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나기도 하고 또 하사관 시절의 자세가 몸에 배어 외모가 수려한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서서 익숙한 군인의 동작으로 콧수염을꼬았다. 그리고 흡사 투망을 펼치듯, 아직 자리에 앉아 먹고 있는 사람들 위로 미남 청년 특유의 눈길을 던졌다. - P9
상당히 낡은 실크해트를 한쪽 귀 위로 비스듬히 걸쳐 쓰고, 구두 뒤축에 힘을 주어 보도를 차면서 걸었다. 마치 전역한 미남군인의 매력을 무기로 누군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에, 건물들에, 도시 전체에 맞서고 있는 것 같았다. - P10
노르망디 사람으로 타고난 기질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병영 생활속에서 길들여졌고, 아프리카에서 행해지는 약탈, 불법적인 이득, 수상한 속임수 등을 겪으면서 느슨해졌다. 또한 군대에서 통용되는공명심, 무공, 애국심, 그리고 하사관들 사이에 떠도는 거창한 이야기, 직업에서 오는 허영심 같은 것들이 더욱 그의 마음을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결국 뒤루아의 마음속은 바닥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상자처럼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앉아 버렸다. - P50
포레스티에 부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재미있고 아주 특별하고 총명한 여자랍니다! 보헤미안이죠. 진정한 보헤미안 말이에요. - P59
사장이 펄쩍 뛰었습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죠. ‘뭐라고 했나?‘ ‘프리바 씨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자네 미쳤나?" ‘왜 그러십니까? 왜냐고.… 왜냐고..…… 왜냐고….….‘
사장이 안경을 벗어 닦는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더군요. 원래상대를 골리거나 심한 말을 할 때 늘 그러죠. 살찐 뺨을 실룩거리며야릇하게 웃는 거 말이에요. 그러더니 빈정거리면서,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어요. 왜냐고? 사천이나 오천 프랑은 깎을 수 있었잖은가 - P74
생포탱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순진하군요. 정말 내가 그 중국인하고 인도인한테 찾아가서 영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거라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들이 《라 비 프랑세즈》 독자를 위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는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잘 알걸요? 이미 난중국인, 페르시아인, 인도인, 칠레인, 일본인…… 온갖 인간들과 오백 번은 넘게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대답은 늘비슷비슷해요. 그러니까 최근에 만난 사람의 기사를 대충 옮겨 놓으면 됩니다. 단, 얼굴 생김새, 이름, 호칭, 나이, 수행원, 이런 건 바꿔야죠. 그런 게 잘못 나가면 큰일 나니까. 그랬다가는 《르 피가로 나《르 골루아한테 제대로 욕을 얻어먹을걸요. 하지만 그 정도야 브리스톨이나 콩티낭탈 호텔에 가서 프런트에 물어보면 단 오 분이면 해결되죠. 담배나 피우면서 거기까지 걸어갑시다. - P75
"중국인과 인도인 인터뷰한 내 기사 읽어봤어요? 상당히 재미있죠? 파리 사람들 모두 재미있어했답니다. 정작 난 그 인간들 코빼기도 못 봤는데." - P79
뒤루아는 이따금 짧은 기사를 싣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예전에두 번째 알제리 기사를 쓸 때와 달리 사회면 가십 기사를 써오며 이미 유연한 필치와 요령을 익혔기 때문에 더 이상 글이 퇴짜를 맞는일은 없었다. 하지만 뒤루아의 글은 정치적 문제에 대해 독자적 판단을 가지고 펜이 가는 대로 써 내려간 그런 글과는 천지 차이였다. 말하자면 마부 자리에 앉아 마차를 몰며 불로뉴 숲을 달리는 것과 주인이 되어 그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의 차이 같은 것이었다. - P86
"한 가지만 말씀드리죠. 전 절대근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장난을 하죠.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자면, 술래잡기를 하는 건 어떨까요?" 뒤루아의 제안이 놀라웠는지 말이 없던 아이는 마치 나이 든 여자처럼 뒤루아가 말한 터무니없고 놀라운 제안에 대해 미소로 답하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실내에서 그러면 안 돼요." 뒤루아가 다시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전 어디서든 잘 놀거든요. 자, 절 잡아보세요." 뒤루아는 아이에게 빨리 자기를 잡아보라고 말하며 테이블 주위를 돌았다. 따라오는 아이는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웃는 것 같은 그런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따금 뒤루아를 잡으려고 손을 뻗기도 했지만절대 뛰지는 않았다. 뒤루아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히고 서 있다가 아이가 주춤거리며 다가오면 펄쩍 뛰어올랐다. 상자 속의 스프링 인형이 튀어 오르듯 단숨에 방 저편 구석으로 갔다. 아이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점점 신이 나는지 종종걸음으로 뒤루아를 뒤쫓기 시작했다. 드디어 잡았다 싶을 땐 나지막하게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 P90
식탁의 이야기는 고상한 애정론을 벗어나 음란한 이야기의 꽃이아름답게 만발한 정원으로 들어섰다. - P96
그는 늘 사회면이야말로 신문의 중추라고주장했는데, 그것은 뉴스와 함께 소문을 뿌리면서 대중에게 영향을미치고 공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교계 모임 소식행간에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넌지시 중요한 일을 끼워 넣어야 한다. 그러니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암시한 것을 통해 원하는 바를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소문이 굳어질 것이고, 긍정하면 아무도 그 소문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면은 모든 독자가적어도 하루에 한 줄씩은 흥미로운 기사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모든 사건과 사람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모든 세계와 직업을 다 생각해야 하며, 파리와 지방을, 군인과 화가를, 성직자와 대학을, 정부 관리와 거리의 여자까지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 - P141
뒤루아라면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낼 것이다. 뒤루아는 분명 노르베르 드 바렌의 표현대로 "국가 재정이라는 바닥과 정치라는 더 깊은 바닥 위를 항해하고 있는" 이 신문의 편집을 완성해 줄 것이다. - P142
가운데는 외근 기자용 테이블이 있었다. 대개는 의자로 쓰여서, 발을 늘어뜨리고 가장자리에 걸터앉기도 하고 아예 책상다리를 하고 올라가 앉기도 했다. 어떨 때는 다섯 명 혹은 여섯 명이 중국 도자기 인형처럼 올라앉아서 열심히 빌보케를 했다. - P143
진정으로 여유로운 머리를 지닌 사람을 찾기란 참 어렵다오. 바닷가에 서서 망망대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실 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 말이오. 몇 명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죽어버렸지." - P153
노시인은 굉장히 흥분했고 슬퍼 보였다. 사람의 영혼 위로 가끔 쏟아져 내리는 비애, 얼음 아래 땅이 떨리듯 영혼이 떨리게하는 그런 비애가 느껴졌다. - P154
"젊은이, 이 모든 걸 생각해 보시오.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인생이 다르게 보일 거요. 한 번쯤 당신을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보시오. 살아 있으면서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당신의 육체에서, 모든 이해관계나 사상, 그리고 인간성에서 벗어나 보시오. 그렇게 해서 다른 곳을 보시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논쟁이나 예산 논의 같은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거요." - P157
한동안 침묵한 뒤 노시인이 다시 덧붙였다.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시뿐이오." 그는 창백한 보름달이 빛나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읊었다.
"나는 찾는다. 이 풀 수 없는 문제의 답을, 창백한 달이 떠다니는 어둡고 텅 빈 하늘에서." - P158
그런 얘기는 신문사도 나도 자네도 다 곤란한 문제란 말일세. 신문기자는 절대 의심을 사면 안 돼, 카이사르의 아내보다 더 의심을 사면 안 되는 자리라고." - P169
이렇게 암울한 생각에빠져들면서 뒤루아는 문득 노르베르 드 바렌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인간의 정신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인간의 사상과 관심사들은 그야말로 범속할 뿐이며, 인간의 도덕은 너무도 어리석다. - P174
이 모든 일이 너무 느닷없이 이루어졌다. 정작 뒤루아는 상관하지도 못하고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 못 하고, 승낙도 거절도못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모든 게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뒤루아는 너무나 당혹스럽고 두려워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결투 당사자에게 결정권이 없는 듯한 상황) - P175
뒤루아는 군인이었고 아랍인을 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사냥하러 가서 멧돼지를 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헉.....) - P176
뒤루아는 여전히 "발사! 하면 팔을 든다." 하고 중얼거렸다. 문득마차 사고라도 나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마차가 뒤집혀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다리 한쪽이 부러져 버린다면….‘ - P183
알 수 없는 엄청난 공포가 뒤루아의 마음을 덮쳐 무겁게 짓눌렀다. 모든 존재를 이토록 신속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영원히 파괴하는허무, 그 한없는 피할 수 없는 허무에 대한 공포였다. 뒤루아는 이미죽음의 위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몇 시간 살다 가는 파리를, 며칠을 살다 가는 동물을, 몇 년을 살다 가는 인간을, 몇 세기를 살다가는 천체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저 새벽빛을 조금 더 보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 P208
그녀는 마치 그물에 걸려들듯 뒤 루아의 양팔에 던져진 셈이다. 뒤 루아는 오직 입술 위의 수염과 눈빛만으로 그녀를 정복해 버린 것이다. - P300
뒤 루아는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먹이를 던져주지 않으니 금붕어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영국 병사처럼 거의 한 줄로 늘어서서, 자기들한테는 관심 없이 그냥 물 위로 숙이고만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P381
어쨌든 정말 대단한 놈이군. 그자보다 더 지체 높은 사람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두뇌와 장래를 보면 그만한 자가 없소. 확실히 장래는 유망해, 하원 의원이 되고 장관이 될 거요."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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