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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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우주, 빅뱅, 만물의 이론......

아이디어와 과학을 혼동하지 말라E

Existential Physics 라는 원제를 번역기에 넣으면 '실존 물리학'이라고 나온다. 실존주의 혹은 실존철학의 그 실존에 물리학이 접목되었다라... 이상한가? 그런데 어찌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접목이다. 역사에서 특히나 서양역사에서 종교와 과학은 그 어떤 학문분야보다도 실은 서로 굉장히 밀접한 연관 속에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존재의 근원을 어디서 어떻게 찾는가 라는 질문들에서 이 두 분야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놓고 있는 것 같지만, 글쎄... 이 책을 읽어보면 좀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될 것도 같다.

저자는 독일의 과학자로 2006년부터 블로그에 '물리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다양한 매체에 과학을 대중화할만한 기사를 꾸준히 올려온 것같다. 그렇게 '10년 이상 대중을 상대로 여러 활동을 하면서 물리학자들이 문제의 답을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찾은 답에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할 때는 정말로 형편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 9)' 그러나 과학이 계속해서 대중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면 다시말해 '지식을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p.11) 된다는 것을 저자는 깨달았다. '인간의 경험에 관해 물리학이 알려주는 것들을 물리학자들이 앞장서서 설명하지 않으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끼어들어 우리가 만들어낸 암호 같은 용어를 유사과학 증진에 써먹을 것이다. (p. 11)'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유사과학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영적이 개념 중 어떤 것은 현대 물리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어떤 아이디어는 현대 물리학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p. 11,12)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이 제기하는 거대한 물음에 관한 책이다. (p. 13)

이 책은 거대한 물음을 서슴없이 떠올리고, 그 답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p. 14)

프롤로그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포부를 밝혀놓고는 너무 거창하다 싶었는지 곧이어 슬며시 '경고'도 있지 않는다.

'나는 불가지론자이면서 비종교인다. 조직화된 종교 단체의 일원이 된 적도 없고 그런 단체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한번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반대하지 않는다. (...) 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p. 15)'

사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건 거대한 프롤로그보다 솔직한 이 '경고'였다. 서양역사에서 기독교가 워낙 다방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서양인을 보면 나는 좀 신기하다. 서양인들은 과학자도 종교인이 많으니까 말이다. 서양인이지만 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가 설파하는 '실존'에 대한 질문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ㅎㅎㅎ

차례를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커다란 실존적 질문을 던졌는지 한눈에 확인이 된다.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우리는 그저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생각하는가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총9장으로 구성된 이 9개의 질문과 에필로그의 마지막 질문까지 어떤가? 정말 대단한 질문들이지 않나?

너무 어려워보인다고 지레 겁이난다면 이 책을 읽는 팁 하나를 추천하고 싶다.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간단한 답변' 먼저 읽고 본 챕터를 읽는 것이다. 질문이 어려워 보이니 답부터 알고 설명을 읽으면 왠지 더 아는 것 같은 기분적 착각이 하나의 팁 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간단한 답변'이 정말이지 아주 간단하다. ㅎㅎㅎ


지금 고개를 들어 구름을 보고 있다면, 당신이 실제로 보는 것은 수백만분의 1초 전의 구름이다. 사실 이 정도면 큰 차이는 아니지 않나? 우리는 8분 전의 태양을 보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8분 동안 태양이 크게 바뀔 일은 없으므로 빛이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해서 큰일이 날 것은 없다. 지금 북극성을 보고 있다면, 그 북극성은 실은 434년 전의 모습이다. 그럼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어떤 사건이 발생한 순간과 그 사건을 관찰하는 순간 사이의 시간차를 단순히 인식의 한계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뜻밖에 지대한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시간의 흐름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p. 27)

시간의 흐름은 보편적이지 않고 우주의 그 어떤 정보도 사라지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존재한다. 우리의 증명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들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알고 있지 못하다. 당연히. 그러니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느냐고 평행우주식으로 묻는다면 과학은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성립된 자연법칙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 (p. 51)' 라고. 하지만 이 존재의 방식이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그 방식은 아니다.

과학의 목적은 세상을 유용하게 서술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용함'이란 새로운 실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거나, 이미 존재하는 관측을 정량적으로 설명한다는 뜻이다. 설명은 단순할수록 더 유용하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 이론의 설명력을 정량화할수 있다. (...) 우주론은 이런 작업을 자주 수행하는 분야 중 하나다. (p. 57)

그러니 쌓여진 데이터를 사용하여 물리학이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어쩌면 가장 과학적 답변이 나올 것 같은 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좀 허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당초 과학을 왜 하는가? (p. 77)' 라며 과학 무용론을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니 더욱 과학적 연구를 해야 한다고 답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에 고개를 끄덕여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빅뱅은 없지만 주기가 있는거죠?" (p. 89) 나도 이게 미친 소리 같다는 거 안다. 그러나 이 얘기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양립할 수 있다. (p. 90)'

과학은 생각보다 관대하다. ㅎㅎㅎ

우리는 중력이나 시공간에 대하여 엔트로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사실상 모른다. 그런데 엔트로피는 우주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p. 109)

인간의 뇌 안에서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은 그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뇌에 흔적을 남기는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거슬러 가볼 수 있다. (...) 요약하자면, 시간의 흐름이나 현재의 순간에 관한 우리의 경험 때문에 굳이 지금 사용하는 이론들을 바꿀 필요는 없다. (p. 118)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라는 질문은 의외로 타임머신 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엔트로피와 관련한 우주적 설명이었는데... 여하튼 중요한 건 '더 나은 설명을 찾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거나 심지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p. 131)' 라는 굉장히 쏘쿨한 유연함 같다. 이러한 유연함은 때론 너무 흐리멍텅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때로 단호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뒤이은 질문 인간이 그저 원자로 분석되는 어떤 물질적인 것들이 합쳐진 그러니까 일종의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라는 질문같은 것에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인간의 의식이 뇌 안에 있는 수많은 입자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가능성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의식에 관해서라면 어떻게든 무엇이든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과학적인 정신을 가진 이들도 영혼이라는 단어만 쓰지 않을 뿐, 실제로는 영혼을 믿는다. 그들은 신비롭고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들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추가적인 어떤 것'을 찾고 있다. (p. 139)

지금까지 우리가 수집해온 증거들에 따르면 전체는 부분들의 합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 140)

하지만 역시나 마무리는 유연하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양립할 수 있다. (p. 156)' 이다.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해서도 왠만해선 이 입장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다중우주의 모든 가지에서 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신의 생존 확률(또는 공통의 생존 확률)은 표준 해석에서와 마찬가지로 줄어든다. 이것이 아무도 양자 자살을 감행하지 않는 이유다. 양자 자살이 그들이 생존하는 우주의 개수를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측에 한해 보자면 다세계 해석은 기존 해석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무한히 많은 당신의 복제본이 가능한 대안적 삶을 모두 살아가며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면, 그렇게 믿어도 된다. 그 믿음은 과학과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p. 187)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양자역학적으로 저자는 위와 같이 답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복제본이 다중우주 안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는 과학적이지 않다. (p. 199)' 고 말한다. '믿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래도 좋다. 그러나 이 가설이 옳다는 증거는 없다. (p. 199)'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냈지만 아마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대중에게 과학이라고 널리 퍼진 과학적 아이디어에 대해 과학적으로 옳다그르다는 과학자들이 좀더 노력해서 설명해주는게 바람직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나는 그 말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종료라는 뜻이라고 말하겠다. 나보다 현명한 많은 이가 지적했듯이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 일관성이 없는 아이디어이므로 용기 내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자유의지가 자유로우려면, 다른 무엇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일 아무것도 원인이 아니라면(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원인 불명의 원인'이라면) 당신도 그 의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든지 간에 말이다. 니체가 요약한 대로, 그것은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에 최고의 자기 모순이다.'나는 니체의 말에 동의한다. (p. 205)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라는 질문에 앞서 과학과 철학이 질문을 공유하려면 '정의'가 중요하다. 자유는 무엇인가?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정의적 질문에 과학이 답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애초에 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라는 질문은 질문이 말이 안되니 답도 딱히 명확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모든 의문에 답을 내놓은 과학 이론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p. 264)' 과학에서 질문은 중요하지만 먼저 질문을 골라내는 기준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뇌 안의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망이 우주 안 물질의 분포 거텍톰과 닮아 보인다 해서 우주는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정말로 저자가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질문도 질문 자체가 사실 말이 안된다고 생각되었다. 다행히 저자는 장황하지 않게 답을 주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주는 생각하지 못한다. 너무 크기 때문이다. (p. 269)'

의식이 물리적인 '것'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의 물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양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먹고 싶어 하면 안 된다. (p. 291)

무엇보다 중요한건 역시 '정의'문제다. '답을 줄 수 있는 문제는 어떤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답으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에는 과학철학자들의 조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의식 연구는 철학의 영역을 떠났다. 이제 의식은 과학 문제다. (p. 296)' 난 저자가 이토록 철학적 질문들만 담아 놓은 이 책을 쓸수 있을 정도이면서 왜 여전히 과학철학자가 아니라 물리학 연구자인지 잘 모르겠다. 뭐... 철학적 질문에 대한 과학자의 답변과 과학철학의 영역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새 마지막 질문에 다다랐다.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예측이라면 물리학의 영역일테고 존재라면 이 책을 관통하는 실존의 영역이다. 더구나 AI의 시대에 인간행동의 예측은 더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의 질문들에서처럼 질문부터 하느라 간과한 것이 있다.

인공지능 장치에 어떤 윤리를 코딩해서 입력할지 고민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AI에 관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AI의 윤리가 아니라 '우리의'윤리다. (p. 328)

우리는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하는 문제 대신에, 인공 뇌에게 질문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측 가능성의 한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수학적 흥미를 넘어 현실 세상에서의 응용으로도 중요하다. (p. 335)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p. 337)

과학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과학은 이전에는 이해는커녕 상상조차 못했던 가능성을 향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준다. 경이로움을 앗아가기는커녕, 새로운 경이로운 것을 더 많이 제공한다. 과학은 우리의 마음을 확장시킨다. (p. 340)

따라서 저자는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들과 더 자주 교류하고 더 많이 공유하여 '과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과학의 이해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청중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는 대신, 어려운 시기에 과학적 통찰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 듣고 배워야 한다. (p. 342)' 고 말한다. 어쩌면 이 책은 일반 대중보다도 과학자들이 더 읽어야 하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러니까, 맞다. 우리는 놀라우리만치 놀랍지 않은 은하의 나선 팔 바깥쪽에 있는 창백한 푸른 점 위를 기어다니는 원자가 든 자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다. (p. 346)

인간도 경이롭고 우주도 경이롭다.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이 물리학인가보다. 경이로운 질문에 대해 때로는 종교가 아니라 과학에 물어봐야 할 필요도 있겠구나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ps. 과학 이론적 설명이 많은 만큼 책 뒤편에 핵심 용어 설명이 있는데 다른 말들 보다도 나는 '창발성'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신기했다. 검색해보면 사전적 정의도 있겠으나 저자의 설명도 덧붙여 남겨놓아 본다.

[창발성 emergent 사물, 성질 또는 법칙이 그 구성 요소 그리고 구성 요소의 행동 수준에서 정의되거나 발견되지 않을 때 창발적이라고 한다. 만일 창발적 사물이나 성질, 법칙이 구성 요소의 행동과 성질로부터 유도될 수 있으면 약한 창발성이라고 한다. 전혀 유도되지 못한다면 강한 창발성이다. 자연에서 강한 창발성으로 알려진 예는 없다.] (p.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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