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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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탄생의 두 가지 상이한 모습

'개념적 혁신가' vs '실험적 혁신가'

그리고 나이와 혁신의 관계

Old Masters and Young Geniues 를 단순하게 천재와 거장으로 옮기기엔 이 책의 내용은 Old 와 Young 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천재라 하면 젊은이를 떠올리고 거장이라고 하면 늙은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어떻게'에 방점을 두고 읽는다면 이 책을 통해 얻어지는 답은 없을 것이다. 창의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누구도 알수 없다. 그보다는 'The Two Life Cycles of Artistic Creativity' 라는 원제의 부제, 즉 '예술적 창의성의 두 가지 생애 주기' 라는 부제에서 창의성과 생애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읽는다면, 이 책은 어찌보면 새롭고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 하나를 증명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논리를 숫자적으로 정확히 보여준다. 창의성이 가장 최대한 발현된 시기에 따라 예술가의 혁신성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숫자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숫자의 구분은 크게 두개로 나뉠 뿐이니. 바로 Young 과 Old, 제목에서 부터 기억해두라고 했던 바로 그 구분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눈다. '개념적 혁신가' 와 '실험적 혁신가'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용어는 생각보다 그리 쉽게 이해되지 않고 입에 붙지도 않는데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개념적 혁신가는 young 으로 실험적 혁신가는 old 로 연결지어 받아들이면 그나마 헷갈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른 나이의 성공작 과 일생동안 축적되는 명성 이라고나 할까.

혹은 대표적 예술가들과 연결지어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개념적 혁신가의 대표로는 반 고흐, 허먼 멜빌,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이고 실험적 혁신가의 대표로는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세잔 등이다.

또는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 개념적 혁신가는 대표작이 하나 혹은 둘 크게 성공한 작품을 지녔고(그 뒤로 그 성공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창조해내지 못했고) 실험적 혁신가는 장기간 꾸준히 명성을 쌓아올렸으나 (그만큼 성공작도 다양하여) 대표작으로 딱히 무엇을 꼽아야 할지는 모르겠는 예술가.

질문은 나이에 따라 예술가들의 작품의 질이 어떻게 그리고 왜 다양해지는가다. 이 책의 목적은 창의적 예술가들의 생애주기에 대한 나의 이론을 제시하고, 이 이론이 경험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분석의 결과를 검토해보는 것이다. (p. 10)

예술가들의 작품 질이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질문은 예술가들이 혁신적인 모습을 드러낸 연령대가 다양한 이유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의 과제는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p. 13)

서문 中

저자는 자신의 논리를 펼쳐내기에 앞서 두 가지의 유형의 대표주자를 드러냄으로써 그 전형의 모습을 제시한다.

나는 그림을 통해 탐구한다 - 폴 세잔

나는 탐구하지 않는다. 발견한다. - 파블로 피카소 (p. 20)

느낌이 오는가? 그렇다. 세잔은 인생 내내 꾸준히 자신의 예술을 탐구하고 노력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혁신을 일궈낸 유형이라면 (실험적 혁신가) 피카소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하고 그 후 작품들로 그 아이디어의 혁신성을 완성해낸 유형 (개념적 혁신가) 이다. 세잔의 작품은 말년에 이를수록 완성도가 높아졌고 피카소의 가장 완성도 높게 평가되는 작품은 그의 젊은 시절 초기작들이다. 그 완성도의 기준은 동일하게 예술적 '혁신성' 이다. 혹은 예술적 창조성 이라고도 할 수 있을듯 싶다.

실험적 접근법과 개념적 접근법 간의 차이를 고려하면 이를 토대로 나이와 예술적 혁신의 관계에 관한 체계적인 예측이 가능하다. 중요한 실험적 혁신을 이루려면 종종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의 활동 후반기에 주로 드러난다. 개념적 혁신은 더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나이에서든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p. 39) 가장 중요한 개념적 혁신은 예술가의 활동 초기에 일어난다. (p. 40)

저자는 예술적 성공을 계량화하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한다. 경매에서의 가격, 교과서에 실리는 횟수, 회고전에서의 비중, 미술관 소장품, 전시회, 작품 활동 기간 등 다양하게 측정하여 숫자적으로 결과를 제시한다.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을 생애주기적으로 분석하면 '개념적 혁신'과 '실험적 혁신'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질적으로 개념적인지 또는 실험적인지로 측정하는 경우 예술가의 생애주기에 따른 창의성과 체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p. 120) 고 말이다.

젊은 천재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견한 초기작으로 성공을 거두고, 거장은 평생토록 연구한 결과물을 통해 천천히 발전사를 보여준 끝에 완성된 혁신적 작품으로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 뭐 새롭단 말인가 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차이점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을 넘어 확장적으로 사고하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프랑스 예술계에서 그룹전의 중요성은 예술가들의 관습적 행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야망에 찬 화가들은 명성을 높이고 유지하기 위한수단으로 크고 복잡한 개별 그림을 만드는 데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더욱이 이러한 유형의 경쟁에서는 개념적인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이 더 유리했다. 명성을 원하는 실험적 예술가들은 이러한 시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다. 이러한 부분을 인식하는 것은 근대 미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현재의 분석에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p. 153)

우리는 인상주의 화파가 등장했을 때 기존의 살롱전에서 거부당하고 무시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림 때문이 아니라 완성된 그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방법 혹은 인식에서의 차이라면 어떤가? 좀 다르게 이해되지 않는가? 인상주의 화파는 그림을 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당대 살롱전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명확하게 아이디어적 혁신성이 더 가치를 인정받았다. 인상주의 화파로서는 아무리 거대한 그림을 그려내더라도 방법적으로 살롱전 그림들과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에 인정받게 된 인상주의 화파의 혁신성 이었다. 따라서 '인상주의자들의 그룹전시는개념적 예술가들에게 형식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인정된 공식 제도에 대한 젊은 실험적 예술가 집단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p. 158)' old 거장이 되기 전이라도 개념적 혁신성과 실험적 혁신성은 방법적 차이를 이해하고 나면 이렇듯 예술가들의 작품이 다르게 보이고 미술사의 흐름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실험적 예술가와 개념적 예술가의 경력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이는 시기의 차이는 분명했다. (p. 177) 실험적 화가들은 종종 개념적 예술가들을 예술적인 능력과 진실성이 부족한 지적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p. 179) 실험적 예술가들은 종종 터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얻은 표현의 깊이로 칭송을 받는 반면, 종종 절제가 부족하고 신비주의적이라고 비난받는다. 근대 미술사에서 실험적 화가들은 비교적 짧은 기간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아온 반면, 개념적 화가들은 비교적 오랜 기간 미술계를 주도했다고 인정받고 있다. (p. 181)

'급진적인 개념적 혁신은 실험적 혁신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혁신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는 모든 상황에서 개념적 예술가들이 더 유리하다. (p. 183)' 게다가 미술사에서도 개념적 예술가의 한두작품이 실험적 예술가들의 수많은 작품들보다 더 오랜 기간 더 비중있게 인정받는다. 이는 오랫동안 가난과 무명의 설움을 겪으며 고군분투한 실험적 예술가들이 젊은 나이에 빠른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개념적 예술가들에게 분노를 일으킬 법도 하다. '그러나 개념적 예술가들의 가장 큰 위험은, 초기에 찬사를 받을 가능성이 실험적 예술가들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아이디어가 소진되면 정체기가 올 수 있다는 점이다. (p. 184)' 즉 너무 이른 성공은 그것을 뛰어넘을 후속작이 불가능해짐으로써 예술가의 남은 생애를 고달프게 만들 수 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를 들 수 있는데 최근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은 나로서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힌트를 얻은 기분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작업 중인 작품을 계속 추가 수정하며 완성을 주저하고,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을 통해 최종 완성품의 스타일을 점진적으로 드러내고, 순수하게 창작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완고하게 모든 작업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하고, 판매될 그림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일련의 단계별 상태를 구현하는 등의 모든 특징은 렘브란트가 모호하지만 야심찬 시각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실험적 예술가라는 명제에 부합한다. (p. 207)

작업하는 과정 중에 자주 수정되고 모든 작품 창작에 시각 효과를 대입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특징으로 볼 때 미켈란젤로는 실험적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작품을 완성시키기 어려워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p. 215)

라파엘로가 준비 과정에서의 까다로움과 완성된 작품의 정확성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의 그림은 마땅히 개념적이라 할 수 있다. (p. 217) 자신의 작품을 기꺼이 다른 사람이 구현하도록 한 라파엘로의 방식은 예술에 대한 그의 개념적 접근방식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가장 야심 찬 자신의 프로젝트를 직접 제작하려 한 미켈란젤로의 욕망은 실험적 태도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p. 220)

이 책을 읽으며 개념적 혁신과 실험적 혁신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념적 혁신이 아이디어에 비중이 있다보니 그림으로 보자면 사전작업이 더 미비할 것 같고 그림도 모호할 것만 같았고 실험적 혁신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니까 밑그림이 엄청 많고 준비작업도 엄청 길며 그림은 아주 세밀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개념적 혁신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내기 위해 사전 작업이 더 치밀했고 정작 작품의 완성은 그에 비해 순식간이었지만 실험적 혁신은 작품 자체를 자꾸 고치고고치고 하다보니 결과적으로는 형이상학적 그림이 되기 쉬웠다. 예술적 창의성에서 '개념적'과 '혁신적'의 의미는 참 어렵다;;; 하지만 익숙하게 알던 명화들을 다시보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싶어진달까.

이 책의 시작도 그렇고 주된 내용도 화가들의 예술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후반부에 가서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조각가, 시인, 작가, 영화감독까지. 그중 특히 소설가에 대한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읽었던 작가들 얘기라서 새롭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보니. 시인중에서는 '에즈라 파운드' 관련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이또한 내가 읽었던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와 아주 밀접한 관계의 시인이다 보니.

파운드는 [황무지]를 편집한 것으로 유명한데, 엘리엇 원작의 절반 이상을 잘라내 더 날카롭고 강렬한 시로 다듬었다. 엘리엇은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더 뛰어난 장인' 이라는 헌사와 함께 차후에 이 시를 파운드에게 헌정했으며 '파운드 작품의 기술적 완성도와 비평적 능력을 기리고 싶다'라고 밝혔다. (p. 266)

개념적 소설가들은 일반적인 생각 또는 원칙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상징적인 작품을 집필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실험적 소설가들은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특정 사례를 더 자주 다루는 편이다. 현실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실제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실험적 소설의 등장 인물에 비해, 개념적 소설의 등장인물은 지나치게 단순화되거나 일차원적으로 보일 수 있다. 개념적 작가의 언어는 형식적이거나 인위적인 경우가 많고, 실험적 작가의 언어는 일상적이거나 토속어가 많다. 개념적 작가의 책은 종종 명확한 메시지나 교훈으로 마무리되는 반면, 실험적 작가는 종종 줄거리를 마무리 짓지 않고 결론을 열어놓거나 모호하게 남겨둔다. 개념적 작가는 도서관 연구를 작품의 기반으로 삼아 사실적 정확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실험적 작가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인식과 직관에 의존한다. 개념적 작가는 사전에 신중하게 계획된 복잡한 플롯을 구성하는 반면, 실험적 작가는 일반적으로 작품을 쓰면서 플롯을 구성하며, 저작 과정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플롯에 중요한 변화를 끼워 넣는다. 실험적 작가는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와 분위기 조성 효과를 위해 플롯을 사용하지만, 개념적 작가는 가장 중요한 구조나 개념을 끌어내기 위해 캐릭터와 설정을사용한다. 실험적 작가는 글을 쓰는 과정에 창의성의 본질이 있으므로 가장 중요한 발견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어진다고 믿는 반면, 개념적 작가는 작품의 초고를 작성하기 전에 구체화한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긴다. 일반적으로 개념적 작가의 목표는 명확하기 때문에 작품을 완결짓고 특정한 목적을 달성했음에 만족하지만, 실험적 작가는 정확한 목표가 없기 때문에 종종 작업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 (p. 280~282)

저자는 이러한 설명 뒤에 영미권 소설가 8명을 예시로 든다. 찰스 디킨스,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버지니아 울프는 실험적 작가, 허먼 멜빌,제임스 조이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는 개념적 작가다. 이 작가들의 작품들을 생각하면서 '실험적 혁신'과 '개념적 혁신'을 연결지어 보라.

헤밍웨이의 대화는 그가 작품 활동 초기에 개발한 여러 개념적 장치 중 하나로, 그의 대표적인 문체로 유명해졌다. 또 다른 장치 중 하나는 세번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시작된 상징의 사용으로, 여기서 비는 지속적 재난의 신호 역할을 한다. 헤밍웨이는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한 점진적 과정을 거치는 대신 마크 트웨인, 셔우드 앤더슨,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다른 작가들을 연구함으로써 빠르게 자신만의 장치들을 고안했다. (p. 304)

윌리엄 발라시는 헤밍웨이의 두번째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구성에 대해 연구한 결과 헤밍웨이가 체계적으로 집필앴음을 밝였다. '매일 그는 방법이나 주제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제이크는 투우에 대한 열정, 마이크는 파산, 제럴드는 뿔로 들이받아 분리된 수소, 더프는 키르케 신화 등 주인공 한 명과 연관된 은유를 바탕으로 매일 구성을 짜는 작업을 나흘 동안 진행했다.' 헤밍웨이가 그 후 이틀간 제임스 조이스와 오디세이에 차례로 경의를 표한 것을 보면 신화에 대한 언급은 우연이 아니었다. (...) 헤밍웨이가 30세때 출간한 세번째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줄거리가 밀도 있게 짜였으며, 마이클 레이놀즈의 말에 따르면 '미국 소설로는 보기 드물게 질서 있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신중하게 계획되었다.' 이 책에서 사랑과 전쟁이라는 두 테마는 평행을 이루며 구성되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프레더릭 헨리의 태도는 여섯 단계에 걸쳐 변화하며 캐서린 버클리와의 관계도 이에 상응하여 여섯 단계를 거친다. 필립 영은 소설이 끝날 때쯤 '사회적인 삶이든 개인적인 삶이든 삶은 패배자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투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결국 두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진다'고 관찰했다. (p. 305)

저자는 헤밍웨이의 대표작으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꼽고 있으며 이후의 작품들은 쇠퇴해왔다고 비평가들의 말을 전한다. 헤밍웨이가 제임스 조이스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확증을 얻은 기분이었다. 위 두 작품은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교류할때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초기작들에 비해 걸출한 후속작을 내놓지 못한다는 평가에 늘 시달렸고 스스로도 그 사실에 평생 괴로워했다. 여하튼 저자는 '개념적 소설가들이 실험적 소설가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주요 대표작을 발표한다는 가정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p. 309) 며 화가들에 이어 제차 자신의 이론을 다지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는 동시대 작가이자 같은 노벨상 수상자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보다 자신의 작품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험적 예술과 개념적 예술의 구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포크너는 '조각가도 화가도 거의 없었으며, 모차르트처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수학자가 공식을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음악을 사용한 음악가도 거의 없었다' 라고 말했다. 포크너는 모차르트를 연역적으로 작업한 예술가의 원형이라고 밝힌 후, 모차르트와 헤밍웨이를 함께 결부시켜 모든 예술가가 '모차르트나 헤밍웨이가 가졌던 자질'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포크너는 헤밍웨이가 자신의 스타일을 일찍부터 익혀 그 이후로 일관되게 사용했지만, 토머스 울프와 퐄너 자신을 포함한 다른 작가들은 '본능, 교훈 또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 모든 경험을 각 단락에 쏟아 붓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 작품은 서툴고 읽기 어렵다. 일부러 어설프게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포크너는 헤밍웨이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일찍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가장 일관되게 탄탄한 작업을 해냈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포크너는 야심찬 시도를 주저하지 않은 토머스 울프를 당대의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았다. '그는 가장 열심히 노력했고, 가장 긴 도박을 했으며, 가장 긴 시도를 했기 때문에 가장 크게 실패했다' 반면 포크너는 헤밍웨이를 울프뿐만 아니라 어스킨 콜드웰, 존 더스 패서스는 물론 포크너 자신보다도 하수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헤밍웨이가 '실험에 '뛰어들지 않고' 자신의 초기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p. 339~340)

그리고 헤밍웨이는 포크너의 이러한 평가를 알건 몰랐건 간에 스스로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념적 예술가들의 이른 성공과 실험적 예술가들의 단단한 완성이 아니다.

두 유형 간의 차이는 오히려 예술적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한 유형은 한순간 엄청난 노력으로 경험의 최고치를 쏟아 부을 수 있고, 다른 유형은 자신의 의식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단계별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p. 338)

두 유형의 예술가들 간 차이가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니라 그리거나 쓰는 '이유'에 있다는 점 (p. 345)

작가들의 연령-창의성 프로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특정한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p. 362)

저자는 '두 유형을 구별하는 것의 중요성과 이것이 예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미치는 크나큰 영향을 고려할 때 예술을 연구하는 이들이' (p. 345) 자신이 이 책을 통해 이론화 하고 있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뭐.. 안타까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두가지 유형에 대한 이해는 분명 예술가들에 대한 기존의 이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면은 있다.

위대한 실험적 혁신가들은 이전에는 추상적이었던 전문 분야에 실질적인 내용을 추가할 수 있고, 위대한 개념적 혁신가들은 이전에는 복잡했던 영역을 단순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p. 367)

실험적 혁신가와 개념적 혁신가의 구분은 예술뿐 아니라 사실상 모든 지적 활동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분석의 의미는 매우 클 수 있다. (p. 369)

창의성은 이론가나 경험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주요 혁신은 젊은이나 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역적으로 일하는 개념적 혁신가와 귀납적으로 일하는 실험적 혁신가 모두 광범위한 지적 활동에 중요한 업적을 이뤄왔다. (p. 382) 연구를 통해 드러난 기본적인 결과는 각 예술 활동의 가까운 역사에서 개념적 혁신과 실험적 혁신이 모두 심대한 역할을 했다는 인식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야에 기여하는 데 있어, 연역적이든 귀납적이든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능력보다 적성과 야망이 더 중요한 요소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p. 383)

그러니까 결론은 요즘말로 케바케라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는 사고력 확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아! 하는 순간이 단 한번이라도 있다면 그 독서의 시간은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다.

실험적 혁신가는 찾고 개념적 혁신가는 발견한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우리가 공부하는 학문의 발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아울러 우리 자신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실험적 창의성과 개념적 창의성의 차이를 인식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배우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84)

저자는 후기에서 자신의 분석이 '현대 미술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점을 깨닫고, (p. 388) 시인과 소설가에게도 이러한 분석을 적용했을 때는 놀라운 이점이 있었다.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작가들의 행동과 작품의 전개 양상이 예술가의 유형에 대한 일반적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 389)' 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역시 그랬다. 내가 익히 알던 화가와 소설가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만족감이었다.

역자 중 한명은 자녀들의 유치원 학부모 대상 특강을 준비하며 이 책의 메시지를 활용했다고 한다. '인간의 전성기는 젊어서 올 수도(천재), 나이가 들어서 올 수도(거장)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클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세상과 인간 기대의 사이클에 맞춰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자고 했다. (p. 424) 또 한명의 역자는 '예술교육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생각해보기를 (p. 430)' 권하는데 이 책을 활용하고 있다. 나와는 또다른 이 책의 활용 예시를 보며 역시 다시한번 독서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책 내용도 좋았지만 만들어진 책의 형태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풀로 왕창 붙여져 잘 펼쳐지지도 않는 그런 만듦새가 아니라 정성들여 실로 이어지고 다시 붙여지고(이런 제작 형태가 이름이 뭐더라;;;기억이;;;; ㅜㅜ) 하드커버로 된 책의 모양새가 내용 못지않게 기품 있어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손에 들려지고 읽혀지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또한 이런 책을 만들어주시는 정성이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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