 스승의 집을 찾아 장례를 치른다. 다산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도 황상과 연배가 비슷해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며 황상과도 글을 주고 받기도 하고 시문을 돌려가며 잘잘못을 짚어주기도 했다. 잘했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여 보충토록 했다. 아버지의 제자인 동시에 막역한 지우이기도 했으니, 다산이 돌아가고도 황상과는 각별한 사이를 유지했다. 대대로 두 집안이 변치말고 잘 지내자며 계를 조직하기도 했으니 대단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다산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황상만큼 다산의 사랑을 많이 받은 이는 없었고, 또 황상만큼 다산을 변함없이 스승으로 받들고 끝까지 사제의 정을 지킨 이도 없었다. 요즘같이 참된 스승도, 참된 제자도 없는 불행한 시대에 다산과 황상의 만남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훌륭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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