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있었다면 조선엔 정도전의 사상선들이 있었다. 그 모든 책들에서 정도전은 시종일관 주장한다. 왕은 총재를 임명만 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총재가 모든 것을 다 하는데 그 총재는 정도전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그 증명으로 과거의 온갖 고전들 속 말씀들을 짜깁기해놓았는데 그것이 정도전의 사상선들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등용되지 못했듯이 정도전도 총재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수많은 고전들을 편집하여 잘 짜깁기 해서 자신을 총재로 쓰는 국가를 만든 것이 조선이었다. 자신의 정치를 위해 나라까지 바꿔치기 한걸 보면 정도전이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만약 태조가 이방원을 누르고 정도전의 정치실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공양왕이 정도전을 총재로 임명했다면 조선은 아예 건국도 되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면 고려말 이후의 시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조선의 건국에 정도전의 비중을 따져보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물음표들이었다.
여하튼, 정도전의 사상이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라는 구실 아래 결국은 자신이 총재가 되어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싶은 야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배우게 되어 의미있는 독서시간이었다. 다른 사상선의 책들은 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ps. 창비의 한국사상선 간행을 응원하며 앞으로 한국사상선 보충과 고전에 대한 시리즈물을 계속 기획해주길 또 더 응원한다. 고마워요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