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8인의 현자들은 문명권도 다르고, 살아간 시대도, 또 타고난 품성도 서로 달랐다. 하지만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극히 평온하고, 지극히 유쾌했다는 것. 하여 남은 자들에게 절망과 비탄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을 선사했다는 것. 우리는 이 모든 과정에 동행했다. 그리고 이제 묻는다. 어떻게 해야 저런 죽음의 형식이 가능할까?
먼저 이들의 죽음은 삶과 대립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생사는 다르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삶, 그런 죽임이 가능할까? 역시 간단명료하다. 욕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면 된다. (p. 338, 339)
그럼 또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욕망은 생의 원초적 동력인데, 거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다.
이 현자들의 비전과 방법은 언뜻 결이 다르게 보이지만 깊은 차원에서 상통한다. 덕분에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누구를 멘토로 삼든 우리는 욕망의 불꽃을 제어하고 선을 행하며 지혜를 연마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자, 이제 마지막 관문이 하나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목격한 바 현자들의 죽음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다. 자유를 향한 비상이다. 다시말해 죽음은 생의 종결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 (p. 340)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소박한 윤회론에서 시작하여 윤회론의 최고 경지인 붓다의 열반에서 끝을 맺는다. 시작과 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윤회와 열반, 이것이야말로 현재 인류가 창안해 낸 죽음과 다음 생에 대한 최고의 해석이 아닐지. (p.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