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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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무조건 바람직하다” 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더 잘 들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소통은 애초에 잘되기 힘든 일” 이다

서로 다른 몸과 사회적 위치, 권력관계 때문에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린다. 그런데도 사회는 말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보다 계속 ‘소통하라’ ‘대화로 풀라’고 요구한다. 결국 대화와 합의의 요구 자체가 약자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자 스트레스가 되고, 소통 실패에 대한 책임마저 약자의 노력 부족으로 돌아간다

완전한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완벽한 이해를 이루겠다는 부담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부당한 질문에는 침묵하고, 때로는 응답하지 않는 것이 낫다. 말 몇 마디로 해소되지 않는 차이 앞에서는 “파국에 이르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하고 멈출 것인가” 를 물어야 한다. 정희진이 제안하는 이런 최소한의 소통법은 어쩌면 소통의 실패가 아니라 “소통의 환상을 걷어낸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품위 있는 생존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누구나 자기 발화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표현의 책임‘이며, 약자와 소수자의 언어를 새롭게 발명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대화를 종료할 권리는 소통을 포기하겠다는 패배 선언이 아니라, 더 나은 소통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나의 영토를 지키는 적극적인 주권 행위입니다.˝(187쪽)

소통의 불가능성을 인정할 때 진정한 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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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9-19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과 글의 허상처럼 소통의 허상도 존재하는군요. 허상의 책임은 약자에게 주어지는 구조였군요.

나와같다면 2026-09-19 21:33   좋아요 0 | URL
강자가 선점한 주제, 강자가 만든 언어 그리고 강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규칙 안에서 아무리 훌륭하게 칼을 휘두른들 판 전체를 뒤집기는 역부족입니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강자의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가 ‘내가 싸울 자리‘를 새롭게 확정하는 것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이해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때론, 소통에 얽매이지 않고, 대화 종료의 권리가 나에게 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판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