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플 ㅣ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뉴엘 베른하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얇고 짧고 간결하고 흥미롭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이면 영화 한 편 보는 것 이상의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연극 대본에 지문만 있는 듯 한 문체와 대화가 나오지 않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지만 한 쌍의 남녀 이야기이다. 먹을 것이 항상 등장하고 그들의 행동을 위주로 묘사하고 있다. 극도로 간결한 행동에 대한 묘사와 그 속에서 두 주인공 엘렌과 로익의 심리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구조가 얇은 책임에도 두꺼운 소설을 읽었을 때 보다 더 많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독자에게 선물한 상상의 시간을 가미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인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이와 같은 100쪽 남짓의 소설을 다섯 편을 발표했다고 한다. 다른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형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도로 절제된 관찰자 입장에서의 행동의 묘사를 축으로 한 소설 말이다.
남녀 두 주인공은 식사를 매개로 사건을 만들어 간다. 밋밋할 것 같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열 번의 식사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과 식사 약속이 어긋난 이후의 남과 여의 행동 그리고 같이 식사한 이후의 행동과 상상이 절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행동을 작가는 치밀하게 관찰하고 그 행동에 독자의 생각을 가미 시킨다. 그리곤 상상을 하게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고 다음 행동은 왜? 라는 질문을 하지만 작가는 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곤 암시적 행동을 담아 두어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로익의 행동은 그간 엘렌을 만나면서 스스로 해왔던 의심과 밀고 당기는 행동의 종지부를 찍었음을 암시한다.
남자인 로익은 끊임없이 엘렌을 의심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상하고 증명하려 하지만 엘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통의 여자와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여자인 엘렌은 로익에게 표현하지 않지만 그를 만날 때면 약간의 들뜬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 장면을 작가는 간결한 행동으로 묘사한다. 남자인 내가 볼 때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에 가지는 호감의 표현을 적절하게 표현한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열 번의 식사가 만들어 준 그들만의 추억은 아마도 해피엔딩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작가는 마지막 역시 독자의 몫으로 돌려놓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결말은 그렇게 감지된다. 너무 낙관적인가? 아니 소설의 전반을 끌어가는 로익의 행동 역시 엘렌에게 분명 호감이 있었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소설을 만났고, 짧은 만큼 시간을 오래 들이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많은 것을 상상하고 심리상태를 유추해 보고 왜? 이런 행동을 하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민을 해본 것 같다. 그럼에도 남녀 간의 관계가 깨질까? 이루어질까? 하는 질문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할 만큼 긴장감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이 물음을 끝까지 가져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