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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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가족과 사랑,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경쾌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소설

미국에 정말 파인애플 스트리트 라는 주택가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소설 속 배경인 이 거리는 미국 부유층이 모여사는 고주택거리이다.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스톡턴 가의 자매 달리와 조지애나, 그리고 결혼을 통해 그 집안으로 들어간 사샤,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케빈 콴, <로드>의 코맥 매카시 같은 유명 작가들을 담당했던 베테랑 편집자 제니 잭슨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딱 그 분위기다. 부유층 속에 섞여 들어가 가족이 된 평범한 사람의 좌충우돌 이야기.

그 이야기들의 첫 테이프를 끊는 사람은 사샤다. 세 명의 여성 화자 중 재벌이 아니라 유일하게 평범한 사람인 사샤.

이런 집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말 같은 행운인지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날도 있었다. 브루클린의 이 4층짜리 라임스톤 건물은 사샤가 예전에 살았던 방 한 칸짜리 아파트가 열 채는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격식 있는 호화 저택이었다. 하지만 타임캡슐 속에 갇힌 듯 나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남편이 자랐고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이 집에는 그의 추억과 어린 시절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지만, 주로 그의 가족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p. 15)

스톡턴 가는 부동산 재벌이니만큼 집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 가족이 가장 사랑하여 오래 머문 저택을 삼남매 중 아들 코드가 결혼했을때 신혼부부에게 내어주고 부모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나갔다. 문제는 이 커다란 저택에 켜켜이 쌓인 물건들 그 무엇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버리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몸만 덜렁 들어온 셈인 사샤인 온갖 남겨진 물건에 치여 사는 삶이 그닥 호화롭고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코 이런 주거환경을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물건들의 주인인 스톡턴가 사람들은 그런 사샤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코드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 일을 하면서 조지애나는 자신이 이제껏 본 것은 세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광 명소들, 부자들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진 호화로운 도시와 마을들, 그녀는 진짜 가난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에 실릴 만한 괜찮은 식당 하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p. 46)

스톡턴가의 막내딸 조지애나는 개발도상국들의 빈약한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초급 사원이었다. 여기서 보고 듣고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이 조지애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했다. 사실 조지애나가 어쩌다 이곳에서 일하게 됐는지가 의문인데 소설은 거기까진 개연성을 만들어놓진 않았다.

달리는 맬컴이 계속 일하 수 있도록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다 해도 맬컴의 부모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 가와 스톡턴 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순자와 김영호는 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스톡턴 가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왔다. 김씨 부부는 빈손으로 와서 자수성가했다. (...) 파피가 태어난 후 유모가 떠난 날, 순자가 그들의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녀는 여섯 달 동안 소파에서 자며 밤마다 달리와 번갈아가며 파피를 돌보았다. (...) 파피와 해처는 달리의 자식인 동시에 순자의 아이들이기도 했다. 맨가슴과 젖 얼룩과 제왕절개 흉터 연고로 가득한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격식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p. 58)

분위기는 딱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인데 시대가 변해서일까 등장하는 아시안이 중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물론 설정도 재벌에서 자수성가로 바뀌었지만. 여하튼 미국 대중소설에 아무렇지 등장할 만큼 한국인들이 미국내에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이민 세대가 그동안 구축해 놓은 이미지도 딱 저러할 것이다.

달리와 맬컴은 둘다 투자컨설팅일을 했지만 결혼 후 임신하면서 달리는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주부를 선택했다. 맬컴은 최고의 남편이었고 직업도 안정적이었기에 외벌이어도 달리는 부족함 없이 행복했다. 게다가 자신의 부모와 달리 김 가의 부모는 헌신적으로 도와주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전 자신이 물려받을 신탁재산과 관련된 혼인계약서에 굳이 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한국계 혼혈 아기 갖고 싶어!' '이렇게 이국적인 외모를 가졌으니 얼마나 운 좋은 아이들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달리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파피와 해처가 그 여자들의 눈에 특이해 보인다는 사실, 열대지방에서 수입한 리치넛처럼 '이국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리는 분통이 터졌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그동안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새하얬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들은 브루클린에 살았지만 아파트 거주민은 백인뿐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백인이었고, 플로리다 클럽 회원은 전원 백인이었으며, 코드와 사샤의 결혼식 때 주위를 둘러보니 유색인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p. 93)

달리는 결혼후에도 친정 가까이 살았다. 부유촌에서 나고 자라 결혼 후에도 머물렀으니 한국계 남편과 결혼한 것은 특이한 일일 수도 있었다. 달리는 맬컴을 사랑하고 결혼생활에도 만족했지만 결혼후에서야 백인사회의 편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맬컴의 갑작스런 실직때에도 그런 편견이 작용했던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커티스, 밌게 놀고 있어?"

"아니, 별로"

"왜 그래?"

"얼마나 개판인지 안 보여? 괜히 왔어"

"생일 파티가 얼마나 개판인지 안 보이냐고? 그래, 난 안 보이는데"

"사립학교에서 만난 부잣집 백인 애들이 자기 동네에 사는 이민자들을 조롱하는 코스튬을 입고 노는 게 재밌어? 넌 그게 괜찮아?"

"올리가르히 패션이야. 부자들을 조롱하는 거라고.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백인이야"

"아까 말했다시피, 정말 재미있다면 네가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선글라스 멋지네"

"꺼져,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물론 잘 알지. 신탁기금으로 먹고사는 부동산 부잣집 딸, 온실 밖에도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하게만 아시는 상위1퍼센트 철부지" (p. 133)

조지애나는 늘상 놀던데로 놀았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자신이 일하는 곳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조지애나가 살아온 모든 것과 거의 반대편의 것들이었다. 방산업체 재벌가의 아들인 커티스가 하는 말은 묘하게 조지애나의 신경을 긁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커티스가 한 선택을 알게 된 후 조지애나의 삶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재벌가의 자손이지만 스스로 벌지 않은 재산에 대한 커티스의 선택은 선구적인 면이 있었다.

사샤와 가까워지고 보니 달리는 그녀의 가족이 외부인에게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비칠 수 있는지 이해되었고, 그들 작은 일족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사샤와 맬컴이 겉도는 느낌이 들 때마다 'NMF'라고 속삭이며 자기들끼리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 손을 내밀기만 하면 사샤를 가족으로 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 전에 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p. 172)

어쩌다보니 그 친밀한 가족에게 할 수 없던 비밀을 사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달리도 조지애나도.

사샤가 이 자매에게 대해준 만큼 자매는 아직 사샤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사샤는 명백히 깨달았다. 그들이 그녀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건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었다. 의미있는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베개에 대고 비명을 지르듯 그녀에게 감정을 분출했을 뿐이다. (p. 227)'

하지만 사샤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하긴 언제나 그렇죠, 안 그래요? 지긋지긋해 죽겠어요, 낡은 칫솔이랑 곰팡이 핀 바구니들 천지인 이 괴상한 그레이 가든에 내가 계속 붙어살 수 있는 걸 고마워하면서 벼룩이 들끓는 동양풍 양탄자에 키스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구는 모두한테 질려버렸다고요. 그러고 또 어땠는 줄 알아요?" (p. 273)

시댁식구에게 꽃뱀취급 받는 사샤,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막내딸 조지애나, 경단녀의 삶을 선택한 달리의 후회...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확인하기로. ^^

ps. 손에 잡으면 오락영화를 보듯 쉬리릭 읽히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에 걸맞게 해피엔딩이니 마음껏 즐기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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