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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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이 지배하는 세상의 평평함을 읽는다!

인류 역사에서 평면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평면의 진정한 가치를 통찰하는 책

표지의 띠지 문구 中

"우리가 서 있는 곳, 건물을 짓는 토대이자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평면의 실체는 무엇일까?"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다"

라고 갈무리한다.

저자는 역사와 지리학 박사이다. 그래서인지 평면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변화의 추이를 관찰하고 지도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자주 이용된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평면! 평평함! FLATNESS! 는 어떤 의미를 지녀왔을까?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면성은 사실 일관되게 공간을 가리키는 개념이며, 그 근본적인 의미의 범위도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글자 그대로의 뜻이건 은유적으로 쓰이건, 평면성의 근본 요소는 '불변성'이다. 이것은 흥미롭지 못한 무미건조함과 다르다. 평면성의 은유적 쓰임새와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오히려 서로 겹치면서 상호작용하여 불변성이라는 그 뜻의 본질을 공유하는데,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면서도 일관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나 보다 차원 높은 개념적 은유에서나 평면성은 언어학에서 말하는 용어의 이식성에 있어 '불변성의 원칙'에 해당된다. (p. 13)

평면성에 대하여 저자는 언어적 역사적 의미를 추적한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생각해보니 사실 우리가 살고 생각하는 세상은 2차원과 3차원의 모호한 경계위에 있다.

2차원의 평면위 글자를 읽고 영상을 보고 생각은 3차원 입체로 떠올린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상상이지 실제적 3차원은 아니다. 3차원 입체적 몸뚱아리를 갖고 있지만 입체적 인것은 때론 예측불허의 불안감을 주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선으로 표시된 2차원적 풍경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왜일까? 저자의 말처럼 평면성에서 불변의 원칙으로 인한 평안을 느끼는 것일까?

기준점으로서 지상 표면의 우선순위 역시 중요하다. 즉 인간은 지하 또는 바닷속 혹은 바다 위가 아니라 땅 위에서 살도록 진화해왔고 중력으로 지탱된다. 우리는 이 표면의 중요성과, 우리 발밑의 땅과 우리를 뚤러싸고 있으며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대기의 첨예한 차이를 잘 알고 있지만 우리 발밑, 심지어 불과 몇 미터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심각할 정도로 아는 바가 없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매우 피상적이다. 따라서 공간개념의 발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표면으로서 지상 표면을 인식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p. 24)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땅위에서 사는 인간이 땅보다는 산위다 바다속을 더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땅밑은 뭔가를 묻거나 뭔가를 파낼때만 들여다볼 뿐 평생을 지지하고 사는 땅에 대해 그 속에 대해 언제 생각해 본 적 있을까? 물론, 저자또한 땅 속보다는 땅의 표면 즉 평평하다고 인식되어지는 지상표면에 집중한다. 이 책의 주제는 평.평.함. 이니까. ㅎㅎ 그런데 따지고보면 지표면도 평평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둥.그.니.까. ㅎㅎㅎ "평면성은 특히 존재론적 문제를 제시한다" 는 저자의 말은 책을 읽다보면 신기하게도 고개끄덕여지게 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우주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형 천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었어도 지구평면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이론들 중 일부는 종교 사상과 창조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과학과 객관적 관찰에서 증거를 찾으려 했다. 현대의 창조론자들은 진화 모형에 맞서 생명을 설명하는 문제에 계속 초점을 맞추느라 땅의 형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지구평면설을 거의 채택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도 세계까 평평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연관성은 없지만 창조론자들과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비유적으로 '지구평면론자'라고 불리곤 한다. 이러한 비유가 가능한 것은 이 믿음이 미개할 뿐 아니라 공간의 기본 개념이 평면론에 내재된 심한 무지와 멍청함을 확인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p. 81)

기원전 고대그리스 과학자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막대기와 햇빛만으로 계산해 냈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천년 넘게 믿음을 얻지 못했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고 믿는만큼 이해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땅이 평평하고 바다가 평평하다고 말해주는데 그 합체적 덩어리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우주에서 찍혀보내온 사진이 등장하기전까지는 믿음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보여지고 나서도 그 실체를 의심하고 다른 무언가에 믿음의 중심을 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미국의 지형학자 윌리엄 모리스 데이비스는 '유년기'의 경사지가 서서히 마모되고 '노년기'와 관련된 평탄화된 지형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삭박작용과 붕괴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연의 쇠퇴에 뿌리를 둔 어느 정도의 비관주의에 따라 붕괴와 평탄화가 함께 진행된다는 주장도 종종 나왔다. (p. 96)

인생은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벌거벗고 주먹을 꼭 쥔채로 태어나 옷을 입고 손을 편채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과정이다. 가진것 없이 태어나 가진것 없이 가는게 인생이다. 그 어떤 인생의 굴곡을 겪어도 마지막 모습은 다를 수 없다. 굴곡진 인생이란 표현은 지형의 마모와 유년기/노년기를 대비시킨 학자의 말을 수긍하게 한다. 그럼, 지구가 굴곡이 없어지고 평평해질 수록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인가?! ㅋㅎ

불변을 개념의 중심으로 생각하면, 반복되는 평평함은 예측 가능함, 단조로움, 부재, 비어있음, 지루함 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이 개념들의 의미는 사회집단마다 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p. 126)

평평함을 그림이나 문학으로 연결지어 생각하면 단순하고 무미건조한 느낌을 받는다.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몬드리안의 그림은 단순하다는 느낌을 주고 소설속 주인공의 성격이 평면적이라 함은 지루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몬드리안의 그림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소설속 인물들이 다 입체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비교대상이 없어 내용전개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의미가 변하든 어쩌든 평평함은 여전히 늘 곳곳에 필요하다.

스포츠의 현대화는 지형의 표준화로 상징될 뿐 아니라 경기의 규칙, 도구, 행동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절차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스포츠를 위한 장소는 보통 자연 지형과 분리되어 있었고, 공간을 현대성의 이미지와 연결된 기하학으로 바꾸는,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예로 여겨졌다. 시간과 거리가 대단히 정확하게 측정되었고, 스포츠의 공간성은 '평평한' 우주에 필요한 조건과 흡사하게 등방성을 띈 표면을 취했다. (p. 170)

가상 현실 게임은 그 지형적 다양함으로 현대 스포츠와 구분된다. (p. 192)

가상현실이 2차원의 평면 이미지에 의지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가상현실은 평평함을 자연 상태에 근접하도록 만드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p. 193)

규격화는 평면화로 연결된 때가 많았다. 농업의 발달은 땅의 표면과 구획을 규격화 했고, 가정의 부의 상징은 집앞마당의 잔디밭으로 규격화되기도 했다. 스포츠의 규격화 또한 평평한 운동장, 동일한 조건을 갖춘 장소들의 평평함을 기반으로 했다. 스포츠가 변했에도, 현실에서 가상으로 변한다 할지라도, 평평함은 유지된다. 설사 경기장의 평평함이 아닐지라도, 동일한 규칙의 적용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평평함이다.

평면성은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바꿀 때, 즉 후기자본주의 세계에서 공공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인 강제적인 자기 스펙터클화(자신을 볼거리로 만들기)할 때 치르는 대가를 빗대는 효과적인 은유다. 이렇게 전 세계가 평평해져 왔다. (p. 258)

평면화는 평등주의적이며, 지형의 변화를 사회의 지배구조가 가진 수직적 계층의 몰락, 그리고 제국주의적 기업들의 혁명적 해체와 일치시킨다. 이런 주제들은 '힘잇는 자들은 낮추고 낮은 자들을 높임으로써' 사회의 '평준화'를 촉진하는 급진적 이념들을 연상시킨다. (p. 260)

평평함은 때론 평등함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우리는 신분제사회를 생각할때 계급의 피라미드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신분탑을 부수고 지평선처럼 수평선처럼 나란히 평등한 위치라고 표현할때 신분의 평등함은 인간의 평면성을 내포한다. 평면적인 인간이어야 평등할수 있다는 것은 왠지 좀 슬퍼지는 은유이다. 여하튼 평면,평평함은 때론 때론 이렇게 혁명적 생각을 갖게 하는 때도 있었다. 평면에서 출발한 사회의 입체성이랄까;;;

평면, 평평함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은 이 책은 역사와 과학과 예술을 지나 인간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그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 로 아직 그 생각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었다. 때론 종잡을 수 없게, 때론 샛길로 빠진것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읽은 평평함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은 사고의 다양성과 관점의 다변화에 대한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평평함이 이렇게 어려운 개념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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