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닥은 자신이 마치 교주가 된 것 같았고 정환에겐 숫자만이 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세상은 둘다 가상의 세계, 암호화폐 세상이었다. 숫자가 신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숫자가 종교가 될 수는 있어 보인다. 이 소설 속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최닥은 어떻게 됐을까? 정환은 현기의 제안을 어떻게 했을까? 숫자는 과연 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었을까? 그 세상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읽는 내내 <달까지 가자> 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달까지 가자>는 코인투자에 관한 유토피아에 가까웠다면 <당신의 신은 얼마>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코인투자의 초기 이익을 올린 개미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달까지 가자>를 읽었을때 그 소설이 유토피아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소설을 통해 알고나니 그건 거의 유토피아였다. 디유토피아는 현실의 긍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아진 세상을 그려내고 디스토피아는 현실의 부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빠진 세상을 그려낸다. 유토피아를 꿈꾸다가 디스토피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현실은 더이상 유토피아의 긍정성이 먹혀들지 않을 때다. 디스토피아는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늘 더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달까지 가자> 에서 가능했던 얼마간의 개미의 성공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작품이 말해주는 듯 했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카지노 사장이듯이 코인투자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그 회사 뿐인것을, 황량한 사막같은 현실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개미는 모래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모래만 파고 있는데, 그때 개미들의 신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숫자가 아니라 보이는 현실을 믿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