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잠들지 않는다 - 제4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양지현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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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보고는 추리소설이 잘 연상되지는 않는데 제4회 디지털작가상 수상작으로 추리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기억은 사건의 동기와 해결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추리소설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시간과 장소의 제한으로 불가능한 연속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인 박종혁의 가장 친한 친구인 준석과 인호가 살해당합니다. 준석은 강도에 의한 교살, 인호는 독에 의한 자살로 판명이 나지만 박종혁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이자 형사인 안창모는 사건의 의심을 갖고 박종혁을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10여 년 전 사건과 기억의 비밀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과연 고등학교 시절 이 친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반전이나 트릭(이 물론 있습니다)보다는 드라마틱한 서사에 좀 더 무게감을 두었네요.

  시간과 장소적으로 불가능한 연속 살인사건의 범인과 범행 동기, 살해 방법을 밝혀야 하는데 트릭 자체는 무척 고전적입니다(사실 추리소설에서는 조금 흔한 방식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범인임을 알려주는 단서를 너무 많이 흘린 것도 조금 아쉽더군요). 사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범인보다는 동기가 중요한 소설입니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본격 미스터리보다는 감성적 미스터리에 좀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네요. 『용의자 X의 헌신』이나 『성녀의 구제』 등의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트릭은 정말 아쉽습니다(사실 추리소설에서 이 트릭을 만드는 게 가장 어렵죠. 정말 신선하고 새로운 트릭은 만들기가 그만큼 어려우니까요). 새롭고 참신한 트릭의 창조는 우리나라 추리소설계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아닐까 싶어요. 조금 평이한 소재와 스토리도 단점이겠네요(물론 친근해서 장점이 되기도 하겠지만요). 드라마틱한 서사와 친근하고 단순한 캐릭터(캐릭터가 입체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떠올리면 쉬울 듯. 복잡하지가 않아서 독자는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캐릭터라고 할까요), 사건의 개연성과 마지막에 밝혀지는 가슴 아픈 반전 등은 좋았습니다. 사건의 개연성도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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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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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생애가 너무 사소하고 볼품없어서, 그런 인생에 회한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영 멀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그의 불행은 이처럼 사소하고 미세한 생활의 결을 다시 매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그를 짓눌렀다. (p.168)

  제약회사의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주인공은 파견근무를 발령받고 C국으로 떠납니다. C국은 감기 유사 전염병(작년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를 떠오르게 함)으로 도시 전체가 마비 상태이고 쓰레기 천국입니다(특히나 주인공이 근무하는 Y시의 제4구는 쓰레기 더미 위에 건설된 재개발 도시라 악취가 더욱 심합니다). 위생 검열 강화로 주인공은 공항에 붙잡혀 출근을 제 때에 하지 못하고, 심지어 본사 담당자 '몰'에게서는 출근이 연기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주인공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경찰과 보건위생국의 감시를 받고, 본국에 살고 있는 전처는 그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심지어 살해용의자로 지목받고 쫒기는 신세까지 됩니다. C국의 경찰은 주인공을 잡기 위해 아파트를 찾아오고, 주인공은 경찰들의 수사를 피해 4층 아파트에서 1층의 쓰레기 더미 위로 뛰어내려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도피생활이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21세기의 국가들은 과연 국민들을 어떻게 통치하고 감시를 할까요? 바로 생물학적인 질병인 전염병입니다(검역기관과 정부). 전염병만큼 국민들을 쉽게 통치하고 감시할 수 있는 수단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전염병에 걸렸다고 판단되는 인간은 직장에서 해고됩니다. 그리고 격리시키고 감시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부와 검역기관이 아니더라도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인간들이 그들을 격리시키고 심지어 죽이겠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만큼 인간 사회(도덕과 윤리조차)를 파괴시키는 무서운 것도 없지 않을까 싶어요. 편혜영의 <재와 빨강>에서는 그런 끔찍한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상상 아닌 현실이 아주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예를 들면, 주인공은 경찰들의 눈을 피해 노숙자 생활을 합니다. 2번 노숙자가 전염병에 걸립니다. 나머지 노숙자들은 그를 비닐에 넣어 소각장에 태워 죽입니다).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의 생활, 전염병 공포 확산, 정부기관의 감시와 통제, SF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인간의 생존력만큼 강한 생존력을 가진 쥐가 이 소설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이 이런 끔직한 일을 겪게 되는 이유가 바로 '쥐를 잘 잡는 능력' 때문이거든요. 쥐를 잘 잡는 능력으로 인생의 시궁창에 빠진 주인공은 쥐와 별반 다르지 않는 생활을 합니다. 오히려 생존 능력에서는 쥐보다 떨어집니다. 쥐는 못 먹는 음식이 없는 반면 주인공은 못 먹는 음식(너무 부패하여 곰팡이가 썩은 음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본국에서의 삶 - (쥐를 잘 잡는 능력으로 인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파견생활) C국 아파트에서의 삶 - 공원 노숙자로의 삶 - 지하 하수도에서 쥐보다 못한 삶 - (그 빌어먹을 쥐로 인해) 다시 지상에서 쥐 잡는 요원(?)으로의 삶 등 주인공의 삶은 항상 쥐와 함께 합니다. 왜 이 소설에서는 쥐 얘기가 징그럽게도 많이 나오는 걸까요?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쥐는 과연 무엇일까요?

  주인공은 과연 전처를 죽였을까요? 그리고 왜 본국에서는 언어능력 및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주인공을 (단순히 쥐를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해외 파견근무를 보낸 것일까요? 실제로 주인공이 본사로 부터 받은 메일은 그 누구도 보내지 않은 메일입니다. 주인공은 왜 이런 악몽과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일까요? 이름도 없는 무수한 존재들. 암튼 정통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꽤 있고, 무엇보다 다양한 상징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과연 이 소설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판단은 역시나 독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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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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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범죄, 자살, 가족 비극, 시련의 상처 등 무수한 이유로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죠. 그리고 잊혀지고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청년 시즈토는 그런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고인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는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매일 반복합니다. “고인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고인에게 감사했는가?” 삶과 죽음, 사랑이라는 무척 통속적인 주제를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표현하다니 사실 조금 놀랬습니다. 상당히 많은 분량과 가볍지 않은 주제 때문에 읽기 전부터 살짝 겁을 먹었었는데, 이렇게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암튼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느끼는 바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조금 답답하기도 했고요. 주인공의 기이한 행동이 사실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고인이 죽은 장소에서 애도하는 주인공 시즈토의 행동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숭고함이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굉장히 슬픈 이야기임에도 억지 눈물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작가의 무덤덤한 문체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시즈토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야기가 전부), 자극적인 기삿거리만 쫒는 주간지 기자 마키노, 암에 걸린 후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그리고 남편을 죽인 후 죗값을 치르고 갓 출소한 유키요 이렇게 세 사람의 삶과 그들이 바라보는 시즈토의 삶이 교차로 진행되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답답함과 먹먹함 때문에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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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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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서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임에도 국내에는 그의 작품이 그렇게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더군요. <화씨 451>이라는 작품도 사실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죠. 최근 그의 작품이 조금씩 국내에 소개가 되는 것 같더군요(절판되었던 것들도 재출간 되는 분위기). <화성연대기>와 <화씨 451>이라는 작품은 꼭 읽어보고 싶네요. 사실 SF소설은 많이 읽지를 않았습니다. 이유를 꼽자면 조금 어렵다는 편견과 선입견. 필립 K. 딕의 단편집만 무척 좋아합니다. 이런 이유로 SF소설을 읽기 전에는 조금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SF단편소설은 읽기가 무척 편하더군요.

  레이 브래드버리의 대표적인 단편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은 무척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SF소설들입니다. ‘나’가 온몸에 문신을 한 노인을 만나 함께 노숙을 하면서 각 문신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들을 경험하게 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1951년에 발표된 단편들임에도 전혀 시대를 타지 않더군요. 현재에도 유효한(현재진행형)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인종차별, 검열, 미디어중독, 종교적 맹신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으니까요. 과거 작품임에도 오히려 현재에 더 유효하더군요). 필립 K. 딕의 단편처럼 반전을 중시하지는 않지만, 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또한 이상하게도 그리움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슬픔과 회한의 감정이라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섬뜩하고 오싹한 공포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암튼 버릴만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는 걸작 SF단편집이 아닐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대초원에 놀러오세요>, <마리오네트 주식회사>, <에이치 아워>, <방문객>, <밤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기나긴 비> 등의 작품들이 좋았습니다.

덧.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 몇 편은 인터넷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이미 읽은 작품들이더군요. 텍스트 파일로 읽은 작품들이 몇 편 있었습니다. 특히 <세상의 마지막 밤>과 <에이치 아워>(제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는 확실히 기억이 나더군요. <에이치 아워>는 사실 비슷한 내용의 소설들이 많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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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카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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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준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무조건 구입해서 읽었던 것 같네요. 사실 저는 미야메 미유키의 작품 스타일과 잘 맞는 독자는 아닙니다(따뜻한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악한 소설을 좋아해요. 성선설보다 성악설을 믿는 저이기에). 『화차』, 『이유』, 『모방범』, 『이름 없는 독』, 『외딴집』을 제외하고는 아주 좋았던 작품도 사실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큰 기대감 없이 읽은 작품 『인질 카논』은 그래서 딱 기대한 만큼의 작품이었습니다(나빴다는 얘기겠네요).

  『인질 카논』은 표제작 「인질 카논」을 포함하여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편의점 강도 난입사건을 다룬 「인질 카논」,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와 왕따 소년의 한밤중 학교에서 숙제노트를 찾는 과정을 그린 「산 자의 특권」, 친구의 괴롭힘(왕따 문제)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년이 60년 전 할아버지의 낡은 유서를 발견하게 되면서 그 비밀을 파헤치는 <팔월의 눈> 등 무겁지 않으면서 삶의 따뜻하고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들이 많습니다.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조금 적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까요. 한쪽 다리를 잃은 소년은 할아버지의 유서를 발견하면서 살아갈 희망을 얻고(「팔월의 눈」),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는 학교에서 한 소년의 숙제 노트를 함께 찾아다 주면서 실연의 상처를 극복합니다(「산 자의 특권」).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학생은 지하철에서 주운 수첩을 주인에게 찾아다 주면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희망을 얻습니다(「과거가 없는 수첩」).

  사실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저는 도식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너무나 소설적이더군요(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희망을 품기가 무척 힘들 텐데, 소소한 사건에 의해서 그렇게 마음이 바뀐다는 것이 저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읽고나면 마음은 따뜻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제가 너무 삶을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취향 차이겠네요. 가슴 따뜻해지고 희망을 찾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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