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종의 나라 - 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문소영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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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분열하고 뒤섞이며 확장하는가

돈, 손절과 리셋, 반지성주의, 하이브리드 한류, 신개념 전통,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

7개의 키워드로 바라본 이상하고 아름다운 한국 문화

즐겨 읽는 신문 칼럼 중에 문소영 기자의 글이 있곤 했다. 주로 미술이나 예술 관련 글을 쓰는 기자인것 같은데 그런 종류의 글이 대부분 소개나 평론에 그치는 것에 비해 문소영 기자의 글은 항상 사회를 바라보고 있어서 신선했다. 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인데 저자의 이력을 보니 그간의 칼럼들이 왜 그랬는지 알것 같았다. 여하튼, 이 책은 '그 칼럼들을 바탕으로 해서 한국의 혼종성이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과 가까운 미래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말하고 있다. (p. 11)'

한류는 <대장금>부터 <오징어게임>까지, <올드보이>부터 <기생충>까지, H.O.T.부터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까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거쳐오면서 내가 절감하게 된 것은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혼종화되기 시작한 세대로서의 나의 혼종적 정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혼종성이다. '끔찍한 혼종'이란 말이 있듯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혼종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로마 같은 모든 제국의 문화는 혼종이었다. 제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식민지는 혼종성을 키움으로써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문화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 (p. 6)

'끔찍한 혼종'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나도 '단일 민족'이라는 단어가 국가적 자긍심을 품은 단어인것 마냥 교육받은 세대이기에 '혼종'에 대한 부정성은 알게모르게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역사 속 모든 제국은 제국이 되기까지 혹은 제국이 되었기에 모든 것이 섞여들어간 혼종의 사회였다. 혼종의 긍정성을 찾고 있는 이 책 속 글들은 그래서 다분히 '권력'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문화권력도 권력이므로.

이 책은 표지에 적혀 있듯이 7개의 키워드로 글을 분류하고 있다.

돈, 손절과 리셋, 반지성주의, 하이브리드 한류, 신개념 전통, 일상의 마이크로 정치, 포스트 코로나와 인공지능

사실 차례나 소제목들을 보면 책의 내용을 대강 예측할 수 있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키워드를 봐도 차례를 봐도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그 의견 하나하나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부르디외는 자본이 경제자본 뿐만 아니라 인맥 같은 사회(관계)자본, 그리고 문화자본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문화자본에는 미술작품, 책 같은 문화 오브제와 석박사 학위처럼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지식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교양 수준을 드러내는 말투나 예술에 대한 감식안처럼 몸에 자연스럽게 밴 성향과 기량까지 포함되는데, 이것을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p. 41)

'부자니까 착한거야'라는 <기생충>속의 대사로 시작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깨닫는 건 저자는 그 '아비투스'를 갖추었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쓸수 있다라는 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석사,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런던대학교에서 문화학 석사를 받고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인 저자의 이력은 그 시간들 동안 저자가 얼마나 문화적 아비투스를 넘치게 향유해 왔는지 알려준다. 향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사회비판적으로 의견을 내고 활동을 하는 것에는 박수와 응원의 마음을 보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들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 '아비투스'를 갖출 수 있는 성장과정을 거치지 못했기에... 그렇기에 저자가 느끼는 '혼종'과 내가 느끼는 '혼종'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손절'은 2018년 즈음부터 인간관계에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원래는 주식용어다. 사람과 관계를 끊을 대 쓰는 단어는 따로 있다. 불교적 단어인 '절연', 유교적 단어인 '의절' 등등. 그런데도 왜 굳이 '손절'을 쓰게 됐을까? '손절'은 경제학적 비용편익분석에 의해 인간관계의 지속과 중단을 결정하는 자본주의적 단어다. 은연중에 인간을 물건 취급, 주식 취금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경제학적 의사 결정이 부당한데도 집단의 전통과 관습에 질질 끌어온 인간관계를 단호하게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p. 60)

아하, 손절이 주식용어 였구나! '손절'은 '매몰비용'개념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한 비용으로서 향후 어떤 선택을 해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결정을 할때 이미 들어간 매몰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 된다. (p. 62)'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도 과거에 어떤 (감정적, 물질적) 비용이 들어갔을 지라도 그 비용?을 매몰비용이라 치고 회수받을 생각을 버리고 관계를 그냥 끊어버리는 것이 '손절'인 것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관계를 질질 끄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단절해버리는 것, 그것이 손절 인 것이다. 과거에 소모된 감정적 에너지까지 비용의 범주에 넣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와 철학이 반영되곤 한다. (p. 66)' 인간관계에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단어인 '손절'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이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인 것일까?

영국 소설가 H.G.웰스는 무려 120여 년 전에 '타임머신'이란 말을 만들어놨고 지금까지 영화로 만들어지는 <우주전쟁>, <투명인간>등을 쓴 SF거장인데,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은 이 단편소설에서도 빛을 발한다. (p. 95)

'로봇3원칙'으로 유명한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는 1980년 <뉴스위크>칼럼에서 이렇게 일침했다 '민주주의를 '나의 무지나 너의 지식이나 별 차이 없다'는 것으로 여기는 착각이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키워왔다' (p. 108)

웰스의 <눈먼 자들의 나라>를 예시로 반지성주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은 SNS와 숏폼이 유행하는 요즘 시대를 떠올리며 더없이 안타깝게 다가오는 주제였다.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를 산다는 것은... 참... 할말하않 이랄까.... 여하튼 SF 작가들은 참 위대하다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ㅎ

혼종적이고 다문화적인 것은 대국의 특징이다. 지금 한국은 경제와 문화에 있어서 역사상 최초로 세계적 대국의 문턱에 와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마인드는 아직 대국적이지 못한 것 같다. 외국인들은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자 강대국인데도 약소국인 것처럼 군다'라고 종종 말한다. '희생자 의식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강대국에게는 선망과 반감이 뒤섞인 자세를, 기타 국가에는 수출 돈벌이 대상이 아니면 무관심인 게 소국 마인드다. (p. 122)

저자는 외국 유학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전공특성상 외국문화를 자주 접해서 그런지 외국인의 시선에서 한국을 바라봤을 때의 아쉬운 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은 혼종 사회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이 강대국인가?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미소중일의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가 변한 것도 아닌데 그 권력관계에서 늘 소외되기 일쑤인데 한국이 강대국인가? 선진국인 것까지는 그래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 선진국이란 타이틀도 왠지 조선시대 족보를 사서 팔자걸음 휘젓고 다니던 허울뿐인 양반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더구나 지금은 민주화를 쟁취한 사회였다고 믿기 어렵게 독재화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더더욱... 한숨만 나오는 것을... 이 상황에 대국의 마인드를 가지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고... 여하튼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다음 장 '신개념 전통'에서 더욱 강화된다. 해당 부분은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하는 것이 유의미할 것 같다.

'백인'이라는 말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유럽인을 '얼굴이 붉고 털이 많은 '종족이라 불렀고 서구인이 자신을 '백인'이라 칭한 것도 17~18세기부터이다. 그 직전 시대에 산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면 당시 서구인은 자신들을 '기독교도', 타민족을 '이교도'로 분류했고, 아프리카계 장군 오셀로를 '무어인'이라고 불렀지 '흑인'이라고 부르지 안핬다. 즉 타자화와 구분짓기는 있었지만, 문화와 지역에 기초했지 인종에 기초하지 않았다. '백인 정체성'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저술가 시어도어 앨런은 '백인 발명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p. 205)

'언어가 사고를 결정짓기까지 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자 (p. 209)' 정치적이지 않은 것 같은 일상에선 은근히 자주 혹은 많이 정치적 메세지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도 그렇다. '단일'이라는 착각에 빠져온 우리는 특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인종적 혼종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부정적 메세지를 퍼뜨리곤 한다. 하지만 '인류는 모두 '유색인종'이다. '백인'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 210)' 어쩌면 '인종'도 딱히 없다. 인류는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오지 않았던가.

챗GPT는 왜 거짓말을 하며 어떻게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일까. 한국의 인공지능 기업인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쳇GPT는 학습된 어마어마한 지식과 언어 중에서 특정 단어 다음에 올 가장 자연스럽고 문맥에 맞을 만한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글을 만드는데, 확률통계적 선택을 한다.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똑같은 질문을 해도 답변이 매번 다르다. 이 중에서 인간이 보기에 어떤 답변이 좋은지를 학습하는 것이다. 그 진위는 GPT조차 판별하지 못한다. (p. 254, 255)

포스트코로나시대 급격히 대두된 것중 하나가 쳇GPT일 것이다. 인공지능이니 AI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개인적으로 답답한 부분이 좀 있는데, 왜 그것들에 인간적 도덕성 개념을 덧입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거짓말'이라는 것도 인간 기준이지 GPT는 그냥 확률통계적으로 아웃풋을 내놓을 뿐인것을. 그 얼토당토 않은 아웃풋에 온갖 인간적 개념을 덧붙여서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문제인 것이다. '인공'을 신봉하지 말자. 그것도 어차피 사람이 만든 것일 뿐이잖은가.

'우리는 지금 거대한 사회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p. 267)' 이 시점이 기회일지 위기일지 각자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저자는 '혼종'적 문화 측면에서 기대감이 없잖아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혼종'적 면면들에 대해 사회문화적 분석은 해볼만한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의견이 다양한 논의로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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