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창비 한국사상선 1
정도전 지음, 이익주 편저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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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民)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라!"

정도전, 유교 문명국 조선을 구현하다

창비에서 한국사상선 시리즈가 나온다고 했을때 일단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고전'이라 하면 으레 시대순으로 대표 사상가들이 착착착 떠올려지는 서양고전이 있고 정치사 철학사 등 세부적으로 구분된 사상사들도 즐비한데 한국의 고전이나 사상선 이라고 하면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과 사상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전집처럼 구비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나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상선 각권이 개별 사상가의 전체 저작에서 중요한 일부를 추릴 수밖에 없었듯 전체적으로도 총30권으로 기획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별적이다. 시기도 조선시대부터로 제한했다. 그러다보니 신라의 원효나 최치원같이 여전히 사상가로서 생명을 지녔을뿐더러 어떤 의미로 한국적 사상의 원류에 해당하는 분들과 고려시대의 중요 사상가들이 제외되었다. 또 조선시대의 특성상 유교사상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 느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 자체가 송학 내지 신유학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중국에서 실현된 바 없는 독특한 유교국가를 만들려는 세계사적 실험이었거니와, 이 시대의 사상가들이 각기 자기 나름으로 유·불·선 회통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사상적 기획에 기여하고자 했음이 이 선집을 통해 드러나리라 믿는다. (p. 8)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中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이 선집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설명되어지는 듯 하다. 이 선집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다루고 있기에 일단 사상사라는 역사적 측면에서 그리 긴 시간대를 다루고 있지 못하므로 한국의 사상선이라고 아우르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사상가들의 사상들도 주요부분 편집본이 실린 것이라 맥락적 흐름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만든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사상들이 대륙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한반도 만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어 현실에 맞게 수정된 것이라는 깨달음과 그 수정이 시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왔기에 한국의 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살펴 볼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시작은 조선의 건국을 이끈 정도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전쟁을 거치지 않고 건국된 나라이다. 조선 건국은 고려 말 정치투쟁에서 개혁파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가능했으며, 이성계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역성혁명을 통해 완성되었다. 정도전은 고려 말 개혁파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앞장서싿.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을 연달아 저술해서 새 왕조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이런 역할을 한 사람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에게는 '왕조의 설계자'라는 칭호가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 (p. 13)

정도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서문]은 정도전의 사상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의 삶을 풀어낸다. 좋은 시작이다. 한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을 알아야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사는 그 사상가의 개인의 삶을 먼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고려말 혼돈의 시기 정치적 야망이 컸던 정도전의 삶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의외로 그의 관직 이력이었다.

급제 후 이때까지 26년 동안 중서문하성 낭사와 어사대의 관직, 즉 대간의 경력이 전무하고 지방 수령 경험도 거의 없다. 또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상서6부의 관직도 1371년에 예부낭중을 지낸 것이 전부이다. 대신 유교 경전을 관리하는 전교시와 제사를 주관하는 전의시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그 밖의 대부분은 성균관의 박사·사예·좨주·대사성을 두루 거쳤다. 당시 관리 인사를 담당하는 이부·병부의 낭관과 언관인 대간이 청요직이라 불리며 선호되던 상황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돌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력이 행정 실무보다 교육과 연구, 그리고 각종 제도의 연혁 등 고사에 밝게 했고, 그동안 쌓은 지식이 조선 건국 후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p. 19)

그랬다. 그는 누구보다 학문적 탄탄함을 갖춘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현실적 흐름을 읽을 줄 알았고 그 흐름에 적당한 이유를 고전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보게 될 그가 쓴 책이며 왕에게 하는 조언이며 그의 주장들은 모두 옛고전문헌들 속 사례를 바탕으로 과거에 이러이러했으니 지금 이러이러하는게 옳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정도전은 고전 짜깁기의 절대강자 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를 바꾼 핵심사상은,

신하들이 민심의 소재를 들어 추대하자 이성계는 "예로부터 제왕이 일어나는 데는 천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며 천명을 거론했다. 이후 정도전이 지은 태조의 즉위교서는 '천명은 결과적으로 민심의 향배를 통해 확인된다'고 하여 민심과 천명을 연결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왕조 교체의 정당성이 천명과 민심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천명은 민심을 통해 확인되므로, 결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이었다. (p. 26)

민본과 위민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과거 왕을 하늘과 연결시켰던 제왕의 운명은 이제 민심이라는 땅과 연결된 것이다. 비록 양반이라는 귀족계급에 의해서이긴 하나 절대왕의 운명을 백성의 손에 쥐여준 것은 프랑스시민혁명보다도 앞선 것이니 이렇게 보면 유럽보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혁명이 먼저 시작된 것일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하늘 혹은 신이라는 천명도 확인불가능한 것처럼 수많은 백성의 마음도 확인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명분은 그 명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것이 민심이다 하고 이용하기 나름인지라 혁명다운 혁명일 수 없었던 것이 조선의 건국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니까 혁명이긴한데 혁명의 한계가 시작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다.

왕조 국가에서 정치의 잘잘못에 대한 최종 책임은 당연히 최고 권력자인 국왕에게 있었고, 혁명이란 것도 사실은 잘못된 정치에 대한 국왕의 책임을 묻는 행위였다. 이러한 논리로 실제 혁명을 성사시켜 새 왕조를 개창했지만, 혁명은 빈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정도전은 국왕에게 정치의 책임을 묻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국왕 대신 총재가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총재가 지도록 한다면 혁명까지 가지 않고도 책임 정치가 가능할 것이었다. (p. 29,30)


정도전은 왕이 할일은 오로지 제대로 된 총재를 뽑는 것이지 왕이 정치를 직접 할 필요가 없다 했다. 고려시대 왕권 중심의 무책임한 정치에 넌더리를 냈던 지라 새국가의 정치는 왕의 정치력은 약화시키되 책임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책임자가 정도전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의 모든 사상서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총재로 뽑아야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조선 건국에 공이 많았던 방원보다 나이 어린 방석이 정도전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후계 국왕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생각이 혁명적이었던 만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국왕권을 제한하는 데 대해서 왕실 내부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뒤어어 태조마저 왕위에서 물러남으로써 정도전이 꿈꾸고 태조가 동의했던 새로운 정치는 실험도 해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p. 31)

그렇다. 정도전의 실험은 시작도 못하고 끝났다. 정도전이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것처럼 역사를 배워왔지만 아니었다. '정도전이 꿈꾸고 태조가 동의했던 새로운 정치'는 조선의 시작이 아니었다. 조선은 건국과 동시에 왕조만 바뀐, 과거와 그닥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왕권 국가 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뒤로도 왕조만 바뀌는 혁명아닌 혁명이 조선시대 내에 몇번이나 가능했던 것이다. 민심과 위민도 애초부터 시작된 적도 없었다.

아! 신하가 밝은 임금을 만나기가 진실로 어렵지만, 임금이 좋은 신하를 만나기도 역시 어렵다. 바야흐로 지금은 밝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만나서 성의로써 서로 믿으며 유신의 정치를 함께 도모하니 천년, 백년 만에 한번 있는 융성한 시기이다. 이에 재상연표를 만드는 데 오직 시중만을 적는 것은 총재가 여러 관직을 겸하며, 임금의 직책은 재상 한 사람을 택하는 데 있고 그밖에 아래의 여러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p. 50)

이탈리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있었다면 조선엔 정도전의 사상선들이 있었다. 그 모든 책들에서 정도전은 시종일관 주장한다. 왕은 총재를 임명만 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총재가 모든 것을 다 하는데 그 총재는 정도전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그 증명으로 과거의 온갖 고전들 속 말씀들을 짜깁기해놓았는데 그것이 정도전의 사상선들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등용되지 못했듯이 정도전도 총재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수많은 고전들을 편집하여 잘 짜깁기 해서 자신을 총재로 쓰는 국가를 만든 것이 조선이었다. 자신의 정치를 위해 나라까지 바꿔치기 한걸 보면 정도전이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만약 태조가 이방원을 누르고 정도전의 정치실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공양왕이 정도전을 총재로 임명했다면 조선은 아예 건국도 되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면 고려말 이후의 시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조선의 건국에 정도전의 비중을 따져보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물음표들이었다.

여하튼, 정도전의 사상이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라는 구실 아래 결국은 자신이 총재가 되어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싶은 야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배우게 되어 의미있는 독서시간이었다. 다른 사상선의 책들은 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ps. 창비의 한국사상선 간행을 응원하며 앞으로 한국사상선 보충과 고전에 대한 시리즈물을 계속 기획해주길 또 더 응원한다. 고마워요 창비!



#한국사상선 #창비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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