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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 - 배반의 역사로 잃어버린 궁극의 맛을 찾아서
김현진 지음 / 난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먹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한 다는 것은 조금 사치스러운 일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때로는 근사한 것으로 때로는 짧은 시간에 위장을 채우는 것으로 넘어가기 쉬운 음식의 양면성을 가끔 느끼면서 어쩌면 하루에 세 번 혹은 네 번 때로는 두 번 정도는 이 음식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연의 섭리에 묶여있는 아주 나약한 인간을 발견하곤 한다.
저자는 이 인간의 본성에서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음식이 인류의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지배해 왔고, 때로는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고찰을 해본다. 어쩌면 일상 가까이에 있었기에 심도 있게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유교문화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제사를 통해서 조상님들과 만난다. 돌아가신 분들이 분명 음식을 드실 것이 아님을 알지만 풍성하게 지상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 재료 중에 가장 귀한 것들로 고루고루 준비해서 격식에 맞게 상에 올리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린다. 이렇게 늦은 시간 제사를 지내고 나면 음복이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지금은 음복을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평상시에 그 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 선조들은 제사음식을 가장 귀하게 나누어 먹었고 예의를 따지며 먹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제사를 이유로 후손들에게 맛난 음식을 나누게 할 목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먹는 다는 것의 근본적인 의미는 풍성함이 부족했던 시절 그러니까 얼마 오래 되지 않은 시점까지도 음식은 권력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남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구해서 먹으며, 남보다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힘과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지금처럼 마른 사람을 선호하기 보다는 풍족한 영양을 섭취한 튼실한 사람이 미인으로 추앙받았다고 하니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은 풍성한 먹거리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약한 인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간의 행적을 돌아보는 저자의 글 속에서 어쩌면 인간은 너무 많은 생명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사색의 고리는 종교적인 관점으로 넘어가고 금기와 통제를 근본으로 음식에 대한 제한을 담기 시작한 종교는 어쩌면 많은 살생이 가져오는 파괴를 줄이고자 하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음식이 가진 특성상 사회적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던 음식, 그 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저자가 지금 음식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음식을 나누고 같이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준다. 밥상머리 교육이 가져오는 아이의 인성 그리고 같이 밥을 나누는 사람들을 동료로 인식하는 아주 오랜 기억을 담아 놓은 우리의 DNA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당신과 같이 밥을 나누고 있는 가족을 가장강한 끈으로 묶어 놓고 있을지 모른다.
아주 작은 음식이라도 같이 나누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왜 중요한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음식을 대할 때 항상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는 다른 생명을 섭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딜레마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제사음식은 신들의 만찬이 끝나고, 인간에게 주어진 음식이다. Page34
먹는 행위 자체는 반드시 다른 생명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무분별하게 찾는 먹거리가 무한 긍정이 될 수 없느 이유이다. Page 50
인간은 자신의 행위 자체에 우월감을 가지거나 좌절하지 말고 행위 속에 마음을 담을 필요가 있다. Page68
술은 인간이 신성을 경험하게 하는 매우 특이한 음식이다. 그러나 술은 두 가지의 문으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에 우리의 신성체험이 악마적인 결과에 도달할지, 신들의 향연에 동참할지는 알 수 없다. Page 95
내가 너희와 약속하마. 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그 자리에, 그리고 이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모든 몸 속에 내가 함께할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떠나겠지만 너희는 내가 없는 공동체가 아니다. 너희의 먹고 마시는 것과 너희의 몸속에 내가 항상 함께할 것이다. Page 110
기이한 음식재료들은 풍요를 상징하는 도특한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먹는 자가 곧 로마의 상류층이자 최고의 지배계층이었고, 이런 탐식의 ㅁ누화를 곱게 포장해 `미식`으로 미화시켰다. 이처럼 권력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Page 131
위선! 미사여구로 포장한 교양과 문화라는 것은 많은 경우에 위선자들의 무기이다. 그들은 교양과 문화와 계명에 스며있는 깊은 뜻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전통만 유일한 것 처럼 주장한다. Paage 137
식탁은 권력의 연장선이다. 우리의 식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지는 우리가 어떤 권력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해준다. Page 142
우리는 밥상을 회복하여야 한다. 건강한 음식과 가족들의 삶이 함께하는 밥상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한다. 그것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파편이 된 개인들을 연결해 주는 길이다. Page 157
성자 유프로시누스의 전설은 순종과 겸손과 섬김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먹는 자리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하찮게 여기는 일, 식당 주방의 힘든 일을 수행의 방편으로 살아 성자의 경지에까지 오른 한 인물이다. Page187
이젠 음식을 혀끝으로만 맛볼 것이 아니라, 향기로 맛보고, 맑은 정신으로 음미할 만한 때가 되었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가 사랑에 빠진 어느 날, 그의 식탁에서는 천상의 음악이 들릴지도 모른다. Page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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