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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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가부장이 있었다. 지금은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슬아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제목과 내용이 신선하고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이 주인공이다.

 

할아버지가 집안의 가장으로 열한 식구를 다스렸다. 슬아의 엄마는 식구들 밥을 챙겨야 하는 맏며느리였다. 할아버지는 손녀인 슬아에게만 붓글씨를 가르쳤고 손녀와 외식을 즐겼다.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물었을 때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슬아는 글쓰기로 가세를 일으킨다. 출판사를 열게 되면서 작가이자 사장님이 되었다. 쉰다섯 살 웅이와 복희는 슬아의 모부인데 직원이 되었다. 웅이가 하는 일은 청소와 운전, 배달, 택배 발송, 세금 처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복희는 기사식당에 취업할지 말지 고민중이었는데 딸이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성공한 애는 달라.”

 이 대사는 그들 사이의 유행어다.

 

그들이 일하는 회사 이름은 낮잠출판사다. 아무리 바빠도 낮잠은 꼭 챙긴다. 부모를 모부라고 칭한다. 해가 뜨면 모부는 도서 주문을 확인하고 발주를 넣고 재고 파악하고 파본도 회수하고 독자 문의 메일에 답장도 쓰고 회계 장부도 적는다. 모부가 일을 맡아주는 덕분에 슬아는 창작에 집중할 수 있다.

 

복희는 시부모로부터 독립했다. 열한 명이 먹을 밥을 삼시 세끼 차리는 수고에서 벗어나 자식 둘을 먹이기 위한 수고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 노동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 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웅이가 주로 청소와 빨래를 하고 복희가 부엌일을 책임진다. 복희의 월급은 웅이 월급의 두 배다. 잊을 만하면 시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매일 아침 운동하는 건 여전하시다고 한다. 복희는 자신에게도 남편에게도 없는 기질을 딸이 가졌다고 느낀다. 슬아는 요가도 하고 야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가녀장을 차로 모시는 일을 하는 웅이는 타투를 했다. 슬아의 사촌들과 슬아 친구 미란이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웅이한테 전화를 건다. 글로 읽어도 웅이는 자상한 아빠이면서 척척박사인 것 같다. 슬아는 아빠가 다사다난한 노동의 역사를 물어보면서 어떻게 그런 걸 잘하냐고 물으면 살다보니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대답이 뒤에도 몇 번 나와서 웃음 지으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슬아는 학부생 시절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었다. 다니는 대학과 별것 없는 경력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아이들 필력은 매주 성장하였고, 모부들은 자녀가 작문 천재임을 자신들의 무심함에 통탄했다. 그 이후 이슬아 글방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낮잠 출판사에도 상여금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설날, 추석, 여름휴가, 성탄절, 생일을 맞이한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한다. 된장을 좋아해서 복희네 모부로부터 된장을 배우러 가기 위해 일박 휴가를 신청하면 슬아는 출장으로 인정했다. 일년에 세 번 정도 가는데 된장 보너스와 겨울이 되면 김장 보너스도 지급된다.

 

웅이는 주말마다 투잡을 뛴다. 이벤트 렌털 업자로서 일한다. 철이를 고용했는데 사장님에게 골똘히 일을 배웠다. 일을 마치고 철이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한다. 철이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출판사에 왔을 때 어른들이 슬아에게 존댓말을 써서 놀랐다. 웅이가 자신의 사장님은 슬아라고 소개했다. 사장님의 사장님인 셈이다.

 

가장이자 대표로서 직원들 월급을 결정하고 책 제목을 결정한다. 또한 책값을 결정한다. 슬아가 가격을 표기할 때 0을 하나 빼먹어서 모든 배송 취소하고 전권 회수하는 일이 생긴다. 3쇄가 유통되던 날 책의 페이지가 뒤바뀌었다는 제보를 받고 전부를 회수하고 새 책으로 교환해줘야 한다. 글쓰기와 출판이라는 작업이 갈수록 어렵게 다가온다.

 

딸에 의해 강제로 요가원에 다닌 일년 동안 복희의 몸이 유연해졌다. 막상 오면 열심히 할거면서 왜 안오려고 하는 건지 슬아는 생각한다. 엄마에게 어울리는 책도 권한다. 슬아의 초대 손님들이 들어오면 복희는 추가 수당을 받는다.

 

저자는 아직 본 적 없는 모양의 가족드라마. 늠름한 아가씨, 아름다운 아저씨와 경이로운 아줌마가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다. 실수와 만회 속에서 좋은 팀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TV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썼단다.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맺는 가족 이야기는 신선하게 다가왔고 즐겁게 읽게 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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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순간, 치트키 독서 - 실패의 순간에 나를 일으켜준 것은 언제나 ‘책’
이혜주 지음 / 모모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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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실패의 순간에 일으켜준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고 했다. 직장에서 업무 실수로 주눅이 들었을 때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고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실패의 순간, 길을 잃고 헤맬 때 힌트가 되어줄 본격 독서 의욕 증진 에세이다.

 

책은 네 개의 파트로 나누었다. 무능한 나를 마주할 때 글에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임에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책에는 허우적거림이 많은 사람, 청소하는 사람,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 등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어도 그대로의 삶을 감당하고 있었다.

 

저자가 자투리 시간까지 모아 책을 읽는 것은 도피하고 싶어서였다. 하루에 6~7시간 책을 읽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일은 독서였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꿈도 찾아보자 싶었다. 육아서도 읽었지만, 육아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내 삶과 공통점, 차이점을 찾기 시작했다.

 

블로그는 결혼식을 준비하며 모아둔 정보를 비교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육아 아이템 협찬과 체험단 등 혜택을 누렸다. 수많은 의심과 자기 비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8번이나 도서 인플루언서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이 정말 나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이버 인플루언서가 어떻게 되었는지 과정을 설명한다. 검색 시장에서의 위치, 진행하고 있는 챌린지를 생각하면 네이버는 정확한 정보, 양질의 콘텐츠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읽었다면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기록은 결과물이다. 누구든 결과물을 마주하면 뿌듯해질 것이다. 문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자 조금 어려운 책도 집어 들 용기가 생겼다. 책을 읽은 후 책, 감정, 3가지 기록만으로 달라졌다.

 

독서 모임을 준비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어 내려갈 때는 힘든 줄 몰랐지만, 모임을 이끈다는 생각을 하면 귀찮아져서 감당하는 순간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생각보다 책 읽는 시간이 많지 않아 놀랄 수도 있는데 저자의 독서 핵심은 병렬 독서였다. 책을 고를 때 목차의 전개가 마음에 들면 뒤표지를 살펴본다. 쟁쟁한 사람들의 추천사가 있지만 추천사를 그리 신뢰하는 편은 아니어서 무엇보다 책을 읽는 태도,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면(기록), 실천한다. 완벽한 독서의 흐름이다.p190

 

많은 독서가들이 책을 지저분하게 본다고 하지만, 깨끗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책 사진을 찍어두면 블로그에 리뷰를 쓸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했다. 질문을 품고 책을 읽는다. 필사를 하면 책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서 눈으로만 읽을 때는 하지 않았을 저자의 마음도 헤아려 보면서 나의 마음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좋은 문장이 있으면 필사도 해봐야겠다.

 

무엇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다양하다. 재미, , 의미, 성장 등 무리하지 않아야 지속할 수 있다. 주어진 삶을 잘 이해하고 기록해서 나와 같은 질문을 품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 삶을 잘 살아야 하기에 좋아하는 책을 도구 삼아 배운다고 한다.

 

저자는 독서 모임을 만들면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었고 책에 기대어 감상과 생각을 적다 보면 반복되는 말을 발견할 것이라고 했다. 타인의 행복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삶, 다른 세계, 여러 가능성을 책을 통해 제시하고 싶은 마음으로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독서 모임을 가입하고 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혼자서 많은 책을 읽어와서 모임 쯤이야 생각했다가 큰코를 다쳤다. 책을 읽는 행위나 모임을 한다는 것은 체력이 받쳐줘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삶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저자가 책을 택하고 다른 삶을 발견하는 재미를 얻었듯 자신만의 시선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찾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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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
김규범 지음 / 대한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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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유튜브 채널 <사월이네 북리뷰>를 통해 고전문학을 비롯 다양한 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라고 이야기하는 서양 고전문학 22편이 녹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음을 가진 이들의 예상 밖 행동에 당황할 뿐이다. 과연 당신이 생각하는 좋음이란 무엇인가요? 질문을 던진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게 하려면 내가 단단해져야 한다. 단단해질 수 있는 방법으로 고전을 추천한다. 고전을 읽고 필터링을 하며 사색을 할 수 있다. 고전에는 실패도 있고 성공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으니 스스로 배울 수 있다.

 

타인은 개인의 모든 이야기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자신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나는 절대적인 나로 존재한다. 비교는 나의 부족함을 드러낼 뿐이다. 소설 <싯다르타>를 통해 세상이 말하는 좋음을 이야기한다.

 

싯다르타는 속세를 경험하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속세는 그가 계속 버리려고만 한 욕망, 분노, 욕심, 사랑, 물질 등을 받아들이기로 한 공간이다. 시간이 흘러, 오랜 친구인 고빈다와 재회했다. 두 사람은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파인 노인이 되었다. <싯다르타>를 통해 우리가 얻을 사례는 남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성은 각자의 만족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한 번 읽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다. 모든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내 행동은 나만의 개성에 기인하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나로 설정해야 한다. 타인이 좋다는 것이 아닌 내가 좋은 것을 찾고, 누가 뭐라 해도 내 생각이 옳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우리의 삶에 당당함과 만족을 줄 것이다.

 

저자는 고전문학 완독이 어렵다는 말은 완독을 못 해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정말 어려운 것은 완독 이후다. 읽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다 읽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였다.

 

조심스러운 행동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차별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다. 상대를 멸시하고 미워하는 감정으로 인해 생겨난 미움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으로 인해 고통받는 대상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외투>의 아카키는 9등 문관으로 성실하게 일에만 집중한다. 그는 매년 큰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을 외투 한 벌로 버텨왔지만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꽤 비싼 가격을 치르고 새 외투를 장만한다. 연회에 참석했다 늦은 밤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중요 인사에게 핀잔과 질책만 듣고 발길을 돌린다. 결국, 절망한 채 집에 돌아온 아카키는 끙끙 앓다가 사망했다. 어느날 부터 아카키의 유령이 도시에 출몰해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기 시작한다. 그 중요 인사의 외투를 빼앗은 후에야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이렇듯, 시선은 평등해야 한다. 인간이 존재하기에 예의와 규칙이 존재하는 것이다. 시선이 평등해지면 그 순간부터는 이해하지 못할 인간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고전문학을 읽는 것을 고전 독서라고 하는데 이 말을 줄여서 고독(古讀)’이라 부른다. 고전은 폭포, , 개울 등처럼 각자의 모양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힘을 전할 영감을 전하니까. 마지막 에필로그를 보고 제목을 고독한 이기주의자는 행복하다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인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한 남성의 자서전을 읽어보는 액자식 구성으로 서술되어 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자신들과 마주하는 매우 사적인 소설 이다. 지나온 삶에서 후회를 찾아내기는 쉽다. 반대로 좋은 기억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우리 삶에 후회할 일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적기 때문에 더 쉽게 찾는 것이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며 어려움에 부닥친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유이다. 저자는 책에서 제안하는 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이기적 평등, 수평적 인간관계, 나만의 질서, 버티기는 모두 니체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라고 한다.

 

책은 나는 왜 안 되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목표하는 좋음을 누가 정의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세상의 좋음을 배우고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전문학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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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노랑나비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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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 여름 노랑 나비]는 열여섯 살 소녀와 아흔 살 할머니가 나눈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저자는 현재 전쟁 뉴스를 통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우리나라 역시 6.25 전쟁을 떠올랐다.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할까? 질문에 빠져 있을 때 엄마가 들려줬던 노랑나비 이야기가 생각났다고 한다.

 

열여섯 채고은, 3 민감한 나이에 외할머니와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자유롭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도, 할머니와 지내는 것도 나의 의지대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치매 때문에 열일곱 살이던 때로 돌아가곤 하는데 6.25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 컨디션이 좋은 날에 이야기는 이어진다. 당시 여자들은 살림을 배워 시집을 잘 가면 그만이던 시절이었다. 친구 화자, 순덕이와 무명천에 수를 놓았다. 화자는 수실을 사기 위해 엄마 몰래 겉보리 한말을 꿍쳐다 광속에 숨겨놓고 방물장수를 기다리고 있다. 순덕이는 재밌는 이야기를 곧잘 하는데 노랑나비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장군이 의병들하고 청군과 맞서 싸우다 죽고 말았는데, 사람들이 슬퍼하자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황장군 몸에 앉아 같이 슬퍼하더란다. 나비도 같이 묻어줬다고 해서 황나비무덤이라 불렀다고 한다.

 

해방이 되어 살만한 세상이 오려나 했는데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죽을 만큼 두들겨 맞고 풀려난 사람은 운이 좋은 경우였다. 삼촌은 돌아가시고 오빠는 처가에서 선을 대 풀려났다.

 

고은이는 외할머니를 목욕을 시켜 주면서 늙으면 머리카락도 힘이 없어지는구나 할머니와 지내면서 늙는 게 어떤 건지 배우는 것 같았다. 6.25 전쟁이 나자 먼저 오빠와 새언니를 처가로 피란을 보냈다. 순덕이와 화자도 식구들 따라 피란을 갔다. 가족들은 방공호에 몸을 숨겼다. 수실이 넉넉해 수를 놓다보면 친구들 생각이 절로 났다. 하늘에 유엔군 비행기가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포탄이 떨어지자 그것을 먼저 줍겠다고 형보다 먼저 움직였던 삼수 동생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는데 총알이 날아다니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산 사람들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고 했다. 처음 북한군이 무서웠는데 실제 동네 사람들이나 식구들에게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단다. 북한군이 떠돌아다니는 개를 잡아먹긴 했지만 편의를 제공받은 뒤 깍듯한 인사를 한다든지, 손 댈것 없이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하고 가는 거라든지. 예의 바르고 염치도 있었다.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할까? 맘대로 오고 가던 길에다 삼팔선인가 뭔가 선 그어놓고 서로 오가지도 못하게 만들더니 이렇게 전쟁까지 일으키고!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전쟁은 이해가 안 되었어.p157

 

북한군 대장이 할머니가 수를 놓는 것을 보고 고향집 누이도 수를 잘 놓는다면서 자기 어깨에 있는 견장에 별을 수놓을 수 있는지 물었다. 고은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만약 그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할머니가 수놓은 별은 그냥 별이 아니라 그것은 기도였다. 얼릉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도였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책이나 영화로 접하는 전쟁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해 온다. 우리는 전쟁이라는 무서운 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는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전쟁은 왜 일어나고 전쟁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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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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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1964년에 발표하여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머리에 이상이 있는 신생아로 태어난 아들에게 촉발되어 이 작품을 썼다. 고뇌에 찬 경험에 뿌리를 둔 작품이고 청춘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정화작용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주인공 27세 버드는 아프리카 지도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아프리카로 출발할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버드라는 별명은 열다섯 살 무렵에 불렸는데 새를 닮았으며 작은 몸집에 깡말라 있다고 그렇게 불렀다.

 

남창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돌발적인 우정을 느낀다. 녀석과 함께 밤을 보내는 건 무리지만 딱 한잔만 마시자고 권할걸 그랬나 생각한다. 버드의 직업은 학원 강사다. 대학원 시절에 4주 동안 술에 절어 있다가 자퇴를 하고 그 대학 교수인 장인어른이 들어가게 해주었다. 자신이 왜 위스키의 심연에 빠져 들었는지를 알 수 없는 이상 다시 한번 느닷없이 그곳으로 되돌아갈 위험은 항상 남아 있다.

 

버드는 고등학교 퇴학을 당하고 대학 입시 준비하던 시절, 불량 그룹과 매주 싸움을 벌였었다. 젊은이들에게 포위되었고 난투를 견딘 자신의 체력을 자랑스러웠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이야기였다. 병원에서 아기에게 이상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뇌헤르니아라고 했다. 두개골 결손으로 뇌의 내용물이 빠져나와 버린 것이다. 정상적으로 자랄 희망이 없으니 수술을 하지 말자고 한다. 말을 하면서 의사는 킥킥 웃어 댄다. 장모는 딸에게는 심장 전문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고 나중에 숨진 것으로 하라고 했다.

 

장인에게 아기는 아폴리네르처럼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더라고 전했다. 조니 워커를 선물로 주었고 버드는 술을 들고 전 여자친구 집으로 가게 된다. 히미코는 결혼 1년 만에 남편이 자살을 해버렸다. 시아버지는 부부가 살고 있던 집을 그녀에게 주었고 다달이 생활비도 보내주고 있었다. 그녀는 낮 동안 명상에 잠겨 있다 밤이면 스포츠카를 타고 방황을 한다.

 

버드는 히미코에게 오면 대낮부터 위스키를 마시게 해줄 거다 싶어 왔다고 한다. 아기가 정상이 아닌데 어떻게 할 것인가 궁리를 하지 않고 전 여자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함께 잔다는게 말이 되나 싶다.

 

버드가 술을 마시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토악질을 하면서까지 마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 여자친구 집에서, 강의를 하는 도중에 토하는 바람에 학원도 잘리는 상황이 왔다. 그러는 중에 아기의 죽음 쪽에 걸었다고 하는 사실을 의식의 표면에 확실히 고정시켰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죽는 방법을 생각한다고 할까. 장애로 태어난 것도 불쌍한데 부모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아기는 알까?

 

입원 수속을 위해 3만 엔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다. 아프리카 여행 자금으로 3만 엔이 약간 넘는 저금이 있었다. 버드는 끔찍하고 갈망하는 기분으로 더없이 반사회적인 성교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주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꿈을 꾸면서 스와힐리어로 고함을 지른다. 아내는 아기를 죽게 버려둔다면 나는 당신과 이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곧 죽을 것 같다고 아기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고 물건 취급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버드가 마음적으로 힘들고 외로움을 히미코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의사는 아기가 체력을 회복하면 수술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버드는 수술을 하면 정상적으로 자랄 가망이 있는 걸까요? 물어보고 아이를 가져가겠다고 했을까? 부모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장애가 있는 아기를 둔 아빠이기에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짠했다. 책을 몰입해서 읽었는지 주인공에게 화가 났었는데 마지막 정신 차리는 대목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버드는 어린 학생이 일러준 대로 가이드라는 직업을 준비할 것이다.

 

자넨 변해 버렸어하고 교수가 약간은 애석하다는 느낌도 담긴 따스한 육친의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에겐 이제 버드라는 어린애 같은 별명은 어울리지 않아.“p276

 

[개인적인 체험]은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죽음을 원하는 청년의 영혼 편력, 절망과 일탈의 나날을 그리고 있다. 오에는 소설이 아들이 태어났을때의 기반을 둔 것은 맞지만 주인공 버드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어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이다. 오에의 작품은 난해하지만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끌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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