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이야기, 제22회 양성평등미디어상 우수상 수상작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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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한 아이와 찍은 사진이 언론의 도마위에 올랐었다. 야당 의원이 해당 사진에 '빈곤포르노'라고 명명한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보수 쪽에서는 '포르노'라는 단어에 의미를 두어 영부인을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맥락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의도적,혹은 비의도적) 문해력 문제로 읽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진정성 있다고 평가받은 다른 사진들이 함께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의 취재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져 있을 정도인데 영부인의 경우 나쁜 사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영부인의 행보가 과도하게 언론의 집중을 받는것은 또 하나의 문제로 보여진다.



'빈곤포르노 왈가왈부는 왜 국민모독인가'-시민언론 민들레 (<-관련기사 링크)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인간들의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었고, 이때 고통의 재현물이 더 이상 교훈이나 본보기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손택에 따르면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가 되어버리고, 이런 이미지를 보는 행위는 (의도했든 안 했든)일종의 관음증이라는 것이다. p.111


몇년전 손택의 책을 읽고 난 뒤부터 TV에 나오는 약자들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정부의 책임은 지우고 마음약한 개개인들의 선행에 그들을 떠맡기는것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모니터로 전시되는 상황. 그들의 몸이, 여건이 그렇듯 열악하지 않았어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방송을 보고 후원하는 사람들의 모금액이 가득 채워지면 그만인걸까?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가혹한 폭력을 당하는 여성의 나체가 화폭에 담기는 일도 다르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과리노가 그려낸 <성 아가타의 순교>에서 아가타는 "영원히 살해 당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 처해 있고, 영원히 학대 받고 있다." (이유리,P.114)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유린 당하고 있는 아가타의 몸'그 이상이 전해질 수 있을까?



'기울어진 미술관'에 이어 또 한 권 이유리의 책을 읽었다. 이 작가의 글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그림 속에 감춰진 맥락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어떤 몸들은 록산 게이의 표현처럼 쉽게 공공의 영역이 된다. 예를들면 여성 화가는 너무 못생겨도 문제가 되고 너무 예뻐도 문제가 되었다. 지상파에서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나오자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에 까지 기사자료가 되었다. 물론 남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출연하는것은 기사화되지 않는다. 왜 남성작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요소가 여성작가에게는 논란이 될까? 남편에 의해 '판매되었던 여성', '머리를 잡히고 주먹질을 당하는 여성'과 같은 그림 속 재현은 여성들이 겪어온 삶의 방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것들은 그저 과거의 유물로 남았고 또 어떤 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몸이 언제쯤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1908~1984)에 대해 미술사학자 게일 레빈(Gail Lev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크래스너가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녀의 사망 후 몇몇 지인과 작가들은 크래스너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고 강조하곤 했다. 크래스너의 학창 시절 동료는 그녀가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스타일은 우아했다고 말했다." 크래스너의 남편이자 '액션 페인팅'의 대가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012~1956)을 언급할 때는 "탈모가 있었지만 야성적인 매력이 넘쳤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성 예술가의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p.157




리 크라스너와 잭슨 폴락. 출처:블로그 A Mus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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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6 17: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리 크라스너 평전 읽었는데
남편 폴락보다 예술적 재능이 더 뛰어납니다 ^^

미미 2022-12-06 18:23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스콧님은
평전도 읽어보셨군요! 몇몇 작품을 찾아봤는데
시선을 사로잡는 색감이 인상적이예요.*^^*

2022-12-06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6 1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베터라이프 2022-12-06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계나 학술적인 전문 용어를 너무 과신하거나 과용할 필요는 없지만 객관적인 측면에서도 인정된 용어의 뜻을 멋대로 왜곡하고 그 왜곡된 의미를 다수에게 강요하는 것은 정확히 무슨 의도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세계 다수로부터 인정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정부의 수반과 그 부인을 정상적으로 비판도 하지 못한다면 저기 아프리카의 어느 독재 국가가 자신들도 떳떳하게 민주주의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 드네요. 대통령 부인이 무슨 성스럽고 성역의 존재는 아니잖아요.

미미 2022-12-06 22:38   좋아요 4 | URL
사회문제에 무지한 정부라는 사실을 매번 증명하고 있죠. 안타까운 점은 그런 억지를 곧이 곧대로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과도하게 언론이 여기에만 집중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 중요한 다른 현안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2022-12-07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7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12-08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빈곤포르노에 표절 사진들 ㅠㅠ 이죠 구도나 옷차림부터 ㅠㅠ여성이란 이름이 붙으면 자연스레 외모품평이 따르는 거 참 ㅠㅠ

미미 2022-12-08 15:40   좋아요 2 | URL
주변에 직언해주는 사람이 없나봐요 어떤 관점은 시대가 변해도 더 공고해지는것 같아 씁쓸합니다ㅠㅠ

물감 2022-12-08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프사바꾼 기념을 핑계로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잘지내셨는지요🙂

미미 2022-12-08 18:31   좋아요 2 | URL
네 물감님 새로운 프사가 귀엽고도 매혹적이네요ㅎㅎ 물감님도 잘 지내시죠? 올려주시는 글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기억의집 2022-12-09 0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정부가 80년대안에 갇혀 있는 것 같어요. 대통령 영부인 법무부 장관 등등 저런다고 알아주지도 않는데. 왜들 저러는 걸까요!!!

미미 2022-12-09 08:50   좋아요 1 | URL
이분이 당선 되었을때 우리정치가 30년쯤 후퇴할꺼라고들 해서 불안했는데 단시간에 그렇게 되어버렸네요. 임기가 빨리 끝나면 좋겠는데 이건 시간이 안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