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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아! 구질구질한 인생. 되는 일도 없고, 모처럼 마음먹고 잘 살아보려 했는데 세상은 날 가만두지 않는구나!
상처투성이 인간들이 모여서 가족이 되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마음으로 의지하고 몸으로 위로받으며 살아보려 했는데 자꾸 누군가 와서 건드린다. 싸우자고 덤비고, 죽자고 치고받는다. 메마르고 살벌하면서도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성석제는 웃음으로 살짝 방향을 틀어 풀어낸다. 작가의 웃음은 상당히 무겁다. 그냥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없게 만든다. 뭔가 심오한 주제를 갖고 있는 듯, 어두운 사회를 대변하는 듯, 인간 내면안에 있는 최악의 갈등을 말하고자 하는 듯, 어떤 심각한 갈증을 유발한다.
이상하다. 정말 아름다운 건 가질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을 압도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진 게 많았던 생의 한 때, 그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보니 소유할 수 없는 것도 마음껏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67쪽)
슬프다. 왜 절실하게 갖고 싶은 때,바로 그 때 하필 내 가슴은 허전해야 하나? 고통을 겪어내면서 자의반 타의반 서서히 포기하려 하는 순간, 내 손안에 들어와 있는 마음의 평안과 행복은 또 뭔가? 내 삶이 불행하면 남의 아픔도 거추장스럽게 보이는데,최악의 밑바닥까지 겪었던 그들에게 혼자 사는 인생은 오히려 끔찍을지도 모르겠다. 평화롭게 의미없는 하루를 사느니 죽을 각오로 함께 뭉쳐서 싸우자고 속삭이는 소희 아줌마의 말이 맞다. 각자의 인생은 보잘 것 없고, 상처로 얼룩져 있으며 구제불능의 상태였지만, 강마을에 살면서 마음의 꽃도 피우고 사랑을 퍼주는 방법도 배운다. 욕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크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너무 '척'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있는 척, 배운 척, 아는 척, 행복한 척, 그것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떠올려본다. 더러운 것을 숨기고, 아픈 것을 참고, 미운 것도 아닌 것처럼 포장하면서 마음의 병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강마을에 모여사는 사람들에게 '척'은 없다. 더 잘 보일 것도 없고, 예쁘게 가꿀 필요도 못 느낀다. 지저분하고 부족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 바로 그게 그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엉뚱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 일도 없는 체한다는 것. 속으로만 앓는다는 것. 그래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에 걸리고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많이 먹다보면 비만이 되고 성인병을 줄줄 매달고 종당에는 꽥하고 죽는 것.(135쪽)
전화도 안 되고, 배 없이는 꼼짝 못하는 그곳. 너무 불편해서 일단 들어오면 나갈 궁리부터 하게 되는 마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쉼터가 되고, 살아갈 힘을 주는 곳이 되기도 한다. 소희가 밭에서 키우는 들깻잎과 파슬리, 세이지와 상추는 상처를 치유해주는 매개가 되었다.풀과 나무의 천국이 결국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곳이다. 허브와 야생화, 풀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웃고, 그들을 먹고 소화시키면서 한번 더 즐거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행복을 멀리서 찾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다.

소설에서 '똥'이 제대로 역할을 해낸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깔깔 웃게 만들고, 시원스럽게 골탕도 먹이면서 복수하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근원이 되었던 듯하다. 땅속에서 푹푹 썪어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 또 다른 생명에 힘을 불어넣어주고 기를 보해주면서 또 다른 생명체를 잉태하는 모태로서의 똥이라!
그들은 잘 몰랐지만 그들의 선배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용역으로 철거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그들이 농성장에서 몰아내야 할 철거민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것이 재래식 화장실의 대소변을 이용한 똥폭탄 공격이었다. 알고 있다. 경험해봤다고 해서 그 충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똥폭탄은 물리적인 효과보다는 심리적 효과가 훨씬 더 컸다. 전투력 상실이라는 결과는 비슷했다. 아울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부수효과도 있었다.나는 누구인가.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은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는 존재일 뿐인가. 인간이란 뭔가.(188쪽)
준호가 이빨이 부러지도록 두드려 맞고, 정묵이 회칼을 들고 여산과 맞짱 뜨는 순간, 섬뜩했다. 피가 몰고 오는 죽음의 냄새가 나는 듯하면서 괜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그들이 불행해지면 안되는데....하하! 기우였다. '쇼는 계속해야 해, 그래야지' (194쪽)그들이 벌이는 쇼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벌이는 쇼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한 쇼이고, 쫓겨나기 직전 절박하게 지켜야 하는 체면을 위한 쇼였다. 쿵쿵 따따, 폭풍 전야에 미친듯이 춤을 추며 술판을 벌일 수 있는 여유! 더 갖고 싶어서 욕망을 참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절대 잡을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낙동강 두만강 소양강을 두루두루 챙기며 노래를 부르고, 무릎을 굽실거리며 제자리 춤을 추고, 마당에 어지럽게 그림자를 만들어내면서 춤을 추었다. 그것이 힘이 되어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겼다. 평화가 찾아오고.
소제목이 어쩜 그리 아름다울까...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시처럼 음악처럼 다가오는 글자 하나하나에 살아 숨쉬는 아트가 숨어 있었다. 인생은 참 고맙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또다른 선물이 숨어있다. 그것을 찾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 <위풍당당>은 눈 뜨고 볼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의 곁에서 당당하게 찾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