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해설과 그림이 있는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릴랜드 라이큰 글, 오현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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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단테의 <신곡>을 읽고 나서 이른바 기독교3대소설이라고 불리는 다른 두 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다. 신곡 → 천로역정 → 실락원 순서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새로 나온 <천로역정>을 알게 됐다.

고전읽기를 할때 어떤 번역본이냐에 따라 원본의 의미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지가 정해지기 마련인데, 이번 책은 원전번역본에 대한 사전조사 없이 읽은 터라 타 번역본과 비교를 못해본 것이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원작자 존 버니언의 정본을 번역했고 그림도 있고 해설도 있으며 가이드북까지 합본으로 새로 나온 책이라고 하니 혹하는 마음에 일단 집어들었달까;;;

<천로역정>의 원제는 The Pilgrim's Progress 이다.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순례자의 진보'라고 나오는데, 줄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인물의 영적 순례체험을 담고 있는 것이다보니 한 순례자가 순례길을 여행하며 점차 (종교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진보라고 한다면 원제는 말그대로 작품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하겠다.

우리말제목 <천로역정>도 한자풀이를 하면 원제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번역그대로 원제를 살렸어도 됐을텐데 왜 굳이 한자어제목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혹시 옛날 번역문학이 주로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다보니 이 작품도 그러했나 싶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1678년에 존 버니언이 쓴 이 작품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선교활동에도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 흐름을 따라 1895년 구한말 선교사로 조선땅에 온 캐나다 선교사에 의해 영어원본이 한글로 바로 번역이 되면서 '텬로력뎡' 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근대번역문학사에서 일본어판 중역이 아닌 원어원본에서 바로 번역된 최초의 소설이라는 의의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자 존 버니언(1628~1688)은 정규교육을 거의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탁월한 설교자이자 작가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다. 청년시절, 종교적자유를 주창한 크롬웰 군대에 입대후 청교도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고 영국국내 상황이 다시 국교회 주도로 돌아갔을 때에도 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종교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12년의 감옥생활을 보냈으며 이후 죽을때까지도 자신의 신념이 담긴 종교활동과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작품은 수감당시 자신의 영적 투쟁과 성장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천로역정>은 2권이라고 한다. 1부는 1678년에 2부는 1684년에 나왔는데, 1부는 크리스찬이라는 인물의 순례기이고 2부는 그의 아내의 순례기이다. 두 권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비슷한 구조로 각각의 순례체험을 통한 성장을 담고 있어서인지 주로 1부만 번역되고 널리 알려진 편이라고 한다. 이번책도 1부의 내용만 담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쓰려고 펜을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식의 책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책을 쓸 생각이었는데, 책을 거의 다 쓰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요즘 같은 복음 시대 성도들의 인생행로와 생애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들의 여정과 영광으로 이르는 길에 관한 우화로 빠져들었습니다. 스무 가지도 넘는 사건들까지 더해서 말입니다. (p. 25)

존 버니언은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변'을 풀어놓는다. 이 작품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는, 당시로서는 새로웠을 종교문학에 대한 작가 자신이 독자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랄까. 또한, '나는,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썼을 뿐입니다. (p. 26)' '이런 스타일로 글을 쓰면 안 되나요? 이런 방식으로 써도 작가의 의도나 독자의 유익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 쓰지 못할 이유가 뭘까요? (p. 28)' 지금은 이상할게 없지만 당시로서는 온갖 비유들로 영적 성장을 소설처럼 써낸다는 것이 나름 큰 모험이었나보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있게 말한다. '구구절절 온갖 지혜를 써 내려가는 성경에도 모호한 비유와 풍유가 도처에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경에서 우리의 어두운 밤을 낮으로 바꿔 주는 광채와 광선이 나옵니다. (p. 33)' 그러니 자 이제 온갖 모호한 비유와 풍유가 가득한 <천로역정>에서 어떤 광채가 나올지 읽어봐야겠지?! 작가가 말하듯 '이 책의 지시를 잘 이해한다면 여러분은 거룩한 땅으로 안내받을 것입니다. (p. 37)' 를 과연...?!

이 세상 광야를 두루 다니던 중, 우연히 동굴이 있는 어떤 곳에 이르른 나는, 그곳에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을 자던 중 꿈을 꾸었다. (p. 40)

소설의 시작은 이러하다. 작가가 꿈을 꾸었고 그 꿈속에서 크리스찬이라는 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순례기를 체험하는.

"선생님, 제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을 읽어보니, 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고 그 후에는 심판받을 거라고 합니다. 저는 죽기도 싫고 심판도 감당 못 합니다." (p. 43)

"선생님, 저는 저기 저 앞에 있는 좁은 문으로 갑니다. 듣기로는 저곳에 가면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내와 자식은 있습니까?"

"있지요, 하지만 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아내와 자식에게서 전처럼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전, 마치 아내도 자식도 없는 사람 같아요" (p. 60)

"처음에 어떻게 그 짐을 짊어지게 된 거요?"

"내 손에 들린 이 책을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p. 62)

소설의 시작에서 크리스찬이라는 남자는 어느날 갑자기 어떤 책(아마도 성경일 책)을 읽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그닥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류하는 가족도 뿌리치고 혼자 다른 세상을 찾아 길을 나서는 모습은 일면 너무 개인주의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책속의 해설에 의하면 열여섯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크롬웰의 군대에 들어가 잉글랜드 내전에 참전했는데 '이 전쟁에서 크롬웰은 (다른 자유와 정치적 권리 중에서도)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찰스 1세와 싸우고 있었다. 군 복무 중에 버니언은 개인의 은혜 체험을 일반적 종교 전통보다 소중히 여기는 청교도 사상가들을 접하게 되었다. (p. 69)' 고 한다. 크롬웰의 집권시기는 7년 정도였는데 (크롬웰은 버니언이 기포드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후 7년 동안 권좌에 있었는데, 이는 개신교 교회들이 그 기간은 신앙의 자유를 누렸다는 의미였다. 버니언에게 이 기간은 영적으로 성숙해 가며 사역을 전개해 나가던 시기였다. (p. 139)) 이 기간 동안 그의 신앙은 견고해졌고 그후에도 버니언은 이때 깨달은 종교적 방향을 일평생 유지했다고...

"안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는

먼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려야 하며,

두드리는 사람은 들어가게 될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고 그의 죄를 사해 주실 수 있으므로" (p.76)

작품 속에선 성경의 인용구가 아주 자주 나온다. 줄거리를 성경구절로 요약하자면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할 수 있을듯.

그러나 그 문으로 가는 길을 당연히 험난할 터, 그러니 천로역정이 되지 않았겠는가.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크리스천은 마침내 구원의 땅에 이른다. 하지만 소설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빛나는 이들은 무지를 공중으로 데리고 올라가 전에 언덕 옆에서 본 문으로 가서는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보니 그곳엔 지옥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그때 나는 멸망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천국 문에도 지옥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잠이 깨어, 이 모든 게 꿈이었음을 알아차렸다. (p. 409)

잠들어 꿈꾸는 것으로 시작했으니 잠에서 깨는 것으로 마무리는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갖은 고생끝에 크리스천이 구원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과 의견이 달라 뒤에 쳐져 오던 무지라는 인물에 대한 응징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종교적 방향을 더욱 실감하며 작품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책속의 책 이라고 뒤편에 보면 파란색 종이로 된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릴랜드 라이큰의 천로역정 가이드> 이다. 영문학교수이자 기독교적 관점의 고전문학에 대한 전문가인 릴랜드 라이큰 교수의 가이드북을 합본한 것이다. 문학의 본질부터 고전의 중요성을 간략히 요약설명해주고 <천로역정>의 특징과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그리고 본문 각 장의 줄거리와 해설 및 묵상이나 토론을 위한 지침까지 꽤 알찬 가이드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에도 쓰여 있는 '캐리 마스의 정련된 해설' 이라는 부분이 내게는 읽는 내내 좀 걸렸다. 일단 캐리 마스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니 그의 해설에 얼마만큼 신뢰를 가져야할 지도 모르겠는데 해설이 본문 아래 따로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 중간중간 본문과 같은 글자크기로 섞여 있다보니 본문만 집중해서 읽기가 어려웠다. 책의 앞뒤 어디에도 캐리 마스와 그의 해설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것이 아쉽다.

책은 두툼하지만 동화책처럼 큰 글씨가 성기게 편집되어 있고 중간중간 그림도 있는데다 내용 자체가 우화적이라 어렵지않게 호로록 읽히긴 한다. 하지만 내가 종교가 없다보니 너무 쉽게쉽게 넘어가서 그럴 수도 있다. 성경을 알고 그 문구들을 연상하며 이 작품을 읽을 경우 이 책은 좀더 천천히 좀더 풍부한 의미를 부여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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