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의 문, 환문총
전호태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평점 :
고구려라는 이름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그 영토에는 아직도 우리 민족이 살고 있지만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니다.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지만 그들의 후손은 그 문화유산을 지키지도 못하고 보고 싶으면 남의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하고 더욱이 유물에 대한 조사는 더더욱 힘들다. 조상의 땅을 지키지 못한 후손은 그렇게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역사적 사실을 검증할 여력도 그리고 그 것을 발굴 조사할 힘도 없고 지금 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 나라가 자신들의 속국이었다고 한다. 한번 바라보기도 힘들고 가서 우리 조상님의 묘역입니다. 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고구려의 구분에는 많은 벽과 들이 남아있다. 그 중에 보존상태가 좋은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그렇겠지. 남의 나라 조상들의 유물을 관리하는 데 돈을 쓸 나라가 어디 있겠어. 그리고 망한 나라의 무덤을 그냥 놓아둘 정복자들이 어디 있겠어. 민족혼을 없애고 응집력을 없애려면 그들의 구심점부터 없애는 것이 순리인 것을.
저자는 이런 고분군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였던 사람이다. 그리곤 특이한 고분을 하나 발견을 한다. 처음 그려진 그림은 일반 고구려고분군과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환문총이라는 곳에는 한 번 더 그림이 덧 입혀진다. 회를 바르고 처음의 그림을 지운 후 다시 동심원 모양의 문양을 그려 넣는다. 이 특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적조사를 할 처지도 아니고 좀더 광범위한 주변조사를 하기 힘들었던 저자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기에는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소설적 기법을 도입하여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유추하여 역사의 빈 공간을 고리 연결하듯이 연결하여 본다. 그렇게 환문총의 비밀을 풀어나가고 싶어 한 것이다. 북한에 있는 고구려의 유적, 중국에 있는 고구려의 유적을 우리 땅의 유적처럼 자유롭게 발굴 조사할 수 없었던 이유였으리라 짐작한다.
고구려의 멸망은 우리나라 강역을 반으로 줄여 놓는다. 외국의 힘을 빌어 통일을 했다는 신라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후손들에게 심어 놓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고구려의 땅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다. 고려가 원에 시달릴 때, 조선이 명나라를 붙잡고 사대를 할 때 모두 우리 조상의 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스스로의 강성함으로 중국 대륙과 맞짱 뜨던 유일한 나라 고구려는 같은 민족이라고 속국으로 삼지 않았던 실수로 인하여 신라라는 작은 화근에 의해 나라를 잃어버리는 수모를 겪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무덤 속 벽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것도 많은 세월 또 다른 수모를 겪으면서 겨우 남아있는 흔적만 가지고 말이다. 그들의 강성함과 세계관 종교관 그리고 우리 민족의 기원을 그렇게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글로도 남기지 못하고 이제는 남아있는 것이 비석과 벽화뿐이라니 아쉽게도 멸망한 나라의 기억은 그렇게 남아 있는 것이다.
소설도 아니고 역사책도 아니고 저자의 회고록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이야기들이 엉켜있다. 학자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약간 어수선한 부분도 있고 반복되는 사진 등장과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진이 시선을 빼앗아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 지 초점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무덤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처음 발굴하던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다시 그 무덤을 바라보며 사는 후손들의 기억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보존처리 하면서 우리의 유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남게 만드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