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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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이라는 작품을 통해 애나 번스 라는 작가를 알게 됐다. 북아일랜드 분쟁을 배경으로 작가만의 독특한 여성서사를 보여주었던 <밀크맨>은 여러면에서 인상적인 작품이었기에 첫 장편 소설이라는 <노 본스>에 관심이 갔다. 서평단으로 당첨되어 받은 가제본은 비록 본문의 50% 정도 분량이었지만 애나 번스 특유의 표현은 여전했다.

첫 페이지의 주석에서 대문자로 시작하는 트러블은 벨파스트 분쟁에 있어 알아두어야 할 단어인 것 같다.

the Troubles -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약30년간 계속된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둘러싼 혼란기. 영국 본토인 북아일래드 내에서 친영국 진영과 친아일랜드 진영이 무력 충돌을 일으키며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3,5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트러블이 있을 거야"

"오늘밤에 시작한대. 데리에서는 벌써 시작했고. 엄청 위험해진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우리가 여기 나와서 놀 수가 없다는 말이야" (p. 4)

어린 아이들이 골목에 모여서 놀고 있다. 새로운 소식을 나르며 말하기를 좋아하는 한 친구가 '트러블'에 대해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며 친구들에게 전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게 정말로 일어날지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다. 그저 평소대로 골목에서 놀 뿐이었다.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와 반겼다. 차와 빵을 대접받고, 차와 케이크, 차와 비스킷, 차와 감자칩, 차와 레모네이드, 차와 담배를 대접받았다. 어딜 가든 차가 나왔다. (p. 17)

제임시가 다음번 파견을 나왔을 때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이제는 영국군이 아도인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어쨌거나 아도인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영국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쓰레기통 뚜껑을 쾅쾅 치고 호루라기를 불고 주먹을 휘둘렀고 밤이면 '살인자아아'하고 부르짖기도 했다. (p. 29)

1969년 영국군이 처음 벨파스트에 도착했을때 사람들은 군인들을 반겼다. 군인들이 순찰할 때면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건네주곤 했다. 하지만 곧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작가는 그저 계속 현재 시점으로 그 순간을 표현할 뿐이다. 긴 시간의 북아일랜드 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긴 시간 동안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은 소설속에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유는 몰라도 폭력에 또 폭력이 이어지는 장면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1971년이었고 아무 동기도 없어 보이는 범죄가 숱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시체가 많이 나왔고 일부 신문이 뒤쪽 면에 기사가 부지런히 실렸다. (p. 30)

"아니 안돼. 가라. 넌 잉글랜드 놈이잖아. 이제 오지 마" (p. 40)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동기 없는 범죄 가운데 또 하나가 일어났을 뿐. (p. 41)

북아일랜드의 아도인 이라는 마을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가톨릭계와 개신교가 길 하나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는 친척관계일지라도 적일 뿐이었다. 너무 쉽게 목숨이 없어지곤 했지만 마을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모두가 보았어도 영국군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핸래티 선생만큼이나 못생긴데다 병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도 매한가지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르게 창조하시므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미쳤는데, 방금 일어난 엄청난 시간 낭비가 기가 막히다는 듯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p. 44)

주요 화자는 어밀리아 이다. 어밀리아의 네댓살 시절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어밀리가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한 여자의 인생사로 읽혀지도 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라서 그랬을까? 소설 속엔 제정신인 어른이 단 한명도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학교 선생님은 애들을 때리고 욕하며 머저리 취급하고 부모는 자식을 죽일 만큼 패거나 형제자매사이엔 폭력을 넘어 강간까지 이루어진다. '하지만 엄마는 절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 어리석고 늘 딴 데에 정신이 팔려 있고 생각이 없는 족속들이다. 아무것도 모른다. 항상 뭐든 엉뚱하게만 받아들인다. (p. 72)' 도무지 제정신으로 살 수 없는 너무나 폭력적인 환경에서 어밀리아만이 고요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신기하기 까지 할 지경이었다.

언니한테는 그저 재미있는 일이기만 하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는 정말 끔찍한 사람이 있다. 언니하고 나는 세상을 사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언니가 어떤 일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게 나에게는 놀랍기만 했다. 언니 세계에서는 폭력이 비타민제를 먹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나하고는 정반대였다. (p. 105)

그렇게 어밀리아는 어쨌든 성장했다. 성장할수록 폭력이 너무나 끔찍할 따름이라서 어떻게든 피하며 살고 싶었다. '모두가 다 그쪽 성향인 것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당연히 그랬다. 소요에 참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학생들도 있었다. 종교적이거나 뭔가 영혼과 관련된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 그러니까 사이에 낀 사람들, IRA는 아니어도 이런 시기에는 늘 동참하는 특수한 동조자들도 있어서, 이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나는 안한다고 말하기는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p. 111)' 어밀리아는 그 어느 쪽에도 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한 태도는 공격의 대상이 될 여지가 있었다. 개인적 감정이 안 좋아도 대의적으로는 다른 명분을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였다.

"무슨 일이야?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일어났대?" 하며 숙덕거렸다. 자기들끼리 사라진 아이들의 수와 정체를 헤아리면서 죽은 소년의 미스터리를 순식간에 풀었다. 당연히 목격자는 한명도 없었고, 경찰이 사람들을 붙들고 신문을 했지만 대개, 늘 그러듯이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 (p. 138)

'결투나 개인적 원한에 대해서는 아무 일 않고 묻어두는 게 최선이었다. (p. 146)' 딱히 큰 사건이 없어도 사람들은 수시로 죽어나갔다. 하다못해 러시안 룰렛이라는 게임으로도 죽었고 소년들의 장난에도 죽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영국군 이나 경찰 모르게 폭력을 묻고 장례식을 치를 뿐이었다.

다들 첨한 일이다, 끔찍한 일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p. 147)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은 일상에서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수 없이 마주치더라도 따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갈등시키고 폭력을 부르게 하는지는 알수 없다. 그저 폭력들이 나열 또 나열되는 소설을 읽으면서, 비록 절반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머지 뒷부분의 절반은 점점더 증폭된 폭력이 점점더 잔혹한 죽음이 나오리라는 것이 예상되는 바 그저 마음이 저릿해져옴을 참을 뿐이었다.

<노 본스>는 <밀크맨>으로 2018년 부커상을 수상한 애나 번스의 첫 번째 소설이다. (중략) 이 소설은 1969년 영국인이 처음 북아일랜드에 왔을 때부터 1994년 정전 선언 때까지, 벨파스트 안의 아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한 장면 한 장면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형식으로 한줄기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형태가 아니라 분절된 단편들로 이루어졌다. (p. 236) 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는 보통 남자들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주도하는 군사적 움직임을 따라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노 본스>는 어밀리아를 비롯해 가장 약한 존재들이 폭력의 무게를 가장 무겁게 짊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략) <노 본스>는 17년 뒤에 <밀크맨>이라는 독창적 문체와 강력한 목소리의 완성도 높은 소설로 재탄생할 토대와 씨앗을 고스란히 갖춘 소설이다. '노 본스'(No Bones)라는 원제를, '본'(Bone)이 소설에서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그대로 음차해서 제목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본'은 아도인에 있는 어떤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여러차례 등장하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라는 뜻의 숙어 'no bones about it'에서 가져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뼈'(bone)는 이 소설에서 여자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앙상한 몸, 욕구도 희망도 없는 몸,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몸을 뜻하기도 한다. (p. 238~239) -옮긴이의 말 중-

가제본에서 소설은 비록 원문이 절반 정도만 실렸으나 '옮긴이의 말'은 전문이 실린 듯 하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소설의 뒷부분도 예상해 볼 수 있었다. 어밀리아는 거식증이 걸릴 정도로 자신의 신체적 상태를 통해 폭력을 상징했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정신적 상태마저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럴만한 시대였을 것 같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시대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었다.

ps. 뒷표지의 구병모 작가의 추천사가 너무 훌륭하다. 소설을 잘 쓰는 작가는 추천사도 이렇게 잘 쓰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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