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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ㅣ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4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시리즈를 읽으면 확실히 화려하게만 보였던 의료계의 어두운 현실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의료계도 법조계처럼 관련 종사자가 아니면 일반인들은 알기가 어렵잖아요. 우선 전문적인 분야이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곳이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도 힘들고요.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시리즈는 그런 호기심 충족 면에서 우선 만족스러운 작품입니다.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나 『제너럴 루주의 개선』도 재미 면에서는 다소 아쉽지만 이런 호기심 충족 면에서는 제게는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의 재미를 넘어선 작품은 없네요. 재미 면에서 『나전미궁』도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나 『제너럴 루주의 개선』보다는 괜찮네요. 초반부가 다소 지겹지만, 뭔가 연관이 있어 보이는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고, 재미도 확실히 주네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는 일반인에게는 정말 호기심 덩어리입니다. 연쇄살인마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병원 자체만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많죠. 이번 『나전미궁』에서는 종말기 의료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즉, 시체 처리이죠. 게다가 시체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얼음공주 히메미야도 등장합니다(무척 덜렁거리는 히메미야의 대활약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웃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분만 나오면 뭔가가 벌어집니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의 중심은 아닙니다. 도조대학 의학부의 낙제생 덴마 다카이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름 쿨하게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쿠라노미야병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무수한 여자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합니다. 가학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더군요.
“의학이란 원래 출신성분이 형편없는 존재인데도 지금은 귀부인처럼 행세하고 있어. 의학이란 시체를 먹고 살아온 빌어먹을 학문이야. 그걸 잊지 말게.”(p.297)
사쿠라노미야병원의 이와오 병원장의 대사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아직 살아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를 하지만, 이미 죽었다고 판단된 환자들을 위해서는 지원을 하지 않으려고 하죠. 죽음 앞에 다가선 환자들은 국가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들인 것이죠. 의료계의 어둠에 속하는 존재들이라고 할까요? 사실 조금 어려운 문제이기는 합니다. 자살이나 안락사 등의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병원 경영에도 앞으로 죽을 환자들은 도움이 안 되니까요. 이와오 병원장의 말처럼 지금의 병원의 성장(과 의사의 높은 지위)은 이런 시체를 파먹고 살아남은 학문인데, 이제는 그런 시체를 외면해 버리죠. 취급 곤란한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것이죠.
『나전미궁』의 가장 큰 재미는 바로 종말기 의료를 두고 벌어지는 이와오 병원장 세력과 시라토리 세력의 대결입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문제의식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에서도 그랬지만 바로 캐릭터들입니다. 다구치를 능가하기에는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시라토리와 히메미야를 비롯하여 덴마, 스미레, 사유리, 그리고 서유기 할머니들까지 재미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유머와 미스터리.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히메미야가 많은 웃음을 줍니다. 사쿠라노미야병원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도 나름 흥미롭고요. 초반에는 다소 지루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꽤 재미있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강도는 조금 약할지도 모르지만 웃음과 미스터리가 적절하게 균형이 잡혀 있습니다. 주제는 무겁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