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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작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에 생각의 틀을 잡고 인생을 혼란스럽게 하며 때로는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아마도 내게는 그렇게 큰 트라우마는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책의 전반에 걸친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 번의 트라우마가 만들어 내는 삶의 파괴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복잡하고 인생의 모든 것에 있어서 삶은 지배하고 옴짝 달싹 못하게 만드는 그런 현상이었다. 기억이 담아내는 하나의 현상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것을 연구하고 고민하고 치료에 3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저자는 그 현상학적인 부분과 뇌에 각인되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치료하기위한 많은 것을 고민하고 치료해 내고자 한다.
내가 생각했던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아준 게 있다면 트라우마는 정상적인 기억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작과 끝 그리고 과정을 기억하는 일반적인 기억의 체계를 타르지 않는다는 것과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극도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행복한 기억과 비교하여 보았을 때 평생을 기억하는 것과 달리 트라우마는 작은 모티브 하나로도 떠오르며 그 기억의 실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내 생각을 지배하는 지에 대한 것에는 일반적인 체계를 따르지 않는 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일반적인 저항과 대응의 체계를 벗어난 현상 즉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그 현실을 부정하려는 기억이다. 한 번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의 경우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탈출구가 있음에도 동일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기억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힘이 없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를 접했을 때 동일한 상황이 성인이 되어 다가오게 되면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상적인 체계를 놓아 버리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긍정적인 반응이아니라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서 그 상황을 포기하거나 필요이상의 격한 반응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한 가지다. 내가 겪은 트라우마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에는 큰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내가 누군가에게 큰 트라우마를 주었던 상황이 있었지 않았을까? 상대적으로 약자이며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었을 때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혹시 큰 트라우마를 전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다. 아이들이 움츠리고 도전하지 않고 쉽게 포기하고 무기력 해지는 모습이 다만 사춘기의 반응일까? 아니면 양육 방식에서 잘못된 생각과 강압이 가져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부분이었다. 항시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이를 양육하고 가족이라는 굴레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견고한 고리는 사랑이고 믿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따르기도 한다.
전쟁, 성폭력, 가정폭력이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트라우마의 대표적인 소스가 된다면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에게 가장 가깝게 있는 것은 가정 폭력이 아닐까? 최근의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부모의 잘 못된 육아방식이 아이들을 상하게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 같다. 폭력으로 아이를 죽음에 몰고 가고, 학대로 정상적인 몸무게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가정을 탈출하는 아이들. 그들이 가져올 미래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임을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그나마 정상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생성과정, 반응과정, 그리고 치료과정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이 현상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많은 사례와 전문적인 치료법을 전부다 이해 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알아야할 일상에서 트라우마의 흔적을 지우는 법은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만하다. 트라우마의 상흔을 치료하는 법의 핵심은 파편으로 기억된 트라우마의 기억을 하나의 온전한 기억으로 연장하는 것과, 자신이 무기력하게 당하고 행해야 했던 그 상황이 오롯이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믿게 하는 법, 그리고 신체에 각인된 그 상처를 일상의 작은 변화를 통해 치료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심각한 상태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것이 어쩌면 스트레스와 생존의 위협으로 항시 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마음의 세계를 조금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