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근대 국가를 규정할 새로운 군주의 탄생 클래식 아고라 6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김종법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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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가를 규정할 새로운 군주의 탄생

피렌체의 르네상스가 낳은 위대한 정치사상

그 유명한 고전 <군주론>을 이제야 읽었다. 생각보다 본문이 짧았고 예상보다 해설이 길어서 좋았다. arte에서 나온 고전시리즈 중 이번이 세번째 책인데 읽고난후 모두 흡족했다. 이 고전시리즈가 내내 잘 이어지길 응원한다. 그리고 이 책은 해설부터 읽고 본문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고전일수록 특히 철학이나 정치등 사상이 내포된 고전일수록 그 글이 쓰여진 시대와 그 시대 속 저자의 생각의 흐름을 그 당위성을 이해하고 읽는 것이 본문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왜 이런 글을 썼는가? 이 글은 어떻게 고전이 되었는가?

그가 이야기했던 정치학은 이탈리아라는 공간에서 당대 이탈리아반도가 처한 정치 사회적 조건과 상황을 타개하고, 르네상스 이후 정체되었던 이탈리아에서 근대 국가의 발전과 새로운 권력을 추구하면서 등장한 것이었다. 그런그가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추상적인 수준에서 구체적인 수준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그 연구 대상을 철학적 당위의 영역에서 학문적 존재의 영역으로 바꾸었던 획기적인 동인은 바로 '국가' 개념이었다. 특히 마키아벨리에 의해 제기된 근대 국가 개념이야말로 근대 정치학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p. 208)

마키아벨리의 수직적 삶의 궤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피렌체라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마키아벨리가 관통했던 15세기와 16세기의 시대적 상황이다. 특히 마키아벨리 삶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15세기와 16세기 이전의 피렌체와 그 이후의 피렌체를 이해해야 한다. 성장의 거점이었던 피렌체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군주론 집필의 목적 대상이 되었던 두 개의 가문, 메디치와 보르자 가문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적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메디치가에 바쳤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중용해달라는 근거로 증명하기 위한 책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전체적으로도 그랬지만 특히나 피렌체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메디치가는 가장 큰 세력이었고 마키아벨리가 봤을때 이 난세를 정리할 수 있는 세력은 메디치가가 유일했다. 마키아벨리는 그 메디치가에게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대를 걸었다. 세습이 아니라 의지가 있는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상은 (마키아벨리 본인도 모르고 그 당시 시대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굉장히 선구적이고 근대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가 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근대적이었을지 몰라도 그가 제시한 방법은 절대왕정에 가까웠다. 그것도 일인독재 왕정. (하긴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누구라도 깔끔하게 이 상황을 정리하고 통일해 주었으면 하는 안정화욕구가 충만해질 수 있지... 그것이 일인독재일지라도...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피렌체는 중세를 넘어 라틴문화를 종결하고 세속적인 이탈리아적 인문학과 인문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진원지 역할을 수행했다.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의 이탈리아 역사에서 위대한 작가들이 탄생해 활동하였고, 이들이 사용하던 방언 토스카나어는 현대 이탈리아 표준어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p. 216)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부상한 부르즈아 계급들과 시민들은 피렌체를 공화정이라는 체제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 (p. 217) 인문이 중심이 된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면서 마키아벨리에게 진정한 '인민을 위한 정치'란 어떤 것인가 일깨워 준 근대 정치의 학습장이자 현장의 공간을 제공해준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이런 피렌체에서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먼저 현실정치의 실체로 다가온 이들이 바로 메디치 가문이었다. (p. 219)

어차피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에게 좀더 공식적으로 국가를 세워서 피렌체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를 통일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 길에 자신이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면서. 자신이 이만큼이나 분석을 다 해놓았으니 쓸모가 충분할 것이라면서.

<군주론>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사적으로도 당위성이 충분하고 방법적으로도 가능할 거라면서. 하지만 결론적으로 메디치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솔직히 메디치가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 피렌체 하나만으로도 머리깨질 것 같은데 국가를 세우고 이탈리아를 통일하라고? 이 무슨 헛소리야! 하고.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을 줄줄이 늘어놓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 이 무슨 꼰대같은 잔소리인가 싶어지지 않았을까?

위인전의 교훈이란 그런 것이니까.

혹은 역사는 나도 알만큼 알거든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마키아벨리의 잘난척 하는 개입을 무시했던 게 아닐까...

메디치가 입장에서 봤을 땐 마키아벨리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여겨지지 않았을까,

마키아벨리는 심사숙고하여 메디치가를 pick했으나 메디치가에겐 의미없는 pick였달까.)

메디치 가문 중에서 특히 마키아벨리와 연관 지어 주목할 만한 이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다. 교황 레오10세의 동생으로 1513년 이후 피렌체를 통치하던 인물로 마키아벨리의 저작 <군주론>을 헌정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1516년 줄리아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마키아벨리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조카인 로렌초2세 우르비노 공작에게 헌정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마키아벨리의 현실적인 정치적 야망과 공직에 대한 열망이 계기가 되어 <군주론>을 집필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반도의 통일을 이룩할 희망적인 군주로 로렌초를 상정했다. (p. 222)

1494년 프랑스 샤를8세의 피렌체 침공과 피에로의 항복, 사보나롤라의 봉기 및 메디치 가문의 추방 등의 일련의 과정에서 마키아벨리는 '위대한 로렌초'만으로는 진정한 피렌체의 독립과 공화국을 유지하는데 한계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결국 그는 <군주론> 헌정 대상과는 다른 유형의 군주와 권력자의 모습을 끄집어냈고, 그가 바로 체사레 보르자였다. (p. 228~229)

<군주론>이 마키아벨리의 포부와는 다르게 메디치가로서는 그닥 구미가 당기는 책도 아니었는데 그 내용이 '체사레 보르자'를 보고 배우라 였다면 더더욱 메디치가로서는 <군주론>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메디치가라는 가문의 이름에서 확인되듯 오랜 기간 약이나 향신료 관련 업종에 종사한 가문이었던 만큼 독약 처방과 판매에 뛰어나다고 알려진 메디치가가 잔혹한 구설수들이 난무하여 가족 범죄집단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체사레 보르자까지 닮는다면 세간의 평가가 과연 어땠을까?! (어휴 절레절레 하지 않았을까;;;)

보르자 가문의 반인륜적 범죄 혐의를 모를 리 없었던 마키아벨리가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로 칭송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마키아벨리가 보르자 가문, 그중에서도 특히 체사레 보르자를 주목한 것은 체사레가 가진 강력하고 효율적인 정치적 지도력, 정치적 통찰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근친상간을 비롯해 간통과 살인, 수많은 혼외자 등의 반도덕적이고 지탄받을 행위를 저지른 가문의 인물이었음에도 마키아벨리는 체사레가 가족들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치권력을 형성하면서 투쟁하는 방식이 당대 이탈리아 상황에 필요한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p. 231)

마키아벨리는 너무도 간절하게 강력한 절대군주를 필요로 했던것 같다. 자신이 책사로서 옆에서 돕는다면 체사레 보르자의 단점은 없애고 강점만 키우는 절대군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구나 정치적 야심이나 고위 관직에 대한 열망이 평생토록 누구보다 높았던 그로서는 마지막 동앗줄 같은 것으로 <군주론>을 헌정했을 것이었다. 다만 상대방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았을 뿐. 뭐..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좋은 자리도 아니고 험난한 자리라면 더더욱 굳이?! 그럼에도 이 책이 이토록 중요한 고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1513년 발표한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생전과 사후에도 여전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권력과 국가론 관련 야누스적인 이중성을 갖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군주론>에 대한 평가 역시 서구 지식사회를 갈라놓았다. (...) 마키아벨리의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와 정치권력을 향한 노력과 시도는 <군주론>이라는 저서의 중요성이나 과정에 그다지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p. 234)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 이후 마키아벨리의 명성과 저술의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18세기에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묘지를 이장했다. 이러한 이장 결정에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공헌에 대한 피렌체의 인정이 뒷받침되었고, 그의 묘비명에도 적혀 있듯이 위대한 저술가로서 그리고 정치사상가로서의 평가를 받게 되었다. (p. 241) 마키아벨리에 관한 연구는 현재까지도 극단적 행동주의자로부터 자유주의자와 민주주의 및 공화주의자로서 다양한 정치사상과 이념 등과 결합해 현대 정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p. 245)

현실정치가 난세일수록 마키아벨리는 거듭되어 불려나오게 되는 걸까? 누구보다 먼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표면적인 의미를 너머 심층적 혹은 은유적 의미를 유추하며 여전히 학자들에게 연구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사는게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게 없어서 그런 것일까... 과거 누군가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권위를 얹기 위해서이려나...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주요 사상은 세 가지 정도로 집약할 수 있다. 첫번째 출발점은 '현대 군주'로 상징되는 국가론이다. (p. 248) 두번째 정치사상의 핵심은 통치론이다. 마키아벨리 통치론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현재까지도 큰 이견이나 견해차가 크지 않은 영역이다. (...) 당대 가장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은 영역이기도 하다. (...) 세번째 정치사상은 현대에 와서 더욱 주목하고 있는 공화주의 사상이다. (p. 249)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혼합정의 성격을 갖지만, 좀더 인민의 편에 무게 중심을 싣는다. 이를 위해 마키아벨리는 이상주의적 공화주의보다는 현실정치와 권력의 속성에 적합한 현실주의적 공화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p. 250)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두번째 통치론 때문일 텐데 현재 학계에서 가장 주목되고 있는 것은 세번째 공화주의 사상이라고 하니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른건가보다. 본문을 읽으며 확인되겠지만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군주를 원하면서도 군주의 덕목으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인민의 재산을 갈취하지 말고 반도덕적 패륜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악하다고 말하면서도 지배자에게 피지배인의 권리를 주지시키는 것은 학자들이 말하는 마키아벨리의 야누스적 사상인가 보다. 여하튼 마키아벨리를 강력한 군주통치로만 회자시키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불러내는 이에게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치학을 현실에 근거한 존재의 학문으로 전환시킨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사상적 출발점을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에게서 구하기보다는 고대 라틴계 사상가들에게서 찾았다. (p. 254)

쉽게 말하자면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로마제국의 황제통치를 더 유념했다는 소리다. 서구 정치계에서는 지금도 자신들이 로마제국의 후예입네 라는 것에 명예성을 두는 경우가 있다. 현재가 과거에 비해 민주주의시대라고는 하지만 사실 서구의 많은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라기 보다는 공화주의 국가다. 어쩌면 그래서 마키아벨리를 끊임없이 소환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로마제국의 뒤를 잇고 싶고 마키아벨리의 강력한 (혼합정 성격의) 공화주의를 실현하고 싶어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흔히 '마키아벨리즘'이라는 후대의 사가들이 명명한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흔히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대표적 정치적 신념으로 대표되는 문구는 많은 학자들에게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행위 정당성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p. 260)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작의 곳곳에는 앞서 이야기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명제가 일반적인 것이 아님은 알 수 있다. 즉, 마키아벨리가 무차별적으로 정치의 비도덕성, 폭력지상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모든 수단이 옹호되는 유일한 목적은 국가의 창설과 보존, 그리고 건강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팽창이다. (p. 261) 국가는 필요할 때에만 비도덕적일 수 있는 것이지, 모든 경우에 항상 비도덕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가 윤리나 도덕에 극단적 냉소를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질서가 잡힌 국가와 사회에서의 윤리와 도덕은 폭력이나 힘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p. 262)

마키아벨리는 너무나 강력하게 너무도 간절하게 사회질서의 안녕을 바랐던 것 같다. 악덕과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들에게 치를 떨면서도 도덕이나 윤리의 가치들을 보존하고 준수할 것을 잊지 않고 제시한 것은 국가라는 커다랗고 안정적인 틀 안에서 편안한 개인으로 살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을지도. 다만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고위관작에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 열망이 가장 컸던 것이 오히려 그의 사상적 발목을 잡았던 게 아닐까...

결론적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 국가를 열망하고, 새로운 질서의 사회를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조건과 행동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혁명가로서 '신군주'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출발점과 사상적인 유사성은 근대 국가의 시작 과정에서 군주라는 개념을 통해 정체의 문제, 국민개병제에 기반한 군대문제, 이를 위해 계급 구분을 통한 국민국아의 정당성 부여 문제, 귀족과 민중의 이분법적 계급대립 구조, 국가 내부의 사회적 제도로서 종교와 법률의 상정 문제 등은 마키아벨레가 추구하고자 했던 근대 국가 개념이 논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갖게 했다. (p. 273)

자 이제 해설은 끝났다. 본문을 읽을 준비가 되었다. 그에 앞서 외국어로 된 고전인만큼 번역이나 판본이 중요한데 그에 대한 설명은 '서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현대어로 기술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원전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탈리아어조차 버거웠던 저자에게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집필을 끝냈을 당시에는 르네상스가 끝나가던 시기였기에 라틴어로 저술했을 것이라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대 저명한 사상가들이나 저술가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고, 저서들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었다. (p. 10) 그럼에도 <군주론>이 보다 널리 읽히게 된 계기는 라틴어 판본보다는 코스카나어로 쓰인 판본이라고 추정된다. (...) 이 책에서 사용된 원본은 토스카나어로 작성된 판본이며,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위해서 국가편집본을 참조했다. (p. 11)

토스카나어 원전 번역의 어려움과 누구나 느끼는 한국어 용어 선택의 문제는 저자에게도 어김없이 다가왔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저자는 몇 가지 원칙과 기준에 의해 번역을 진행했다.

첫째, 이탈리아어 판본이 아닌 토스카나어 판본으로 번역을 진행한다는 원칙이었다.

둘째, 기존 번역서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이탈리아에서의 연구 경향과 해석을 중심으로 해설 부분을 덧붙이고자 했다. (...) 기존 번역서들이 주로 취하고 있는 영미 계열의 마키아벨리 번역과 해석에 연연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셋째, 토스카나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능하면 문맥과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한국적인 사고에 더욱 적합할 수 있는 윤문 번역을 진행했다.

가장 중요한 또 하나의 기준은 용어 선택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여전히 기존 번역서에서 지속해서 논란과 논쟁이 되는 부분이다. 특히 자질이나 역량 등으로 번역되는 비르투virtu나 행운, 운명, 여신 등으로 번역되는 포르투나fortuna등의 용어는 한국어로 번역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해나 오류 가능성으로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았다. (p. 12, 13 에서 일부 발췌) -서문 中-

<군주론>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비르투와 포르투나 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어가 다중적 의미를 가진만큼 이 단어들 또한 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저자가 비르투와 포르투나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것에 나도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을 원어로 읽으면 문맥상 더 다양한 이해의 폭이 필요했을 이 단어가 한국어 번역본에서도 다양하게 이해될 수 있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나았던 것 같다.

<군주론> 본문을 읽기까지 나름 긴 준비가 필요했고 어느정도 마무리되었다. 그래서인지 <군주론> 본문 읽기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생각보다 큰 인상적인 감흥 없이 주욱 읽어가졌다.

전하의 충복이 되겠다는 의미로 무엇인가 바치고 싶지만, 제가 가진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집필한 고귀한 저서를 전하께 바치고자 합니다. 이 책은 최근 사건들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고대 사건들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제가 알게 된 위대한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관한 것입니다. 오랜 천착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집대성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연구하고 분석하여 얻은 지식을 집약하여 저술한 미천한 책을 전하께 보내드립니다. (p. 19) 이 책을 신중하고 꼼꼼히 읽으면서 그 의미를 새기신다면, 저의 가장 간절한 소망 다시 말해 전하께서 포르투나와 전하의 탁월한 자질을 통해 성취하게 될 위대한 과업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저의 고귀한 뜻을 헤아리시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그 고귀한 지위에서 잠시나마 아래에 있는 저에게 시선을 향해주신다면, 제가 얼마나 지속적이고 과한 불운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와 신세에 처해 있는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부디 살펴보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p. 21)

그러니까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등용을 위해 마련한 제안서다. 그런데 이 책은 위인전에 가까운 역사서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서를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많았을까 싶은데;;; 게다가

이 사람을 보십시오 저 사람을 보십시오 그 중에서도 체사레 보르자를 보십시오. 배우십시오. 제가 하는 말이 맞습니다. 제가 다 오래 연구해온 결과니까요. 그러니 제 말대로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중앙집권적 국가를 건설하고 절대군주가 되어 보십시오. 제가 만들어 드릴 게요. 저를 등용하시면 다 됩니다.

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당대 최고권력가 집안이었던 메디치가에게 과연 혹하는 조언으로 들렸을까, 관직 청탁용 간섭으로 들렸을까... 결과는 알다시피 메디치가는 마키아벨리도 그의 책도 모르쇠 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온유하게 대하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는 마음을 갖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아거나 복수할 엄두조차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이 복수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로 매우 큰 피해를 주어야 합니다. (p. 32)

모든 악행과 가해 행위는 한꺼번에 실행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그 악행과 가혹 행위들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며, 그럴수록 그러한 행위에 대한 반감이나 분노가 작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비로운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만 그 은혜의 크기와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p. 81)

그 유명한 마키아벨리즘의 토대가 될 문장 중 하나이려나... 그런데 은근 이게 지금도 맞는 말 같네;;; 그래서 고전이 된 건가...

저는 여기에서 아주 위대하고 놀랄만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는 인간이 거의 항상 선인先人들의 행적을 따르며, 모방을 통해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p. 52)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군주가 되는 두 가지 방법, 즉 자기 비르투에 의해 군주가 된 경우와 포르투나에 의해 군주가 된 경우를이탈리아 역사 속에서 두 사례를 제시하겠습니다. 하나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 와 체사레 보르자 입니다. (p. 60) 저는 보르자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보르자는, 상술한 바와 같이, 포르투나와 타인의 무력에 의해서 권력을 차지한 모든 사람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p. 70)

지적인 훈련을 위해 군주는 반드시 역사서를 읽어야 하는데, 특히 역사 속 위인들의 행적을 잘 살펴 읽어야 합니다. (p. 118)

이 책은 거의 사례집에 가깝다. 마키아벨리가 요구하는 사상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기에 그는 역사를 훑어가며 아주 다양한 사례들로 증명과 반증을 수차례 한다.

인간은 사악하며 당신과의 약속이나 신의를 잘 지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 역시 그러한 사악한 이들과 맺은 약속에 구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의 정당성을 항상 내세울 수 있습니다. (p. 138)

지금 이탈리아가 신에게 외세의 잔혹하고 오만한 지배로부터 이탈리아를 구원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보내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p. 197) 지금 이탈리아가 이러한 희망에 기댈 대상은 오직 영광스러운 전하의 가문 뿐입니다. (p. 198)

이제 여기 전하께서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의 순간에 제가 전하에게 여러 모범 사례로 제시한 여러 위인의 방식을 따르기만 한다면, 과업을 이루는데 커다란 위험은 없을 것입니다. (p. 199)

모든 것을 진압하는 절대군주가 되십시오 라면서 내말데로 하면 됩니다 라면 절대군주가 과연 순순히 따를까?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자신의 메시지와 자신의 요구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여하튼,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다른 저서에서도 자주 인용한다던 문구로 이만 마무리하련다.

{누군가 불가피하게 수행하는 전쟁은 정의로운 것이며, 무력에 의지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도나 희망이 없을 때는 그러한 무력 또한 신성한 것입니다}

주석: 리비우스의 '로마사' 제9장에 나오는 구절로 마키아벨리가 다른 저서에서도 자주 인용하던 구절로도 유명하다. (p. 198)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의외로 허망함이 남았던 고전 <군주론>이었다.

ps. <군주론>자체를 떠나 arte 고전 시리즈는 역시 이번에도 훌륭했다. 덕분에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고전 시리즈 잘 부탁드려요.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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