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듯 춤을 추듯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7
김재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SF소설이 이렇게 먹먹할 수가... 

가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책을 손에 든채 눈을 감고 가만가만 숨을 쉬어야 하는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이 소설은 현실 로맨스도 아니고 가족의 애환을 담은 것도 아니고 인연의 안타까움을 담은 것도 아닌

SF 소설이다.

그런데 몹시 인간적이다. 아니 너무 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


멀지 않은 미래인 2062년 인간의 뇌지도가 완벽히 밝혀진 때, 인간의 몸에 인공의 뇌가 합쳐진다. 그 첫 존재가 주인공이다.

전 세계 100억 인구 중에 99.5억 인구가 평생 직업 없이 살아가는 기계 자본주의 세상이고, 자율주행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세상이다.


인간의 몸에 이식되고 인간의 눈으로 처음 세상을 본 인공의 뇌는 그동안 아름다움을 숫자로 이해했던 것을 인간의 눈을 통해 새롭게 익힌다.

수술 후 처음 눈을 뜨고 거울 속의 남자를 보고 있는 인공의 뇌에게 목소리가 들린다. "너야"

아름다움은 빛이 내 눈에 닿는 순간 동시에 몸 속 신경세포들이 춤을 추는 복잡한 반응이었다. 춤을 춘다. 내 안에 것들이 온통 춤을 춘다. 몽이가 내 앞에서 춤을 추듯이


몽이는 친구다.

인공의 뇌를 만든 노아박사가 수많은 학습 마다 끝에 항상 보여주며 각인시켰던 영원한 친구, 노아박사의 딸.

몽이는 기분을 춤으로 표현한다.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춤을 춘다. 이건 기계가 따라할 수 없을 거야 라며 막춤을 춘다. 외계의 생명체를 찾는다. 외로움을 느끼지만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몽이는 살아있다. 늘.


인간의 몸에 이식되고 '사륜 익스페리움' 이름을 갖게 된 30세의 청년의 몸을 가진 인공뇌는 생각한다.

우리는 기막힌 동거를 할 것이다. 박서로는 나 이니까, 내가 박서로이니까. 인간은 기계가 되고, 기계는 인간이 된다.


인공뇌는 인간의 몸을 적응하며 바람을 갖는다. 인간이 된다는 것, 인간으로 느낀다는 것에 대해... 하지만

다른 차이는 꿈이었다. 감각은 앞으로 기계가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다. 기계에게 유난히 어려운 냄새, 맛마저도 인간의 후각과 미각에 맞게 교정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더 예민한 감각이 되어 인간을 추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공뇌가 발달해도 내가 잠들 수 있어도, 꿈을 꿀 수는 없었다.


인간의 몸을 가졌고 인간처럼 되고  싶은 바람을 가졌고 인간처럼 생각하지만 꿈을 꿀 수 없는 인공의 뇌는 우울증을 겪는다. 우울증을 겪는 AI라니... 노아박사조차 놀라며 말한다. '신기해라, 너는 한마디로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AI구나' 완벽한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AI가 너무나 인간과 동일한 뇌를 가져서 비인간적인 인공뇌가 정신장애를 겪는다니... 이렇게까지 인간과 비슷한 인공의 존재를 완벽하다 해야할지 인간적이다 해야할지...


사륜 이라는 성인남자로 처음 집에 가던 날, 그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어딘가 부작용 같은 눈물이 흐른다

고 생각한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인간의 몸이 흘리는 눈물인건지 부작용인건지 눈물에 적응하지 못한다.


인간이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인간은 그저 태어났으니 사는 줄 알았다. 만약 인간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면 하루하루가 비극일지도 모른다. 대다수 현 인류의 생은 생각을 하고 살기엔 너무 지루하게 돌아간다.

기계들이 일하고 내는 세금으로 정부에서 주는 기본소득으로 살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이 던진, 인간이 왜 살아야하냐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아왔다. 4단계 프로그램에선 138억년을 여러 차례 반복해 살아왔다. 그래서 138억년 우주에 대해, 육백만 년 인류사에 대해 생각해왔지 현재를 사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 기껏 130년을 사는 인간에게 138억년이란 시간 개념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찰나와 같고, 한 인간의 역사는 우주 흐름의 일부로만 남는다. 그러나 우주의 찰나가 너무 길고 지루했다. 누군가에겐.

138억년의 과거의 시간은 이해하지만 지금과 앞으로의 몇시간 몇년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어떤 의미일까?


친구 몽이는 외계로 메세지를 보내고 외계로부터 메세지가 오는지 관측하는 연구프로젝트에 참여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전파가 잡힌다. 우주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외계로부터의 신호를 위험으로 받아들이는 연구반대시위대를 보며 몽이는 사륜에게 말한다.

"타임워프 과학기술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왜 전파로 메시지를 보내? 직접 찾아왔겠지. 그 정도라면 이미 우주 지도를 다꿰고 있어서 지구 위치도 알고,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 것도 쉽게 알 거야. 그런데 고작 전파를 보냈어. 지금 전파 신호는 어떤 건지 알아? 지구 반대 끝에서 개미 한 마리가 땅을 네 번 친걸, 반대 편 개미가 용을 써서 겨우 알아들은 수준이라고"


사륜은 죽음연구소에 취직한다. 연구소에 간 첫날 젊은 여성이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혀가는 것을 본다. 연구원들은 그 젊은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몸은 인간이지만 뇌가 기계라서 기계라고 한다. 마루타처럼 온갖 병원균을 주사하고 치료약을 개발하는 숙주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젊은 여성의 몸을 가진 엘리야는 16년째 연구소에 갖혀 죽음의 위기를 반복하는 삶을 탈출하고 싶어하고 그렇게 탈출해서 죽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륜을 알아본다. 묻는다. 나와 네가 뭐가 다르지? 사륜은 당황스럽다.

엘리야를 보았다. 엘리야는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이해 못 하는 척했다. 매일 죽음 가까이 떨어졌다가, 매일 죽음에서 다시 건져져야만 하는 존재, 엘리야는 인간이 아니어야 했다. 그들이 왜 엘리야를 기계라 믿는지 알 것 같았다.

"난 기계야, 자살하고 싶은 기계" 엘리야가 말했다.

"그럼 난 인간이야, 자살이 싫은 인간" 내가 대꾸했다.

"네가 인간이야? 왜?"

"너는 왜 기계라고 생각하지?"

"사람들이 기계라고 말하니까"

"난 사람들이 인간이라고 말해"

나는 인간일까?

책 속에는 우주에 관련된 표현이 종종 나오는데 그 표현이 참 멋있다.

우주의 역사는 대부분 새까맣다. 별들의 생성과 소멸도 검은 우주의 색을 다르게 하지 않는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유독 형형색색으로 펼쳐지고 있다.

누군가가 스스로 죽는 일은 우주에겐 예고도 없이 일어난 거대 사건이다. '나'라는 별이 갑자기 터지면 우주에 %5Ccombi%20%5E%7B%20-32%20%7D%7B%2010%20%7D%20 초 동안, 그러니까 빅뱅이 일어난 그 시간만큼이나 불균형이 일어난다. 그것은 우주 내에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 열역학제2법칙이 급속히 일어나면서 불랙홀로 인한 중력파 못지 않은 파동이 퍼진다.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짧은 시간 동안 우주 정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예기치 못한 죽음을 자주 겪어온 우리 몸은 주기적으로 슬픈 파동을 만들어낸다. 가만히 있으면 체내에 느린 물결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죽음을 추모하는 원소들의 물결이다.

빛조차 삼켜버린 광활한 우주에서, 작은행성 지구에서, 수억명중의 한사람인 '나' 라는 개인이 먼지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주에 파동을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 비록 %5Ccombi%20%5E%7B%20-32%20%7D%7B%2010%20%7D%20초 일지라도 엄청난 일이다. 그러한 연결성은.

몽이가 연구소에서는 두번째로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외계전파신호를 잡은 날, 사륜은 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보이는 순간은 보이지 않던 모든 순간을 의미 없던 것으로 만든다. 보고 난 나는, 보지 않았던 나와 완전히 달라져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다. 진실을 알면 진실을 몰랐던 때로 돌아갈 수가 없듯이. 마치 뱃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기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휴머노이드를 반대하는 단체에 의해 노아박사가 살해당하고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제이슨 박사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며, 장례식장에서 사륜은 생각한다.

인간들에게 고통을 겪는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러간다. 순간 순간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태어난 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이 삶이 내게 너무나 길고 지루하다. ... 엘리야에게 16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엘리야가 왜 자살을 생각하는지도. 고통의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138억년의 시간을 수차례 학습한 인공지능에게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달랐다. 물리적 시간과 경험적 시간은 달랐다.


AI일때도 우울증에 걸리더니, 인간이 되고 나서도 별다를게 없었던 사륜은 상담을 하러 간 병원에서 의사는 기계로 된 하반신을 보여주며 인공적인 미소를 띄며 무엇이든 안심하고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사륜은 의사에게 '당신이 자신을 기계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이란 의심이 들었다'고 말한다. 의사는 답한다.

"우리는 양자 같은 존재죠. 상대방의 인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자가 이런 외모를 한 나를 당연히 기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기계가 되고, 그래도 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나는 인간이 됩니다.  상대방의 나에 대한 인식은 내 정체성에 중요한 요인이 되죠"

사륜은 의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의사는 모르겠다고, 왜 기계, 인간 둘 중 하나로만 나를 정의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답한다.


사고로 몸이 망가진 몽이가 혼수상태일때 사륜은 온갖 수술동의서에 동의하며 몽이가 의식만 남은 생명으로 살며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전사같은 인공의 몸은 몽이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사륜은 몽이가 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것이 더 안좋을 것 같다. 엘리야가 떠오른다. 사륜은 혼수상태인 인공의 몸을 지닌 몽이의 목을 조른다. 하지만 몽이는 눈을 떴다. 살고자 한다. 살았다. 사륜은 그날밤 처음으로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거울이 보고싶어진다. 몽이의 달라진 몸이 비치는 거울을 보며 사륜이 몽이에게 말한다. "너야"


"거울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었다" 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난다. 인간의 몸에 인공의 뇌를 지닌 사륜과 인공의 몸에 인간의 뇌를 지닌 몽이가 있는 거울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하며 끝난다. 인간의 몸으로 기계가 추지 못하는 춤을 추는 몽이에게 인간의 몸이 없어지고, 인공의 뇌로 기계가 꿀 수 없는 꿈을 꾼 사륜이 거울 속에 있었다. 이 두 존재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머릿속이 꿈을 꾸듯 춤을 추듯 몽롱하고 흐물거린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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