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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평점 :
왜 공부할 권리인가? 정여울의 책 제목 중에 조금은 도전적인 제목을 달고 나왔다. 스스로 문학평론가라고 이야기하는 작가는 여러 편의 전작을 통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의 속마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른 평론과 비교해 본다면 정여울의 글은 따뜻함이 묻어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객체로서의 인간을 생각한다. 공통의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정의가 있다면 그 글에서 찾아야 하는 힘은 개인의 정의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녀의 글이 따뜻하다는 것은 모순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글이 싫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접한 이 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어쩌면 더 이 작가의 글을 더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행복의 기회를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찾아 죽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였던 ‘안티고네’ 그녀는 백성의 의무보다 인간의 의무를 선택하였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안티고네의 삶을 통해서 독재자의 권력에 도전한 슬픔의 무서운 파괴력이라는 단어로 작은 여인이 가져온 변화의 모습을 꿈꾸게 합니다. 사랑을 베이스에 놓고 권력에 도전한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찾은 안티고네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다른 개인의 권리와 선택의 자유는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직면하게 될지 알고 있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고 인간에게 불을 전달하여 줍니다. 여기에 불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즉 제우스는 인간에게 창조의 능력을 주고 싶지 않았던 신이고,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자신에게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을 알면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제우스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여울은 이 모든 것을 사랑할 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그 권리 그 것이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권리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글들에서 느끼는 감정과 또 다른 해석은 제가 읽었던 작품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의미의 해석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방인에 뫼르소의 모습에서 흘려 읽었던 군중들의 모습을 다시 음미하게 하였고, 그가 저지른 살인의 원인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제가 읽었던 그 네 번의 노크가 준 의미는 햇살이 밝아서 저지른 일탈의 의미라고 흘려 넘겼던 제 읽기 습관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냥 어린 시절의 추억 같았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에서는 질투와 동경에 대한 생각을 끌어낸 정여울의 생각의 깊이는 가벼운 책읽기 보다는 읽는 사람의 생각과 작가의 삶이 가져온 배경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게 합니다.
한 단락 한 구절에서 여러 밑줄을 긋게 하는 작가의 능력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지만 그녀역시 무조건적인 긍정을 경계하는 글을 옮겨 놓습니다. 프로이드 심리학자가 융의 방식으로 치유하는 과정을 정리한 부분에서 말입니다. 이런 사례를 통해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 정여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반역의 음모와 역적의 혁명을 거친 학문이어야 진정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비단 학문만이 그럴까요? 개인의 생각과 가치 역시 이런 끊임없는 도전과 질문 또는 의심을 근거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그 것이 공부할 권리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