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권익 운동의 지도자들은 남부 흑인들의 노예화와, 북부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시스템을 통해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초기 여성운동에는 백인 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백인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조차도. 많은 여성들이 노예제 폐지 운동을 지지했지만 노예제 반대 의식을 여성 억압에 대한 분석 속에 통합하지는 못했다. p.115



이 세계에 관련성이 없는 게 있기는 할까?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모든 환경과 시스템, 물질과 비물질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겉보기에 평범하게 회사생활 잘 하던 사람이 어느새 도박에 중독되고 다단계 사기를 당하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건 그 과정, 이유, 나름의 사정이 있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 선언을 하고도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I Have a Dream'이란 연설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어도 2020년에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깔려 숨진데에는 그만한 과정이 있었다. 링컨의 공화당이 트럼프의 공화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와도 긴밀히 연결된 구조적인 이유가. 



공화당은 기본적으로 남부 흑인들의 혁명적인 요구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북부의 자본가들이 남부에서 헤게모니를 잡은 뒤ㅡ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던ㅡ공화당은 남부 흑인들의 선거권을 체계적으로 박탈하는 작업에 가담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19세기의 가장 명민한 흑인해방 지지자였음에도 자본가에 대한 공화당의 충성심을, 그리고 이들에겐 흑인 참정권에 대한 초기의 요구만큼이나 인종주의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평등권협회 내 흑인 참정권을 둘러싼 논란의 진정한 비극은 참정권이 흑인들에게 거의 만병통치약 같은 역할을 하리라는 더글러스의 입장이, 어쩌면 여성참정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인종주의적 완고함을 부추겼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P.142



노예 해방이 선언된 이후에도 흑인들은 그들을 옭아맨 사슬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노예제를 모델로 한 재소자 임대 제도는 지주들과 상인들에게 큰 이익을 남겼고 때문에 흑인들은 빚을 지며 숨을 거둘때까지 노역에 시달려야만 했다.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같은 노역을 하거나 백인 가정에서 가사 노동을 하며 성적 착취에도 시달려야만 했다. <'노예시장'에서 고용되고 나면 여자들은 힘겨운 하루치 노역을 마친뒤 자신들이 예정보다 더 오래 일했고, 약속보다 더 적게 받았고, 현금 대신 옷가지를 받아야 했고, 인간이 인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착취당했음을 깨닫곤 한다....이들이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오로지 돈이 절박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P.154> 





흑인 여성들에게는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 여성들, 미국 백인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생산직, 사무업무 등에서 일할 기회가 없었다. 아주 드물게 기회가 있더라도 인종적 편견으로 오래지 않아 물러나야만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야 그들은 가사서비스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미여성참정권협회 대표였던 수전 B.앤서니는 여성참정권 운동에 남부 출신의 백인 여성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프레더릭 더글러스를 밀어냈고 역시 여성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인종주의에 굴복했다. 그 시기(1894년) 남부에는 합법적인 인종차별 체제가 들어섰고 린치가 횡행했으며 10년간 수백 수천의 집단살인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이것은 거기 눈 감고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인종이 얽힌 역사는 이렇게도 뼈아픈 진실들이 담겨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와중에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의 자매애는 빛났다. 목숨을 걸고 흑인들의 교육에 헌신한 백인 여성들도 있었으니까. 부정적인 일들도 긍정적인 일들도 이 일은 저 사건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 선택은 저 선택에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정당화가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해관계와 경제적 이익, 구조적 문제와 인종주의, 편견등이 막강한 힘의 논리와 저항의 싸움 속에서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가해자의 사형 선고 여부를 가장 확실하게 예측하는 기준은 가해자의 정체가 아니라 희생자의 인종이다. 사법 정의를 외치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사형 사건에 관한 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조지아의 범죄자들은 피해자가 흑인일 때보다 백인일 때 사형 선고를 받을 확률이 11배 높았다. 이런 결과는 인종과 사형제도의 관계를 다룬 연구를 진행한 모든 주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P.302 이저벨 윌커슨.카스트



   



안타깝게도, 계급 구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그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해, 계급 구분이 사라져야 한다는 바람은 필요하지만, 그럴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그런 바람은 전혀 효력이 없다...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계급 구분 덕분에 형성된 결과물이다...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뒤바꾸어, 결국에는 이전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P.230 .<폭력이란 무엇인가> 중 <위건부두로 가는 길>의 조지오웰 인용


 페미니즘의 자기 확장은 필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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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2-07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카스트에 저런 내용이 담겨 있군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또 흑인 과잉진압 사건이 일어나서 미국이 또 한바탕 뒤집어졌네요.
성평등이 우선이냐 인종간의 차별에 대한 철폐가 더 우선이냐 이 문제에 당시 사람들도 많은 설전을 벌였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부분을 읽고 계셔서 반갑네요^^

미미 2023-02-07 13:50   좋아요 2 | URL
인종주의의 뿌리깊음을 실감했네요. 미국에서 초기 여성운동이 이렇게나 혼란스럽고 모순으로 가득했다니 배우는게 많은 책입니다. 당연하기도 합니다만 미국은 인종문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요. 미국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여행가기 두려운 나라예요.

네! 성평등,인종,계급 문제가 얽혀 있다는걸 이해하는건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아요. 화가님 따라 저도 열심히!^^*

2023-02-0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7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3-02-07 2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월의 책 정말 좋네요. 올려주신 인용문도 좋고요, 미미님 글도 좋아요. <카스트>라는 책에도 관심이 가고요.
저도 얼른 시작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먼 산)

미미 2023-02-07 20:47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이번책도 너무 좋아요!! 미국 역사의 가슴뛰는, 또 아픈 순간 순간들이 머리에 그려 집니다.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은데 늘 욕심만...ㅋㅋㅋ어찌될지 모르겠어요(먼산 저도ㅋ)

베터라이프 2023-02-07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다름이 아니고 혹시 오프라인에서 여성주의 독서모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여쭤 봅니다. 페미니즘 관련 독서하는 오프라인 모임을 찾고 있는데 마땅치가 않네요 ㅜㅜ

미미 2023-02-07 21:44   좋아요 3 | URL
네 안녕하세요 베터라이프님! 아쉽게도 오프라인에서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ㅎㅎ 알라딘 들어왔다가 여성주의 1위 마니아인 다락방님의 글을 읽고 매달 한 권씩 읽는데 참여하고 있어요. (2년차 미미^^) 다락방님이 엄선한 책들 지금까지 다 훌륭했습니다. 베터라이프님 혹시 관심 있으시면 7월까지 예정된 책들 목록이 있으니 살펴보시고 언제든 함께 읽으시죠! 읽고 리뷰쓰시면 되는데 같이 읽는 다른 분들 글 읽으며 오프라인 만큼 풍성한 독서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https://blog.aladin.co.kr/fallen77/14307694 꼭 매달 읽으셔야할 강제성도 없는데 저는 여태 너무 좋아서 한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ㅎㅎㅎ

가필드 2023-02-08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여성 인종 계급 ‘ 여성들의 자매애가 빛난다는 글을 보니 예전 영화
헬프가 생각나네요

미미 2023-02-08 12:33   좋아요 1 | URL
헬프가 그런 내용이었군요!! 궁금했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어요^^*

가필드님 화사한 수요일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