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스는 "해를 보고 화를 내라" 고 했다. 정말 너무 멋들어지다. 사르트르는, "타인이 지옥이다"라고 했다. 과녁을 정통으로 꿰뚫지 않았는가. 난 혼자인 적이 없다. 혼자이면서도 딱히 혼자가 아닌 것, 그게 제일 좋은 거다.
- P23

난 밤마다 이런저런 딴 일을 하거나 또는 그저 빈둥거리면서 라디오를 서너 시간씩 듣는다. 이게 내 약이고, 이게 낮 동안 쌓인 쓰레기를 내게서 씻어낸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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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교통사고가 나면 지나가던 택시가 아는 레커차에 연락을한다. 그럼 도로 위의 하이에나이자 진정한 레이서들인 레커차들이나선다. 레커차들의 절대 원칙은 선착순이다. 그래서 레커차는 마치 지구라도 구하겠다는 심정으로 광속 질주를 한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구급차보다 레커차가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하는 기적이 발생한다. 레이싱에서 우승한 레커차는 사고 차량을 꼬리에 달고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며 미리 계약된 정비소에 차량을 넘긴다. 정비소는그 대가로 레커차에 20~25만 원씩 이른바 ‘통값을 준다. 그래서 이런 정비업소를 ‘통공장‘ 이라고 부른다. 사고를 알려준 택시에도 5만원 정도 거간비를 준다.
- P50

금감원에서는 보험금으로 수리한 차량을 직접 정비공장으로 가지고 가서 해체한 후 보험금 지급내역서에 기재된 부품과 수리 내역이 사실인지 확인해보았다고 한다. 전문가 15명을 모아 3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 약 2000만 원의보험금 사기를 밝혀냈다. 전문가 1명당 하루에 1만4810원 정도 밝혀낸 것이다. 황소개구리 한 마리 잡자고 온 저수지에 청산가리를 푼 셈이고, 수술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 배를 다시 한번 가른 셈이다.  - P51

수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그 분야에서 쓰는 용어를 익히는 것이다. 그들의 용어를 쓰지 않으면 조사가 진행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자들에게 표제어를 꼭 그렇게 정해야 합니까?"
라고 말하면 무시당하지만, "미다시 꼭 그리 뽑을 거요?"라고 말하면 이야기가 통하는 것과 비슷하다.  - P52

수사가 끝나면 늘 쓸쓸하다. 수사 과정에서 직면해야 하는 인간의 비열함과 추함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구속된 한 통공장 사장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기름밥으로 먹고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가청을 한 것인데 그게 그리 죽일 죄냐고, 결국 부자들인 보험회사를 위해서 하는 청탁수사 아니냐면서 검찰은 왜 늘 있는 사람들 편만 드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부유했다. 바이에른 주의 상징인 파란색과 하얀색이 교차하는 엠블럼을 단 자동차를 두 대씩이나 굴리고 있었고, 나는 꿈도 못 꾸는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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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에게는 신이 없어. 그 녀석에겐 관념이 있지. 나와는 차원이 달라. 하지만 그 녀석은 침묵하고 있어.
나는 그 녀석이 프리메이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들어. 그 녀석에게 물어봤더니 침묵하더군. 
- P176

길을 절반도 가지 않아, 이날 아침 일찍부터 그랬듯 매섭고도 메마른 바람이 일더니 어느새 잘고 메마른 싸락눈이 마구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땅에 떨어졌으나 미처 땅에 머무를틈도 없이 바람에 휘말려 흩날렸고 곧이어 숫제 눈보라가 몰아쳤다. 우리 도시에서 스메르쟈코프가 사는 지역에는 가로등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눈보라가 치는줄도 모르고 본능적으로 길을 헤아리면서 암흑 속을 성큼성큼걸었다.  - P234

아, 반카는 피체르로 떠났다네.
나는 그런 놈 따윈 기다리지 않겠네!

그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이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있잖니, 나는 네가 꿈은 아닐까 두렵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네가 헛것은 아닐까?" 그가 중얼거렸다.
"여기에는 우리 두 사람을, 그리고 제삼의 어떤 존재를 제외하면 헛것이라곤 전혀 없습죠. 지금 여기엔 틀림없이 그가 있어요, 그 제삼의 존재가 우리 둘 사이에 있는 거죠."
"그가 누구냐? 누가 있다는 거냐? 제삼의 존재란 누구냐?
"이 제삼의 존재는 신입죠. 이건 바로 하느님의 섭리입죠, 그분은 바로 여기 우리 곁에 있지만, 다만 도련님은 그분을 찾지않으니 발견하지도 못할 겁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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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갑작스런 패턴의 변화는 좋지 않은 신호라는 것을 안다. 추세가 급격히 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남편이 갑자기 콜롬보 지갑을 사오면 그건 내연녀에게 콜롬보 백을 사주었다는 뜻이다. 의심해봐야 한다. - P23

할머니가 처음부터 고수였던 것은 아니다. 그도 소싯적에는 감방을 들락거린 속칭 ‘꽈배기‘였다. 그러나 어설픈 처벌이 반복되면서 마치 비 온 후 죽순 자라듯 사기 공력이 늘었고, 경찰·검찰의 속성에도 정통하게 되었다. 꽃다운 청춘의 한 조각을 감방에서보낸 대가로 얻은 관록과 후덕한 인상, 그리고 대범함이 더해져 ‘만렙‘ 사기꾼으로 성장한 것이다.
- P25

 피해자들은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인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외모나 인상만 보고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런 허술한 판단이 옳다고 고집스럽게우긴다. 더욱이 사람들은 너무 큰 불행이 닥치면 부정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할머니의회사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긴 걸 거라고, 곧 돌아와 예전처럼 어음을 잘 해결해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 P25

우리나라 검사들은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한다. 대구지검에서 근무하다가 순천지청으로 가는 식이다. 인사이동을 하면 그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들은 해당 검찰청에 그대로 두고 가는데 대략200~300건이다. 이 사건들은 다른 검사들이 배당받아 처리하게 된다. 이것을 재배당‘ 이라고 한다. 재배당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통상 6개월마다 이루어지는 부서 이동이나 휴직 연수 등 검사가 자리를 비워야 할 때에도 일어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론에 자주나오는 검사보다는 재배당과 이송을 적게 하는 검사가 좋은 검사다. - P26

할머니는 새로운 검사에게 자신의 사건이 재배당된 것을 확인한 후, 토요일 오전을 택해 느닷없이 검사실로 쳐들어온다 (당시에는토요일 오전에도 근무를 했다). 조금 있으면 퇴근한다는 기대감으로 느슨해진 틈을 타 다짜고짜 욕설과 고함을 지르며 들이닥치는 것이다.
자신은 이름을 빌려주었을 뿐인데 도대체 왜 자신을 수배해놓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른바 ‘선빵‘을 날리는 것이다. 그 기세에 눌린 새로운 검사는 전임 검사가 무언가 실수를 했구나 싶은생각이 들어 쩔쩔매게 된다. 기선에서 밀리면 끝까지 밀리는 법이다.
병아리 때 쫓기면 장닭이 돼도 쫓긴다.
- P27

검사는 할머니에게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사과하면서 우선 수배를 해제시켜놓을 테니 나중에 소환하면꼭 나오시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할머니는 수배가 해제되고 아무런조사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검사의 사과를 받으며 당당히 검찰청을 걸어 나간다. 들뜬 토요일의 퇴근 욕심이 부른 집중력 부족을 할머니는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 ‘인자기‘ 뺨칠 위치 선정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 P28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부장이 차장보다 상급이지만 검찰청은 다르다. 차장은 ‘차 검사장‘의 줄임말로 부장의 상급자이고 모든 사건의 결재를 담당하는 중요하고도 엄청난 중노동을 하는 역할이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깔딱 고개와 같은 것이다. [검사의 승진 순서는 평검사(3급대우) → 부부장검사 → 부장검사(13~19년 차) → 차장검사(19~20년 차) → 검사장(준차관급)- 고검장(차관급) → 검찰총장(장관급) 순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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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철학자들 글을 꾸준히 읽는다. 그들은 참 괴상하고 웃기고 대책 없는 작자들ㅡ 도박꾼들이다. 데카르트가 등장해 말하길, 이 친구들 지금까지 순 헛소리만 했어. 그는 수학이 절대적이고 자명한 진리의 모형이라고 했다. 기계론이다. 그다음엔 흄이 과학적 인과론의 타당성을 공격하며 등장했다. 이어서 키르케고르, "손가락으로 존재를찔러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 다음은존재가 부조리하다고 주장한 사르트르의 등장. 난 이 작자들이 사랑스럽다. 그들은 세상을 뒤흔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느라 골머리가쑤시지 않았을까? 이빨 사이로 암흑이 몰려나오며 포효하지 않았을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길에 나다니거나 카페에서 뭘 먹거나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과 대비해보면 차이가 너무도 엄청나서, 내 속에서 뭔가 뒤틀리며 창자를 발길질한다.
- P16

헤밍웨이에게투우가 필요했던 까닭을 난 안다. 그에게 투우는 삶이라는 그림을 끼울 액자 같은 것으로, 자기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으리라. 때때로 그걸 우린 잊어버린다. 기름 값을 지불하고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등등에 정신이 팔려서,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다. 제 자신의 죽음이건 남의 죽음이건, 사람들에게 죽음은 충격이고 공포다. 뜻밖의 엄청난 사건 같다. 염병, 어디 그래서 되겠나.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 P17

꽃이 피어나는 것이 애도할 일이 아니듯, 죽음도 애도할 일이 아니다. 끔찍한 건 죽음이 아니라 인간들이 죽기까지 살아가는 삶, 또는 살아보지 못하는 삶이다. 인간들은 제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제삶에 오줌을 싸댄다. 제 삶을 똥 싸갈기듯 허비한다. - P17

대다수 인간들의 죽음은 짝퉁이다. 죽을 게남아 있어야 말이지.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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