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난해하다. 시간과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전개되고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는 장강명이라는 작가의 의도 혹은 치밀함이 있었을 것이다. 주제를 어디에 두고 읽고 마음에 남겨야 할까? 유일하게, 아니 아주 드물게 두 번을 읽은 소설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용을 파악하는 데 힘들어서 글을 읽었다. 아니 단어를 읽었다. 그리곤 장강명 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숨겨놓은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다시 문장을 읽었다. 그렇게 한 소설의 기억을 정리해 본다.

모성애 혹은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한 맥락을 이룬다. 이 여인 역시 자신의 삶은 없다. 힘들게 키워온 아들을 남자에 의해 잃었다. 그 집착이 아직도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사랑일까? 자신을 살게 만든 하나의 의식에 대한 집착일까? 끝까지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애절함 혹은 죄를 벌하여야 하는 의미와 정도의 경중을 생각해 본다. 누가 그런 일을 정하여 제약을 주는 것일까? 여인의 삶은 있는 것일까?

남자, 한순간의 충동으로 젊음을 잃어버린 사람, 혹은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 때로는 자기합리화를 추구하는 사람. 왜 인지 모르지만 이 남자에게는 정이 가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스스로의 삶을 포기할 만큼의 고통이 있었기에 때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공감을 주지만 그 공감이 전적이지는 않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부정하지만 감성적으로는 그를 열렬이 지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여자, 뒤죽박죽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그의 글을 읽다가 그 남자가 궁금해진 여자. 그리곤 슬픈 결말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매우 행복했던 여자. 그리고 지금의 아픔이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면 결코 거부하지 않을 여자. 가족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 없는 여자 그럼에도 한 남자를 감쌀 줄 아는 여자.

삶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삶의 방식을 선정하고 그 대표성을 정강명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있는 남자. 그 남자는 한 번의 성장을 우주알에 표현하고 있다.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든다는 것에는 의미를 두는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이 남자는 알에서 나오는 현상과 자신의 성장과 탄생을 이야기한다. 무엇이 그를 만들었고 그렇게 되었는가에 집중하는 남자, 무기력하게 세상을 대하며 아주머니의 손을 떠나지 못하는 남자.

예정된 결말 아픈 결말 혹은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여자는 그 사랑을 선택한다. 그 결말까지 가는 과정을 사랑하는 여자 모든 여자들의 사랑은 그와 같다. 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남자보다 현명하다. 미래에 혹은 타인의 삶에 관심과 의미를 두고 자신을 찾는다.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의 결말은 유한한 삶이기에 결과적으로 이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영훈의 엄마 이 아주머니의 사랑은 변질되고 왜곡된 사랑이며 이기적인 사랑이다. 아들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그 투영된 사랑이 자신마저 버리게 만드는 모든 것이 하나의 목적에 집중되어 자신의 미래며 스스로의 모습에 관심이 없는 그런 사랑. 현재의 부모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을 걸지만 남는 것은 없다. 그리고 서글프다. 그래서 현실의 부모와 엄마는 항상 애틋함을 동반한다.

작가의 의도적인 시간 배열의 혼란스러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장면과 사람 또는 일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을 고민하게 한다. 시작과 끝을 살아가는 생명은 인간뿐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배열 속에 사물을 담아 놓으려 하는 경향을 말하고 있다. 실제의 기억은 어쩌면 시 배열이 아닌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아니 받아들이는 기억의 강도와 반복된 훈련만이 그 배열을 지배하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엉클어진 순서만큼이나 복잡할 것 같았던 이야기가 결과적으로는 지금을 살아가는 대표성을 가진 세 인물의 고민과 세상을 바라보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력한 남자, 희망 없는 여자, 그리고 왜곡된 기성세대 영훈의 어머니 이들이 만들어낸 그믐의 기억은 현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아픈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