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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신 (DVD 포함 고급박스 세트) - 방황하는 영혼을 위한 희망의 카운터컬처
티머시 켈러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구세주 장로교회」의 담임 목사인 티머시 켈러란 분이 명쾌하게 살아있는 신에 대해서 조목조목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해설해놓은 책이다. 아마도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들이나 신이 있어도 기독교의 신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회의론자들에게라도 충분히 명쾌한 해설이 나올 정도로 탁월한 명징을 보여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는 있지만 신앙의 깊이가 얕아서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거나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성경의 많은 지식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신을,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신을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을 증명한다는 것은 신적인 존재에 비해 발톱의 때만큼의 가치를 지닌 인간이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일단 신을 뛰어넘어서야만 가능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자신의 잣대에 비추어보고 이래서 신이 없다느니, 저래서 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하는 순환논법에 빠진 이 세상의 많은 인간들을 위해서 티머시 켈러 목사가 나서 주었다. 그도 물려받은 기독교 전통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고 자신이 먼저 잣대를 세워놓고 그에 맞게 하나님을 끼워맞추려고 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본인이 먼저 많은 방황과 회의에 빠져 지냈던 그 시간들이 뒤늦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고통이나 방황은 무언가 고결한 이유가 없이 진행되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기독교를 삶의 원리라고 받아들인 나에게도 너무 귀중한 책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정확하게 무신론자들에게 설명하지 못했던 점들과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으니까 말이다. 또 한 가지 감사한 일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면서 기독교를 자신과 관계없는 하나의 종교로만 생각하고 있는 분께 이 책으로 전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든다는 점이다.
실은 내 주변엔 내가 눈치챌 정도로 무신론자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없다. 물론 내가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심판의 신은 믿지 못하겠다느니, 지옥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라느니, 과학이 기독교의 오류를 증명했다느니, 선하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고통은 있을 수가 없다느니, 사랑의 하나님은 믿을 수 있지만 심판의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느니, 성경에는 기적이 많이 나타나기에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느니 하는 회의를 가진 사람들의 속내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 나온 회의론자와 무신론자들의 속내를 하나씩 들쳐내서 그것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짚어준다. 이것은 켈러 목사가 다양한 가치가 가득한 뉴욕에 세운 정통적인 기독교회를 세우고 나서 예배 후에 많은 사람들의 의문에 대답해주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내 귀로는 들어본 적은 없지만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공감은 갔다. 그것은 아마도 나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답을 잘 못했던 가장 큰 질문,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는 편협한 것아 아닐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상당히 고마웠다. 답을 미리 말하자면 유일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기독교가 편협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볼 때 좀더 고결한 이상 - 원수를 사랑하라 등 - 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편협하다고 말하는 것자체가 편협하다고 할 수 있다. 「A를 믿는다」고 편협하다는 꼬투리를 얻었다면 「A를 믿는 것은 편협하다」는 것도 편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하나의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스스로 인식하지 않으려하지만 실은 신이 있다는 것은 은연중에 믿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수준 높은 것을 기대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인간은 (신도 믿지 않으면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허무맹랑할 정도로 높은 도덕원칙을 정해놓았을까. 만약 세상에 신이 없다면, 그래서 모든 자연의 질서 - 진화론의 자연도태 - 에 따라 인간 세상도 진행된다면 우리가 약자를 공격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도덕원칙은 모두 개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인신매매나 아동성학대나 노예제도에는 반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인간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기독교에서 나온 진리라는 것이다. 일례를 들어, 우리가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권 보장은 아직까지도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한 곳에서 인권 보장은 말도 안 되는 일일 수 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할 수 있고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비서구권의 사람들에게 서구권의 논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쩌면 폭력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끊임없이 여러 기구나 사람들을 통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무언가 고결하고 높은 이상을, 그러니까 신께 더 가까이 가려는 이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가장 통쾌하게 느껴졌던 대목은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반박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람들이 무언가 선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생존률을 높여주기 때문에 진화할 때 그런 습성이 인간 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행에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목숨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가 휩쓸려 아이는 구하고 자신은 살아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심심찮게 나오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구하는 행동은 자신의 종족 본능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이야기일진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리처드 도킨스나 대니얼 데닛, 샘 해리스 같은 대표적인 무신론자들은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그들의 논리가 헛점투성이라는 것은 간파해내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인기있는 책을 낼진 모르지만 학계에선 이젠 받아들여지지 않는 학설이니 우리도 홀려선 안될 것이다. 심지어 같은 무신론자인 토머스 네이글은 도킨스의 접근방식 -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해명은 분자물리학이나, 끈 이론이나, 물질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을 지배하는 순전히 외연적인 법칙에 들어있다는 것 - 을 부정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오류는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총 2부로 나뉘어져 앞 부분에는 우리가 은연중에 기독교에게 가지고 있었던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뒤 부분에는 왜 여러 종교 중에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나와있다. 사실 여기서 말한 ‘종교’란 단어는 기독교랑은 어울리지 않는데, 그 이유가 정확하게 제시된다. 다른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선생이 종교의 창시자이지만, 기독교는 유일하게 그 자신이 구원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먼저 간 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믿어야 하기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복음’이란 말로 설명되어야 한다. ‘복음’!!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기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값없이 얻어지는 선물과 같은 것!! 그러기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한없이 겸손해질 수 있고, 한없이 베풀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기에. 또한 그 어떤 고통에도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예수님이 더한 고통 속에 자신의 몸을 ‘영원히’ 던지셨기 때문에!! 그러니 세상의 모든 신들 중에서 인간의 고통을 직접 체험한 분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바로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이 영적으로 무감각해졌던 사람들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을 믿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