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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는 책 - 읽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김경윤 지음 / 오도스(odos) / 2020년 11월
평점 :
자주 찾는 카페 주인장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일반적인 책 사이즈보다 작고 얇은데, 종이의 질이 좋고 글이 적으며 그림이 많다. 휘리릭 넘기니 20분도 안되어 다 읽었다. 어려운 단어도, 해석이 필요한 문장도 없다. 간간이 참신한 표현도 눈에 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눈앞에 놓여있다면 지루하지 않게 그 시간을 때울 수 있을 만큼. 그런데 궁금했다.
‘이런 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올까? SNS에 올리면 책 만드는 사람 눈에 띄어 연락이 올까? 아니면 글쓴이가 출판사에 투고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 돈 내고 찍는 걸까?’
카페 주인장의 답이 명쾌하다. 반반. 글을 쓰는 것도, 책을 만드는 것도, 유통되는 것도 어려울 게 없다. 어려운 게 없는데 왜 마음이 불편할까?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는데 모두가 글을 쓰는 작가다.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다양한 직업을 거쳤던 비카스 스와루프가 퀴즈쇼라는 기막힌 소재로 정규업무를 온전히 소화하면서 두 달 만에 썼다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심지어 영화도 대박남), 10대에 학교를 탈출해 절도와 부랑을 일삼다 교도소를 드나들던 장 주네는 사형수, 도둑일기 등을 썼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한국 근현대 100년 세월을 아우르며 수난 여성 5대의 이야기를 쓴 최진영, 중졸 학력에 폭력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동안의 독서의 영향이었던지 시면 시, 희곡이면 희곡, 소설이면 소설 모두 평단의 좋은 평을 받거나 재판에 회부되어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장정일 등등. 사고의 방식, 글을 직조하는 능력,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 모두 부러워 미칠 지경이다.
작가가 부럽다는 건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고, 부러워하기만 30여년이니 내가 엄청 게으른 사람이라는 반증이다. 생각 없고 욕심 사나웠다면 일을 치고도 남음이 있겠으나 중심을 잡아주는 것 역시 책이다. 불쏘시개 이외의 용도가 없어 보이는 책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만난 보석 같은 책 중의 하나가 애니 레너드의 ‘물건이야기’다. 추출, 생산, 유통, 소비, 폐기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 물건의 일생에 대해, 20년 간 쓰레기를 추적하며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존중하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이토록 지구와 지구인에 유용한 책이 있을까 싶은데도 작가는 고민을 했다. 이 책의 가치가 이 책을 만드는데 쓰이는 나무의 가치보다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아는 게 무섭다고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한 고민의 결론은 내게 쓰고자하는 욕구가 있지만 그것을 정리해 책으로 낼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하니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작가 장정일이 재판이 끝나고 자유로워지자 새로운 글을 써야한다는 구속감이 들었다는데, 나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이다. 써도 누가 책을 내줄 것도 아닌데 시답잖은 고민을 하는 내가 웃기다.
이런 나를 다시 충동질하는 책을 만났다. 책 이름도 재밌다. ‘읽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책 쓰는 책’. 26권의 책을 낸 관록 때문인지 술술 읽힌다. 겉보기에는 평등한 관계인 듯 보여도 말하고 듣는 관계가 불평등하다면 그 안에서 권력이 형성되고, 일부 특정한 사람만이 자발적 읽기를 통해 글을 해석하고 더 적은 수의 사람만이 글을 쓰는 사회는 결코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글은 공감을 자아낸다.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글과 댓글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폭력적이지 않고 온전하게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회가 얼마나 까마득한가를 날마다 확인하고 살기에.
작가가 책을 쓰는 방식을 여과 없이 말과 도표, 마인드맵, 사진 등으로 보여준다. 책을 쓰는 목적과 원고를 쓰는 것 같은 글 쓰는 방법은 물론이고, 자신이 쓴 책을 출판하고 싶은 이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로 소개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15년 전쯤 안산예당 아카데미에서 글쓰기를 배울 때 함께 교육을 들었던 이들 대다수가 작가를 꿈꾸고 있었는데, 이 책이 그때 나왔더라면 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과, 그들은 원하는 작가가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2020년에는 의도하지 않게 두 권의 책을 만드는데 참여했다. 한 권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을 인터뷰해 마을을 기록하는 것이고, 한 권은 4.16 세월호 참사 이후를 돌아보고 의미 있는 주제를 선정해 아카이브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분명 의미 있는 기록인데도, 책 쓰는 책의 저자가 나열한 좋은 책의 조건 안에 들어가는가를 생각해보았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 ▶새로운 정보나 깨달음을 주는 책 ▶인생의 맛과 멋을 알게 하는 책 ▶독자를 돌아보게 하는 책 ▶ 용기를 북돋는 책 ▶ 더 나은 개인, 가족, 공동체, 사회를 위하여 분투하는 책
나는 이 부분이 김경윤 작가가 돋보이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글쓰기로 안내하면서 아무나 책을 낼 수 없게 만드는 장치라고나 할까? 그러니 일단 마음껏 써보시라. 그리고 생각하라. 내가 쓴 책이 좋은 책의 조건 안에 들어가는가를. 그런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이라면 나무에게, 편집자에게,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독자에게, 이 외에 책과 관련한 모든 사람과 자연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