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역사도 나날이 발전하는가?

과학문명은 끝없이 발전하면서 지속적으로 나아가는데, 정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계 각국을 살펴보아도 정치는 계속 진보한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훨씬 많은 대중들이 쉽게 정치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의 의사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대가 왔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을 때는 현명한 선택을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상존한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계 최첨단 IT강국이라 자부하면서도 아직 정치상황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예전에 비해 더 정치는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의 의결에 부쳐져 가결되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거시적으로 보면 분명 기뻐할 일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의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정치상황을 보았을 때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광복 후 70여년 지난 대한민국의 짧은 역사에 대통령이 몇 번이나 법적 심판을 받고 쫓겨나고, 수감생활을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 직접적 책임은 물론 대통령 당사자나 국무위원, 비서진 등에게 있겠지만, 국민이 투표를 잘못한 책임도 있다.(비판과 견제 기능이 마비된 국회와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큼)

   

세계 각국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내에서는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니,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니 하면서 요란하게 홍보하지만, 대통령이 탄핵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분명 한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라고 비웃을 것이다. 국격 손상은 물론 대한민국 신뢰도 추락으로 인하여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불문가지다.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은 물론 국민의 의식수준이 선진국에 걸맞은 수준에 도달해야 선진국이 된다. 뒤에서는 부정부패가 횡행하고, 보수와 진보가 끊임없이 싸움을 벌이는 나라를 외국에서는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민간인 측근의 국정개입으로 탄핵을 당했다는 소식은 대한민국의 수치요, 불행이다. 그렇게 많은 청와대 고위공무원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옛날 중국 은나라의 폭군 주()의 포악한 정치를 간하다가 잔인한 죽임을 당한 비간(比干) 만큼은 못하더라도 정말 충신이라면 감투를 과감히 벗어던질 각오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정부 시절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분은 그나마 양심이 있는 분이다. 자신이 도저히 박근혜 정권과는 함께 일을 못하겠다는 판단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은 온갖 비리를 보면서 모른 척 자리보전에 급급했다.

  

혹자는 대통령에게 각종 비리에 대한 소명이나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아직 피의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들을 보아도 삼척동자도 알만큼 비리에 깊이 연루됐다는 게 대부분 국민들의 생각이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어떤 기관도 막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 300명이 합심하여 우여곡절 끝에 탄핵을 가결시키지 않았는가? 그 이면에는 수백만 명에 달하는 촛불민심의 공이 컸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에 비견될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촛불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탄핵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때까지 산 넘어 산이다. 재판관 9명이 대부분 보수성향이고 MB, 박근혜 정부시절 임명된 사람이기에 인용결정이 날 것이라고 쉽게 예단해서는 안 된다. 민심이나 국회표결만 보면 약80%의 압도적 가결로 탄핵이 이루어졌듯이, 헌재에서도 그렇게 인용되면(6~7명 찬성) 좋겠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대통령은 화려한 변호인단을 구성하여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치열한 법리공방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된다.

 

국민의 편에서 다소 다행인 것은 국정조사 청문회와 특검의 수사상황이 헌재의 탄핵심판과 맞물려 있어 심리기간 동안 비리가 입증되거나 새로운 비리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아 상황은 국민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탄핵심판 심리기간은 최장 6개월이지만, 오랫동안 대통령 자리를 비워 놓을 수 없으니 빠르면 1월말, 늦어도 3월 안에 헌재 결정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 한사람을 잘못 뽑으니 온 나라, 온 국민이 골치가 아프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언제 전쟁이 재발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지금 대통령의 궐위는 심각한 상황이다. 아무리 국무총리가 유능하다 할지라도 권력상 한계로 대통령의 임무를 완벽하게 대행할 수 없다. 그리고 무한경쟁의 시대에 우리 기업의 수출을 뒷받침할 법률제정, 제도 정비도 시급한데 대통령이 없으면 원활히 추진할 수 없다. 또한 각국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국가를 대표할 대통령이 없으니 다른 나라와 경제 비즈니스, 정상회담 등 산적한 현안을 원활히 처리하지 못해 그 피해가 상당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피해를 감안하더라도 잘못된 것을 고쳐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 장기적 안목에서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악습을 폐지할 수만 있다면 늦어도 결코 늦은 게 아니다. 정치가 맑아지고 제자리를 찾는다면 작금의 시행착오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국정혼란을 수습할 최상의 방책은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빨리 물러나는 것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정권을 잡기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도 쉽지 않다. 정권을 내려놓는 즉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순순히 정권을 내놓지 않는 게 권력자의 습성이다. 하루빨리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나라가 안정을 되찾길 바라면서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국민은 정권에 대한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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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힘 -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레이먼드 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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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혼자서는 따로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의 90%는  인간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처럼 우리는 하루도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인생살이는 인간관계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산중 깊숙이 혼자 살면 모를까 우리는 눈만 뜨면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를 영위하며 살아간다.
 
시골에서 생활도 인간관계가 중요하지만,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은 더 없이 중요하다.  사실 승진을 위한 여러가지 공정한 룰이 제도적 장치로 마련되어있지만, 결국 심사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자기에게 예쁘게 보이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연, 학연 등 온정주의가 기반이 된 우리문화에서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심사승진의 경우에는 그 사람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승진의 당락이 결정된다. 일을 얼마나 잘 하느냐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좋은 친분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만큼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중요한 부분이다. 독불장군은 예전에는 통했지만 요즘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다. 겸손하고 자상하며 두루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친절한 직원이라는 꼬리표가 따를때 그 사람의 인생은 탄탄대로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인생을 사는데도 스킬이 필요하다. 표리일체가 되면  아주 좋겠지만 너무 정직하게, 곧이곧대로 살게되면 사람이 가까이 다가올 수 없다. 적당한 유머와 선의의 거짓말도 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한다. 직장인의 대부분이 직장에서 보이는 모습이 자신의 참모습은 아닐 것이다. 본의 아니게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원치 않은 행동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책에서도 인간관계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사업의 수완이나 성공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 같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직 인생경험이 부족한 젊은이에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데, 이건, 꼭 책 속의 젊은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인생 스킬인 것 같다.
 
노익장 게오(CEO)와 젊은 직장인의 대화 속에 모순된 논리인 듯 보이는 이야기도 있지만, 게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중에는 '아 그렇구나!' 라고 수긍하게 된다. 내용의 편제를 보면 '미움받을 용기'와 비슷하게 구성되었는데, 여러모로 인생살이에 참고할 만한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는 곧 삶이고, 나아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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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덩네 2016-12-0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봐야겠네요

시골향기 2016-12-0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는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네요^^ 실생활에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인간관계를 다루는 다양한 서적을 통해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을 배워 나가야 겠습니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cm X 43.8cm. 호암비술관 소장.

 

조선 범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의 하나다. 그 조선범을 그린 천하명품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볼 적마다 나는 두 글귀를 떠올린다. 하나는 <논어(論語)>위이불맹(威而不猛)’ ,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다.“는 말이다. 그림 속 범의 위용과 걸맞은 이 위이불맹이란 말은 본래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다. 또 하나는 박지원(朴趾源. 1737~1805)<호질>에 나오는, 범이 썩어빠진 가짜 선비를 꾸짖으면서 나의 본성이 너희 인간들의 본성보다 오히려 더 어질지 아니하냐!“고 호통을 치는 장면이다. 박지원은 김홍도보다 여덟 살 위의 문인으로 자기 시대를 반성하고 새 시대의 전망을 앞장서 제시했던 큰 선비다.

 

아래 일화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것인데, 역시 호랑이를 이끌어 정치를 말하고 있다.

    

공자가 태산 곁을 지나는데 어떤 부인이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자는 수레의 횡목(橫木)을 잡고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한 다음, 제자를 시켜 연유를 물었다. “부인이 곡하시는 모양이 분명 큰 슬픔이 겹친 듯합니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옛날 저의 시아버님께서 범에게 물려 돌아가셨습니다. 또 제 남편도 범에게 물려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아들마저 범에게 물려 죽었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으십니까?” 부인이 답하였다. “여기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돌아보며 말했다. “제자들아, 명심하거라.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더 무서우니라!(苛政猛於虎)’”

   

후대의 한 학자가 글 말미에 주석을 달았다. “범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덫이나 함정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사람을 해치는 것은 제어할 수단이 없다. 범은 높은 집과 굳게 닫은 문으로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 사람을 해칠 때는 도망할 곳이 없다. 그러기에 태산 기슭의 저 부인은 가혹한 정치가 없는 그곳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양운(BC53~AD18)이란 사람은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벼슬아치를 빗대어 이렇게 탄식했다. “범이로구나, 범이로다. 진정 뿔이 나고 날개가 돋친 범이로구나.....”

   

율곡 이이(李珥.1536~1584) 선생도 그의 <석담일기>에 다음 기사를 남겼다. “겨울에 경기 지방에 호랑이가 자주 나와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호랑이를 잡게 하니, 군사들이 촌마을에서 노략질하여 백성들은 호랑이보다 군사들을 더욱 괴롭게 여겼다.”

   

이 땅에 호랑이가 등장한 내력은 겨레의 건국 신화만큼이나 오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겨레의 한아바님 되시는 단군왕검(檀君王儉)보다도 한 세대가 위다. 왜냐하면 옛적에 곰 여인 웅녀(熊女)가 자신과 혼인해주는 사람이 없어 날마다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을 때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해 그녀와 혼인해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이기 때문이다. 곰이 단군 어머니가 된 이야기, 뒤집어 말해서 호랑이가 단군어머니가 될 수 없었던 신화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사람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헤아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해줄 만하였다. 이에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라 하였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황이시다....

  

그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줄곧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런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고는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일렀다.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받아먹고 근심한 지 삼칠일(21)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참아내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이처럼 호랑이는 이 땅의 터줏대감이며 단군 어머니와 같은 세대에 속하는 어른이다. 다만 타고난 거친 야성을 순화하지 못하고 결국 어두운 동굴을 뛰쳐나가 영영 맹수로 머무른 점이 다를 뿐이다. 당시에 호랑이가 끝내 참고 견뎌내지 못했던 마늘의 독한 냄새는 훗날까지도 효력이 있다고 믿어져 호환(虎患)을 물리치기 위한 묘약으로 사용되었으니, 옛날 밤을 도와 산길을 넘어야 했던 나그네들은 미리 마늘을 먹고 트림을 하였다고 전한다.

    

호랑이는 명실공히 백수의 왕이다. 전체길이 3m에 무게 250kg에 가까운 덩치로 평지에선 5m를 펄쩍 뛰어오르고, 가파른 절벽은 10m나 뛰어내리며, 한번 내달으면 하룻밤에 100km 이상을 주파한다고 한다. 힘 또한 엄청나서 큰 송아지를 한입에 덥석 물고 담장을 훌쩍 뛰어넘으니, 땅위에서는 가히 그 용맹 앞에 맞설 상대가 없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은 곧 바보가 아니고서는 모두가 호랑이를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런 호랑이이지만 어린 새끼의 무게는 1kg밖에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새끼 호랑이가 일곱 달을 넘으면 사냥을 배우기 시작하고 두 살까지는 어미와 함께 살면서 삶의 다양한 지혜를 습득하게 된다. 이후에는 점차 독립해 단독생활을 하게 되는데, 세 살이 되면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하고자 여기저기 방랑하며 다섯 살이면 완전히 성장을 마친다고 한다. 평균수명은 사육된 호랑이의 경우 25년 전후지만 야생에서는 훨씬 더 오래 산다고 알려져 있다.

   

옛적엔 호랑이가 참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왕산 성 밖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그 호랑이가 인경궁 후원까지 넘어 들어왔으므로 군졸들을 거느리고 발자국을 되밟아 잡았다.”는 인조 4년의 기록이 있고, 영조 28년 정월에도 호랑이가 경복궁 후원 터에 들어왔다.”는 내용이 보인다. 지금의 남태령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앞 아현동 고개 역시 호랑이 출몰지역이었으니, 성질 못된 사람을 가리켜 저 남산 호랑이는 무얼 먹고 사나?”하는 속담까지 있었던 것이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은 멸종됐다는 호랑이를 아직도 깍듯이 산신령으로 섬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옛적엔 아무리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는 맹수라 해도 이를 죽이면 그 지방에 화가 생긴다는 미신이 있었다. 게다가 호랑이가 흉포한 동물이긴 하지만 언필칭 산군(山君, 산의 임금)’이기 때문에 감히 임금을 잡았다는 죄목이 추가되었다. 따라서 포수가 호랑이를 잡아 고을 수령에게 바치면 비록 형식적인 장난이었지만 형틀에 묶어 세 차례 매질을 한 다음에야 상금을 주는 관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호랑이는 원래 대단히 조심성이 많은 동물이라 여간해서는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을 덮치는 경우는 새끼와 함께 있거나 뜻밖에 갑자기 사람과 마주쳐서 제가 먼저 놀랐을 때, 혹은 너무 늙었거나 큰 부상을 입어 오래도록 먹이를 먹지 못했을 때뿐이다. 특히 사냥꾼에게 부상을 입어 사람에게 원한을 품은 호랑이 반드시 사람에게 복수하는 무서운 식인호가 되고 마는데, 그렇게 한번 사람 고기 맛을 본 뒤로는 상습적으로 포악성을 떨친다고 한다.

   

옛날 스님들은 호랑이가 활동하는 밤길을 다닐 적에 육환장(六環杖), 즉 쇠고리가 여섯 개 달린 지팡이를 호기롭게 짤랑거리면서 걸었다. 그러면 그 날카로운 금속성을 싫어해서 호랑이 쪽에서 먼저 피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람이 자기 영역 안으로 무심결에 접근해 오면 위협적으로 아악-’하는 벼락같은 포효를 발한다고 한다. 이때 온 골짝을 뒤흔드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 그리고 시퍼런 화광(火光)이 줄줄 흐르는 주먹만 한 두 눈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하고 오금이 저려서 한발 짝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보통 사람이 호랑이와 갑자기 맞닥뜨리면 심하게 놀란 나머지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부지불식중에 대소변을 싸고 만다고 한다.

 

범의 아름다움은 뭐니뭐니해도 가죽이다. 그래서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는가. 조선 범의 터럭은 열대 호랑이의 그것보다 길고 촘촘하며 색상은 다소 옅지만 촉감이 지극히 부드럽다. 범 구경을 하자더니 웬 가죽타령이냐고 한다면 우선 <호질>의 한 대목부터 소개하겠다. 호랑이가 말한다.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 인문적 교양이 어우러진 것을 말함)를 천하에 자랑할 만하며, 또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만 가지고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지 않고서 천하에 무용(武勇)을 빛내고 있다.”

    

<논어> 옹야편(雍也編)에 이런 말이 있다. “속의 질박함이 바깥 꾸밈을 압도하면 촌스러워지고, 바깥 꾸밈이 속 바탕을 압도하면 얄팍해진다. 속과 바깥, 바탕과 꾸밈이 서로 잘 어우러진 다음에야 군자다.” 또 같은 책 안연편(顔淵編)에서는 바깥 꾸밈도 속 바탕만큼 중요하고, 속 바탕 역시 바깥 꾸밈만큼 중요하다.(만약 외형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범과 표범의 털 뽑은 가죽이 개나 양의 털 뽑은 가죽과 전혀 다름없는 꼴이 될 것이라하였다.

   

<주역> 대인호변(大人虎變) 기문병야(其文炳也)”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온 세상을 진정 새롭고 훌륭하게 고쳐나갈 큰 인물은 호랑이가 가을철에 털갈이하듯 한다.”는 뜻이다. 군자의 크나큰 덕을 입어 온 세상이 범 가죽에 어룽진 무늬같이 아름답게 변해서 빛이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송하맹호도>의 호랑이가 바로 그러하니, 몸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올랐고 겉모습은 휘황찬란한 터럭으로 환하게 빛난다. 그러고 보니 소나무 이파리 일부가 드문드문 갈색으로 시든 것이 눈에 뜨인다. 가을이 온 것이다...

   

오늘날 호랑이라면 우리는 별수없이 동물원 철장이나 텔레비전 화면 속의 모습만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육되는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다. 우리 단군 신화의 주인공은 정말 멸종되고 말았는가? 호랑이 연구가 임순남 씨는 아직도 남한 지역에 몇 마리에 불과하지만 분명히 호랑이가 살아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호랑이가 워낙 영물(靈物)이기에 쉽사리 사람 눈에 뜨이지 않을 뿐 여러 차례 직접 채집한 조선 범의 발자국과 배설물, 그리고 그림 속에서처럼 소나무에 영역 표시를 한 흔적에서 범의 터럭까지 채집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드넓은 지역을 호령하는 산어른이다. 그러나 남북한을 두 동강낸 철책이 사람뿐 아니라 호랑이 가족 또한 영영 오갈 수 없게 굳게 막은 채 반세기를 넘겼다. 그 때문에 몇 마리 안 되는 호랑이가 근친간에 번식할 수밖에 없어 쉽사리 병원체에 감염된 채 스스로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호랑이 연구가인 유진 빅토르 박사는 야생 동물들의 남북한 이동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강원도 휴전선의 일부 철책만이라도 반드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 백 미터의 철책선 만이라도....

   

하늘은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물일지라도 이 세상에 불필요한 생명체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빼앗자마자 곧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호랑이 박멸 작전에 나서 우리 겨레의 상징, 그 크고 씩씩하며 아름다웠던 조선 범을 전멸시키고자 했다. 호랑이가 상징하는 조선 혼의 부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래도록 이어진 삼림의 벌채와 전쟁 탓으로 잣나무는 시들고, 덩달아 먹이를 잃은 멧돼지가 사라졌다. 사슴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호랑이는 결국 우리의 곁을 떠났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동물도 사람을 닮는다. 우리나라 야담에서 호랑이는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되갚는 보은(報恩)의 존재였다. 아니 그 자신이 산신령이었다. 우리가 그를 위해 철책을 뜯는 정성을 기울일 때 어찌 이 땅의 영험한 산신령께서 겨레의 통일을 이루도록 도와주시지 않겠는가? 기운 생동하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보면서 다시금 박지원의 <호질> 속 천둥 치는 호랑이의 포효를 듣는다. “너희 사람이 사물의 이치며 본성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거니와, 하늘이 명하신 것으로 보면 범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만물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虎與人 乃物之一也)”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p.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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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복이후 70여년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해왔다.

라인강의 기적에 비견될 정도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적어도 1990년까지는 그렇게 경제도 잘 돌아갔고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4룡으로 선진국의 스포트라이터를 받았다. 1988년 올림픽을 치르며, 타고르가 예언했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그 말이 실현되는 줄 알았다. 광복이후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달려왔다. 일제강점기 35년간 온갖 핍박과 설움에서 벗어난 민중들은 나라를 되찾은 기쁨에 환호하고, 재건의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좌우익이 서로 다투는 사이 6.25 전쟁이 일어나 동족상잔의 피맺힌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부모형제, 친척들이 하루아침에 죽고 뿔뿔이 흩어져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전쟁이 끝나고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새출발을 했다. 온갖 모진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밤낮없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민중들은 이렇듯 하루하루 연명하기 위해 초근목피로, 국에서 보내준 밀가루 배급으로 연명하며 버텼지만 이런 험난한 시기에도 경제유착의 맹아는 싹트기 시작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 속담처럼 국민이 피땀흘려 낸 세금도 경제유착과 부정부패로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갔다. 그래도 당시 유행했던 잘 살아보세 구호처럼 국민들은 정부주도의 국가재건 운동에 아무 말 없이 따라 주었다. 독일 탄광촌과 간호사 파견, 월남전 파병 등 국민들의 노동력과 핏값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보릿고개의 상흔을 지워 나갔다.

 

이제 식량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동서고금의 어느 왕조나 정권이든 배고픔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배고픔만 해결해도 자자한 칭송과 함께 역사적인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치를 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성장을 이뤄 국민들을 배고픔에서 구해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이 탄생하는 단초가 되었다. 마을을 잘 다스리고 돌아간 원님을 위해 송덕비를 세워주듯 우리 국민들은 정에 약하다. 배고픔을 해결해 준 박정희의 고마움에 보답하듯 60대 이상의 노인들의 대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 시비판단을 떠나 경제적 선정을 베푼 아버지에 대한 보답에서 나온 온정의 결과다.

  

우리의 바람대로 어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정치를 잘 했더라면 독재정치의 멍울을 다소 지울 수도 있었을텐데시대의 정치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권적이고 불통정치를 고집하여 비극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돌이켜보면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10대 강국이라는 허울좋은 명분보다 속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빚더미에 올라 있다. 이는 모든 기본을 무시한 성과위주의 정책과 풍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곡식이나 과일이 맛있게 익으려면 충분한 햇볕과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 경제가 탄탄한 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그만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 선진국의 수백 년에 걸친 노력과 경험을 몇 십 년에 달성하고자 난리법석을 피웠다. 그 부작용으로 대기업과 정경유착,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횡행하게 됐다. 허가권이나 인가권을 얻기 위해 급행료를 줘야 했고, 정치자금을 두둑히 대야 대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대기업의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수시 때때로 제품의 가격 인상을 통해 이윤을 챙기고, 각종 담합을 통해 자기 배를 불려 왔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이후 더욱 심화되어 이제 세계 1%의 부자들이 전세계재산의 75%를 차지하고 있다니 인간이 태어난 이래 이렇게 부의 불평등이 심했던 적도 없을 것 같다. 헌법에 보면 만민은 평등하다고 적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엄연히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뉘며,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부의 불평등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선진국의 어떤 나라보다도 우리나라가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불평등을 시정할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 각종 제도를 정비하여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작금에도 보듯이 재벌과 정치권이 짜고 국민들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 힘없는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하다.

  

기본이 바로서는 나라, 선진국, 외국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는 선입관 때문에 우리는 서구문명을 맹종하며 받아들였다. 지킬 것은 지키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하는데, 우리의 훌륭한 미풍양속조차 모두 외국문화로 대체되었다. 유교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 것은 맞지만 예의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그 역할이 컸다. 그런데 예의범절이라는 것을 가르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 귀하다는 서구의 개인주의 사상의 흐름이 팽배해 있다보니 사회 질서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어지고 어른들이 젊은 세대의 잘못을 보고도 충고도 함부로 할 수 없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온갖 탈법이 난무하고 예의범절이 무너진 사회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는 너무 성과 위주의 삶을 살아왔다. 오로지 돈만 잘 벌면 성공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그 돈의 출처가 어디에서 나왔든 따지지 않는다. 교육이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래서 신성한 학문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이 취업을 위한 살육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 국민이 고르게 잘 사는 나라, 이는 유사이래 어떤 나라도 이루지 못한 유토피아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부의 역할은 공정하게, 균등하게 개인이 잘 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펴고 뒷바라지를 해주는 것이 중요한 책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구폐와 악습을 청산하고 좀 더디게 가더라도 기본이 서는 바른 나라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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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 - 법륜 스님의 지구촌 즉문즉설 야단법석 1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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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野壇法席)의 뜻의 변화를 보면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설법하는 신성한 자리가 오히려 설법을 들으려고 모인 중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야단법석이라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 고승들의 선문답이나 고귀한 말씀이 아니라 원효가 외쳤던 불교의 대중화를 연상케한다. 그래서 스님의 소속이 정토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우리나라 불교가 삼국시대 처음으로 전래되어 150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로라하는 고승들의 설법은 대부분 난해하고 귀족들만을 위한 불교로 흘렀다. 고려후기에 접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로 민중에게까지 널리 불교가 퍼져나갔지만 하층민들이 불교의 교리를 배우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법륜스님은 현대판 원효스님 같다. 대중들의 삶의 애환이나 난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책을 말씀해 주시니 불교가 한층 민중가까이 다가오고 친근해진 느낌이다. 과학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발달하는 시대에 사람의 정신 영역은 그것을 따라갈 수 없어 더욱 혼란스럽다. 복잡다기한 요즘의 삶은 고민이나 번뇌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항상 갈증을 느끼면서 욕망을 추구하는데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스님의 설법은 지구촌에 사는 우리 교포들에게 똑같은 고민이 있음을 알고 115개국을 돌며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며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고민의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 불행을 만들기도 하고 행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기가 웬만해선 어렵다. 스님이 들려주시는 고민해법도 결국은 마음 다스리는 것이다. 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큰 고민도 아무것이 아닌 것이 될 수 있고, 훌훌 털고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예로 들면서 쉽게 설법을 하시는데 마음 한켠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낄 때도 있다. 스님의 설법은 어렵지 않아서 좋다. 듣고 있으면 자꾸만 얘기 속으로 빠져들고 평범한 말 속에 웃음과 진리가 담겨 있다. 불교서적은 대부분 난해하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말끔히 해소해 주신 분이 법륜스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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