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존경심이 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의 인생이 감동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가끔 버스를 탈 때,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어르신들이 있는가하면, 너무 추해서 외면하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등이 굽어 서 있는 자세가 불안해 보이긴 해도 깔끔한 옷차림에 선한 미소를 지닌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해 드리려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존댓말을 써 주시며 몇 정거장 안 간다며 학생도 힘들 텐데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하는 예가 전자의 경우요, 늙은 이 특유의 냄새를 독하게 풍기면서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으면 요즘 젊은 것들은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 싸가지도 없는 것들이라며 앉아 있는 모든 사람과 서 있는 사람들까지도 불쾌함에 눈살 찌푸리게 하는 예가 후자의 경우다.

  70이 넘어서도 가슴을 울리고 생각의 물꼬를 트게 만드는 글을 쓰시는 작가 박완서님을 버스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전자와 같은 어르신의 모습으로 다가서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박완서님이 평소 버스를 자주 이용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처음 박완서님을 만난 건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였다. 그다지 길지 않은 중편정도의 소설을 읽으면서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에도 어쩌면 사람의 마음과 소소한 행동들을 이렇게 잘 묘사해 놓았을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일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다시 박완서님의 ‘친절한 복희씨’를 앞에 두었다. 아홉 편의 짧기도 하고 적당히 길기도 한 소설들이 재미있는 제목 아래 함께 모여 읽는 이의 반응을 살펴본다. 너무 빨리 읽어서 이 재미난 소설집을 하루나 이틀 새에 모두 읽어 책장에 꽂히는 게 아까울 만큼 아홉 편의 이야기는 소름끼치게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화나게 한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해 본다.

  잘 배우지도 못하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나마 늙은 남편이 죽기 전에 많이 아파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만만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욕도 하고 투정도 부릴 만한데, 사랑 하나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긍정과 바지런함으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나선 이의 따뜻한 이야기, 그리움을 위하여.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전쟁이 나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70대 노인의 첫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그 남자네 집’은 분명 박완서님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가의 약력에 일치한다. 이 글을 읽고 남편에게 들려주니 글 쓰는 이의 경험이 들어가지 않은 책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나 역시 공감하는 바이고.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을 위해 낡은 둥지에 안주할 수 없었다는 말 역시 깊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머니 된 자들의 공통된 성향이 아닌가 싶다.

  오남매의 중간으로 태어나 빈곤함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답답하던 차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고국에서 신붓감을 찾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 ‘앤’. 자신의 성을 버리기 싫어 ‘안’과 발음이 비슷한 ‘앤’으로 개명하고 풍요로운 미국생활에 기쁨을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언니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경쟁에서 우월감을 느끼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버지의 부음에 모두가 살만해진 한국으로 잠시 다녀 온 앤은 예전처럼 미국생활이 기쁘지 않다. 모든 것이 시들해진 사이 어머니의 치매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을 찾은 앤은 어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무쇠 솥에 밥을 지어 ‘후남아, 밥 먹어라’라고 하는 소리에 지금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긴장을 놓게 되며 휴식을 취하게 된다. 못 살던 시절에 ‘밥’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냥 이름만 부르지 않고 꼭 ‘밥 먹어라’를 붙여서 자신을 부르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자식 키워놓아야 말짱 헛것이다’란 말이 실감나는 ‘촛불 밝힌 식탁’. 시골 학교의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손자들 재롱 볼 생각에 서울 사는 아들네와 매끄럽지 못하게 서로 바라보는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경우 바르다(?)는 중학교 선생인 며느리와 예의바른 손자들. 지척에 두고 수시로 보고 싶어 하는 늙은 부부의 마음이 아들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아서는 그 모습은 굳이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무겁다.

  박완서님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가벼운 터치에 묻어나는 진중함이다. 쉽게 읽혀지는 것에 비해 그 여운은 너무도 길고 깊다. 이제 언제라도 생각나면 아무데나 펼쳐서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집이 있으니 뿌듯하다. 부자가 된 것 같다. 이야기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셰익스피어는 없다
버지니아 펠로스 지음, 정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사람을 잘 믿는다. 온갖 매스컴에서 한 순간 최고의 영웅으로 표현하다가, 비리와 폭로로 만신창이를 만드는 사태가 와도 영웅으로 떠올랐던 사람을 내 마음에서 금방 내치지 못한다. 그것이 단순한 믿음인지, 아니면 변화를 싫어하는 또 다른 모습의 표출인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뒤엎는 혁명적인 사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감각을 사로잡는 획기적인 뉴스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책을 접하고 내 마음에서 밀린 사람과 새롭게 다가선 사람이 생겼다. 이것이야말로 내 안의 혁명이다.

  인도를 다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그 증거들이 한 사람의 인생여정과 맞물려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를 형성한 ‘셰익스피어는 없다’를 손에 두고는 ‘이제는 별걸 다 소설의 소재로 삼는구나.’ 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작가 버지니아 펠로스가 자료를 수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셰익스피어는 없으며, 셰익스피어를 내세워 글을 써야만 했던, 불운했던 시대를 살다간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실제 저자임을 밝히는 글들을 읽으며 내 안은 흥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400여 년 간 전 세계의 독자를 감동과 사유의 기쁨에 빠지게 만든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아니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이제 단순히 고전이 아닌 그 시대의 외곡 된 시대상을 바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국민 앞에 절대적인 군주로써, 지배자의 강력한 이미지와 무기로 내세운 엘리자베스 여왕의 ‘정숙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두 자식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친 울타리 안에서 꼭두각시처럼 비위 맞추며 찬양받기를 원하는 비틀어진 어머니상은 한 아들을 죽음으로, 또 다른 아들은 죽을 때까지 인정받지 못한 괴로움과 자신이 받아야 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일리 없다는 것은 그가 나고 자란 환경부터 증명된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스트랫포드 온 에이번이라는 곳은 규모가 작은 농촌이었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 대부분은 문맹이었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소네트와 불후의 명작들을 집필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전기를 쓰려 했던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빌려 글을 쓴 이가 누구냐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때 주목받은 이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철학자이면서 정치가이다. 근세 철학의 개척자인 베이컨은 새로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맞는 실험에 기초한 귀납법적 연구 방법을 주장하며 ‘수상록’과 ‘학문의 진보’등의 저서를 남긴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국새 상서 니콜라스 베이컨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생김새와 대우, 니콜라스 베이컨의 유서를 통해 친자식이 아님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외모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여왕의 연인 레스터의 외모를 닮았고 여왕의 지대한 관심 하에 받게 되는 최고의 교육으로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프랜시스 베이컨을 여왕의 숨겨진 자식으로 알고 있는 정황을 여러 책에서 밝히고 있다.

  19세기 말, 셰익스피어 작품에 정통한 오웬 박사가 희곡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부분에서 반복되는 구절과 글자체의 모순을 발견하며, 희곡의 배경이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와 너무도 흡사한 부분에서 의혹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의혹에 관심을 기울인 오웬 박사는 그러한 오류들이 무지나 부주의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배치임을 알게 되고 셰익스피어 작품 전반에 걸쳐져 있는 암호를 해독해 나가게 된다. 열정적인 연구와 노력의 결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알려진 삶이 실제와 다르며, 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의문도 풀리게 된다.

  지금에 와서야 셰익스피어가 진짜 셰익스피어면 어떻고, 프랜시스 베이컨이 진짜 셰익스피어면 어떠냐는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감추어졌고 감추어야 했었던 한 영혼의 삶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은 400년의 세월이 아닌,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해도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모르긴 해도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도 프랜시스 베이컨과 같은 인물이 많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금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읽을 때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삶도 함께 연상하면서 읽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즐겁다. 기다려라, 희극이여, 비극이여, 소네트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기도해주세요!
새라 툴민 지음, 크리스티나 스티븐슨 그림 / JCR KIDS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한 명의 어린이를 키우려면 주변에 본이 되는 좋은 어른 20명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이구요. 매일, 매순간 기도가 끊임없이 필요하지만 항상 문제가 닥쳐와야 그 때서야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못난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입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가 짜증을 부린다거나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에 잘 타이르지 못하고 폭발하듯이 화를 내다보면 결국 제 분풀이밖에 안되어 부족하고 초라한 내 모습에 슬퍼하거나 아이가 많이 아팠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아파서 그 이상신호를 제게 보내는 데, 민감하지 못한 엄마가 아이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한 것 이상의 화를 내다보니 아이의 마음까지 다치게 되어 몸도 더 많이 아프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기도하는데, 기도를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하며 뉘우치는 것은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함입니다.

  기도는 뭔가 멋진 말로 표현해야 할 것 같고, 중요한 것이기에 정해진 시간에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중압감을 없애주는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엄마, 기도해 주세요!’가 그 주인공인데, 책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아이만을 위한 책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제 첫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었죠.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알게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문은 제 마음을 심히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들, 엄마 아빠와 함께 노는 시간들,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어려운 기도문이 아닌 우리가 쉽게 하는 대화가 곧 기도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쓰여 진 기도문은 읽은 이에게 하늘과 태양, 구름, 나무, 곤충들까지도 소중히 하며 그 존재 자체에 고마움을 표현 할 줄 알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해 주고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는 고마운 책이지요.

  아이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경험을 저 역시 했고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 덕분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이를 따뜻하고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소망을 품습니다.

 

마음에 남는 기도문 하나를 올려 봅니다.

‘하나님, 오늘도 이 아이를 기쁨으로 돌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돌보는 제가 지치지 않도록 항상 새로운 힘과 인내심을 더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지치고 피곤해서 아이를 기쁨으로 돌볼 수 없었을 때가 많거든요.

늘 새 힘과 인내심으로 사랑의 눈길을 잃지 않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배우는 창조적 디자인 경영
이병욱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아이를 데리고 자주 인근의 미술전시관을 찾는다. 날씨가 좋으면 한 두 정거장은 그냥 걷기도 하는데 한 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평소 다니던 길과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쇠라의 ‘그랑자드 섬의 일요일 오후’를 만나게 되었다. “우와!”하는 감탄사와 함께 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거리에서 미술전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가까이서 보면 무슨 그림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었는데, 알고 보니 큰 건물을 짓는 공사장의 안전벽이었다. 사실 공사장 부근을 지나다 보면, 언제 벽돌 한 장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각목에 박힌 대못에 발을 찔리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심심치 않게 했었고, 먼지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쳐놓은 모기장 같은 그물막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사장의 모습은 위와 같은 것이었는데, 갑자기 명화로 장식된 벽이 앞에 보이니 정말 새로운 기분이었다. 아주 신선한 느낌말이다.

  디자인이 행복지수를 좌우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만든 일본의 작은 동물원이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나를 소개해주고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꿈꾸게 해주는 책, ‘창조적 디자인 경영’을 만났다.

  인구 35만이 사는 작은 도시 아사히카와 시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일본은 물론 외국에까지 그 명성이 자자하게 된 원인은 ‘위기’였다. 처음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동물원 본연의 임무를 잊은 채, 레저 수요가 급증하자 놀이공원에 시설투자를 한 결과 폐원의 위기까지 겪게 되지만 동물을 돌보던 사육사들의 동물을 향한 사랑과 꾸준한 노력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동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동물들이 최적의 상황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동물원을 디자인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경험 가치를 창조해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보여주는 디자인 경영은 동물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철학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리더쉽, 최고의 동물 전문가인 사육사의 30년 학습회를 통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경험 가치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성공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특별시가 환경사랑과 한강의 역사와 활력,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함축한 휘장을 만들어 10여 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또한 편안하고 친환경적인 공공디자인을 계획하며 디자인 브래드의 가치 창출을 위한 도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제품들의 디자인 경쟁시대가 아닌, 보이는 모든 것과 걷고 들으며 쉴 수 있는 모든 공간들이 디자인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중앙일보에서도 ‘디자인이 경쟁’이라는 테마로 매번 우리나라의 공공시설과 디자인 선진국의 예를 같이 보여주며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위기가 발전의 기회가 되었듯이 늦게 깨달아 빠르고 정확하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경쟁력이고 힘으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디자인한 브랜드와 삶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내 남은 생도 새롭게 디자인해 보아야겠다.

  몇 년 전에 거금을 들여 모터를 교환했는데도 불구하고 요란한 소리로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우리 집 냉장고를 바꿀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명화가 들어간 제품으로 고르고 싶은 소박한 욕심도 함께 내면서 책을 덮는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스찬을 위한 시크릿
헨리 클라우드 지음, 박종윤 옮김 / 시냇가에심은나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기독교를 접했던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다. 전주에 1년 정도 살던 무렵, 무슨 생각이셨는지 아빠가 우리 가족 모두를 데리고 가신 곳이 교회였다. 꽤 큰 교회였는데 다른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예배가 끝난 후 아빠의 기분이 아주 저조해졌다는 것만 생각난다. 이유인즉, 교회는 ‘쓰잘데 없는 짓거리’만 하는 곳이라는 거다. 헌금을 하는 시간에 목사가 헌금 봉투를 보며 이름을 부르고 헌금액수를 불러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교회와의 첫 만남치고는 참 불쾌한 기억만을 남겼던데 비해 우리 가족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신앙인으로 산다는 게 참 신기하다. 아마도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은혜’라 생각하나 보다. 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하나?

  다시 세월을 거슬러 3년 전으로 가보았다. 그 때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경공부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서 거의 모든 성도들이 기마다 두 세과목씩 정말 열심을 다해서 공부했다. 나 역시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았지만 1년에 걸쳐 ‘예수님짜리’와,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1, 2’ 그리고 ‘가족치유, 마음치유’를 접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교회를 출석하던 내게 꽤 큰 무게로 다가왔던 성경공부 시간은 내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들어줬다. 하나님이 늘 나를 초청하시고 그분이 계획하신 일에 동참하도록 내 삶을 내 의지로 조정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늘 또 다시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든 ‘크리스찬을 위한 시크릿’을 만났다. 성경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 것이라 쓰여 있지만,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내게 그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가는 늘 나를 위축되게 만든다. 그렇다고 아니라면 관두지 라는 생각으로 기독교도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이 부분만큼은 내 믿음이 검증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겨자씨보다도 작은 믿음이 내 안에 있다는.. ^^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닫지 말자, ‘책에 쓰여 진 내용이 다 그렇지’라며 말은 좋은데, 실천은 어렵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자며 다짐을 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장을 열게 되었고,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옛이야기에도 있듯이 나막신과 부채를 파는 두 아들을 매일 걱정만 하며 지켜볼게 아니라 비 오는 날은 나막신이 잘 팔려 좋고, 더운 날에는 부채가 잘 팔려 좋다는 것이 오로지 마음 하나로 바뀌게 되고 인생이 즐거워지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바꾼 생각이 행복의 열쇠이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책을 펼치며 내 의지로 바꾼 생각은 내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내 안에 숨겨진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귀 막고 눈 감으며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을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께 때로는 이야기 하듯이, 때로는 어리광 부리듯이, 때로는 투정 부리듯이 기도하자. 내게 있는 관계 맺음의 어려움이나,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내가 행복의 열쇠를 쥐고 좋은 관계를 맺어 내 인생의 목적(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을 달성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자. 이러한 결심이 이 책이 책장에 꽂혀 내 시선이 자주 닿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