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휴먼스 랜드 창비청소년문학 120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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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대상 수상작

천선란, 이다혜 강력 추천

창비에서 나오는 소설Y시리즈가 어느새 8번째 작품이 나왔다. 첫번째 작품인 <나나>부터 계속 읽어오고 있는데 매번 참신하고 재밌어서 읽고나면 금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그러니 이제는 영어덜트 소설분야에서 믿고볼수 있는 시리즈로 자리잡은 것 같다.

영어덜트 소설 중에서도 소설Y시리즈는 SF 인데, 대부분의 SF가 그렇듯이 소설Y시리즈도 대부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어덜트 특유의 따듯한 해피엔딩이 있어서 매 작품마다 뒷끝없이 깔끔한 결말도 마음에 든다. 또한 매번 새로운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낯선 작가의 작품세계를 경험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노 휴먼스 랜드> 는 김정 작가의 데뷔작인듯 한데 첫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하다. (그래서 대상을 받은 거겠지^^;;;) 한국형 기후재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 휴먼스 랜드'는 말 그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땅, 바로 미래의 서울이다.

어느새 나는 두려움에 익숙해졌다. 두려움은 한번 익숙해지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할머니의 예고에서 무엇도 느낄 수 없게 된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꾸하기도 했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는데? 오십 년? 백 년?" 그러니 마침내 숨을 거둔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이 슬픔이 아니라 의심이었어도 이상할게 없었다. 오랜 세월 할머니는 내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의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그에 비하면 실제 마지막은 너무나 조용하고 은밀하게 찾아와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으니까. (p. 10)

전세계적인 기후재난으로 지구상엔 사람이 살수 있는 땅보다 사람이 살수 없는 땅이 더 많아진 상태가 되었다. 낯선 타국에서 난민으로 할머니와 둘이 지내던 미아는 '올해가 마지막인것 같구나'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수없이 상상하다가 어느새 두려움은 옅어지고 할머니의 '마지막'이라는 말에도 무감해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무감해진 상태일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번엔 정말로.

기후위기도 비슷한것 같다. 기후위기가 기후재난이 되고 그런 재난을 여러차례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언젠가부터 두려움보단 무감해진 상태가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무뎌지고 무뎌지다가 엄청난 기후재난이 닥쳤을때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버리진 않을까... 그래서 서울이 정말로 노휴먼스랜드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튼 홀로 남겨진 소녀 미아는 다른 난민촌에 있는 엄마에게 가기위해 돈이 필요해졌고 그래서 타인의 이름으로 비밀임무를 감춘 채 노휴먼스랜드조사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조사단원은 총 5명이었다. 파커대장, 한나, 크리스, 아드리안, 시은(=미아)

노휴먼스랜드 운영을 골자로 하는 오클랜드 협약에 조사단 관련 내용도 명시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연구 목적 출입은 십여 개의 지정된 관찰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노휴먼스랜드이긴 하지만, 우리한테는 외진 곳에 있는 연구실이나 다름없었어. 매년 똑같은 곳들만 돌았으니까" 파견지 제한 규정이 사라진 건 불과 삼년 전이라고 했다. 빠르면 향후 십년 안에 지구의 평균 온도가 하락세로 돌아설 거라고 전망하는 보고서가 발표되어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과학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UNCDE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조사단은 '진짜' 노휴먼스랜드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p. 22)

할머니가 그리워하던 땅 서울에 처음 발을 내디딘 미아는 모든 것이 익숙한듯 신기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위해 조사단원들과 그닥 친분을 쌓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질 않았다. 조를 나누어 첫 관찰을 떠난 날 아드리안이 실종되더니 곧 사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있던 크리스는 당황하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가 '커다란 새'이야기를 했다가 횡성수설했다. 분명한건, '여기 우리 말고 누군가가 있어. (p. 37)' 를 남은 조사단원들이 깨달았다는 것.

할머니는 박사 과정을 관두고, 대학원을 다니며 진행하던 프로젝트로 창업을 했다. 회사 이름은 '이터널 플랜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탄소를 포집하는 작품을 개발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이었다. 때마침 유전자 변형 생물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던 시기였다. 이터널 플랜트는 식량 위기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업으로 주목받아 여러 벤처투자사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를 받았고, 정부 기관에서도 연구 개발 자금을 지원받았다. (p. 50)

미아는 할머니로부터 '이터널 플랜트'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낯선 땅 서울에서 '이터널 플랜트'라고 씌어진 플라스틱 조각을 발견했을때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신비로운 모험과 추억 가득한 경험을 하기엔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아드리안의 사건에 이어 크리스의 플래그리스 고백 그리고 파커가 총으로 위협하더니 무언가에 의해 크리스가 납치됐다. 이대로 복귀할 순 없었다. 남은 세명은 크리스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낯선 곳을 헤매며 깨닫게 된건 '노휴먼스랜드'가 노 휴먼스 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저기.

"이곳에 들어온 이상 나갈 수는 없어요. 보안이 중요한 시설이라서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p. 146)

크리스를 찾아 헤매던 그들이 위험을 겨우 헤쳐나왔을 때 낯선 이가 나타나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어차피 짐도 식량도 다 잃은채 맨몸뿐이었던 조사단원들은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연구소였다. 그리고 그 연구소의 소장은 미아의 할머니와 이터널 플랜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왜 몰라봤을까... 나, 모르니? 나 앤이야. 이터널 플랜트 김 대표님의 후배, 비서, 앤" (p. 166) 앤은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미아에게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플론은 그냥 잡초가 아니야. 내 인생을 바쳐 만들어 낸 모두의 미래야." (p. 190)

앤은 할머니와 의기투합해서 스타트업 회사를 발전시켰지만 어느 순간부터 방향성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이 노휴먼스랜드로 지정되었을때 앤은 여전히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앤을 찾아왔고 앤인은 일생을 건 연구를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플론' 이었다. 하지만 앤의 설명을 들은 미아는 경악하게 된다. 앤의 계획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남은 기간은 고작 일주일 뿐이었다.

다른 소설Y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노 휴먼스 랜드>도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는 듯한 선명한 몰입감을 선사해주는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면 긴박한 모험 영화를 VR로 한바탕 제대로 체험하고 난 기분이랄까. ㅎ

기후재난후 세계의 모습이 어떨지, 서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한 소녀의 결단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직접 작품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든 푸욱 빠져들어 재미와 감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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