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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나는 바보겠지. 언제나 돈 한 푼 되지 않는 일에 힘이나 쓰고. 뻐겨도 되는 녀석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가장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에게 호통을 치지. (중략)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죽어가고 싶어. 다만 그뿐이다. 방해하지 마.”(p.510)
온순한 형사 요시키가 상관인 주임에게 대들면서 내뱉는 말입니다. 명탐정이 아니라서 그럴까? 조금 답답한 면도 없지 않아 있는 캐릭터인데(잘난체하는 명탐정 미라타이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죠), 마지막에 폭발하는 순간 엄청나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네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대다수의 인간인데, 이런 정의로운 형사 캐릭터, 비록 허구이지만 소설 속에서라도 만나니 무척 반갑더군요. 시마다 소지의 분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작품을 읽으신 분들은 이해하실 듯) 정의롭고 따뜻한 캐릭터입니다. 미라타이 탐정도 매력적이지만 요시키 형사도 무척 매력적이네요.
책장을 덮는 순간 (트릭에) 놀라웠고, (사연에) 안타까웠으며,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감정의 세세한 부분을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느낌 하나하나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차마 글로 표현은 못하겠고, 암튼 『점성술 살인사건』의 작가 시마다 소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점성술 살인사건』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작품보다 더 뛰어난 것 같네요. 이 작품은 본격과 사회파가 결합된 미스터리입니다. 다섯 개의 수수께끼 같은 트릭과 심금을 울리는 내용. 본격은 “어떻게?”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회파는 “왜?”에 중점을 둔 추리소설이죠. 이 작품은 다섯 개의 수수께끼가 서서히 풀리면서(트릭), 숨어 있던 사건의 동기도 서서히 드러납니다. 트릭도 풀리고, 동기도 알게 되면서 느껴지는 황홀감, 카타르시스는 정말 끝내줍니다. 사회파와 본격의 매력을 모두 살리면서 재미까지 주고 있습니다(물론, 트릭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삿쇼 선과 하코다테 본선 사이의 이동 트릭이 그러한데, 사실 내용에 중점을 둔다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트릭이라서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부분만 빼면 정말 본격으로서도, 사회파로서도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뭐 이런 제목이 다 있지? 사실 원제는 잘 모르겠지만, 번역된 제목은 정말 좋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여? 그러나 책장을 덮는 순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제목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회파 미스터리를 읽고 심장이 뜨거워지는 순간은 많았지만, 이번 작품처럼 이렇게 뜨겁게 활활 타오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더 그러했겠지만,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트릭을 이제야 알았다는 쾌감과 함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도 느껴야 했거든요. 우리나라 추리소설 독자들이 이 작품은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느끼는 바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시마다 소지 작가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애써 외면했던 그런 진실에 다시 마주하게끔 만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