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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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설백물어》는 5년 전 쯤에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이야기: 항설백물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된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도 사실 나쁘지는 않았는데, 역시나 원작이 최고네요.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교고쿠 나쓰히코는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사실 일본 고전 요괴 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지라 외국인(사실 자국인도 고전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알기 어렵죠)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고 무척 재미있네요. 교고쿠 나쓰히코 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이 고전 괴담에 대한 애정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유명한 전설들이 참 많은데, 거의 죽은 이야기나 마찬가지죠. 여름이 되면 TV에서 「전설의 고향」이 나오기는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퀼리티는 떨어지는 것 같고, 이야기를 새롭게 재창조하려는 작가들도 없는 것 같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모방이라도 좋으니 우리나라의 무섭고 슬픈 전설들이 새롭게 재창조되어진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우선 《항설백물어》에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물론 개인적으로는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 등 교고쿠도 시리즈의 고서점 주인 교고쿠도 매력에는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요괴의 본 모습을 밝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거짓된 진실을 까발려서 돈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주인공인데, 어행사이자 잔머리 모사꾼인 마타이치, 신탁자인 지헤이 영감, 여자 인형사 산묘회인 오긴(애니메이션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이 언니만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항간에 떠도는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신출내기 글쟁이 모모스케 이렇게 4명의 독특한 인간들이 주인공입니다. 사실 직업이 조금 고상해서(?) 감이 안 오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인물에 대한 묘사는 애니메이션에 잘 나타난 것 같더군요. 물론 애니메이션,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의 첫 번째 시리즈 《항설백물어》에는 7편의 기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야나기온나 등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제목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다 읽고 나면 제목의 의미가 확실히 이해됩니다. 여우, 너구리, 팥 이는 소리, 말을 먹는 주인, 버드나무 저주, 계속 나타나는 송장 등 정말 항간에 떠돌 것만 같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묘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절대 귀신이나 유령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묘한 이야기의 이면에는 무척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들이 숨어 있거든요. 이런 비과학적인 미신 뒤에 숨어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건의 해결이 이 작품의 첫 번째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사실은 말이 되는 이야기라는 것. 그러한 진실과 거짓이 밝혀질 때의 쾌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 다음으로 인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것. 귀신이나 요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일그러진 욕심과 뒤틀리고 비뚤어진 욕망이 만들어 낸 사건이라는 점. 그래서 더욱 소름이 돋고 무서우며(귀신보다는 확실히 인간이 더 무섭잖아요),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것 같아요. 무조건 무섭기만 한 소설은 절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사기꾼 4인방의 작전 설계 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보는 재미도 빼먹을 수 없죠. 주로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가 설계를 하는데, 도대체 짐작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사기를 계획합니다. 사기를 성공시킨 후에도 어리바리한 글쟁이 모모스케는 그 내막을 모릅니다. 이건 뭐 독자들도 마찬가지고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면 친절하게도 마타이치나 오긴 등이 설명을 해 줍니다. 수수께끼의 해결에서 오는 미스터리적인 쾌감 역시 이 작품에서 빠뜨릴 수 없는 재미의 요소입니다. 암튼 소설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다르게 무척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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