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을 읽게 되면서 가장 좋으면서 아쉬운점은 소설 읽을 때의 묘사와 달리 무대의 상황을 떠올리기가 좀 더 수월하다는 것과 몰입할 수록 공연을 보고 싶은 갈망이 커진다는 것이다. <에쿠우스>는 여태 읽어본 몇 안되는 희곡 작품들 중에서도 그런 갈망이 가장 컸던 작품이다. 극작가인 피테 셰퍼는 이 이전에도 작품을 내놓았었지만 1973년 초연을 올린<에쿠우스>를 통해 세계적인 극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도 1975년 처음 공연된 <에쿠우스>는 출연 배우마다 스타반열에 오르게 할 만큼 주목을 받았고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무려 천회가 넘는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피터 셰퍼는 친구로 부터 들은 단 1분간의 이야기로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소년이 6마리 말의 눈을 찌른 충격적인 사건에 관해서였는데 이후,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이 이야기를 해준 친구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셰퍼는 구체적인 정보없이 친구에게 들은 1분간의 내용만으로 살을 붙이고 붙여 <에쿠우스>라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대단하다. 소재가 없어 글을 못쓴다는 건 비겁한 변명임에 틀림이 없다.(나에게 하는 말)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에쿠우스 공연에서 누드로 열연을 펼쳤다고 한다. 




 지역 판사인 헤스터는 정신과의사 다이사트에게 말 6마리의 눈을 찌른 17세 소년의 정신감정과 치료를 요청한다. 직업과 부부생활 모두에서 회의를 느끼던 의사 다이사트가 우선 이 소년의 가정을 들여다보니 이른바 '바보상자'이론을 신봉했던 것일까 소년 알런의 아버지는 집안에서 TV를 없앨 정도로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사내였다. 그런반면 과거 교사를 했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종교이야기만 주로 주입했는데 거기 영향을 받은 알런은 자기방에 골고다로 향해 가는 채찍질당하는 예수의 그림을 걸어두었다. 이게 또 마뜩찮았던 무신론자 아버지는 아내와 싸운날 아들의 방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을 떼어버리고 알런은 이 일로 며칠이나 슬퍼한다. 한창 성에 눈뜰나이임에도 아들에게 성교육은 전혀없었고 오히려 부부의 지나친 간섭과 신앙교육만이 그를 숨막히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읽은 프로파일 관련책에서도 이런 조건은 사이코패스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요소로 종종 등장한다. 여기 유전적기질과 뇌의 결함 혹은 이상이 만나 행동으로 이어지면 연쇄살인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한 신경증은 프로이트 이론에 자주 등장한다.(작품에서 다이사트는 괴이한 꿈으로 억눌린 자신을 인지하기도 한다.)




(프로이트 이론 변천의)두 번째 시기에는 히스테리를 비롯한 모든 심리적 증상의 근원에 성욕,즉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는 이론적 전환을 맞습니다.(...)20세기 초엽에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이들 모두 대체로 성적인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무릎을 칩니다. P.41-'불안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 강우성


  알런은 예수 사진이 있던 자리에 말 사진을 붙인 후 평온을 되찾게 되는데 사실 그는 여섯살 때 바닷가에서 모래를 만지고 놀다 길을 지나던 기수를 만나 말에 올라타는 행복한 경험을 했다.하지만 불행히도 곧이어 나타난 아버지에 의해 말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지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허락없이 아들을 말에 태웠다며 노발대발하는 아버지와 이에 그와 말다툼하게 된 기수의 대화가 읽기에는 조금 우습기는 해도 알런의 사건을 떠올리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섭고 충격적인 기억이었을지 꺼림직하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이런 와중에 말을 탔던 어린 알런이 "멋있어.아빠!"라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만 어린 아들을 걱정하다 이성을 잃은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은채 그만 묻힌다. 


기수: 위험하다뇨?

프랑크: 위험하구말구. 저 눈알을 봐. 부릅뜨고 있는 눈알을 말야.

기수:당신의 눈도 그런데요!

프랑크:말은 위험한 동물이야. 이 바닷가의 안전을 위해선 위험한 존재야. 

기수:제 의견을 말할까요, 당신이야말로 바보천치 올습니다!  P.62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수개월전 전파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질이라는 여자아이를 만난 알런은 그녀가 일하는 마구간에서 주말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곳에서 일하며 드디어 애정하고 갈망하던 말과 시간을 함께 보닐 수 있게 되고 3주에 한번씩 일이 끝난 시간에 알런은 몰래 말과 함께 마구간을 나와 자유로운 그들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알런은 "에쿠우스~에쿠우스~"를 외치며 말과 자신의 일치를 경험한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함께 일하던 질의 유혹으로 알런은 극단적인 혼란으로 치닫게 된다. 





자기의 인생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ㅡ우선 자기 자신의 고뇌와 싸워야 해요. 자기만의 독특한 고뇌 말요.(...)그앤 그 고통과 싸웠어요. 글쎄 그는 병자죠. 비통과 두려움에 싸인 병자란 말입니다. 위험 인물이라구요.ㅡ안 그럴 거라고 믿긴 하지만 ㅡ또 위험한 일을 저지를지는 몰라요. 그렇지만 이 소년은 내가 이제까지 어느 한 순간에도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정열을 이미 가져 봤어요. 사실은 난 부러워하고 있어요,그 애를. P.144


 다이사트는 알런이 일으킨 행위의 심리적 근원을 파해쳐가며 외면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욕망적으로나 이상적 꿈으로 부터 억눌린 자신의 삶과 반대로 불안한 억눌림에 파괴적인 분열 방식으로 저항하고 분출한 알런을 비교하게 된다. '정상'의 범주에 들기위해 사회적 요구라는 틀에 자신의 개성을 죽인채 끼워 맞춰지는 일반인들의 삶과 그 내면의 욕구불만은 과연 온전한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다이사트는 알런을 '치료'하며 자신이 갇힌 현실적 한계와 무기력을 절감한다. 이 희곡을 읽으며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공포' 속 '40명의 순교자'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얻지 못한 불안한 한 남자와 가진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누리는 듯한 '40명의 순교자' 말이다.


내겐 어둠 속을 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ㅡ어린이 환자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도 훨씬 간절합니다. 어떤 방법이겠습니까? ....어떤 어둠이겠습니까?....이 어둠을 신이 규정한 거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난 그렇게 멀리까지 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둠에 깊은 경의를 표시할 겁니다. 지금 이 예리한 재갈이 내 입안에 끼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빠져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P.197









사진출처: 

1번 사진 https://blog.naver.com/yang456/140041598340

2.번사진 https://blog.naver.com/musicalplus/220494764341

3.번 사진 https://blog.naver.com/23secret/221250643331












*에쿠우스-라틴어로 '말'(horse)이라는 의미 



*여성의 시선에서(아마추어 불편러의)


-판사 헤스터는 이른바 사회적 위계질서의 최고위층이라는 '판사'라는 직책에도 불구하고 번역에 있어서 의사 다이사트에 비해 아랫사람인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이 인물이 여성이란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번역의도에서 비롯된 결과였겠지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게 여겨졌다. 


-내가 볼 때는 알런이 분노한 근원에는 아버지의 역할이 큰 것 같은데 역시나 그를 파괴적인 행위로 이끄는 것은 질이라는 여자다. 질은 유독 유혹적으로 묘사되고 야한 영화를 보러 가자는 둥 그를 분열하게 만드는 열쇠 역할을 한다. 마침 어제 읽은 맥베스도 그랬는데 고전을 읽는 것이 무척 즐겁고 흥미로운 자극임에도 남녀라는 이분법적 잣대가 문학의 뿌리깊은 속성이라( 당시 사회가 그랬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앞으로도 이런 것들이 계속 보일 것 같다. 최소한 이런 부분을 발견하며 읽는 것은 내게 의미가있다.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심지어 이제훈은 연극은 안하는 것 같긴한데) 더 나이들기 전의 이제훈이 알런 역할을 하면 꽤 근사한 작품을 연극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제발!)


*오타나 반복 등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시면(되도록 비공개로) 수정하겠습니다-오타남발자 미미^^






  




댓글(57)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새파랑 2021-11-05 18: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소설 희곡 모두 천재 미미님 2관왕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겠습니다~!!

미미 2021-11-05 18:47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도 좋은느낌 받으셨음 좋겠어요! 머리에 무대가 막 그려지는 그런 희곡이라 특히 더 좋았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11-05 19: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이 책!!! 조곤조곤 말씀 하시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었던 페이퍼네요.
그리고 조승우냐~~이제훈이냐~~ 알런역으로 고민 했었던ㅋㅋㅋ
안되겠네요!! 당첨금도 받았으니까 더블 캐스팅으로 갑시다!!!ㅋㅋ

미미 2021-11-05 19:2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조승우 이제훈 더블 캐스팅이면 둘다 봐야죠~♡♡ 생각만으로도 설렙니다!!!ㅋ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11-06 0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 페이퍼 당선될 줄 알았음요. 축하축하해요. 미미님^^

미미 2021-11-06 10:47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책읽기님ㅎㅎ즐겁고 포근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11-0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앙 미미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미미 2021-11-07 11:39   좋아요 1 | URL
우앙 초딩님~♡ 감사해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