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 삶은 하나의 이야기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이은선 옮김 / 늘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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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Narrative

이 책은 우리에게 프랑스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문학이론가, 정신분석가, 기호학자 등으로 알려진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한나 아렌트 독해이다. 그녀는 1990년대 캐나다 토론토대학 알렉산더 강좌에서 우리 시대의 사상적 거장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 강의했는데, 원래 불어 강의를 당시 통역자였던 프랭크 폴린스 교수가 영어로 옮겨서 2001년 토론토대학 출판부에서 [Hannah Arendt : life is a narrative]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p. 170 -역자 후기 中)

이 책은 그러니까 일반 대중을 위한 한나 아렌트 해설서는 아니다. 토론토의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했던 강의 내용을 옮긴 책이기에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얇은 두께임에도 더디게 넘어가는 책이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에 대한 페미니스트 학자의 해석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또한 '이미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심각하게 토론된 그녀의 정치적 작품들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을 것입니다. (p. 7 - 서문 中)' 라는 저자의 말에서 한나 아렌트의 저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가 부담없이 한나 아렌트에 대해 좀더 알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신학자가 되려는 생각으로 공부에 전념하며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일에 몰두하는 가운데 그보다는 삶이 젊은 철학자의 사유 속에 본질적인 주제로 자리 잡았다. 먼저는 단순히 생존 자체 였다. (중략) 처음부터 삶과 사유는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녀의 다양하지만 서로 깊게 연결된 지적 오디세이는 삶을 그 중심에 두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p. 10, 11)

나는 그 유명한 [전체주의의 기원] 이라던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한나 아렌트의 본격적 사상서를 아직 읽지 못했다. 그저 철학서에 인용되는 구절을 조금씩 읽어보거나 위인전처럼 나온 한나 아렌트의 삶에 대한 에세이를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짧은 생각으로 한나 아렌트는 현실에 중점을 둔 정치철학자 라는 정도의 생각을 해 왔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느껴진 한나 아렌트는 굉장히 기독교적인 사상가였다는 점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박사학위 논문은 [성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 이었고 공부의 시작도 신학자의 길을 생각하며 첫 방향을 잡았었다. 또한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도 역자의 전공분야가 유교와 기독교를 통합하려는 학문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는 이러한 이 책의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나 아렌트가 제국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강조한 인간 삶의 '잉여성'이 자동화가 판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도리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p. 14)

인간-삶의 첫 교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가장 직접적으로 공유된 행위이고,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정치적 행위이다. 마침내는, 그리고 바로 이야기 때문에, '최초' 자체가 해체되고, 이야기하기의 무궁함 속에서 '낯설음' 속으로 흩어진다. 그러므로 아렌트의 이야기 개념은 하이데거가 존재를 본질화하고-초기화하며-이성화시키는 것에 대한 급진적 대답이다. 짧게 말하면, 아렌트의 이야기 개념은 하이데거 존재와 그의 시적 언어의 면밀한 해체다. (p. 55)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대해 기존의 정치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과는 다른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성어거스틴 에서 하이데거 뿐만 아니라 그녀가 탐구했던 소설가들을 통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서 핵심은 '이야기성' 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 책의 제목은 저자의 논리에서 결론에 해당하는 문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이야기다'

하나의 탄생에 견줄 수 있으며, 우리의 이방인 됨에 보금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정치적 행위를 위해서 한나 아렌트는, 거의 환상 없이,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고, 또한 그것을 현재에 살도록 초대한다. 물론 그러나 항상 하나의 최적의 정치 행위를 위해서 바로 그 기초가 되는 용서와 약속과 함께하면서. (p. 153)

역자는 크리스테바가 '그녀(=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유는 시와 소설, 철학과 정치, 또는 플라톤이나 하이데거와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의 간극과 구별에서 결코 어느 한 쪽을 결정론적이고 배타적으로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보다는 둘에게서 모두 영향을 받고서 그렇게 상반되는 것 같은 두 관점과 충돌을 점점 더 깊이 있게 통섭해서 결국 인간의 '삶'이 '정신'의 삶이며, 그런 의미에서 '삶이 곧 사유'라는 말이 가능해지도록 했다. (p. 174)'는 것을 밝혔다고 설명한다.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페미니스트 문학이론가 라는 크리스테바는 자신의 풍부한 지적 토대 위에서 온갖 철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저러한 통섭의 사고가 가능했을지 모르겠으나 그저 일반 독자인 나로서는 크리스테바의 논리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이기도 한 크리스테바가 정신분석과 마르크시즘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던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자못 호기심을 남겼다. 다음에 한나 아렌트의 사상서를 읽게 된다면 그녀의 기독교적 사고관과 정신분석과 마르크시즘에 대한 입장을 잘 들여다봐야 겠다는 지침?!을 내게 주었다는 점이 이 책을 읽은 가장 유의미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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