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 변화 가득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연 생태의 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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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가득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연 생태의 힘

저자의 전작 <숲은 고요하지 않다> 를 흥미롭게 읽었었기에 신작에 대한 소식을 듣고 궁금했었다. 이번엔 어떤 책일까.

전작이 제목을 읽고 숲에 대한 책이려니 예상했다가 막상 읽고보면 음~?! 하며 저자가 동물생태학자라는 사실에 새삼 눈길이 갔던 것처럼, 이번책이 제목을 읽고 '진화'에 대한 책이려니 하는 섣부른 예상을 했다면 그 예상 고이접어 넣어두기를. ㅎ

2010년에 나는 의욕이 하늘을 찌른 젊은 생물학자로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베를린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도시토끼를 연구할 생각이었다. (...) 그러나 단 4년 만에 나는 의욕과 젊은 패기를 모두 소진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p. 7)

저자는 베를린에서 생활하다가 연구를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생활은 적응되지 않았고 나날이 불행해져가는 가운데 번아웃으로 정신을 잃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에서 토끼들은 저자와 달리 몹시 행복해보였다. 왜 저자는 적응을 하지 못하는 도시에서 토끼들은 잘 적응하게 됐을까? 이 책은 이른바 '토끼 딜레마'에 대한 저자의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비자카드만큼 유용하고 코카콜라만큼 만족스러운 단어다. 그런 만큼 확정적이지 않고 확정할 수도 없다" -리처드 슈웨더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에서 토끼들의 행복한 삶과 저자의 그렇지 못한 삶의 차이에는 '스트레스'가 핵심적 요소였기에 저자는 이 스트레스에 대한 탐구부터 집중적으로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스트레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들만 가득 안고 있던 저자였지만 '진화생물학의 안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보았더니 새로운 의미가 열렸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얘기를 나누려고 한다. (p. 35)' 다시말해보자면 이 책은 '스트레스'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시각으로 토끼와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셀리에는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바로잡으려고 오래도록 노력했다. 자신이 발견한 사실 즉 Stressor라고도 부르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하는 자연의 반응이 얼마나 중요하고 긍정적인지 거듭 강조했다. 아무리 단순한 형태라도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스트레스가 없는 생명체는 죽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p. 51)

스트레스 연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셀리에는 자신이 발견한 스트레스에 대해 부정적 결과물을 발견하여 세상에서 큰 호응을 얻었으나 연구할 수록 부정적이기만 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세상은 스트레스의 긍정적 효과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최근 들어 그 긍정적 효과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나타났고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도 연구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긍정적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그 결과가 제시된 두괄식이고,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담은 원제는 다음과 같다.

DIE UNGLAUBLICHE KRAFT DER NATUR. Wie stress Tieren und Pflanzen den Weg weist

자연의 놀라운 힘. 스트레스가 동물과 식물에게 길을 알려주는 방법

도시 고유의 논리 이론은 결국 생태계 속성을 드러낸다. 다시말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도시는 제각기 그곳에 정확히 잘 맞을 법한 특정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을 낳는다. 아울러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 장소에서 얻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본다는 얘기도 내가 스트레스 연구에서 이미 살펴본 내용이다. 우리 몸이 매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p. 126)

토끼는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의 특성에 잘 맞출 수 있었고 저자는 그렇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가 어떤 곳이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살아가면서 유기체는 스트레스 요인에 스트레스 반응으로 대처한다. 이 스트레스 반응은 적응으로 이어져 언젠가부터는 서식지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다. 스트레스 반응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다. 스트레스 반응은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이 있더라도 높은 적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자연의 놀라운 힘이다. (p. 154)'

오랫동안 생물학자들은 구조가 더 복잡한 동물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는 점이 확실해졌다. 모든 생명체는 일정 수준의 적합성을 지닌다. 환경에 잘 적응하거나 그러지 못하고, 유전물질을 다음 세대에 얼마간 물려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외부의 영향으로 적합성이 떨어질 수 있고, 그 결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p. 156)

유기체 라고 하면 지적 능력을 가진 동물을 연상하기 쉽다. 이 책에서 줄창 나오는 토끼처럼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예로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달팽이를 예로 든다. 달팽이 뿐만 아니라 물고기, 식물도 이어서 등장한다. 그러다 발견한다. '한마디로, 식물은 스트레스 요인을 관리하는 데 진정한 고수다. (p. 178)' 이런 전개는 전작 <숲은 고요하지 않다>와 비슷한 서술 방식인 것 같다.

페니키아인이 기원전 1100년경에 최초로 에스파냐에 사는 야생토끼를 보고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는 토끼들은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에서만 발견되었다. 에스파냐라는 이름은 이 시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에스파냐에 처음 상륙했을 때, 페니키아인은 그곳에 사는 야생토기가 어쩐지 낯익었다. 에스파냐 토끼들은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바위너구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바위너구리는 크기가 토끼만 하고 외모는 마멋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페니키아인은 에스파냐를 '이쉬판인'이라고 불렀는데, 대략 '바위너구리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쉬판인'은 나중에 라틴어로 '히스파니아'가 되었다. 그러나 페이키아인이 틀렸다. 야생토끼와 바위너구리는 가까운 친척이 아니다. (p. 192)

저자가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예로 들다보니 방만하게 읽히는 느낌도 없잖아 있는데, 덕분에 얻어걸리는 지식도 있어 재밌기도 했다. 에스파냐의 기원이 야생토끼였다니. ㅎㅎ

셀리에는 끊임없이 스트레스가 삶의 양념이요 수프에 뿌리는 소금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스트레스는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피할 수도 없다. 당신이 무엇을 하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계속 살아 있으려면, 그리고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려면 항상 에너지가 필요하다. 긴장을 싹 풀고 잠을 푹 자더라도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장은 계속 피를 펌프질해야 하고, 위장은 음식을 소화해야 하고, 근육은 당신이 호흡할 수 있게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 당신이 꿈을 꾼다면 뇌조차 좀처럼 쉬지 않는다." 셀리에의 말이 옳다면, 최고의 적합성을 위한 완벽한 장소는 있을 수 없다. (p. 214)

그렇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식물과 동물에게 새롭게 살 길을 찾도록 해주었고 그렇게 그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 책이 쓰여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책 제목을 '동물과 식물의 회복 탄력성'이라고 붙이지 않도록 출판사에 내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왜냐고? 조사한 뒤로 생태적 회복 탄력성 개념에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회복 탄력성은 개별 생명체가 아닌 전체 생태계에 있다. 생태적 회복 탄력성 원리를 알고 나니 항상성이 떠올랐다. 항상성은 생명체의 최상위 균형이다.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은 몸의 전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 건강한 생태계에서는 흙, 공기, 물과 상호작용이 균형을 유지하는 모든 생명체가 바로 이런 기관이다. 생태적 회복 탄력성이 클수록 생태계는 마침내 균형이 깨지기 전까지 더 많은 스트레스 요인을 견뎌낼 수 있다. 기관들이 생태계의 손상을 신속하게 복구하기에 모든 것이 평소처럼 작동할 수 있다. (p. 256)

위에서 잠깐 언급했었는데, 이 책의 원제는 DIE UNGLAUBLICHE KRAFT DER NATUR. Wie stress Tieren und Pflanzen den Weg weist 이고 이것을 번역기에 돌리면 '자연의 놀라운 힘. 스트레스가 동물과 식물에게 길을 알려주는 방법' 이라고 나온다. 알다시피 한국어판 제목은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이다.

나는 매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데, 그러면 내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나의 재능은 무엇일까? 나아가 이 재능을 어떻게 발달시며야 하고, 다른 생명체도 모두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어떤 '동물'이고 행복하려면 어떤 조건을 채워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생명체를 괴롭히는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p. 280)

뒷표지에 보면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를 살아가는 도시의 우리들에게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생물이 전하는 다정한 위로' 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를 행복하게 뛰어다니던 토끼들은 녹지관리 '정원사'들에 의해 개체수가 거의 남지 않았고, 저자는 프랑크푸르트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여 다른 도시로 떠났다. 게다가 매일 아침 저자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기도 하다. 하지만 바라게 되긴 한다. 우리의 삶과 야생의 삶이 너무 다르고 너무 멀어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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