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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네 방향 ㅣ Dear 그림책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살아있는 모든 것, 죽어간 모든 것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간’일 것이다. 살아있을 때 제각각 30년, 50년, 80년 등의 시간이 주어지고, 죽음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 쌓인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함께 자신의 삶 속에 등장했다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추억도 함께 간직해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저장한다. 물건도 마찬가지. 수백 년 전에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쓰이다가 지금은 ‘〜 했더라’ 로 전해져 그 세월도 함께 삶 속으로 파고든다. 때문에 사람도, 동물도, 나무도, 돌도 오래 살아온 것들을 보면 여상히 보아 넘길 수 없는가 보다.
「시간의 네 방향」에서는 유럽의 한 오래된 도시(작가의 고향인 폴란드 남부의 작은 도시 토룬이다)에 도시만큼이나 오래된 시청의 시계탑이 나온다. 600년 전에 세워진 이 네모난 시계는 각각의 시계판이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어 6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시계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시간이 궁금할 때마다 창문 너머로 광장의 시계탑을 보면 되었고, 시계탑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본다.
광장을 지나가는 바람과 비, 왕의 행렬, 다툼, 군대를 비롯해 뛰어노는 아이들의 숨결마저도 모두 들으며 묵묵히 6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시계탑한테는 짓고, 부수고, 노래 부르고, 울고 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극장안의 배우들처럼 여겨진다. 시계탑은 600년의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이고, 그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스러져간 모든 것들이 배우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100년 후, 200년 후에도 시계탑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공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모든 것들을 시간이라는 무형의 공간에 저장할 테지.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답게 글밥도 많지만, 그림에서 보여주는 재미난 이야기가 더 많은 이 책은 수백 년의 세월을 넘나들면서도 이 세월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곳곳에 숨어 있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다. 명화를 패러디한 그림들도 많아 ‘이 그림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하며 기억을 더듬어보게도 하고, 기나긴 세월동안 도시 안에서 일어났던 그 많은 즐거운 일들의 빛이 바랠 만큼 무시무시한 전쟁의 상흔도 크게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흐르는 시간 속에 그 안타까움을 상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지금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상처는 치유되고, 또 다시 새로운 상처가 돋아나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통통한 볼을 가진 귀여운 아이가 쑥 자라서 어여쁜 숙녀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모든 시간도, 하루하루 피폐해져가는 지구의 모습도 시간은 말없이 흐르며 지켜본다. 그리고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가야할까를 고민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