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황현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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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네 번 해넘이를 바라본 어린왕자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련한 듯 슬픔이 묻어있는 모습으로 상상이 가네요. 집에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찾아보았습니다. 80년대 후반에 한 권을, 90년대 후반에 한 권, 그리고 2015년 다시 어린 왕자를 만났네요.

 

30년 전쯤 만난 어린왕자는 동화였습니다. 보아뱀과 모자 바오바브나무 꽃과 여우가 등장하는 우화 같은 그림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르고 다시 만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도 저는 그때 어린 왕자가 만난 왕, 허영 쟁이, 술꾼, 사업가, 지리학자, 가로등 지기에 주목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면서 책을 넘기며 길들여지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꼰대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한 인연을 만나 평생을 같이 길들이며 살아가는 것을 꿈꾸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그렇게 저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지구별이라는 곳에서 살면서 저는 작은 것을 감사하지도 못하고,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며, 길들이고 길들임을 당한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을 꾸짖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오래간만에 만나서일까요? 어린 왕자에게 그려주었던 상자 속의 양을 알아 보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그렇게 꼰대로 변해 가고 있는 제 모습을 어린 왕자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에게 전하는 동화라고 합니다. 쉽고 간결하고 그림도 있어서 어린 나이에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어서 어린 나이에 어른들이 권해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접한 이야기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다시 새로운 의미로 돌아온다는 것은 아마도 명작이 가진 힘이라고들 말합니다. 굳이 어린 왕자가 만난 별들의 사람 중에 그나마 제 모습과 비슷한 사람은 가로등 지기였습니다. 시간에 맞춰 불을 켜고 시간에 맞춰 불을 끄는 그런 일로 하루를 너무 바쁘게 사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다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어린 왕자가 친구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다만 어린 왕자가 머무를 만한 공간은 만들어 주어야겠죠? 별이 작아서 둘이 있을 자리가 없어 어린 왕자를 떠나보내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니까요.

 

예전엔 흘려 읽었던 것들이 이제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마음에 남습니다. 제 기억에 남아 있었던 여우, , , 그런 것 보다는 이제는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혹시 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별을 세는 사업가에게 한 말은 어리석게도 집 한 채를 가지려고 바등 거리며 살아가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것 보다는 연인의 목을 감싸주고 향기를 나눌 수 있는 머플러나, 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지금을 희생한다는 말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이 부분은 지리학자가 이야기 해주네요. 지리학자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나돌아 다닐 수 없다는 말을 남기는 데, 지금의 제 모습이랑 너무 흡사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우화로 읽을 수도 있었고, 이 책을 읽었을 때 추억을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기억들도 많았고, 처음 어린 왕자를 읽고 모자를 그려놓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던 기억도 있었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작은 별에 혼자 살고 있을 어린 왕자와 잔디에 앉아서 대화하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꿈을 잃어버릴 나이는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함을 바라보지 못할 만큼 세상의 때를 뒤집어 쓴 것도 아님을 알기에 이제는 어린 왕자와 친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첫 만남이나 두 번째 만남과는 달리,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가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바람도 막아 달라하고, 자신을 봐달라고 살짝 거짓말도 하지만 언제나 서로에게 반응하고 느끼며 공감하고 투덜거리는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바람을 막아줄 수 있고 친절을 베풀어 달라고 종알거리는 그런 사람들과 평생을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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