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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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어둠을 심판하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의 걸작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희망

문학을 잘 알지 못해도 러시아문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뭔가 크고 웅장하고 엄숙한 무언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들이 구축해놓은 이미지들일 테지만 그 대문호들 외에 소소한 문학작품들은 그리 알려진게 없다는 점에서 창비에서 새로나온 현대러시아문학작품이라는 이 <삶과 운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러시아가 다시 전쟁을 일으킨 시대에 러시아인이 경험한 전쟁이야기라...

1942~43년 독소전쟁 시기 한 물리학자 가족을 중심으로 전쟁과 전체주의라는 이중고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헤친 대작 <삶과 운명> 역시 1959년 집필을 마쳤으나 작품의 반스딸린주의 경향으로 인해 1989년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되고 1989년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작가의 경험에 인류 최대의 참상 속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해 현대적 문체로 형상화한 <삶과 운명>은 '2차대전판 톨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을 받으며 영국과 러시아에서 라디오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책날개 작가소개 내용 中-

1권

책날개에 쓰여진 작가소개글에 의하면 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1905~1964)는 우끄라이나의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스끄바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생시절부터 소설을 썼고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로 어머니를 폭탄 폭발로 큰아들을 잃었다. 전쟁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소련 최초의 홀로코스트 보고서를 집필했고 그의 작품들은 평생 검열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대문호 선배?!들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문학 분위기가 원래 그런건지 현대문학인 이 작품도 3권에 달하는 대작인데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는 3권의 말미에 있으니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작가나 작품을 읽을 땐 이러한 정보들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미리 알아두면 참고될 것은 '<삶과 운명>이 그 자체로 충분히 한편의 소설로서 완결적이지만, 실상 이 소설은 1952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의 속편이라는 점이다. (3권 p. 418)' 그래서인지 본문을 읽는 내내 주석으로 '앞소설'에선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라는 설명이 자주 나온다.

또한 소설의 많은 부분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연보를 보면 그렇다.'1905년 혁명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던 화공 엔지니어 아버지와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개회한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무런 전통적 유대인 교육을 받지 못함.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원으로 멘셰비끼에 합류함. (3권 p. 423) 친구이자 동료 작가 보리스 구베르의 아내 올가 미하일로브나와 사랑에 빠져 1935년 10월부터 동거를 시작, 1936년 5월에 결혼함.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 (p. 424) 9월15일 베르지체프에 머물던 어머니가 2만~3만명의 그곳 유대인들과 함께 대량학살에 희생됨. (p. 425) 1953년 1월 유대인 의사들이 체포된 후 유대인 지식인들이 스딸린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함. 이는 실상 스딸린의 대규모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었으나, 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명한 데 대해 이후 그로스만은 무척 죄책감을 느꼈으며 이는 소설 <삶과 운명> 및 <모든 것은 흐른다>에 표현됨.(p. 426)' <모든 것은 흐른다>는 작가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대지 위에 안개가 자욱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늘어선 고압전선들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땅은 새벽녘의 습기로 축축했고, 붉은 신호들이 켜질 때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불그레한 얼룩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p. 11)

1권

카메라로 줌인되듯 수용소 가는 길 풍경이 묘사되면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42년 9월경에서 1943 3월경까지 약 6개월 가량 러시아 스딸린그라드와 인근에서 세계2차대전 독소전쟁 중 스탈린그라드전투를 주요 배경으로 한다.

읽는 내내 가장 헤깔리는 것은 이름들이었는데 창비 특유의 낯선 번역(예를 들어 톨스토이가 아니라 똘스또이로 번역)까지 더해지니 3권을 다 읽는 동안에도 결국 그 이름들과 가족관계는 다 파악하지 못했다;;;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들과 관계를 예로 들자면,

물리학자 빅또르 파블로비치는 주로 시뜨룸이라고 불리고 때론 비쩬가 라던가 비쨔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별칭이 더 있었던 것 같긴한데;;;;

아내 류드밀라의 여동생 예브게리나 니꼴라예브나 는 주로 제냐 라고 불리고 전남편 니콜라이 그리고리예비치는 주로 끄리모프로 현연인 뾰뜨르 빠블로비치는 주로 노바코프로 불린다. 류드밀라의 아들은 주로 똘랴 라고 불리는데 세료자 샤뽀시니코프 가 원래 이름인것 같다. 똘랴는 류드밀라의 전남편 모스똡스코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모스똡스코이가 류드말라의 전남편인지 전아버지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같은 이름을 대대로 쓰는 유럽식 네이밍이라;;; 여하튼 똘랴는 류드밀라와 전남편 사이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부르는 별칭들이 아마 더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이런 식이다;;;;

이렇게 긴 이름들도 입에 잘 안붙는데 별칭들이 하도 여러개라 그사람이 그사람인지 헤깔리고 그 헤깔리는 이름들 속에 가족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고 동생이고 손녀이고 남편인지 잘 모르겠다;;; 책 앞부분에 가족관계도를 첨부해주었으면 좋았을 껄 싶은 심정이다. ㅠㅠ

여하튼 소설의 시작은 독일의 한 수용소다. 여기에 볼셰비키 모스똡스코이와 멘셰비키 체르네쪼프 그리고 똘스또이주의자이자 신부 이꼰니코프 모르시의 대화와 상황들로 전쟁 속 러시아 모습의 한 단면이 묘사된다. 원래는 정치범 수용 였으나 전쟁 후 형사범이며 이런저런 다양한 죄목들의 죄수들이 함께 수감되면서 정치범들은 모두에게 가장 만만한 약자들이 되었다. 그렇게 모여진 '수용소들은 새롭게 확장된 신유럽의 도시가 되었다. (p. 17)'

소문들은 늘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이것이 바로 수용소 인간들의 아편이었다. (p. 21)

이 무시무시한 독일 수용소에서 다시금 그는 확신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딱 한가지 불안이 그를 짓누른 채 떠나지 않았다. 청년 시절의 명확하고 온전한 감각, 즉 동지들 사이에서는 동지가 되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낯선 이가 되는 감각을 도무지 되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 34)

그가 청년 시절 감옥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였다. 전에는 친구들이나 동지들과 있을 대면 모든 것이 친근하고 이해 가능했다. 적의 생각과 적의 시각은 그 하나하나가 낯설고 야만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낯선 이의 생각 속에서 갑자기 수십년 전 그에게 소중했던 것을 만나는가 하면, 어찌 된 영문인지 친구들의 생각이나 말에서 낯선 것이 보이곤 했다. (p. 34)

사실 소련 전쟁포로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국을 배반하느니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블라소프 군대로 들어갈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화와 논쟁을 거듭할 수록 이들은 서로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상대에 대한 증오와 경멸에 가득 차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p. 36)

이 벙어리 같은 웅얼거림과 눈먼 대화 속에, 공포와 희망과 고통으로 묶인 이들의 빽빽한 뒤섞임 속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몰이해와 증오 속에, 20세기의 재앙들 중 하나가 비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p. 37)

1권

모스똡스코이는 철저한 공산주의자 였다. 뒤에 나올 끄리모프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될 수록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조국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목숨바쳐 이룩했지만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종종 전쟁을 예술이라 부를 권리를 부여하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변환을 이해하는 데 있다. (p. 61)'

네게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구나. 사실 나는 한번도 내가 유대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 어릴 때부터 러시아 친구들 속에서 자랐고, 무엇보다 뿌시긴과 네끄라소프의 작품들을 사랑했거든. (p. 121) 하지만 지금, 이 끔찍한 나날에 대한 내 심장은 유대민족에 대한 모성애로 가득 차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이지. 이 사랑은 너, 소중한 내 아들을 향한 사랑을 상기시킨단다. (p. 122)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 (p. 124) 게토만큼 희망이 넘치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p. 125)

1권

시뜨룸의 어머니는 우끄라이나에서 게토로 몰렸다가 결국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시뜨룸은 한번도 자신이 유대인이고 자신의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에든 학창 시절에든 어머니가 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모스끄바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학생이나 교수나 세미나 강사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p. 132)' 하지만 독일점령지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어머니는 소련에 사는 아들 시뜨룸에게 앞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로 외부적으로.

류드밀라는 아들 똘랴의 편지를 받고 고생고생하여 병원에 서둘러 갔지만 묘지앞에서 이름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소피야 오시뽀브나는 삶과 생존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삶은 갑자기 중단되고 생존이 아주 천천히 지속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토록 비참하고 하찮은 생존이었으나, 강요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온 영혼이 공포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p. 297)

인간의 집단학살이 행해지는 곳의 주민들도 말살될 노인, 어린이, 여자 들에 대한 피에 굶주린 증오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집단학살 캠페인은 특별한 방법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 경우, 자기보존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는 주민들의 혐오와 증오를 일깨워야 한다. 바로 이 혐오와 증오의 분위기 속에서 우끄라아니와 벨라루스의 유대인 말살이 준비되고 실행되었다. 바로 같은 땅에서, 한창때 스딸린은 군중의 격분을 동원하고 선동함으로써 부농이라는 계급을 말살하는 캠페인, 뜨로쯔끼-부하린주의 쓰레기들과 방해분자들을 박멸하는 캠페인을 실행했었다. 경험으로 확인된바, 이런 캠페인에서 주민의 대다수는 최면술에 걸린 듯 권력의 모든 지시에 복종하게 된다. 주민 집단 속에는 캠페인의 분위기를 만드는 소수가 있다. (p. 318)

1권

항상 이런 소수들이 문제였다. 항상 이런 소수들이 권력의 최상층을 점유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소설은 긴 전쟁중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서사의 진행이 완전히 연대기적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류드밀라는 1권 초기에 아들 뽈랴의 묘지에 다녀왔는데 1권의 말미에서 뽈랴는 '6동1호'에 참전중이다. 여하튼 똘랴는 만나이로 19세였다.

기계 조립공이 필요한데 남은 게 탁아소 예산분이면 난 기계 조립공들을 탁아소로 보내는 보모들로 기입해서 신청합니다. 중앙집권화가 아주 목을 졸라맨다니까요! 어떤 발명가가 공장장에게 제품 이백개가 아니라 천오 백 개를 한꺼번에 생산할 방법을 제안했더니 공장장은 그를 골칫거리로 여기고 쫓아내버렸어요. 계획에 맞춘 양만큼 생산하는 게 더 마음 편하니까. 만약 시장에서 30루블만 주면 살 수 있는 자재가 없어서 공장이 멈춘다 해도, 그는 2백만 루블의 손실을 입을지언정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걸요. (p. 430)

1권

이 작품에서 순간적 충격을 주는 사건이 유대인학살이라면 작품 전반적으로 지속해서 충격을 주는 사건은 강제집단화 이다. 저자 자신의 성장배경도 그러하고 작품 속 주요 캐릭터들의 성장배경도 모두 지식인 층이다. 즉 강제집단화와 강제평등화가 불리하고 불편했던 입장의 사람들.

"명심해, 비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그리고 닿게 돼 있어. 자칫하면 당신 자신과 나, 그리고 아이들까지 파멸하게 돼"

"나 당신에게 전부는 말 못해. 제발 아무한테도,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빅또르, 우리는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어. 당신은 상상 못해. 명심해, 빅또르. 아무와도 한마디도 얘기하지 마......" (p. 445)

1권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 밖으로 나온 이후의 시대였다. 그 말들을 뒤늦게 모으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빅또르도. 모스똡스코이도. 끄리모프도.

아직 몰랐을때 빅또르는 학자로서의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고 모스똡스코이는 수용소에서조차 공산당의 조직적 활동을 재개했으며 끄리모프는 웅변과 선동으로 공산당에 충성을 바쳤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자 지식인이었으나 국가는 이미 공산주의의 탈을 쓴 민족주의로 변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관료주의가 국가라는 몸에 난 혹이 아니라 관료주의 자체가 바로 국가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할 뿐이오. 혹은 떼어버릴 수나 있지. 전시에 간부들과 수뇌부를 위해 죽을 마음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런 비열한 놈들이 청원에 '거절'이라 적고 과부를 집에서 내쫓는 거요. 하지만 독일인을 내쫓는 일은 강하고 진정한 인간만이 할 수 있소. (p. 114)

젊은 유대인 바보와 그의 제자인 늙은 러시아인이 폭력으로는 악을 막을 수 없다고 설파했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살던 시절엔 파시즘이 없었어. (p. 354)

2권

솔직히 1권을 읽는 동안은 사람과 시간과 사건이 뒤섞이며 정리가 안되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권의 고비를 넘고나면 2권과 3권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1권에서 언급됐던 것들의 상세버전 같았달까. 1권에서 사람도 시간도 사건도 여하튼 모든 다양한 것들이 펼쳐지고 2권에서 가속도가 붙다가 3권에서 급정지 한다. 죽음과 파멸 속으로.

붉은군대 병사에게 공산주의자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p. 12) 저런 젊은이를 위해 위대한 혁명을 이루었는데. 자신이 직접 그 혁명에 참가했는데. (p. 13) 포위를 뚫고 사람들을 구출했던 그, '꼬미사르 동지'라 불리던 공산주의자인 그가 다른 공산주의자에게 심문을 받고 두들겨맞았으며, 어느 집단농장 출신의 젊은 병사가 그 모습을 혐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유박탈'이라는 말의 엄청난 의미를 아직 인식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했다. 그는 자유를 박탈당했다. (p. 13)

3권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둘 사라져가는 시대였다.

그들은 전쟁은 왔다 가지만 정치는 남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59)

스딸린그라드의 승리가 전쟁의 결말을 결정했지만 승리한 국민과 승리한 국가 간의 말없는 다툼은 지속되었다. 이 다툼에 인간의 운명이, 인간의 자유가 달려 있었다. (p. 76)

세가지 거대한 사건이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의 주춧돌이었다. 이는 농촌의 집단화, 산업화 그리고 1937년 이었다. 이 사건들은 1917년 10월 혁명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인민 계층들에서 변동과 교체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변동은 러시아 귀족계급, 산업 부르주아계급, 상인 부르주아 계급의 말살에 못지않은, 더 큰 숫자의 사람들의 육체적 말살을 동반했다. 스딸린이 주도한 이 세가지 사건은 새로운 소비에뜨 국가, 일국 사회주의 건설자들의 경제적·정치적 승리를 의미했다. 동시에 이 사건들은 10월 혁명의 논리적 결과이기도 했다. (...) 하지만 이 체제의 기반에는 국가민족주의적 성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쟁은 전쟁 이전부터 이미 잠복하여 진행되던 현실의 재인식 과정을 가속화했고 민족의식의 발현 또한 가속화했으니, '러시아'라는 단어가 다시금 생생한 의미를 얻었다. (p. 87)

3권

정치는 한 사람에게 넘어갔고 국민은 국가에게 패했다. 운명은 삶을 지속시키되 자유는 사라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독일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어차피 뜨로쯔키를 죽이고 스딸린이 권력을 잡았으니 결국은 같은 모습이 됐으려나...

"빅또르 빠블로비치, 제발 부탁합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부탁이에요. 자아비판 편지를 쓰세요.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생각 좀 해보세요. 지금 당신 앞에 엄청난... 뭐 겸손하게 말할 필요 있나요... 그야말로 위대한 작업이 놓여 있는 이때, 우리 과학의 생생한 힘이 희망을 품고 당신을 바라보는 이때, 이렇게 갑자기 모든 것을 파탄으로 몰아가다뇨. 제발 편지를 쓰세요. 과오를 인정하세요" (p. 96)

3권

러시아 과학계에 큰 파장을 던질만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는 빅또르 였으나 휘몰아치는 정치광풍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출신이 그의 과오였으므로.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사랑이 싹트니 시대가 기이해서인지 사랑도 기이한 상대에게 느꼈다. 제냐는 장군의 아내가 아니라 전남편 끄리모프의 옥중수발을 선택하고 빅또르는 절친의 아내이자 자신의 아내의 절친에게 고백을 하고.

제냐는 그럴 수 있다쳐도 솔직히 빅또르의 사랑은 이 작품속 옥에 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거대한 작품에 이런 사랑을 집어넣은 것은 작가의 경험이자 인생의 선택이기도 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해 소설로나마 인정받고 싶었던 걸까...

그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바꾼 순간, 분명 어머니가 그의 곁에 계셨을 것이다. 마음을 바꾸기 일분 전만 해도 그는 연구소로 가 히스테리에 가까운 자아비판을 쏟아내기를 진심으로 원했었다. 이렇게 흔들림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그의 최종적 결심이 이루어졌을 때, 그는 신에 대해서도 어머니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p. 137)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한꺼번에 세통의 편지를 받았다. 두통은 딸들에게서, 한통은 손녀에게서 온 것이었다. 필체를 보고 누가 보낸 것인지 깨닫자마자,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그 안에 유쾌한 소식이라곤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이들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경우는 없다는 걸 그녀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셋 모두 그녀더러 와달라고 청했다. 류드밀라는 모스끄바로, 제냐는 꾸이비세프로, 베라는 레닌스끄로, 이 초대들을 통해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딸들과 손녀 모두 고달프게 지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p. 176)

3권

어머니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사는지 자식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머니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 됐을 때에도. 하지만 자신들이 불안하고 고달플때엔 어머니를 찾았다. 죽은 어머니든 살아있는 어머니든.

그런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가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민족주의에 대해선 날을 세우면서도 어머니를 비롯한 혈연관계의 가족주의에 대해선 너무 추앙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둘다 그닥 좋아뵈지는 않는데 말이다...

"있잖아, 귀여운 이모. 구세대 사람들한테는 뭔가를 믿는 게 필요한가봐. 끄리모프에게는 그게 레닌과 공산주의고, 아빠에게는 자유고, 할머니에게는 인민과 노동자들이지. 하지만 우리 신세대의 눈에는 그 모든 게 어리석어 보이거든. 도대체가 믿는다는 게 어리석단 말이야. 믿지 말고 살아야 해" (p. 221)

3권

시뜨룸과 류드밀라 사이의 딸 나쟈는 십대소녀이고 작품속에서 가장 어린 목소리를 담당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믿는 구세대를 어리석다 말하며 믿음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신세대가 세월이 흘러 구세대가 된 지금의 러시아에선 과연 신세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안녕하십니까,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시뜨룸은 놀랐다. 자신이 정말 이 상상할 수 없는 말을 전화기에 대고 한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라고? (p. 239)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는 스딸린이다. 에혀 정말이지 이 작품속에서 이름들이란;;; 여하튼 위기의 순간 시뜨룸은 스딸린의 전화를 받는다. 과연 이들 가족 개개인의 삶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책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죄인과 의인 모두 나약할 수 있다. 그들의 차이는, 보잘것없는 자는 좋은 행동을 한 뒤 평생 이를 자랑하는 반면, 올바른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를 모르며 자신의 잘못은 오랫동안 기억하는 데 있다. (p. 358)

전쟁속 거대한 서사로 시작하는듯 했던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잘못된 사랑과 잘못된 선택이 고스란히 투영된 소설속 시뜨룸의 사랑과 선택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마무리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개개인의 사연들을 통해 전쟁이라는 폭력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주인공 시뜨룸에게 집중해본다면 시뜨룸=작가의 참회록이었달까. 그리고 삶은 여전히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전쟁은 스딸린그라드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지만, 그와 함께 돌아온 것은 평안이 아니었다. 고요와 함께 돌아온 것은 슬픔이었다. 공중에 독일 항공기들이 울어대고, 폭탄이 터지고, 삶이 화염과 공포와 희망으로 가득하던 시절이 오히려 수월했던 것만 같았다. (p. 375)'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온 마음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은, 비록 그녀는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기는 해도, 그리고 무서운 시대에는 인간이 이미 자기 행복의 대장장이가 아님을, 사면하고 처형하고 영광으로 들어올리고 곤궁으로 처박고 수용소의 먼지로 변화시키는 권리가 세계의 운명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기는 해도, 그럼에도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변화시키는 권리는 세계의 운명, 역사의 치명적인 숙명, 국가의 분노, 전투의 영광과 치욕에 맡겨지지 않는다는 진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노동의 영광이든 고독이든 절망과 곤궁이든 수용소와 처형이든, 그들은 인간으로서 이를 겪어낼 것이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진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었다는 진실, 그리고 여기에, 세상에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왔다가 가버리는 모든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영원하고 비통한 인간적 승리가 있다는 진실이다. (p. 390)

이 진실이 '삶과 운명'이 될 수 있도록 바라는 작가의 희망도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ps. 거의 다큐에 가깝게 읽혀지는 이 작품은 그렇기에 더욱 묵직하고 그렇기에 더욱 천천히 읽혀지는 소설이다. 전쟁이 삶을 폭발시켜 버린듯 파편적으로 나열되는 사람과 사건들은 시간의 연속성과 관계없이 조각난채 방치되어 있고 이를 묶어내기엔 나의 역량이 모자랐기에 이 거대서사를 완독하고서도 그닥 만족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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