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단테의 <신곡>을 읽고 나서 이른바 기독교3대소설이라고 불리는 다른 두 소설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다. 신곡 → 천로역정 → 실락원 순서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새로 나온 <천로역정>을 알게 됐다.
고전읽기를 할때 어떤 번역본이냐에 따라 원본의 의미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지가 정해지기 마련인데, 이번 책은 원전번역본에 대한 사전조사 없이 읽은 터라 타 번역본과 비교를 못해본 것이 개인적으로 좀 아쉽다... 원작자 존 버니언의 정본을 번역했고 그림도 있고 해설도 있으며 가이드북까지 합본으로 새로 나온 책이라고 하니 혹하는 마음에 일단 집어들었달까;;;
<천로역정>의 원제는 The Pilgrim's Progress 이다.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순례자의 진보'라고 나오는데, 줄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인물의 영적 순례체험을 담고 있는 것이다보니 한 순례자가 순례길을 여행하며 점차 (종교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진보라고 한다면 원제는 말그대로 작품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하겠다.
우리말제목 <천로역정>도 한자풀이를 하면 원제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번역그대로 원제를 살렸어도 됐을텐데 왜 굳이 한자어제목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혹시 옛날 번역문학이 주로 일본어판을 중역한 것이다보니 이 작품도 그러했나 싶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1678년에 존 버니언이 쓴 이 작품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선교활동에도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 흐름을 따라 1895년 구한말 선교사로 조선땅에 온 캐나다 선교사에 의해 영어원본이 한글로 바로 번역이 되면서 '텬로력뎡' 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근대번역문학사에서 일본어판 중역이 아닌 원어원본에서 바로 번역된 최초의 소설이라는 의의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원작자 존 버니언(1628~1688)은 정규교육을 거의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탁월한 설교자이자 작가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다. 청년시절, 종교적자유를 주창한 크롬웰 군대에 입대후 청교도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고 영국국내 상황이 다시 국교회 주도로 돌아갔을 때에도 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종교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12년의 감옥생활을 보냈으며 이후 죽을때까지도 자신의 신념이 담긴 종교활동과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 작품은 수감당시 자신의 영적 투쟁과 성장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천로역정>은 2권이라고 한다. 1부는 1678년에 2부는 1684년에 나왔는데, 1부는 크리스찬이라는 인물의 순례기이고 2부는 그의 아내의 순례기이다. 두 권이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비슷한 구조로 각각의 순례체험을 통한 성장을 담고 있어서인지 주로 1부만 번역되고 널리 알려진 편이라고 한다. 이번책도 1부의 내용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