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 합법적 권력은 가난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 배충효 옮김 / 명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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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가난하다고 생각 된다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 보자. 나의 가난은 나의 게으름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기회를 덜 부여 받고 부당한 대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책은 대표적인 질문에 대한 증거와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 즉 빈곤층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상황을 통해 권력의 통제를 받게 되며 다시금 빈곤한 사람을 다시 생산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각이 난다. 기업이 살아야 개인 경제도 살아난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기업부양 정책을 펼쳐왔지만 개인의 재정은 좋아졌나? 이러한 현상은 비단 주변에서 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정책은 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대기업 하나가 국민의 절반을 먹여 살린다는 구호 아래 정책은 기업을 향해 쏠려 있다.

 

다시 질문 하나 더, 우리나라는 공평한 교육기회를 확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생각 또는 책의 이야기. 표면적으로 공평한 교육기회를 제공받고 있지만 사교육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공평하지 못하다. 즉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부모세대의 부가 자녀세대의 부를 결정하며 자수성가한 기업의 비중 보다 23세의 비중이 높은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현실에 비교하였을 때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빈곤이 사회구조적인 측면으로 해석되지 못하고 개인의 무능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부끄러움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정부의 지원이 기업으로 치중되고 있을 때 우리사회의 미래는 빈곤을 하나의 혹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은 이제는 구조적으로 박사, 석사, 학사 인력이 넘쳐나서 하향지원을 하게 되며 기업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싼 임금으로 쉽게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경쟁에서 낙오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사교육 시장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중년의 세대는 이로 인한 노후 준비가 되지 않고, 이로 인한 빈곤의 굴레는 항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수백만 중에 한 명 나올까 말까한 대기업 셀러리맨 출신 CEO를 롤 모델로 삼으라는 말을 해대고 있으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이다 라는 의식을 계속 심어주고 있다. 통제하려 하고, 획일화 하려 하며, 가두려 하는 통제의 기본을 계속해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빈곤의 순환은 철저하게 자본에 의해 조종되는 정치세력과, 그 시장을 유지하려는 기업의 자금줄을 통해서 움직이며 힘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견제를 피해 더욱 성장하고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각자의 몫으로 던져야 할 것 같다.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대변하지 못하고 자신의 작은 이익 때문에 다시 분열하여 기득권 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그리고 다시 빈곤을 찾아가는 그런 길을 걸을 때마다 우리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들을 것이고 그 것은 또 다른 빈곤과 사회구조적 빈곤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이양하며 그로 인한 자살률 확산과 저 출산 사회의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빈곤에서 시작 하는 것 일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가난과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개인의 무능함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그 이론의 오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이야기 인데 어쩌면 지금의 우리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도 초판은 2009년의 이야기 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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