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사랑
베로니크 드 뷔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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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크 드뷔르의 전작 <체리토마토파이> 90세의 잔을 등장으로 일기 장르의 소설이었다면, <다시 만난 사랑>은 엄마의 노년을 관찰하는 딸의 입장에서 남녀의 사랑 뿐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이 떠올리게 하였다.

 

나한테 희한한 일이 일어났지 뭐니

 

소설은 서른 살 딸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일흔 셋의 엄마에게 첫사랑 남자가 나타났다. 아빠가 느닷없이 세상을 떠나자 엄마는 무너져 내렸다. 얌전하고 웅숭깊은 애착, 진실하지만 뜨겁지는 않은, 저물어가는 생의 정으로 끈끈했었다. 아빠는 자기가 먼저 죽으면 엄마가 수녀처럼 살 리 없고 과부가 되면 오래잖아 누군가를 만날 거라며 농담 삼아 자기 동창들 중에서 적임자를 물색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남자들을 만나느니 고독이 낫다고 말했었다.

 

그자비에, 그 남자가 52년 침묵을 깨고 나타났다. 왜 잠수를 타버렸는지 궁금해했던 사람, 엄마의 첫사랑이다. 둘째 오빠 이름과 같았다. 나중에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고 이후 엄마는 아빠를 만났다.

 

엄마와 아저씨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다가 만나기로 하였다. 일흔이 넘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웃지도 않고 살던 엄마가 웃고 있었다. 엄마는 삼남매를 두었고 아저씨는 딸이 다섯 명이다. 딸인 나에게 엄마는 별의별 얘기를 다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아저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 사이는 어땠나? 엄마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엄마는 못 살아.” 엄마가 일흔세 살에 라켓을 얼마나 잘 휘두르는지 그분이 짐작이나 할까?

 

아저씨와 엄마는 두 집을 오고 가며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하였다. 아저씨는 딸들에게 편지를 썼다. 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그들을 낳아준 어머니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엄마에 대해서는 진정한 첫사랑애정과 우정으로 부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일흔다섯 살 애인에게 가는 엄마는 눈이 부시다. 엄마는 애인이 있고 며칠 후면 열차를 타고 그 애인을 만나러 간다. 그 누구도 엄마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행복하고, 나는 질투를 한다. 아저씨는 자기 아내 미셸의 묘지에 엄마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그분과 50년을 해로한 여자의 무덤에 간 것이다.

 

아저씨가 조금씩 우리 가족 안으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려고 애쓴다. 잔디를 깎고, 산울타리 가지를 치고, 자갈길을 평평하게 고르고, 상을 차리고, 우리의 습관을 배워나간다.

 

아저씨와 엄마의 여든 살 생일에는 양쪽 가족들이 모여서 축하를 해주었다. 엄마가 아저씨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후로 전화를 자주 걸지 않았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건지, 모녀의 대화도 매끄럽게 풀리지는 않았다. 엄마는 언제까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적응도 안 되는 느린 말투로, 늘어놓았다.

 

두 분의 금술이 좋아질수록 엄마를 잃은 기분이 들지만 엄마 손을 잡으면 그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저씨의 손도 함께 잡는 셈이라는 것을 안다. 아저씨가 엄마의 애인인 것은 알겠는데 오빠들이 엄마의 새 남편으로 인정할지, 새아버지 대접을 할지 모르겠다. 빛바랜 사진 앞에서 생각했다. 스무 살 때 좋아했던 남자를 다시 보았을 때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까?

 

엄마는 아빠가 죽고 3년이 지나 아저씨의 편지를 받았다. 아저씨를 원망하는 마음보다 왜 떠났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단다. 20년을 살다 보니 아저씨도 치매가 오고, 엄마의 기억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치매도 심해지고, 귀는 먹었고 점점 더 아무것도 안한다. 재회 이후, 다시는 이별이나 사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금세 치고 올라왔다.

 

엄마와 아저씨를 맺어준 신부님이 선택한 말씀 중에서 애정은 상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다시 만난 사랑]은 자전적 소설로 엄마와 사이가 유별난 딸이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엄마가 첫사랑과 재회하여 잘살 수 있게 지켜주고 도와주는 이야기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다시 찾아온 사랑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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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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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랩 걸] 저자의 신간이고, 먹고 소비하는 우리의 삶은 최근 50년간 지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질문을 하면서 여성 식물학자가 풀어내는 자신의 삶과 지구, 풍요에 관한 이야기이다.

 

돼지고기 가공산업 실체 우리가 먹는 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매주 하루만 고기 없는 날을 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969년생 저자는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닌 과학자, 작가, 열정적인 교사이자 75억 인류와 함께 이 행성을 공유하고 지구인,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지구진화 및 역학 센터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과학예술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지금은 어렸을 때와 다르다. 저자는 지난 50년간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1950년대 이후 북극해를 항해해온 잠수함들은 20세기 들러 북극해의 얼음이 심각하게 얇아졌고 1999년에 이르러서는 얼음의 두께가 거의 절반 정도로 얇아진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8억 명 이상의 인류와 이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다. 굶주림은 지구의 공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생산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실패로 등장한 문제다.

 

오늘날 우리가 확인하는 이 세상의 결핍과 고통은 필요한 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구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인간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헨리 조지의 말은 맞았고,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바람에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커피, 담배, 사탕무 수확량은 50퍼센트 넘게 늘어났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한 모든 농작물의 수확량이 지난 50년 동안 주목할 만큼 높아졌다.

 

저자가 고등학생 때, 아이오와의 80퍼센트 이상은 농지였다. 1970년대 아이오와주의 농지는 지금에 비해 두 배 더 많은 개인 농장주들이 나누어 소유하고 있었다. 50년이 지나 그 절반 정도로 줄었으며 800만 제곱미터 이상 경작하는 농장의 수는 열 곳으로 늘어났다. 50년간 엄청나게 생산된 미국의 옥수수는 옥수수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는 이상한 산업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연어의 살은 잡아먹은 먹이의 분홍색 색소로 물들어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기본 주식으로 또 별미로, 날것 그대로나 익힌 훈제로 또 절임으로 연어를 먹어왔다. 친척들은 연어를 그리 자주 상에 올리지 않았는데, 그것이 상에 오르는 날이면 우리는 껍질까지(우웩) 남김없이 먹어야 했다양식장 그물안에서 보내는 24개월 남짓 동안 각 연어들은 6킬로그램에 달하는 항생제와 1킬로그램의 물고기 기생충 퇴치제와 9킬로그램의 마취제를 섭취한다. 15,000톤의 먹이를 먹고 5,000톤의 배설물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던져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공허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지구상에는 전기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이 10억 명 이상이다.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지구상 열 명 중 한 명은 절망적인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다른 것도 물론, 전기가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는 호롱불에 살았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로 돌아가기 싫기 때문이다.

 

50년간은 더 많은 차, 더 잦은 운전, 더 많은 전기, 더 많은 생산으로 대표되는 풍요의 시대였다. 50년 동안, 전 세계의 화석연료 사용은 세 배나 증가했다. 에너지 절약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최소한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손자 세대가 살아 남을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우리 자신을 돌이키게 할 강력한 지렛대기도 하다. 이 책은 환경문제를 포함하여 우리가 그동안 잘 먹고 살아 온 풍요로운 생활 때문에 달라진 지구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직시하게 한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돼지고기 가공 산업의 실질적인 중심지 출신이다. 내 고향은 돼지고기 문명의 요람은 아니어도 그 문명의 무덤이라고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내가 직접 도축장에 가본 적은 없다.p69

 

1969년 전 세계 인구는 6,000만 톤의 설탕을 소비했다. 그 후 전 세계 설탕 소비량은 거의 세 배로 뛰었다. 올해 미국은 양키스 스타디움을 세 번 넘게 채울 수 있는 양의 설탕을 수입할 것이다.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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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근육 튼튼한 내가 되는 법 - 개정판
박상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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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마음 근육 튼튼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지닌 치유 능력을 믿으세요. 당신의 마음은 거대한 우주예요.”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이렇게 되리라 믿는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잘 지켜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 마음을 보호하고 싶다면, 마음 근육을 길러야 한다. 누군가가 대놓고 나를 비난하면 방어기제로 네가 뭔데라고 하거나 그럴 만해자기비하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니가 뭔데 그러냐고 할 것 같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 앓이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막 대한다는 것을 느낀 적이 많았다.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럴까. 나의 마음도 같이 헤아리며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표정과 입으로 분출되려 한다. 성숙한 인품을 지닌 한 수 위라는 걸 보여줄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려면 평소에 연습을 해야 한다. 나의 단점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나 자신이고 더불어 장점도 잘 모른다. 누구에게나 남들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장점을 들었을 때는 탱큐!”를 외치며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들었을 때는 쿨하게 접수하자.

 

소중한 내 인생을 잘 가꾸어가기 위해서는 멀리 내다보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함께 공부하고,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내 인생에 집중하면 남 말을 할 시간도 없고, ‘남 말에 상처받을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연인과 갈등 상황에 놓였고, 상대가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다고 치자. 이때 감정이 상하고, 혈압이 오르고, 표정이 경직되는 데는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감정과 이성이 조율되는 시간 6. 그 시간을 견디면 세 치 혀가 사람 잡는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책에는 저자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있다. 아버지는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었고 돈과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였다. 마누라 몰래 보증 서기가 아버지 특기였다고 한다. 처음 산 아파트를 잃는 사고가 터졌고 그 후 모든 재산이 어머니 명의가 됐다. 아버지는 저자에게 거절의 기술을 가르치려 애쓰셨다.

 

타인에게 상처 주는 행동과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현재를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늘 상처받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게 상처를 준 놈 또는 년이 현재를 살 때, 나는 상처받은 과거에 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들다. ‘왜 나만 힘들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힘들어 병에 걸리면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고, ‘나는 피해자라는 생각에 젖게 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조정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생각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긍정적인 사람에게 인생의 주어는 항상 나 자신이다.

 

저자는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산 시간이 길었다. 영화 <굿 윌 헌팅>은 영화치유 강의를 할 때 꼭 다루는 영화라고 한다. 주인공 윌은 어린 시절에 학대 받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여전히 그의 마음엔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서 우는 아이가 있다.

 

자살 충동은 우울한 감정이 원인이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까지 장악하게 되면서 자책과 자기비난을 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한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지쳐 있는 상태에서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다. 저자도 자살 시도를 했었다. 다시 눈을 뜬 그날부터, 내 삶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라는 생각 자체를 버렸다.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읽겠나. 나이가 든다고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마흔이 넘으면 중후한 멋을 풍기고 여유도 좀 생길 줄 알았는데, 때때로 혼자 숨어서 울어야 하는 외로운 시간의 블랙홀에 빠진 듯 하였다. 늘 마흔이 되길 기다리며 살았지만 마흔을 넘어서고 보니,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가까운 벗에게라도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지혜로운 어른이 되도록 말이다.

 

저자는 고전을 찾아 읽으려고 노력한다. [논어]를 공부하다가 지혜로운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글을 읽으며 마음이 치유 된다고 할까. 나에게 하는 말 같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늘 책을 읽고 삶을 반성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튼튼해진 마음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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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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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어령 선생의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세 번째 시간으로 얼굴을 이야기한다. 생전 이어령 선생은 한국인의 얼굴에 바이칼호의 추위가 서려 있다고 하셨다. 최소 2만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내가 임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 얼굴이라고 말한다.

 

광복 이래 7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모습 중 얼굴이 많이 바뀌었다. 조용진 얼굴연구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는데 약 11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86년부터 촬영 수집한 한국인의 약 3000명분의 얼굴 사진이다. 3차 곡면인 얼굴의 형상을 지도책에 나오는 등고선 모양으로 그어 보관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특성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이다. 신몽골로이드만이 바이칼호에서 영하 70도의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이다.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코와 눈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코는 더 낮아지고, 눈두덩은 두꺼워지게 된다.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 한 발 한 발 내디뎌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한반도에까지 이른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얼굴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양인의 얼굴을 닮길 원해 쌍꺼풀 성형도 하고 코도 세운다. 그러나 바이칼호에 비친 한국인의 얼굴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훈장이고 인류 역경의 서사라고 한다. 이름은 내가 부르라 붙여진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부르라 붙여 진 것이듯, 얼굴 역시 내가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보라고 있는 것이다.





미인대회에서 꼽는 미인의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예전에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찾았다면 한국전쟁을 거치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서구 문명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미인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게 되었다. 서양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미의식이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문인 정철 선생은 여성의 화장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남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여성들이 당신을 사랑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보수적인 한국 남성들은 대체로 여성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보입니다. 만주 벌판으로 간도로 쫓겨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입니다. ‘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입니다. -책표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얼굴박물관에서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이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면 비슷한 얼굴상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것 같았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에 가면 길가에 두 개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있다. 여상은 상원주장군이고, 길 맞은편 낮은 곳에 있는 것이 남상인 하원당장군이다. 할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심통이 났고 할머니는 무심히 외면하려는 듯 꺼벙하게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맞추어 많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사실을 전달하는 훌륭한 수단이지만 감정을 담기는 어렵다. 가면을 쓴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언제든 쓰고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화장과 성형은 일종의 가면이다. 외면을 감추기 위한 것인데 가면을 쓴다고 외면의 근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면이 사라지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원래 내 얼굴은 남이 보기 위한 것이지만 사진 역시 지금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다. 심지어 우주선 안에서도 셀카를 찍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성형수술이 신몽골로이드의 얼굴을 버리고 서양인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던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서 벗어나 몇천 년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내 문화와 내 역사, 내 유전자들이 종합되어 형성된 우리의 얼굴이 지금은 아시아의 미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 여배우처럼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고 내가 바라본 내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순간들이 있다. 화장이나 성형으로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은 눈동자라고 한다. 색을 넣은 서클렌즈 덕분에 검은 눈동자를 버리고 파란색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어도 눈빛만큼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저자는 이야기꾼이 맞다. 60년을 이어온 이어령 한국문화 대탐사를 재미있게 읽었고 이번 책도 여전히 감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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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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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클레어 키건이다. 어느 여름 친척 집에 맡겨진 소녀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겪는 다정한 돌봄과 사랑을 느끼는 소설이다. 2023년 책을 원작으로 영화 [말없는 소녀]로 국내 개봉을 하였다.

 

책은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가 애정 없는 부모로부터 낯선 친척 부부의 집에 맡겨져 여름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미사를 마친 다음 아빠는 집으로 가는 대신 엄마의 고향인 해안 쪽으로 차를 달린다. 소녀는 종일 킨셀라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상하기 쉬운 식품들을 몇 달이나 넣어놔도 썩지 않는 냉동고가 있다.

 

위타빅스를 다섯 개 먹는다. 침대에 눕히고 머리핀으로 귀지를 파주면서 엄마가 귀 청소 안해주니 묻는다.아저씨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참새가 앉아서 날개를 가다듬는 창틀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리라는 동네에 데려갈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안타까워 하신다. 옷을 사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아는 사람을 만났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빤히 보면서 누구냐고 묻는다. 곧 개학이라 아이가 가고 나면 보고 싶을 거라고 했다.

 

동네에 초상이 났는데 소녀를 집에 혼자 나둘수가 없어 같이 가기로 한다. 아저씨 무릎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죽은 남자를 보며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란다. 밀드러드 아주머니는 소녀를 잠시 데리고 있겠다고 먼저 나갔다. 아줌마를 통해 킨셀라 부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소녀가 그동안 입었던 옷이 부부의 죽은 아들 옷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아저씨가 말한다. 아주머니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뿐이지만 가끔은 실망도 한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아저씨와 해변으로 산책을 갔던 밤에 아저씨는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손 한 번 잡아준 적 없는 무심한 아빠와는 다르게 손을 잡고 보폭을 맞춰 주는 어른을 만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관심과 배려로 소녀는 행복함을 느낀다. 소녀는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둔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 남동생이 태어났고 주말에 데려다 달라고 썼단다. 개학이 되면 옷도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영영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소녀는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소녀가 감기에 걸려 온 것을 엄마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물어도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영화 말없는 소녀를 보고 책을 읽고 마지막 장면이 오래 남는다. 집으로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힘껏 달려가 안긴 채 자신을 데리러 오는 아빠를 보며 아빠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그동안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말처럼 들렸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단식 투쟁 소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81년의 아일랜드는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찬란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소녀의 시선으로 본 어른들의 삶을 통해 킨셀라 부부의 슬픔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나누어 준 사랑과 진심은 어린 소녀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100쪽 분량으로 얇지만 맑고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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