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살인마 밀리언셀러 클럽 103
짐 톰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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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는  <도박사들> 이후 오랜만에 소개되는 비운의 작가 짐 톰슨의 이중인격 살인마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서스펜스 심리소설입니다. 사실 제게는 듣보잡 작가인데, 미국 내에서도 살아생전에 그다지 알려진 작가는 아니라고 하네요. 그런데 작가 프로필을 보니 흥미로운 점이 보이더군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극찬을 했더군요.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 『영광의 길』의 각본도 썼다고 하네요. 『킬링』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 안의 살인마>를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었다면 무척 무시무시한 서스펜스 영화로 만들었을지 않을까 싶네요. 그만큼 이중인격 살인마에 대한 흥미로운 심리 묘사들이 돋보입니다. 참고로 <내 안의 살인마>는 2010년 개봉을 목표로 케이시 애플렉, 제시카 알바, 케이트 허드슨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된다고 하네요.

  짐 톰슨의 <내 안의 살인마>는 1952년에 발표된 고전 서스펜스 심리소설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새롭거나 놀라운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사실 이중인격 살인마가 등장하는 소설은 너무 흔하니까요. 얼마 전에 읽은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영화로도 나온) <아메리칸 사이코>도 그런 부류의 작품이죠(물론 <아메리칸 사이코>처럼 절대로 골치 아픈 사이코 소설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미드로도 유명한 「덱스터」시리즈가 생각나더군요. 주인공이 텍사스 작은 마을의 부 부안관이거든요. 그리고 동네 주민들에게 매우 착하고, 친절한 젊은이로 인식되어 있고요. 법을 수호하는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젊은이가 잔인한 연쇄살인마라고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죠. 그런데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 바로 이 가식적인 연쇄살인마 보안관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 연쇄살인마가 언제 살인을 저지를까? 그런데서 오는 극적 긴장감은 따라서 거의 없습니다. 그냥 때가 되면 죽이거든요. 그리고 이미 독자는 그 연쇄살인마의 마음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서 오는 긴장감은 당연히 없습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언제 알아차릴까?'에서 오는 긴장감은 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의 재미는 그런 긴장감이 아니라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병을 앓고 있는 이중인격 살인마의 심리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과연 이 이중인격 살인마의 마음속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60년 전 소설이라 큰 충격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1인칭 시점의 이중인격 범죄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가 지금까지 워낙 많이 나와서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뭐, 이건 어쩔 수 없죠. 너무 늦게 접했으니까요). 단, 이런 부류의 소설이나 영화들이 영향을 받은 작품의 고전은 어떤 느낌과 재미가 있을까 비교하는 재미는 확실히 있습니다. 그리고 미드 「덱스터」시리즈 좋아하신다면, <내 안의 살인마>에 등장하는 이중인격을 가진 연쇄살인마인 부 보안관 루 포드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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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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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고독과 허무, 그리고 무관심, 그 속에 아무렇지 않게 숨어 있는 일상 속의 공포를 잔인하리마치 날 것 그대로 끄집어 낸 호러 단편집입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조금 혐오스럽거나 역겨울 수도 있습니다.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다른 단편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어느 블로그에 보니 2008년에 읽은 최악의 소설로 뽑히기도 했더군요)이나 오츠 이치의 《GOTH》 같은 작품 싫어하신다면 그냥 읽지 마세요. 구토 유발을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마세요. 개인적으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분명 불편해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거든요.

《남의 일》이라는 작품부터 살펴볼까요?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 구해 달라는 다친 사람(가족)의 도움을 그냥 무시해 버립니다. 겁먹은 아이만이라도 도와달라고 하는데도 무시합니다. 남의 일이니까요. 물론 도움을 주기는 합니다. 차에 다리가 걸린 남자에게 날카로운 톱을 줍니다. 다리를 자르고 빠져 나오라고요. <자식 해체>는 제목부터가 무시무시합니다. 어머니의 자궁을 찢고 태어난 괴물이자 쓰레기 같은 자식을 부부가 죽이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자식이 문제가 많습니다. 심심하면 어머니를 때리거든요. 어머니는 남편에게도 맞습니다. 남편과 자식은 아내이자 어미를 때리고, 부부는 자식을 죽이기 위해 성능이 뛰어난 전기톱을 구입합니다. <딱 한 입에...>라는 작품도 살펴볼까요? 이 작품은 사실 반전이 있는 이야기인데, 사람 고기 먹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자기 자식의 고기를요. <정년 기일(忌日)>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까요?ㅎㅎ(왜 이렇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재미있을까요? 아무래도 저는 변태 싸이코인 듯) 정년퇴직을 한 직장장사를 부하직원들이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얘기입니다. 현실을 반영한 SF인데, 불필요한 늙은 노인들을 제거하는 이야기입니다. <인간 실격> 이 작품도 꽤나 살벌합니다. 잔인한 묘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잔인한 사악함 때문에 소름이 돋습니다. 대체로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야기,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린 이야기,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나 《GOTH》 이후 너무 기다린 이야기, 그래서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극단적인 잔인함과 엽기적이며 혐오스러운 이런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작가가 변태 아니냐? 이런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역시 변태 아니냐? 그런데 《남의 일》이라는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먼 나라, 이웃 나라, 판타지 속 상상인물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웃이라는 얘기죠. 물론 모든 이웃들이 다 그렇지만은 않죠. 그리고 조금은 자극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있죠. 그리고 범죄자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일반 범죄소설 속의 그런 전형적인 범죄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등장할 뿐. 사실 읽고 나면 답답합니다. 부모-자식 간의 갈등, 부부 문제, 연애문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집단 이지메, 은둔형 외톨이 등 일상적인 문제가 극한 상황으로 가게 될 때의 그 무시무시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무서우면서도 답답합니다. 내 자신이 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 책을 읽는 자는 모든 희망을 잃게 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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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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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장르소설 작가 강지영 씨의 소설집이 《굿바이 파라다이스》라는 소설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나 《한국 스릴러 문학 단편선》에서의 강지영 씨 작품을 좋아하고,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면, 그런 분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싶어요. 《굿바이 파라다이스》에는 총 10개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데 버릴만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을 정도로 정말 무시무시하고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네요.

사회파 추리소설, 스릴러 소설, 본격 추리소설, 공포소설, 좀비소설 등 어둠의 장르를 총 망라하고 있고, 샴쌍둥이, 트랜스젠더, 벙어리 연쇄살인마, 심지어 시체애호증 환자까지 평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 이야기도 아닙니다. 읽고 나면 무섭고 소름이 돋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고 먹먹하기도 합니다. <벌집에는 벌이 살지 않는다>라는 작품은 사회의 소외계층의 고단한 삶을 허세와 소소한 탐욕을 웃기면서도 서글프게 그리고 있는데, 이런 작품까지 실려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기에 (형식이 아니라 내용 면에서) 조금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시선>, <하나의 심장>, <그녀의 거짓말>은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을 충분히 만족시켜 줄만큼 재미있습니다. <시선>은 깜짝 놀랐네요(읽으신 분들은 아실 듯). <그녀의 거짓말>은 사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실려 있는 작품인데 아내가 남편을 어쩌다 살해하는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주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지는데 결말이 꽤나 충격적입니다. <하나의 심장>은 샴쌍둥이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닮은 듯 다른 쌍둥이의 내면 심리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 꽤나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점>도 이번 작품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처럼 반전이 있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반전이 없더라도 무척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호러와 미스터리가 뒤섞인 작품인데, 수천 개의 검은 점들이 몸을 지배하는 과정은 정말 소름 돋습니다.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싫을 정도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다 미스터리로 빠집니다. 진실과 거짓, 믿고 있던 진실이 추악한 거짓이 되는 순간, 슬픔과 공포의 감정은 공존합니다. 아프면서 무서운 소설입니다. <안녕, 나디아>는 중편 분량의 추리소설입니다. 301호의 아파트를 지키는 작가 지망생과 바로 아래 201호의 벙어리 살인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다룬 이야기인데, 공포적인 요소가 가미된 추리소설이라 그런지 장면 장면에서 섬뜩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이번 작품집의 특징은 대체로 추리소설의 외형에 공포적인 장면들이 들어가 있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 그야말로 신종인플루엔자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향나무 로맨스>는 기괴합니다. <캣 오 나인 테일즈>는 잔인합니다. 그리고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슬픕니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작품을 만났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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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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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설백물어》는 5년 전 쯤에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이야기: 항설백물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된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도 사실 나쁘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원작이 최고네요.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교고쿠 나쓰히코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사실 일본 고전 요괴 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지라 외국인(사실 자국인도 고전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알기 어렵죠)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무척 재미있네요. 교고쿠 나쓰히코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이 고전 괴담에 대한 애정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유명한 전설들이 참 많은데, 거의 죽은 이야기나 마찬가지죠. 여름이 되면 TV에서 「전설의 고향」이 나오기는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퀼리티는 떨어지는 것 같고, 이야기를 새롭게 재창조하려는 작가들도 없는 것 같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모방이라도 좋으니 우리나라의 무섭고 슬픈 전설들이 새롭게 재창조되어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우선 《항설백물어》에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물론 개인적으로는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 등 교고쿠도 시리즈의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 매력에는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요괴의 본 모습을 밝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거짓된 진실을 까발려서 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주인공인데, 어행사이자 잔머리 모사꾼인 마타이치, 신탁자인 지헤이 영감, 여자 인형사 산묘회인 오긴(애니메이션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이 언니만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신출내기 글쟁이 모모스케 이렇게 4명의 독특한 인간들이 주인공입니다. 사실 직업이 조금 고상해서(?) 감이 안 오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인물에 대한 묘사는 애니메이션에 잘 나타난 것 같더군요. 물론 애니메이션,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의 첫 번째 시리즈 《항설백물어》에는 7편의 기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야나기온나 등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제목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제목의 의미가 확실히 이해됩니다. 여우, 너구리, 팥 이는 소리, 말을 먹는 주인, 버드나무 저주, 계속 나타나는 송장 등 정말 항간에 떠돌 것만 같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절대 귀신이나 유령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의 이면에는 무척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들이 숨어 있거든요. 이런 비과학적인 미신 뒤에 숨어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건의 해결이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사실은 말이 되는 이야기라는 것. 그러한 진실과 거짓이 밝혀질 때의 쾌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일그러진 욕심과 뒤틀리고 비뚤어진 욕망이 만들어 낸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더욱 소름이 돋고 무서우며(귀신보다는 확실히 인간이 더 무섭잖아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것 같아요. 무조건 무섭기만 한 소설은 절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사기꾼 4인방의 작전 설계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재미도 빼먹을 수 없죠. 주로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가 설계를 하는데, 도대체 짐작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사기를 계획합니다. 사기를 성공시킨 후에도 어리바리한 글쟁이 모모스케는 그 내막을 모릅니다. 이건 뭐 독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면 친절하게도 마타이치나 오긴 등이 설명을 해 줍니다. 수수께끼의 해결에서 오는 미스터리적인 쾌감 역시 이 작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재미의 요소입니다. 암튼 소설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무척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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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 검역소
강지영 지음 / 시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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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자(不莪者) : 두 개의 볼록하고 둥근 천을 이어 붙인 두건으로 아니 불, 높을 아, 놈자자를 써 불아자라 칭하였습니다. 서양 벼슬아치가 사용하던 관모로 추측되오며 관리라 함은 모름지기 백성을 섬기는 낮은 자리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불아자라 이름 지었습니다.

신문물 검역소 소장 함복배는 외국에서 들어 온 여성 속옷 브래지어의 실제 기능을 모른 채 저렇게 머리에 쓰고 다니면서 나름 조선 시대의 얼리어답터라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이빨을 닦는 칫솔을 치설(항문에 질환이 있는 자가 사용하는 의료 용구)이라 생각하여 치질에 걸린 관노에게 항문을 닦으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게다가 표류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랑머리 네덜라든인 박연(물론 실제 이름은 아닙니다)까지 이 신문물 검역소에 합류하면서 좌충우돌 포복절도의 코믹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조선 시대 제주를 배경으로 외국에서 들여 온 신문물 검역 도중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작가 강지영 씨는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 《굿바이 파라다이스》 등의 추리 스릴러 성격이 강한 장르소설을 발표한 작가인데, 코믹적인 성격이 강한 《신문물 검역소》는 사실 조금 의외였고, 또한 우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려는 기우였지 않나 싶네요. 코믹하면서도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주인공 함복배는 신문물을 검역하면서 제주 처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도 잡아야 하거든요. 사랑하는 연인의 누드를 그린 것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하고, 또한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사랑하는 연인도 지켜야 하니 무척 힘든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물론 무겁고 어둡지만 내용은 밝게 그려집니다. 사실 기방 창(술집)에서 벌어지는 가학적 쾌락의 놀이는 초반의 유머스러운 작품의 분위기를 단번에 제압합니다.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가볍게 키득거리면서 읽다가 크게 한방 맞은 느낌이었거든요. 암튼 기방 창에서 벌어지는 파티는 꽤 강도가 쎕니다.

그러니까 이 제목부터 신기한 《신문물 검역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가볍게 웃기에 좋은 소설이면서 무겁고 잔인하기도 합니다. 코믹, 추리, 스릴러, 역사, 멜로, 공포 등 암튼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웃기면서도 추리/공포적인 요소도 많아서 가볍게 즐기면서 읽기에 무난한 작품이지 않나 싶네요. 단,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보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면서 작품을 읽어야할지 조금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소재 자체가 무척 기발하고 신문물을 이용한 말장난 비슷한 유머들도 있어 웃으면서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제주 처녀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추리적인 요소도 있어서 긴장감이 있습니다. 가볍게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소름 돋는 장면들이 많아서 깜짝 놀라면서 끝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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