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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 신화와 어원으로 읽는 요가 이야기
클레망틴 에르피쿰 지음, 류은소라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뒤집히고 얽히고 버티는 신들의 요가, 그 안에서 삶의 균형을 배우다
신화와 어원으로 읽는 요가 이야기
나는 번역된 외국서적을 볼 때마다 원제목에 늘 관심이 가곤 한다.
프랑스 요가강사가 쓴 이 책의 원제는 Le chien tête en bas, 45 recettes d'asanas 인데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보니 '아래쪽의 개는 45개의 파인애플 레시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나온다. 표지에 개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이 책엔 45가지의 요가동작이 나온다. 원서의 제목센스가 남달라서 한국어판 제목이 고민됐을 것도 같은데, 한국어판 제목이 내용에 아주 적절하게 잘 붙여진 것 같다.
여하튼, 이 책은 요가관련 책이자 인도신화 관련 책이다.
이 책은 이야기의 모든 형태를 절충하는 데 목적을 둔 책은 아니다. 당신의 요가 경험을 확장시켜 줄 사유의 길을 제공하고자 한다. 요가 자세와 신화적 이야기를 원활히 연결하기 위해 각 요가 자세에는 상징적 해석이 뒤따른다. 이 해석들은 읽고, 듣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구상됐다. 고심 끝에 나온 것도 있고, 흐름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온 것도 있다. 이 책의 상징적 해석들은 어떤 학술적 권위도 지니지 않는다. 해석은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다. (p. 8)
저자가 미리 밝혀놓는 이 책의 의도는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르려 하는 물음표들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신화의 학술적 해석을 담은 책이 아니라 요가의 상징적 해석을 제안해본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요가를 배웠던 사람이라면 그 동작에 깃든 상징성에 감탄하게 될 것이고 요가를 모르를 사람이라면 요가 와 신화의 연결고리에 흥미를 갖게 될 것 같다.
100브라흐마 년(지구상의 시간으로 수천억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 되면, 창조신 브라흐마의 생이 끝난다. 이때 지구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소멸한다. 이를 마하프랄라야, 즉 대홍수라고 부른다. 뱀의 신 세샤의 똬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비슈누신만이 남아 태초의 물 위를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수천만 년 동안 무엇으로도 나뉘지 않은 미분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창조의 힘이 잠재되어 있는 이 상태는 새로운 우주 주기가 시작될 때까지 이어지며,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우주 또한 동일한 과정을 거쳐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우주는 다시 만들어지고 다시 미분화 상태에 접어든다. 우주는 창조와 소멸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따라서 진정한 시작도 끝도 없다. 다만 반복만 있을 뿐이다. (p. 19)
인도신화관련 책을 쉽게 나온 책으로 몇권 읽어봤었는데, 읽을 때마다 참 신비롭다는 느낌이 든다. 윤회라고 하기엔 지구에서의 인간삶의 반복을 넘어 전 우주적인 반복의 생성과 소멸을 담은 인도신화는 과학적인 빅뱅이론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경이전 고대신화들에 어김없이 대홍수가 등장하는 걸 보면, 석기시대에 인간이 대홍수를 겪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은 비슷한 종교관이 다른 구체화를 거친 것이 문화의 발달사 같기도 하고 여튼 묘하게 공통적인 면이 신기하기만 하다.
인도에서는 뱀과 인간이 항상 가까이 살았기 때문인지 뱀과 관련된 풍부한 상징들이 전해 내려온다. 힌두교 사상에서 뱀은 세상을 떠받드는 존재, 비슈누의 잠자리, 과거 세계의 잔재이자 미래 세계의 기원이다.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의 능력도 이러한 상징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뱀은 반복되는 창조와 소멸 과정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p. 30)
거의 대부분의 신화에 뱀이 등장한다. 때로는 풍요로운 대지의 신이기도 하고 때로는 악의 상징이기도 한데 인도신화에서는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 하다. 허물을 벗는다는 것이 재생과 반복의 상징성을 가지게 될때 뱀은 세계관과 연결된다.
인도신화에는 엄청 많은 신들이 등장하던데, 커다란 나무줄기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들처럼 엮이는 일관성 보다는 새롭게 자꾸자꾸 생기고 서로 연결되어 끝도 없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것이 인도신화의 세계인 것 같다. 이 책의 특성과 인도신화의 특성이 겹쳐져 내용들이 어떤 흐름보다는 따로따로 읽히는 책이다.
7일 안에 우주는 소멸할 것이다. 홍수가 일어나 모든 존재가 사라질 것이다. 큰 방주를 만들어라. 모든 식물의 종자와 동물의 종을 모아라. 일곱 명의 현자와 그들이 가족을 데려오거라. 그리고 거대한 뱀 바수키를 잊지 말아라 (p. 36)
수메르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고대그리스 신화에도 인도신화에도 어쩜 이렇게 자꾸 대홍수와 큰 방주와 7일이 나오는건지... 모든 신화들의 시작이 어떠했고 어떻게 파생됐기에 이런 공통점들이 있는 걸까...
서사와 구전 사이, 허구와 실제 사이에 놓여 있는 이 서사시들은 인간 전체의 운명을 다룬다. 영웅들의 활약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배경이 되는 갖가지 상황을 통해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신과 악마는 인간의 이야기에 얽히고, 동물들은 말하고 사유한다. 큰 이야기에 액자 형식으로 삽입된 수많은 이차적 신화, 우화, 전설들은 저마다 윤리적, 철학적, 정치적 사유를 담고 있다. (p. 139)
신화는 서사와 구전 사이, 허구와 실제 사이에 놓여있다. 이 서사시들에는 신과 동물과 영웅들과 인간들이 등장하고 소멸한다. 그 오랜 신화적 요소들이 인도에서는 요가 동작에도 남겨져 있다.
식물의 모습, 동물의 모습, 물질의 모습, 상징적 모습이 구체화된 45가지 요가 동작들은 때로는 수행의 동작이기도 하고 때로는 깨우침의 동작이 되기도 한다. 요가 자세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매 동작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요가를 따라할 마음 보다는 그 동작이 상징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 상관없기도 했다.
흔한 물건에도 내 추억의 순간을 함께 하게 되면 세상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듯이, 운동으로서의 요가동작들도 그 상징적 이야기들을 알고 하게 되면 훨씬 더 특별해질 것 같다. 나는 하루 일정정도는 꼭 멍때리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좀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법해 보이는 요가동작으로 명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명상의 순간 신화속 신들이 내 머릿속을 떠돌다 신체적 균형 못지 않은 정신적 균형도 함께 알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나저러나 뻣뻣의 정점같은 내 몸으로 그릴 수 있는 신화(=요가동작)가 있을런지 걱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