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은 얼마 안전가옥 쇼-트 13
하승민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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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차는 숫자로 되어 있다. 숫자는 처음에서 뒤로 갈수록 계속 증가한다. 때로는 엄청난 상승폭으로 증가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 훅 내려간다. 머리속에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투자경험이 있다면 더욱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가장 고점이 만배 이상 뛴 숫자다. 이런 숫자가 가능한 세상은? 암호화폐 시장이다!

내 학창 시절은 보잘것없이 흘렀다. 녹색 칠판으로 가로막힌 벽, 죄수복을 복사해 붙여 넣은 듯한 교복, 호르몬이 넘치는 남학생들이 뿜어내는 쉰내가 내 10대 후반을 정의했다. 묵은 빚을 안고 하루하루 사는 기분이었다. 이 빚을 다 갚는 날 교실을 빠져나가면 분명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저 뭔가가 달라졌으면 했다. (p. 14)

이정환은 현재 29세 무직이다. 아르바이트로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고 있다. 집안 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고 본인의 미래도 달라진게 없었다.

졸업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에는 들어갔지만 취업은 하지 못했다. 계층과 위계의 구분이 격자처럼 얽힌 세상에서 나는 분화되지 못한 종이었다. 남성으로 분류되게는 약자였고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패기, 야망, 열정이 부족했다. 재산으로 보면 소외 계층에 가까웠으며 그렇다고 여자나 아이도 아니었느니, 말하자면 종의 외곽에 존재하는 돌연변이였다. (p. 15)

시장 골목 안 치킨가게에서 닭을 튀기고 있는 정환에게 현기가 찾아온다. 현기는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다. 정환이 불량한 친구에게 머리카락을 라이터로 그슬리고 있을 때 그 라이터불을 끄게 만들어준 친구가 현기였지만 그렇다고 현기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피우며 몰려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을 정환에게 소개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현기는 현기대로의 불량한 삶을 살았고 정환은 정환대로 착실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현재 둘이 처한 현실은 그닥 다를 게 없었다. 현기가 정환에게 제안을 한다. 돈을 줄테니 함께 살인을 하자고.

"법을 어기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의 돈을 빨아먹을 방법이 있다고 했죠. 몇백 몇천이 아니라 억 단위로요" (p. 28)

현기와 정환의 삶과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최닥은 치과의사였다가 주식투자자였다가 코인투자자가 됐다. 코인투자자라기 보다는 창조자라고 해야 하려나... 대선캠프에서 후보자의 토론 준비를 위한 참고인으로 최닥은 유 후보를 만나 자신이 어떻게 코인 세상에 발을 디디고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으며 그 세계가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내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도덕적으로 옳은 건 아니지만 불법은 아니라면서.

"담합을 해서 조작을 시도하셨는데, 암호 화폐 시장에서는 공정한 전략인 모양이죠?"

"말씀하시는 담합이 별게 아니에요. 암호 화폐까 가격 변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려면 여러 조직이 각자 역할을 해야 해요. 코인은 상품이니까요. 세간에서 조작이라고 마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고요. 마케팅이나 광고 행위를 문제 삼을 수는 없잖아요?" (p. 76)

최닥은 친구들과 코인 투자사를 만들었고 래더코인을 유통시켰다. 현기가 감옥에 가기 전 절도를 하러 들어간 집이 최닥의 집이었고 거기서 가지고 나온 것들 중에 래더코인 관련 문서도 있었다. 현기는 정환에게 코인이 뭐냐고 어떻게 사는거냐고 물어보고는 정환에게 대신 계정을 만들어 코인을 사달라고 하면서 투자금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기가 절도죄로 2년간 감옥을 다녀오는 동안 래더코인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버렸다. 그 뒤의 일들에 대해 현기나 정환같은 이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숫자만 보일 뿐이었다.

궤도를 이탈해 추락할 줄 알았던 수익율이 어느덧 4000퍼센트여싿. 현기의 500만원, 아니 우리이 500만원은, 이제 2억이 되어 있었다. 현기는 여전히 내게 같이 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꾸준히 미끼를 던질 뿐이었다. 코인이 싸구려였던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정배를 납치하지 않는 대가로 내가 포기해야 할 기회 비용은 증가하고 있었고, 언젠가 이 활황이 정점을 찍고 고꾸라지기 시작할 때 내가 느끼게 될 상실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p. 83)

현기는 정환에게 박정배라는 사람을 납치해와 달라고 했다. 현기가 감옥에서 알게된 박정배라는 인물을 그저 남치만 해오라고. 잠이 드는 약도 줄 것이고 마지막은 자신이 직접 처리할 거니까 박정배를 자신의 눈 앞에만 데려다 놓으면 코인의 절반을 준다고 했다. 정환은 주식투자는 해봤지만 코인투자는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500만원이 2억이 되는 걸 보면서 정환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현기의 제안이 점점 사소한 일처럼 할법한 일처럼 여겨지고 정환이 받게 될 돈이 점점더 탐이 났다. 가져본 적도 없는 돈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돈은 욕망이 빚은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머치 깨닫지 못했다.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패착이었다.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종이 쪼가리건 금속이건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개념이건, 욕망을 투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우리는 허상을 주고받으며 욕망을 해소하니까. 화폐는 욕망 때문에 생겨난 존재이고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코인의 가격은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는 만큼 솟구칠 것이다. (p. 91)

정환은 주식투자를 연습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커뮤니티에는 정보만 오가는 것이 아니었다. 온갖 풍문과 욕설과 야설이 엉켜드는 곳이었다. 커뮤니티를 드나들며 그러한 글들과 반응들을 보며 정환은 '무감각해졌다. (중략) 어지간히 지저분한 말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산성 물질 같은 패륜성 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노골적인 성애 묘사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기꺼이 타인을 조롱했다. 사람들과 함께 진영을 이루어 상대편을 욕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인것처럼 느껴졌다. 비난의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노력하지 않았다는 프레임을 씌웠고 강자는 위선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했다. 강자도 약자도 아닌 자에게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폭격을 가했고, 그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외모를 품평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던 본마음이 있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내밀한 목소리를 아무렇게나 배설하는 은밀함이 존재했다. 윤리와 규범의 경계가 무너져도 괜찮은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p. 78)' 그리고 매일같이 래더리움 코인가격을 확인하며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 갔다. 하지만

최후의 희생자는 내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폭탄을 돌리면서, 최고점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자신이 아닐거라 믿었다. 자신이 투자하는 시점은 남들보다 조금은 더 빠른 순간일 것이라고, 매수 후에 곧바로 매도를 한다면 조금 더 운이 나쁜 누군가에게 폭탄을 건네면서 자신은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 118)

최닥은 유 후보에게 코인투자는 철저한 도박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래서 빠져드는 것이라고. 그 세상에는 조작이 불법이 아니었다. 어차피 법으로 관리되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코인회사는 관리자와 기타 운용팀과 계약을 맺고 서서히 시장을 조종한다. 일반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들의 투자금으로 서서히 코인의 가격을 올려나간다. 점점 가팔라지는 코인가 상승세를 보며 서서히 일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시장에 유력종목이라는 투자조언을 뿌리면 사람들은 점점 더 투자금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제 초반 투자비용을 넘어 순전한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코인회사의 순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코인가를 섬세하게 조절해 나간다. 언제나 작전이 중요하다. '나는 남들과 다른 거라는 희망을 품고 떠내려가 절망의 소용돌이에서 뱅글뱅글 돌다 익사해 버리고 마는 곳(p. 122)' 이라는 것을 코인투자라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엔 코인을 믿지 못했던 정환도 그 수익률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듯이.

리딩방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만 바라봤어요. 손을 모으고 계시를 기다리는 거예요. 이걸 사라, 저걸 사라. (p. 133) 그러면 우리가 말하는 대로 돈이 움직여요. 무슨 교주라도 된 것 같더라고요. (p. 134)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자신의 미래가 절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 같아도, 세상 사람 모두가 망가지고 무너지더라도, 자신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빛을 비추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에 병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해 주는 곳에 마음을 기대는 법이다. 최닥과 친구들이 이용한 건 바로 그 연약한 마음이었다. (p. 135)

현기와 정환이 코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열심히 한건 아니었다. 현기가 우연히 얻은 도둑문서로 알게된 래더코인을 훔친돈으로 사놓고 감옥에 다녀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이 엄청난 금액이 된 코인가격을 보며 정환은 현기의 제안을 점점 뿌리칠 수 없어져갔고 매일같이 코인가격을 확인하며 점점 커져가는 욕망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되어 갔다. 점점 나빠져가는 상황이 정환을 점점 더 코너로 몰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은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현실이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믿는다. 나는 신이 아닌 것을 믿는다. 나는 사실을 믿는다. 나는 숫자를 믿는다. 나의 신은 숫자다. 모니터에 뜬 숫자가 나의 신이다. 욕망에 따라 오르내리는 이 정작한 그래프가 내 신의 가격이다. 나는 이 신이 내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을, 나의 신념을 알고 나를 위로할 것을 믿는다. 나는 기도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모으고, 속에 담은 말들을 중얼거린다. 당신을 소환한다. 당신에게 토로한다. (p. 181)

최닥은 자신이 마치 교주가 된 것 같았고 정환에겐 숫자만이 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세상은 둘다 가상의 세계, 암호화폐 세상이었다. 숫자가 신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숫자가 종교가 될 수는 있어 보인다. 이 소설 속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최닥은 어떻게 됐을까? 정환은 현기의 제안을 어떻게 했을까? 숫자는 과연 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었을까? 그 세상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읽는 내내 <달까지 가자> 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달까지 가자>는 코인투자에 관한 유토피아에 가까웠다면 <당신의 신은 얼마>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코인투자의 초기 이익을 올린 개미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달까지 가자>를 읽었을때 그 소설이 유토피아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소설을 통해 알고나니 그건 거의 유토피아였다. 디유토피아는 현실의 긍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아진 세상을 그려내고 디스토피아는 현실의 부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빠진 세상을 그려낸다. 유토피아를 꿈꾸다가 디스토피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현실은 더이상 유토피아의 긍정성이 먹혀들지 않을 때다. 디스토피아는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늘 더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달까지 가자> 에서 가능했던 얼마간의 개미의 성공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작품이 말해주는 듯 했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카지노 사장이듯이 코인투자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그 회사 뿐인것을, 황량한 사막같은 현실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개미는 모래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모래만 파고 있는데, 그때 개미들의 신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숫자가 아니라 보이는 현실을 믿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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