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이윤 리 지음, 정혜윤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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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열여섯살짜리 큰아들 빈센트를 여의었고 2024년에는 열아홉살이었던 둘째 아들 제임스를 마저 떠나보냈다. 둘 다 자살이었고 숨진 방식도 같았다

첫째 빈센트는 시적이고, 감각적이며, 삶의 기준이 높은 아이였다. 그런 빈센트가 열 살 무렵 “엄마는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에 대해 그렇게 잘 쓰면서 왜 우리를 낳았어?”라고 물었을 때 리는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빈센트가 죽기 전 여섯 해 동안 아이가 삶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도 그가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빈센트는 대화를 좋아하며 감정을 나누는 아이였고, 리는 그의 죽음에 빈센트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었다. 빈센트를 떠나보낸 지 두 달여 만에 숨진 아들과 문학과 언어, 삶과 죽음을 두고 끝없이 대화하는 내용의 책 ‘이성이 다하는 곳’을 써낸 것이다

제임스는 철학적이고, 비유를 거부하며, 여덟 개 언어를 독학하고도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그런 제임스에게 열두 살 무렵 형이자 단짝을 잃고, 깊은 외로움과 공허에 시달려야 했던 것은 엄마인 리의 예상보다 더 힘겨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끝 모를 침잠 속에서도 리는 제임스의 죽음을 제임스다운, 지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엄마로서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끝끝내 사랑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리가 감정 대신 붙들 수 있었던 것은 ‘생각과 사실’이었고, 그는 느끼기보다 ‘사유하기’를 통해 제임스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자 리의 생각은 얕은 감정의 파고 너머에 있는, 깊고 깊은 “심연에 놓인 자신”을 향하게 된다

열 살 무렵 “고통을 이해하고 고통에 대해 글도 쓰면서 왜 우리를 낳았냐”고 묻던 첫째와 말수가 적어 속을 알 수 없던 둘째. 첫째에게 살 가치가 있어도 견딜 만한 삶이 아니었다면, 둘째에게는 견딜 만한 삶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그럼에도 삶은 어떻게 계속 되는가

누군가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진 날에도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 움직인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 삶은 멈쳤는데 세상은 왜 계속 움직이는가

책은 슬픔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사라지지 않는 슬픔과 함께 인간은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냐고

자식 잃은 부모가 살아가는 까닭은 그것이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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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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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 오후 열시 이십삼분 계엄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있던 시간

내가 이 세계를 깊이 사랑한다

- 12월16일 월요일 오후 두시 사십이분
회사 동료에게 이번 계엄의 위법성을 설명하다가 이유를 모르게 언짢아졌다고 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말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지는 것 같았냐고 묻자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문한다. 나도 겪곤 하니까. 그 무서운 일을. 내게 너무나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 12월 18일 수요일 오전 네시 삼십구분
광주는 어떻게 견뎠을까. 1980년 이후로 그 혐오와 오욕을, 타지의 이웃을 어떻게 견뎠을까

- 12월 19일 목요일 오전 열두시 십칠분
그와 내가 같은 날刀에 베였다
우리뿐일까

구호는 이제 ˝윤석열을, 체포하라˝가 되었다. 평생 그 정도의 진심을 담아 누군가의 이름을 외친 적이 없다

나는 손상되었습니다
엄중함을 엄중함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받은 상처로 사랑하는 것,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남은 상처로 손상되었고
그 일부를 일기에 담았습니다

이 국면을 함께 지나온 사람들,
여러분과 동시대를 살아 다행이었고, 영광이었습니다

다른 날 다른 때 우리가 또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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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6-10-07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계염 생각할 때마다 오싹한데, 다른 사람들도 저만큼 두려움이나 심각성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와같다면 2026-10-15 16:12   좋아요 1 | URL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나는 계몽되었다˝는 변론을 보면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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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무조건 바람직하다” 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더 잘 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소통은 애초에 잘되기 힘든 일” 이다

서로 다른 몸과 사회적 위치, 권력관계 때문에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그런데도 사회는 말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계속 ‘소통하라’ ‘대화로 풀라’고 요구한다. 결국 대화와 합의의 요구 자체가 약자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자 스트레스가 되고, 소통 실패에 대한 책임마저 약자의 노력 부족으로 돌아간다

완전한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완벽한 이해를 이루겠다는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부당한 질문에는 침묵하고, 때로는 응답하지 않는 것이 낫다. 말 몇 마디로 해소되지 않는 차이 앞에서는 “파국에 이르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하고 멈출 것인가” 를 물어야 한다. 정희진이 제안하는 이런 최소한의 소통법은 어쩌면 소통의 실패가 아니라 “소통의 환상을 걷어낸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품위 있는 생존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 발화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표현의 책임‘이며, 약자와 소수자의 언어를 새롭게 발명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대화를 종료할 권리는 소통을 포기하겠다는 패배 선언이 아니라, 더 나은 소통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나의 영토를 지키는 적극적인 주권 행위입니다.˝(187쪽)

소통의 불가능성을 인정할 때 진정한 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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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9-19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과 글의 허상처럼 소통의 허상도 존재하는군요. 허상의 책임은 약자에게 주어지는 구조였군요.

나와같다면 2026-09-19 21:33   좋아요 2 | URL
강자가 선점한 주제, 강자가 만든 언어 그리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규칙 안에서 아무리 훌륭하게 칼을 휘두른들 판 전체를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강자의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 ‘내가 싸울 자리‘를 새롭게 확정하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이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때론, 소통에 얽매이지 않고, 대화 종료의 권리가 나에게 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판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디세이 메이킹북 - 현대적 걸작의 탄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다 ㅣ 영화 오디세이를 책으로 만나다
제임스 모트램 지음, 한창욱 옮김 / 더모던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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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마법의 시대가 있었다

신은 항상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말을 걸어와

가장 원하는 것은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은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다

당신은 운명을 스스로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어. 그냥 폭풍 속으로 들어가. 포세이돈 앞에 엎드려서 순순히 벌을 받으라고. 제우스가 목숨은 지켜줄 거야. 대결하려 하지 말고, 통제하려고도 하지 마. 그저 살아남아. 이번만큼은 믿음을 갖고 자신을 던져보라고, 오디세우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참된 귀향이란 단지 고향 땅을 다시 밟는 것이 아니라, 광기 속에 짓밟았던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반성과 부끄러운 역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성찰을 통해 비로소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되찾아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이라는 점이다. 끝내 반성하지 않는 이 땅의 가해자들을 향해, 영화는 묵직하고 서늘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득한 여정에서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이 맞닥뜨리는 기이한 시련들은 전쟁의 광기가 낳은 업보이자 심리적 흉터다. 무참히 스러져간 이들의 비명과 불타오른 도시의 잔상은 환영처럼 그들을 짓누르며, 귀향길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맞닥뜨리는 절망의 터널로 변모한다

3000년 전 이야기가 오늘에도 살아 있는 까닭은 이 질문들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가. 정의와 욕망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진정한 ‘귀환’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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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8-26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걸 다 만들었다는 데 박수! 저 거대한 목마와 외눈 거인...퍼펫이라죠? 다른 거인족은 또 키 2미터 넘는 사람들이 연기하고 상대역들은 키 150이 안되는 여자 배우들이 메인 캐릭터를 대역했대요. 진짜 놀라운 기획!

나와같다면 2026-08-26 04:03   좋아요 0 | URL
AI 사용을 최대한 배제하고 배우의 키차이와 원근법을 활용하여 찰영하는 과정이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 2026-08-2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같다면님 글 너무 좋네요. 살짝 전율이 왔어요.

너무 재밌게 본 영화인데 심도 있는 해석 감사합니다^^

2026-08-2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2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26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8-26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09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욥은 잿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다 잃었다. 세 친구가 찾아와 그를 위로했다. 고통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논리적으로 완벽한 답이었다. 그러나 욥은 그 답을 팽개치고 신을 향해 묻는다. 왜 의로운 자가 고통받느냐고. 어떻게 악한 자들이 번영하느냐고. 사람은 왜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오지 않느냐고. 이 무모한 질문에 신은 정답을 말한 세 친구가 아니라 욥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폭풍 속에서 더 큰 질문으로 대답한다

욥의 질문은 고통의 의미를 새로 쓰게 했다
인류의 사유가 매번 한 걸음씩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은 확률이 가르키는 답이 아니라, 그 답 너머를 향한 질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질문들의 기록이 바로 책이다

지금,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 2026 서울국제도서전 초대의 글


문재인 전 대통령님을 가까이 뵈었다
더할 나위 없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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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6-06-25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국제도서전 다녀오셨군요. 저도 가보고 싶은데 부럽습니다ㅎ

사람이 많다는 리뷰가 많던데 괜찮으셨는지요^^?

나와같다면 2026-06-25 17:17   좋아요 1 | URL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성인 10명 중 4명만이 책을 읽고, 그마저도 1년에 채 3권을 읽지 않는 현실과 좀 괴리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 열정이 텍스트 자체로의 책에도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긴 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님을 가까이 뵌것으로 모든게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